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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창3: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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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2014.8.11 주일설교 http://charmsarang.onmam.com/ 참사랑교회 |
죄인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
창3:20-24
지난주에 한 가정을 심방했는데 유치원에 다니는 딸아이가 얌전하고 말을 잘 들었습니다.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 자녀들 중에는 정말 말 안 듣는 말썽꾸러기들도 있습니다. 아마도 아이들이 말을 안 들어서 속상한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화가 나고 열이 나서 미운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해서 내다 버리고 아주 상관하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미운 짓을 하고 말을 안 들어도 부모는 자식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이러한 부모의 마음과 비슷합니다. 아니 하나님의 사랑은 부모의 사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죄와 벌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은혜
사람이 범죄한 결과 하나님과의 교제가 상실되고 죽음이 오게 되었으며, 온갖 고통과 불행이 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타락했을 때, 그들에게 죄에 대한 심판을 선고하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벌을 능가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여자는 잉태하고 해산하는 수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자로 하여금 이 수고를 통하여 자녀를 얻는 더 큰 기쁨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남자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노동이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노동을 통하여 계속해서 세상을 다스리며,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얻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범죄한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가장 큰 은혜는 뱀을 저주하신 말씀 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서 사탄을 이기시고, 죄인들을 구원하실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랍습니까?
하와
아담은 그의 아내를 ‘하와’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아담이 그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라”(20절) ‘하와’라는 이름은 생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담이 왜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했을까요? 그는 하와에게 생명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하와가 자식을 낳게 될 것이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아담은 15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믿었던 것입니다. 15절 말씀은 복음이며, 사탄에 대한 승리와 구원의 약속입니다. 아담은 이 여자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이 여자가 낳을 후손을 통하여 인류가 구원을 받게 될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만일 아담에게 이러한 믿음이 없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아마도 날마다 아내를 원망하며 싸웠을 것입니다. “이 모든 고생과 불행이 다 당신 때문이야!”라고 하면서 하와를 원망하고 미워했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그들은 훨씬 더 불행하고 힘들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던 아담은 여자에게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아내를 귀하게 여기고 사랑했습니다.
오늘도 믿음 없는 사람은 남을 탓하고 원망하며 싸웁니다. 아내가 실수를 해서 일이 좀 어려워지면, 아내를 들볶으며 원망하고 괴롭힙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 연약하여 실수하는 인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그 은혜 가운데서 선하고 아름답게 인도해주십니다. 이것을 믿는 사람은 일이 좀 잘못되었다고 해서 남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위로하고 아끼며 사랑합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셨으며,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모든 것을 은혜 가운데서 선하게 인도해주시는 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원망과 불평을 버리고 감사하며 사랑하십시오. 믿음으로 사는 자,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게 될 줄 믿습니다(롬8:28).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남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범죄하고 실패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능가하는 은혜 주실 줄 믿고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가죽옷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범죄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사탄이 약속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모든 것이 비참하고 불행하게 변해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여전히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하고 죽게 된 아담과 하와에게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즉시 범죄하고 타락한 인간을 회복시키기 위한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가죽옷을 입혀 주셨고,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지 못하도록 에덴동산에서 내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만들어 입었던 나뭇잎 치마를 벗기시고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니라”(21절). 이것은 더 비싸고 좋은 옷을 입혀주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은혜를 입혀주셨던 것입니다. 가죽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짐승이 피를 흘리고 죽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짐승의 죽음과 그 가죽옷으로 그들의 수치를 가려주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죄를 대신하는 짐승의 제사가 시작된 것을 보여줍니다.
