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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대상29:1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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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행복한 인생 건축 자재
(역대상 29장 10-19절)
<
바벨탑의 저주를 피하십시오 >
2014년 말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의 한전부지 79342평방미터(약 24000평)가 10조
5500억 원의 입찰금을 써낸 현대자동차 그룹의 품에 안겼습니다. 평당 가격이 약 4억 4천만 원입니다. 당초 삼성전자와 치열한 입찰경쟁이
예상되었는데 승부가 싱겁게 끝났습니다. 삼성전자는 약 4조 원 대의 입찰금을 써냈는데 동 이름도 회사 이름과 같은 삼성동이어서 그 땅에 더
애착을 가졌다고 합니다.
언론에서는 그룹의 자존심을 건 입찰경쟁의 패배로 이재용 부회장의 리더십에 상처가 났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가치와 미래의 비전을 토대로 잘 분석하고 적정가격을 써냈다가 입찰경쟁에서 패배했다면 그것은 패배가 아닙니다. 경영은 자존심 대결이
아닙니다. 리더는 과감한 결단력과 승부사적인 기질도 있어야 하지만 안정감과 믿음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입찰경쟁에서 A사가 4조
원을 써내고 B사가 4조 1원을 써내서 B사가 이긴다면 상식적으로 볼 때 B사가 현명한 결정을 한 셈입니다. 만약 A사가 4조 원을 써내고
B사가 5조 원을 써내 입찰금 비율 차가 25% 정도 되는 상황에서 B사가 이긴다면 어느 회사가 잘 결정했는지는 말하기 힘듭니다. 만약 A사가
4조 원을 써내고 B사가 10조원을 써내 입찰금 차가 6조 원이나 되는 상황에서 B사가 이긴다면 상식적으로 볼 때 B사가 무리한 결정을 한
셈입니다.
현금 6조 원은 30억 원 로또를 2천 번 맞아야 생기는 돈이고 초대형 기업이 사업이 잘될 때 60조 원쯤의 매출을
올려야 얻는 이익입니다. 그런 엄청난 금액을 더 써내지 않아서 입찰경쟁에서 패배한 것은 진짜 패배가 아닙니다. 살다 보면 경쟁에서의 승리가
오히려 패배가 되고 경쟁에서의 패배가 오히려 승리가 될 때도 많습니다.
현대자동차 그룹은 그 부지에 115층의 사옥과 62층의
6성급 호텔을 짓는다고 합니다. 그 계획이 회사 이미지는 제고해도 가격 대비 가치 창출은 거의 이루기 힘듭니다. 서울 근교에 평당 천만 원 하는
곳에서도 화려한 6성급 호텔을 짓고 하루 숙박비로 백만 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땅값이 40배인 평당 4억 하는 강남에 6성급
호텔을 짓는다고 해서 하루 숙박비로 40배인 4천만 원을 받을 수는 없고 고작해야 2배쯤 받을 수 있습니다.
결국 현대자동차
그룹의 결정은 도저히 타산을 맞추기 힘든 결정입니다. 차라리 그 돈으로 싸게 서울 근교의 땅을 매입해서 그곳을 미래의 준 강남으로 만드는 비전이
낫게 보입니다. 물론 거대기업의 회장에게는 일반상식을 넘어선 특별한 이유와 복안이 있었겠지만 역사적으로 그런 무리한 결정은 대개 ‘승자의 저주’
혹은 ‘바벨탑의 저주’가 될 때가 많았습니다.
과시적으로 무리해서 지은 엄청난 건축물이 백성들을 힘들게 하고 당대의 왕조와
리더십을 무너뜨리는 원인이 되는 것이 바로 ‘바벨탑의 저주’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런 바벨탑의 저주가 한국 교회에서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때
대형교회 건축으로 한국교회는 엄청난 성장을 맛보았지만 지금은 무리한 대형교회 건축으로 오히려 속병에 들고 어려워진 신도시 교회가 분당과 판교와
용인에 한둘이 아닙니다.
