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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4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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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567) 2015.3.5 |
시편(65)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시편 42편 1-2절)
<
스스로 개척하십시오 >
사람은 감정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종종 감정이 상할 때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감정이 상할
때는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낄 때입니다. 그래서 지역감정 문제도 생기는 것입니다. 특히 대통령이 지역발전 및 인사에서 자기 출신지역을 너무
선호하면 지역감정의 가능성은 커집니다. 그래서 대통령을 배출한 지역에서는 그 대통령의 재임기간에는 지역발전 및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아도 좋다고
각오해야 합니다. 이상적인 얘기 같지만 대통령의 의지 및 성숙한 시민의식이 있다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
여호수아 17장을 보면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각 지파에게 땅을 분배할 때 넓고 좋은 땅을 분배받은 요셉 자손들이 오히려 땅을 적게 준다고 불평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요셉 지파는 여호수아가 속한 지파였습니다. 자기 지파가 그렇게 나오니까 최고 권력자 여호수아가 얼마나
난처했겠습니까?
그때 자기 지파의 요구대로 들어주면 12지파의 마음은 나눠지고 지파감정이 생길 것을 알고 여호수아는 요셉 자손에게
“포장된 좋은 땅을 얻기보다는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훌륭한 지침입니까? 주어진 것이 적다면 더 달라고
바라기보다는 스스로 앞길을 개척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적게 주신 이유는 능력이 있어서 스스로 앞길을 개척할 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적게 주었다고 불평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땀을 흘리고 스스로 앞길을 개척해야 합니다.
어떤 자녀는 결혼할
때 부모에게 “왜 더 안 주느냐?”고 울고불고 난리를 칩니다. 은혜를 모르는 모습입니다. 그때까지 키워준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기에 사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것이 정상입니다. 부모는 노후를 준비해야 되지만 자녀는 앞날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 더 주지 않는다고
원망하고 부모님께 앙심을 품는다면 하나님은 그런 자녀를 결코 축복해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
저는 결혼할 때 부모님의 노후를 생각해서 재정적인 도움을 전혀 바라지도 않고 전혀 받지도 않았습니다. 그럴 재정이 있으면
차라리 부모님이 쓰시라고 했습니다. 어르신들이 교회생활을 할 때 제일 큰 기쁨이 헌금하는 기쁨입니다. 그렇게 헌금하면서 “나도 이렇게 도울 일이
있다.”고 여길 때 주어지는 기쁨이 큽니다. 또한 손자들에게 용돈 주는 기쁨도 큽니다. 그런 기쁨을 누리려면 부모님께도 돈이 필요한데 자녀가
결혼한다고 심각한 재정적인 출혈을 입혀서 그 기쁨의 가능성을 뺏는다면 자녀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결혼을 간소하게
하면 돈이 별로 들 일이 없는데 실제로 그랬습니다. 교회에서 결혼해서 예식장 비용이 들지 않았습니다. 주례 목사님에게 양복 한 벌 해드리고
아내에게 7만 5천 원짜리 금반지 하나 해주고 반대로 금반지 하나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설악산으로 신혼여행을 가서 신혼여행 비용은 당시
대기업 대졸 사원 초봉의 절반 정도인 27만원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결혼할 때 부모님으로부터 1원도 도움을 안 받겠다고 각오하고 실천한
것이 좋은 결심이었다는 생각이 들고 전혀 후회가 없습니다.
요새 교회 세습으로 말이 많습니다. 요새처럼 교회 부흥이 힘든 때에
아버지 목사로서 아들 목사에게 좋은 길을 열어주고 싶은 마음은 당연합니다. 그래도 냉정을 찾아야 합니다. 교회는 개인의 사유재산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부흥에는 담임목사의 역할도 크지만 좋은 성도의 도움도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수많은 성도들의 헌신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집이기에 교회세습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마땅합니다.
아버지 목사가 자녀에게 좋은 것을 물려주고 싶은 감정에 치우쳐서
냉정을 잃고 아들 목사에게 교회를 물려주려고 시도하면 아들 목사라도 냉정을 찾고 말해야 합니다. “아버님! 제가 스스로 개척하겠습니다. 요새
얼마나 그 문제로 시끄럽습니까? 저는 아버님의 일생 목회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아버님의 저를 위한 마음만은 감사함으로 받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알아서 제 앞날을 열어가겠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사람들이 칭송하는 마땅한 길이 분명히 있는데
목회자 부자가 다 냉정을 잃고 오히려 세습을 위해 정치를 하고, 작전을 짜고, 술수를 부리면 그런 삶에 무슨 보람과 행복과 축복이 있겠습니까?
사람은 노년 이전에 성공하는 것만큼 노년 이후에 안 망가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사람은 올라가는 것도 잘해야 하지만 내려가는 것도 잘해야 하고
다가서는 것도 잘해야 하지만 물러서는 것도 잘해야 합니다.
젊은 시절에 너무 많이 가지고 시작하면 만족을 느끼는 용량도 커져서
웬만한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해 행복의 가능성이 작아집니다. 반대로 적게 가진 상태에서 시작하면 만족을 느끼는 용량도 작아지면서 적게 가져도
만족하고 감사하기에 행복의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적게 주셨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스스로 개척해서 잘 살 수 있기에 적게
주셨다고 믿고 감사하면서 현재의 축복보다는 내일의 축복을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해 땀을 흘리십시오. 그러면 미래는 그의 것이
됩니다.
살면서 실망과 침체를 예방하려면 땀과 희생이 없는 ‘바라는 인생’으로 살지 말고 땀과 희생이 있는 ‘섬기는 인생’으로
살아야 합니다. 교회생활을 할 때도 바라기만 하면 수시로 실망하고 시험에 들고 침체에 빠지지만 섬기려고 하면 실망할 일이나 시험에 들 일이
적어지고 침체에 잘 빠지지 않게 됩니다. 삶을 철학을 바라는 것에 두면 상처와 침체의 가능성이 커지지만 삶의 철학을 섬기는 것에 두면 평안과
기쁨의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바라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 이한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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