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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하는 히스기야 개혁

열왕기하 이경숙 교수............... 조회 수 566 추천 수 0 2015.03.30 22:56:50
.........
성경본문 : 왕하18:1-4 
설교자 : 이경숙 교수 
참고 : http://www.saegilchurch.or.kr/index.php?mid=sermon&category=129757&page=2&document_srl=129296 

뱀 해에 다시 생각하는 히스기야 개혁

(열왕기하 18:1-4, 요한복음 3:14-15)

 

2013년 1월 20일 주일예배

이경숙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새해를 어떻게 맞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여러분들의 가정과 하시는 모든 일이 새롭고 또 기쁘고 의미 있는 무엇보다도 보람 있는 한해가 되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올해는 계사년 뱀띠 해라고 하여 구약성서에 나오는 뱀에 관한 표상을 중심으로 말씀을 드릴까 생각합니다. 구약 성서에는 뱀에 관한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옵니다. 어떤 곳에서는 긍정적으로 나오고 또 다른 곳에서는 부정적으로 나오기도 하지만 대체로 긍정적입니다.

 

우선 긍정적으로 나오는 뱀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면, 민수기에 나오는 이야기를 들 수 있습니다. 민 21:4-9 에 보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이 상해서 음식에 대해서 불평을 많이 했습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면서 모세를 향하여 불평을 했습니다. 그래서 야웨 하나님이 불 뱀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백성들이 “우리가 당신과 야웨 하나님에게 불평하여 (원망하여) 범죄하였으니 야웨께 기도하여 이 뱀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해 주소서” 하면서 모세에게 간청합니다. 이 때 모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백성을 위하여 다시 기도했습니다. 결국 야웨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 것이다” 하셨습니다. 모세가 구리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았고 뱀에게 물린 자마다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았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렇게 생명을 회복시키는 기적의 힘을 가진 불뱀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구리로 만들어서 보전하였는데 이는 열왕기에 나옵니다.

 

왕하 18: 4에 보면 이 사건을 기념해서 모세가 만들었던 구리뱀을 이스라엘 자손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설치했었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에 분향하였는데 히스기야 왕 (BC 727-697) 때 성전 정리를 하면서 이 구리뱀을 없앴다고 되어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그 때까지 성전에 있던 구리 뱀을 제거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왜 성전에 이 구리뱀을 설치했었으며, 히스키야 왕은 왜 이 뱀을 제거 했을가요? 이런 점들이 궁금합니다.

 

부정적인 뱀의 모습은 창 3장에 나옵니다. 여기에 나오는 뱀은 무척이나 똑똑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아담과 하와와 대화를 할 수 있었는지, 또 선악과를 먹어도 죽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었는지 ... 기독교인들은 대개 여기에 뱀을 사탄이라고 규정짓고 악의 기원, 혹은 악의 세력의 화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악신과 선신이 있는데 기독교의 하나님은 선신이고 다른 종교의 하나님은 악신 즉 사탄이라고들 생각들을 합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창3장에 나오는 뱀도 사탄은 아닙니다. 성서기자가 받아 들여서 변형시킨 원래 설화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원인간은 완벽하게 창조되어 신의 거주지엔 에덴동산에 살고 있었다. 에덴동산에는 생명나무, 지혜나무가 있었는데 원인간은 이 실과를 먹으면 안 된다는 금령을 어기면 안 되는 존재였다. 에덴동산에 살고 있던 여러 신들 중에 뱀도 하나의 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에덴동산 한가운데 서있던 생명나무, 지혜의 나무에 관해 알고 있었고 최고의 신이 ‘이를 먹으면 죽으리라’고 말한 것이 거짓임도 알았습니다. 그는 원 인간에게 이를 알려 주었고 원인간은 호기심과 교만한 마음이 생겨서 이 금령을 어기고 지혜나무 열매를 먹었고, 그 결과 지혜는 습득했지만 에덴동산으로부터는 추방당하였다. 그는 선과 악을 아는 지혜는 얻었지만 영생을 얻지는 못한 것이다."