흔히 솔로몬을 지혜로운 왕으로 알고 있습니다. 왕이 된 초기에 솔로몬은 하나님께 겸손하게 지혜를 구하고
받아서 높은 학식에 지혜까지 겸비한 왕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는 나라도 부강하게 만들었고 영토도 확장시켰고 당시 국제정세에서의 영향력도
컸습니다. 그러나 그의 지혜는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특히 욕정관리를 못해 후궁을 7백 명, 첩을 3백 명 둔 것은 고대의 정략결혼 관습을
염두에 두어도 아주 어리석은 태도였습니다. 결국 그 여자들의 미혹으로 왕은 무서운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건축 문제에서도 솔로몬은
지혜롭지 못했습니다. 그는 다윗이 이루지 못한 크고 화려한 성전 건축을 7년 만에 이뤄냈습니다. 아버지 다윗 때부터 준비된 성전 건축은 당연한
일이었고 국가적인 랜드 마크로서 멋진 성전 하나쯤은 건축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 성전처럼 지나치게 화려하게 짓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결국 솔로몬의 지나치게 크고 화려한 성전건축은 노역에 동원된 많은 국민들에게 자부심을 넘는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게다가 7년 성전건축 후에는 13년 동안 더욱 거대한 왕궁건축도 했습니다. 마침내 민심이 폭발해서 솔로몬 말년에 수많은 반역과 민란이
일어났습니다. 민심 이반을 체감한 솔로몬은 노후에 심신이 약해진 상태에서 부귀영화의 허무함을 깨닫고 회한에 가득한 글을 남겼는데 그것이 바로
전도서입니다.
솔로몬 사후에 백성들은 왕위를 이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무거운 노역을 줄여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때
르호보암은 노역을 줄여주라는 현명한 노인들의 말 대신 노역을 더 심하게 해서 비판의 싹을 자르라는 젊은 친구들의 말을 듣고 백성들의 청원을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북쪽 10개 지파가 반역해서 나라가 2개 지파가 연합된 남 유다와 10개 지파가 연합된 북 이스라엘로 갈렸습니다. 결국
남북분단도 솔로몬의 지나친 건축으로 인한 노역이 원인이 된 것입니다. 그런 역사들은 무리한 건축을 주의시키는 반면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 행복한 인생 건축 자재 >
교회는 창조성이 넘치고 나눔에 힘쓰는 의로운 부자배출에 힘써야
하고 교회 리더는 하나님이 주신 자원과 재능으로 많은 성도들에게 행복의 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교회는 무리한 건물 건축보다 의로운 인물 건축과
행복한 인생 건축에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어떻게 행복한 인생을 건축할 수 있을까요? 본문에 나오는 다윗의 고백을 통해 행복한 인생 건축을
위한 기초 자재 3가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감사와 찬송
본문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여 이르되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다윗은 법궤를 안치할
성전건축이 평생소원이었지만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성전건축 준비만 하고 죽었습니다. 그렇게 준비할 때 리더들과 백성들이 자신을 본받아 기쁘게
자원해서 헌신하는 모습을 보고 심히 기뻐하며 하나님을 송축했습니다.
사실 다윗은 좋은 때뿐만 아니라 힘들 때도 늘 감사와 찬송이
넘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처럼 범사에 감사하며 살려면 하나님의 주권 인정에 탁월해야 합니다. 다윗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을 만물의 주인으로 높이고 찬송했습니다(11절). 또한 모든 부귀영화가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고 고백하면서 부귀영화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했습니다(12-13절).
하나님은 만물과 역사와 인생의 주관자이십니다. 모든 환경과 상황은
하나님의 허용 하에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힘든 상황에서도 불평하거나 원망하거나 자학하지 말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믿음이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모든 조치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처럼 모든 일을 하나님이 주신 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면 그때부터는 감사와 찬송밖에 나올 것이 없습니다.
행복한 인생을 건축하려면 믿음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의
차이가 인생을 좌우하고, 영혼을 좌우하고, 행복을 좌우합니다. 믿음이 있어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현실이 기적적으로 바뀌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아무 때나 홍해가 갈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보통 때는 홍해를 가를 수도 없고 홍해를 가를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홍해도
가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꼭 붙잡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당하는 고통과 문제를 당장 해결해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환경 변화에만 관심을 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보다 큰 관심은 무화과나무 잎이 마르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고, 우리에 양떼가 없고, 아무 것도 없어도 하나님 때문에 즐거워하겠다는 성도의 믿음에 있습니다. 믿음에 따라서 생각도
변하고 마음도 변합니다. 결국 행복은 감사하는 믿음에 의해 좌우됩니다.
2. 즐거운 헌신
다윗은 자신과 백성들이
즐겁게 성전건축을 위해 헌신한 것에 대해 아무런 공로의식이 없이 하나님이 드릴 마음도 주셨고 하나님이 주신 것을 드렸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고백했습니다(14절). 또한 인생은 잠시 거하는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과 같은 존재로서 곧 이 땅을 떠나야 할 그림자 인생이라고
고백했습니다(15절). 이 고백은 허무주의나 염세주의를 조장하려는 고백이 아니라 인간의 왜소함을 깨닫고 청지기 의식을 가지고 헌신하는 삶을
살라는 도전입니다.