구약시대에는 인간의 죄를 위해서 수많은 짐승이 희생되어 제물로 드려졌습니다. 그 모든 제물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자신을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죄가 완전히 사함 받고 죄의 수치가 가려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와서 죄로 더러워진 옷을 벗어버리고 새 옷을 입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큰 은혜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가죽옷을 지어 입히심으로 아담과 하와의 수치를 가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씻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서로에게 이렇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형제의 허물을 덮어주는 성도가 되십시오. 우리가 사랑으로 형제의 허물을 덮어주면, 하나님의 사랑을 더 크게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성도를 사랑하시고 더 큰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형제의 허물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유의 은총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형제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고서 이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스스로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신 것을 기억하고 형제의 허물을 기꺼이 용서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처럼 되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가 이제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과 같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고 영생하지 못하도록 에덴동산에서 내보내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22-23절).
이 말씀이 좀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습니까? 이 말씀은 마치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아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었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과 거의 대등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당황하셔서 그들이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못하도록 허겁지겁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다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기 전에 아담의 지혜는 어떠했습니까? 우리는 아담이 수많은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준 것을 통해 그의 지혜를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아담은 그 많은 동물들의 특징을 파악하여 혼동됨이 없이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지혜입니까? 그런데 이제 선악과를 따먹은 후 아담의 지혜가 하나님의 수준에 이르게 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같이 되었다는 말씀은 그들이 하나님처럼 거룩하고 선하며 지혜롭고 전능하게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제 인간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자기 맘대로 사는 타락한 존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대신, 자신이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며 하나님 노릇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모든 죄의 본질이며 정체입니다. 그리고 모든 악과 불행의 원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과 같이 되었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의미가 아닌 것입니다. 사람은 이제 하나님께 순종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살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살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의 머리와 힘을 믿고 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하나님 노릇을 하며 자기 맘대로 살게 된 결과, 세상은 극도로 부패하고 혼란스럽게 되었습니다. 모든 악과 불행이 오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이렇게 살면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오늘 당신은 어떻습니까? 스스로 하나님 노릇하며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온전하시고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깨달아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에덴에서 추방됨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아담과 하와가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영생하지 못하도록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셨습니다. 그들은 죄를 지어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 결과 죽음과 온갖 고생과 비참함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로 생명나무 열매를 먹고 영원히 살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죄와 저주를 짊어진 채 영원히 살게 된다면 그것은 결코 축복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이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지 못하도록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것은 벌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었습니다.
생명나무
사람은 이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생명나무의 열매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계명의 양면성을 보여줍니다. 생명나무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사람이 만일 순종의 길을 택했다면,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영원히 살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죽을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지 못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제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자기의 지혜를 짜내어 자기 힘으로 살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23절) 이것이 범죄하고 저주받은 인간의 삶입니다.
감사한 것은 오늘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한 생명이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친히 우리의 생명이 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요6:51) 우리는 그 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심으로 영원히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먹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그 분을 믿고 그 분과 연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과 연합됨으로써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낙원의 문이 닫힘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시고 그룹들과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쪽에 그룹들과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24절)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는 에덴동산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그 길을 지키게 하신 그룹은 하나님을 섬기는 높은 천사를 가리킵니다. 구약시대에 이 그룹은 성막의 지성소에 있는 법궤의 뚜껑에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에도 수놓아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죄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전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범죄한 인간은 이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죄는 사람을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했습니다. 만일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면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범죄한 인간의 절망과 비참함이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받은 최고의 축복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범하고 타락하자,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사이가 죄로 가로막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인은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죄를 지음으로 인간은 딜렘마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이,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죽게 된 것입니다. 이제 낙원의 문은 완전히 닫히고 말았습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낙원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인간의 곤고함과 절망과 불행이 있는 것입니다.
새롭게 열린 길
놀랍고 감사하게도 오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길이 열렸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허시고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산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10:19-20)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 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과 아픔과 고민과 문제를 다 말씀드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은혜를 힘입을 수 있습니다. 특히 죄와 세상을 이기는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길을 마치는 날, 우리는 영원한 낙원에 들어가 하나님 아버지의 품에 안기게 될 것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에덴동산보다 더 완전한 축복을 누리며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그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모든 필요한 은혜를 힘입어 죄와 세상을 이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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