 

성서 기자는 이 이야기를 야웨 종교에 맞게 변형시켰습니다. 뱀을 신이 아니라 “야웨가 창조한 피조물 중에 하나”로 변경되었고 뱀을 단순히 영리한 동물로 변화시킴으로 원 설화에 들어 있던 신적 성격을 벗겨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뱀이 말을 건 사람은 원 인간에서 여자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짐작 수 있는 것은 뱀이 본래 신적인 존재로서, 신들의 정원 에덴 종산의 비밀을 알고 있었고 지혜를 관장하면서 인류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이를 부추겨서 인간을 파멸로 인도할 수도 있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한편 성전에 설치된 뱀에 대해서도 모세에게 불평하는 백성, 이들을 질책하시는 야웨 하나님, 그 하나님이 불 뱀을 보내셨고, 또 회개하고 애원하는 백성들에게 구리뱀을 만들어 쳐다보라고 하신 야웨 하나님의 명령, 이런 것을 생각해 보면 성서 기자들은 뱀의 능력을 야웨 하나님과 결부시키도록 노력했음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위의 두 이야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바는 고대 근도에서 뱀은 본래 신적인 존재였다는 점입니다. 뱀은 생명을 갖다 주는 구원의 능력을 가진 존재로 혹은 아주 위험한 존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점은 동서양이 모두 같습니다. 우선 불 뱀은 (날개 달린 스랍 즉 불을 뿜어 내는) 독을 가지고 있어서 불평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죽게 하는 존재로 나타납니다. 불 뱀은 우리에게 치명타를 입히는 위험한 존재입니다. 이는 뱀의 외형과 관련해서 생겨난 뱀의 표상, 즉 징그럽고 싫고 또 독을 가진 위험한 존재라는 의미에서 성서에서는 사탄과 결부되어 나타나는 경우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동시에 뱀은 치유의 능력을 지니는 존재로도 나타납니다. 그래서 불 뱀의 모양을 구리로 만들어 달아 놓은 “놋 뱀”은 쳐다보면 살게 되기도 합니다. 뱀은 우리를 치유하는 존재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뱀이 허물을 벗고 새롭게 태어나기 때문에 고대로부터 여러 문화권에서 치유의 능력이 있는 신적인 존재로 알려져 왔던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물론 이야기의 배후에는 위험한 존재에게는 그 모상을 만들어 그것에 절하고 숭배하면 그 위험에서 피할 수 있다는 고대의 관습도 숨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뱀이 치유의 능력이 있는 존재라는 것은 동서양 문화권 모두에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약국에 가면 뱀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희랍 신화에서도 치유의 신이 뱀의 형상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한편 중국이나 인도 같은 곳에서도 뱀은 신적인 존재이고 창조자 여와의 모습도 뱀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또 뱀은 지혜와 많이 연결되어 나타납니다. 뱀은 지혜, 생명, 치유 등 여신의 형상으로 많이 쓰였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열왕기하 18장에서 히스키야 왕의 통치 영역에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성전에 모세가 만든 구리 뱀의 모형이 들어 있었고 거기서 이스라엘 제사장들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를 향하여 분향하였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으시는지요. 아무리 모세와 관련된 이야기라고 해도 이스라엘의 가장 공식적이고 국가 종교의 상징인 이스라엘의 국가 성소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네후스탄이라고 칭하면서 뱀에게 분향을 했다니... 이 모형을 정말 모세가 만들었고 이 구리뱀 모형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전이 지어 질 때까지 들고 다니다가 성전에 갖다 놓았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성전에 구리 뱀의 모형이 설치되었고 이에 대한 설명으로 광야에서의 뱀 재앙설화와 불 뱀 모형에 관한 이야기를 사용하였을 것 입니다. 예루살렘 성소에 있던 뱀의 모형은 이사야가 소명을 받을 때 있었던 날개 달린 스랍과 상관이 있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용의 모습을 한 장식물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도 해 봅니다. 아무튼 분명한 사실은 예루살렘 성전에 구리뱀 모형이 설치되었고 왕국 시대에 이스라엘인들이 이에 분향하였고 이를 히스키야 왕이 우상으로 생각해서 제거하였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북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할 즈음에 남 유다의 왕이 된 히스기야 왕이나 그 뒤 60년 이후 요시야 왕이 이룩한 종교 개혁 이전의 이스라엘 종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것이었다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국가 성소인 예루살렘에서도 뱀의 모형이 있는 등 훨씬 자유롭고 풍부하고, 민간 종교나 큰 차이 없었다는 점을 알 해줍니다. 뱀은 지혜의 신이고 치유의 신이고 생명의 신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여성적 성격의 신입니다. 이런 신의 형상이 예루살렘 성전에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국가 성소에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예루살렘 국가 성소도 요즘 기독교가 아주 싫어하는 혼합종교적 성격이 아주 강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떠돌아다니던 생활을 끝내고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부터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과 종교가 다른 나라의 종교와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과 종교는 다른 고대 근동의 삶과 많이 비슷했습니다. 다윗이 왕정을 설립한 일, 그리고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일, 이 모든 것은 가나안 농경지 문화를 받아들인 새로운 형태의 이스라엘 종교 양식입니다. 이 때야 말로 야웨 종교가 다른 나라의 종교와 비슷하게 혼합주의가 꽃을 피운 시기입니다. 이때에 다른 나라와 비슷하게 뱀의 모형이 성전에 자리 잡게 되었을 것입니다. 제사장들이나 신학자들이나 성서 기자들은 이 뱀에 대해 야웨의 명령을 받은 존재로 해석하고 있었을 것이지만 보통 이스라엘인들은 농경지에서 가정에서 또 각 지역에서 종교 활동을 하면서 아마도 다른 고대 근동의 종교 양상과 별 차이가 없이 이런 저런 관습을 지켰을 것입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국가 성소 즉 가장 공식적인 이스라엘의 종교의 상징이었던 예루살렘 성소도 이런 뱀의 형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요한복음 3:14-15에 보면 요한복음 저자도 이를 예수의 들림과 결부 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종교는 무척이나 다양하고 혼합적이고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internal religious pluralism 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평화롭고 위기가 없을 때에는 자신들의 종교를 배타적이거나 우월성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또 전쟁을 위주로 한 종교로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공식적인 국가적인 종교에 있어서는 국가의 흥망이 달려 있으므로 위기 시에는 전쟁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히스기야, 요시야 종교 개혁은 아씨리아가 몰려오고 바빌론이 공격이 시작되고 국가적 위기 상황에 처할 때였습니다. 성서는 이 예언자적 개혁 정신에 의해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서 써지고 정리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들의 소리가 전체의 소리로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들은 아주 소수의 인텔리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성서를 마이너리티 리포트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평화 시에 했던 대로 가정에서 또 마을에서 뱀으로 상징되거나 돌기둥, 나무 기둥으로 상징되는 신적 존재들에게 임신과 출산, 그리고 병으로부터의 치유, 큰 수확 등을 기도하고 분향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가정이나 지방에서는 상당히 자유롭게 종교 생활이 계속 되었을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서 안에서는 예언가들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은 소수의 종교 개혁가들에 의해 민간종교 혹은 국가 종교가 지적받고 비판받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개혁 운동의 결과 여성들은 아주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됩니다. 왜냐하면 소수 개혁운동의 대변자들은 그 당시 인텔리였던 남성 지도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충 여자들만이 민간 종교에 심취되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또 우리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실일까요? 민간 신앙의 추종자들은 이스라엘 대다수를 차지했던 남녀 모두였지만 성서 기자들이나 성서 독자나 해석자들은 이런 민간 신앙의 수행자들을 여성들이었다고 알려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히스키야 개혁 이후 실시된 종교ㅕ 개혁의 흐름에서 민간 종교건 국가 종교건 개혁 흐름에 맞기 어려운 일들은 모두 이방종교의 요소로 정죄되었는데 이방 종교적 관습을 행하던 장본인들을 모두 여자들로 내세우게 되면서 여자들이야말로 이방 종교를 퍼트리거나 아니면 이방 종교에 쉽게 물드는 존재로 낙인찍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런 종교 개혁의 주동자였던 예언자들조차 여성들을 지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렘 7:16-18 에 보면