헌신할 때 기쁨과 행복이 넘치려면 꼭 가져야 할 3대 자세가 있습니다. 첫째, 공로의식을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16절에서 다윗은 또 다시 성전 건축을 위해 드린 물질이 주님의 것을 돌려드리는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잠시 맡은 존재란 뚜렷한 청지기 의식을 가지고 물질을 드릴 때 공로의식을 가지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썼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이 그 마음을 기쁘게
보셨겠습니까?
둘째, 체면치레로 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17절 전반부 말씀을 보면 다윗은 성전건축을 위해 드릴 때
체면치레가 아닌 하나님을 사랑하는 정직한 마음으로 즐겁게 드리면서 자기의 헌신으로 백성들의 헌신을 유도하려는 불순한 의도로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처럼 하나님께 헌신할 때는 받은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의 것이기에 되돌려 드린다는 순전한 마음과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드려야
합니다.
셋째, 자원해서 드려야 합니다. 본문 17절 후반부 말씀을 보면 다윗이 정직하고 순전한 마음으로 즐겁게 드리자 백성들도
따라서 자원해서 드렸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다윗은 심히 기뻤다고 고백합니다(17절). 아무리 좋은 일에 드려도 강요해서 드리면 기쁘지 않지만
자원해서 드리면 기쁨과 보람과 행복이 넘치게 됩니다. 사람은 사랑 받을 때도 기쁘지만 사랑할 때는 더 기쁩니다. 또한 받을 때도 기쁘지만
자원해서 줄 때는 더 기쁘게 됩니다.
자기만 위해 사는 사람을 보면 얼굴이 어둡고 인생이 조급하고 삶의 여유도 없습니다. 반면에
교회에서 자원해서 봉사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 사람 옆에만 가도 우울한 마음이 없어집니다. 창가에 빛이 비칠 때는 먼지도 빛나게 되듯이 그
봉사하는 사람의 빛나는 얼굴을 보면 자기 영혼도 빛나게 됩니다. 낮아짐이 없이 높아짐은 없고 나눔이 없이 채움은 없습니다. 결국 자발적인 나눔은
행복의 문을 여는 최대 열쇠입니다.
3. 믿음의 계승
다윗은 자신의 믿음과 성전 건축의 마음이 백성들에게도
계승되기를 원했고(18절), 또한 솔로몬에게도 계승되기를 원했습니다. 본문 19절 말씀을 보십시오. “또 내 아들 솔로몬에게 정성된 마음을 주사
주의 계명과 권면과 율례를 지켜 이 모든 일을 행하게 하시고 내가 위하여 준비한 것으로 성전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라.” 다윗은 아들
솔로몬이 정성스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특히 자기가 준비한 것으로 성전을 건축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성전건축은 너무나도 이루고 싶었던 거룩한 과업이었지만 다윗은 그것을 자기가 꼭 이루겠다고 하지 않고 백성들과 자녀를
통해 이뤄져도 좋다고 여겼습니다. 그처럼 거룩한 비전을 자신이 다 이루겠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이 이루지 못하면 후대를 통해 이뤄져도
좋다는 마음을 가지고 길을 닦아주면 됩니다. 그런 마음의 여백을 두고 열심히 살았기에 다윗은 성전 건축은 못했어도 행복한 인생은 건축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현재 구약성경 강해를 60% 완성했고 신약성경 강해를 85% 완성했습니다. 성경 전체로는 약 70% 강해를
완성한 셈입니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2024년에 성경전체 강해를 100% 완성합니다. 얼마나 가슴 벅찬 일입니까? 생각만 해도 흐뭇하고 그
비전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도 행복합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의 어떤 뜻이 계셔서 제가 병과 사고로 성경 66권 중에 65권까지만 강해를 마치고
이 세상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뜻 있는 교인들이나 저의 두 딸을 통해 그 비전의 나머지 조각이 완성되어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경 65권만 강해를 끝낸 상태에서 이 땅을 떠나게 되면 그때 저는 이렇게 기도할 것입니다. “하나님! 인간의
연약성을 깨닫게 하시려고 66권 전체가 아닌 65권만 강해를 끝낸 상태에서 저를 부르시는 군요. 그래도 감사합니다.” 때로는 한 조각이 빠진
그런 미완성을 통해 후대에 과제를 남기는 것이 더 멋질 수 있습니다. 성 프랜시스는 40일 금식기도를 하다가 “예수님도 40일 금식기도를 했는데
내가 어떻게 그렇게 하는가?” 하고 39일 만에 금식을 끝내서 더 성자로 존경받게 된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은혜로 66권 전체
강해를 무사히 끝내면 그것을 영어로 번역해 출판하는 일도 직접 할 것입니다. 혼자 하면 약 15년의 세월이 필요하겠지만 하나님이 재정적인 은혜를
주신다면 그 기간은 상당히 단축될 것이고 중국어판 번역까지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 영어판 번역을 다 완성하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고 해도 역시 기쁘게 떠날 것입니다. 그 미완성된 비전이 교회에서 배출된 후대 인물이나 두 딸을 통해 완성되어도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비전을 자기가 다 이루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고 안 되면 후대를 통해 이뤄져도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가면 됩니다. 그래서 믿음과 비전의 계승이 중요합니다. 믿음과 비전을 잘 계승시키면 몸은 죽어도 영향력은 죽지 않습니다.
그러면 천국에서도 영원히 살지만 인간 역사에서도 오래 기억되면서 마치 그 영향력이 살아서 역사하는 것처럼 될 것입니다. 얼마나 행복한
삶입니까?
2008년 초, 그 전에 단체로 등록한 사람들이 기존 교인들을 은밀하게 미혹해서 많은 교인들이 떠나는 시련을 만났을 때
몇 분의 노 권사님들을 중심으로 적은 숫자만 교회에 남았습니다. 그 소문을 듣고 곳곳에서 담임목사 청빙의사를 전해왔지만 저는 그때 오히려
결심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여기를 안 떠납니다. 저희 교회가 80세가 다 되는 권사님들을 중심으로 다시 일어서서 영향력 있는 나눔의 모델
교회가 되게 하소서! 그래서 고목나무에도 꽃이 필 수 있다는 사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그런 사연이 있기에
교회를 지켰던 노 권사님들의 건강과 장수를 위해 더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한분씩 떠나실 것이기에 마음의 준비는 합니다.
그때가 되면 마음은 크게 아프겠지만 그래도 이전의 다짐대로 영향력 있는 좋은 모델 교회를 만들면 노 권사님들의 흔적과 손길이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계속 남으면서 우리를 통해 그 믿음과 사랑이 계승되는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얼마나 행복한 삶입니까? 그처럼 믿음과 사랑과 비전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 계승시킴으로 행복한 인생 건축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 인물 농사에 성공하십시오
>
자기 생애에 모든 것을 다 이루겠다고 너무 무리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윗은 성전건축을 간절히 소원했지만 무리하지 않고
후대로 성전건축의 과업을 넘겼습니다. 대신에 그 길을 미리 닦았습니다. 과시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가 뭔가를 꼭 이루겠다고 너무 무리하면
바벨탑의 저주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한때 교회건축으로 급성장을 이뤘습니다. 그러다가 지금은 오히려 교회건축으로
급하락을 맞이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사실 교회건축 자체는 잘못이 아닙니다. 과시적인 무리한 교회건축이 잘못입니다. 시날 평지에서 벽돌로 초고층의
바벨탑을 쌓아올린 것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문명의 성과로서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문제는 바벨탑이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사람의 과시욕 충족을
위해 지어졌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문명을 죄악시하지 않습니다. 문명은 하나님의 일반은총의 산물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빠진
문명입니다. 하나님이 빠진 문명과 과학기술의 오용은 하나님의 진노와 인류의 종말을 재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없는 문명의
과시는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바벨론의 저주를 부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빠진 문명의 부작용을 과장해서 문명 자체를 외면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앞세우고 문명의 발전 및 과학기술의 발전에도 기여하고 또한 물질적인 축복도 외면하지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이룬 문명’과 ‘받은 축복’을 잘 사용하고 잘 나누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펼쳐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거룩한 뜻이라도 헌신을
강요하고 남을 고통스럽게 하면서까지 무리하게 그 뜻을 이루려고 하면 안 됩니다. 헌신은 자발적으로 감동 가운데 해야 후회도 없고 부작용도 없고
행복도 잃지 않습니다.
현재 선한 뜻을 펼치기에 무리가 된다면 인물을 키워서 그 인물에게 그 뜻을 계승시키면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물을 잘 키워서 나눔의 모델 교회의 꿈을 계속 멋지게 펼쳐 가야 합니다. 그래서 나눌 줄 아는 많은 딸 교회를 개척하고
적은 교인 숫자로도 큰 영향력을 미쳐서 교회 건축보다 인물 건축과 인생 건축이 더 중요한 과제란 사실을 증언하는 교회가 되도록 더욱 영향력 있는
인물 배출에 힘써야 합니다. 그처럼 행복한 인생 건축과 훌륭한 인물 건축에 힘써서 인물 농사에 성공하고 내일의 축복을 예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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