“ 너는 그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는 일을 보지 못하느냐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비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는 황후를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나의 노를 격동하느니라” 로 되어 있지만

 

렘 44:15-19에 보면

“... 우리가 하는 여신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 드리던 것을 폐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핍절하고 탈과 기근에 멸망을 당하였느니라 하며 (여인들은 가로되) 우리가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릴 때에 어찌 우리 남편의 허락이 없이 그에게 경배하는 과자를 만들어 놓고 전제를 드렸느냐”

 

호세아 4장을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4:8에 보면 “사제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나에게 짓는 죄가 늘어난다”

4:14에 보아도 “ 그러나 나는 너희 딸들이 바람을 피운다고 벌하지 않겠으며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을 한다고 벌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제사장들이' 으슥한 곳에서 바람을 피우며 성소의 창녀들과 제물을 바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백성들이 모두 함정에 빠지게 되었다.”

 

호세아나 예레미야가 잘 알았듯이 여성들은 이방신에 홀리기 쉬운 존재들은 아닙니다. 여성들이 종교성이 강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여자들이 앞장서서 이방신을 섬겼다거나 혹은 여자는 본질적으로 주술, 마술 등에 약하다는 편견은 진실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패망이 마술적인 종교의 힘을 믿는 여자들의 신앙의 태도 때문이라는 비난은 어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견해가 구약성서 시대 뿐 만이 아니고 신약시대, 그리고 고대, 중세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 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언제나 잘되면 남성 지도자 덕분이고 잘못되면 여자들 탓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중세에 어떻게 백만 명이나 되는 많은 여성들이 마녀라는 이름으로 죽어 갔을까요?

 

여기서 저는 여성에 대한 편견 때문에 이단으로 몰려 갇혀서 살던 한 훌륭한 여인에 대해 전해 드리면서 제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사실 여성들은 남성과 같이 훌륭한 종교성을 가지고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1585-1645년에 걸쳐 살았던 영국의 마리아 바드(Maria Ward, 영어로는 Mary Ward 즉 메리 워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헨리 8세가 성공회를 창설하고 카톨릭을 탄압할 때 카톨릭 교도로 남아 있었던 많은 어려움을 겪은 그러나 아주 부유한 집안의 딸이었고 유럽 전체 세력가들의 지지도 받고 있던 여성이었습니다. 결혼하지 않고 수녀원에 가겠다고 결심을 하고 수녀원에 들어 갔습니다. 그러나 수녀원 생활은 기도와 회개가 전부였습니다. 이에 문제를 느낀 워드는 새 교단을 세우고자 했습니다. 즉 수녀원 속에서 담장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채 개인의 영성만을 위해서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수녀원 밖에 살면서 교육을 받으면서 세상을 위해 봉사하면서 종교생활을 하는 새로운 교단을 만들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바드는 그 어려운 교황 면담을 허가 받았고 교황에게 또 추기경들에게 몇 번이나 자신의 계획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를 후원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요. 그 때마다 교황도 추기경들도 즉답을 하지는 않았으나 반대 의견도 없었습니다. 그냥 “좋은 생각이다” 정도의 이야기만 들은 것이지요. 마리아 바드는 이런 반응을 찬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609년부터 여자 학생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고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이그나티우스 로욜라가 남자들만을 위해 1540년에 시작한 예수회 교단 같은 여자 교단을 만들고 싶어 한 것입니다. 수녀원 안에서 배우는 교육이 너무 형편없었고 세상과는 담을 쌓고 결혼해야만 풀려나는 수녀원 생활을 여성들이 너무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그나티우스는 물론 모든 추기경들이 여자가 교육을 받는 것에 대해 반대했습니다. 1616년 경에 St. Omer, Luettich, Koeln, Trier, Rom, Neapel, Perugia, Muenchen, Wien 등에 학교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1626년부터 Rom 폐교령을 시작으로 1630년 모든 학교 등이 폐교 당했고 1631년 워드는 종교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이단이라는 판결을 받았고 2년간 감옥에 있었고 1631-37년 까지 감시당했습니다. 마녀는 면했지만 죄인이었습니다. (1633년이면 갈릴레이가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도록 강요당할 즈음입니다.) 1637년 로마를 떠날 수 있게 되어 파리로 해서 영국에 가서 1645년 1월 30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몇몇의 학교는 문을 닫지 않았고 여자학교로 살아남았습니다. 그래서 1709년에 이 학교들은 교회 기관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창설자가 마리아 바드라는 말을 하거나 그녀의 그림을 붙이거나 하는 것은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909년에야 비로서 카톨릭 교회에서 교황 비오 10세에 의해 복원되었고, 2004년 1월 30일에 카톨릭 교회에 CJ 즉 Congragation Jesu라는 창설자의 희망대로 교단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아직 성자로 선언은 못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이 이는 교황이나 추기경의 잘못이 널리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교황청의 태도 때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편견은 편견을 낳고, 한 집단이 가진 편견은 그 집단의 소속자들을 모두 그 편견 속에 가두고 맙니다. 일본, 독일, 요즘 우리나라에서 생겨나는 편견들이 무섭습니다. 유럽에서 백만명에 이르는 여성들이 마녀로 학살당한 사실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늘 죄책고백에 인색하서도 안되고 또 세상을 이원론적으로만 보아서도 안 됩니다. 나는 선이고 너는 악이고.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양성과 다층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성서를 읽을 때에도, 세상을 볼 때에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이렇게 다양하고 다층적인데 어떻게 우리의 사고 구조를 이원론적으로만 놓고 볼 수 있을까요? 남녀간의 갈등, 세대간의 갈등, 진보 보수간의 갈등, 지역 갈등이 해결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구약성서의 올바른 이해에서 실마리를 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올 한 해 뱀의 해를 맞이하여 지혜롭게, 생명을 살려나가는, 치유의 존재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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