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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42:6-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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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570) 2015.3.10 |
시편(67) 하나님의 깊은 바다
(시편 42편 6-11절)
<
인간의 고귀한 가치 >
저는 34살에 첫째 딸을 얻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이름을 ‘은혜’라고 지었고
둘째 딸은 성경에서 가장 예쁜 이름이라고 여긴 ‘한나’라고 지었습니다. 제게 두 딸은 너무 귀해서 천하를 다 준다고 해도 두 딸과 바꿀 수 없고
두 딸의 새끼손가락 하나를 잘라줄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로도 성이 차지 않고 두 딸은 제 생명보다
귀합니다.
마음은 그래도 실제로 사람은 그렇게 사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천하보다 귀하게 여길 만큼
사랑하십니다. 더 나아가 “너희들은 내 생명보다 귀하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로 인해 죽게 되자 말씀하셨습니다. “죄 때문에 네가
죽게 되었구나! 안되겠다! 대신 내가 죽자.” 그래서 주님이 십자가 달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해 새끼손가락을 잘라주신 것이 아니라 생명을 내주신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사람을 천하보다 귀한 존재로 창조하셨기에 사람의
영혼을 채우고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 천하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혼’이란 잔을 너무 크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천하를 다 얻을 수도 없지만
다 얻어서 영혼의 잔에 넣어도 영혼의 잔을 채울 수 없습니다.
솔로몬은 전도서 1장 7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솔로몬에게 부귀와 영화와 쾌락은 물이 바다로 흘러들듯이 흘러들어 왔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영혼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솔로몬의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영혼의 넓고
깊은 바다를 채울 수 없습니다. 그런 경험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렵게 살다가 새 집을 장만하면 이사하는 날 너무 좋아서 잠을 못 잡니다. 그러나
이틀째도 잠을 못 잔다면 문제입니다. 이틀 정도까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삼일 째도 잠을 못 자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다가 일주일째
잠을 못 잔다면 용인 정신병원으로 모셔야 합니다.
아무리 큰 만족감도 며칠 지속되지 못합니다. 그 좋은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영혼의 크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어느 것도 사흘 이상 잠을 못잘 정도로 만족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영혼의 용량을 천하보다 크고
바다보다 넓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은 물질로 영혼을 채우려는 일입니다.
< 진정한 만족을
얻는 길 >
어떻게 거대한 용량을 가진 영혼의 바다를 만족시킵니까? 본문을 보면 아주 감동적인 시편 기자의 고백이
있습니다. 본문 7절 말씀을 보십시오.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이 시편
기자는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른다.”는 고백을 통해서 두개의 깊은 바다를 연상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영혼의 깊은 바다’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깊은 바다’입니다.
‘하나님의 바다’는 끊임없는 사랑으로 ‘영혼의 바다’를 부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고, 한 영혼이 구원받으면 그토록 기뻐하십니다. 또한 ‘영혼의 바다’도 끊임없이 자기를 만족시킬 수 있는 ‘영적인 바다’를 찾습니다.
그래서 본문 1절에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왜
그렇게 하나님을 찾습니까? 영혼은 하나님 이외의 것으로는 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어렵고 힘들면 더욱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본문 5절 전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런 고백을 하면 어느새 영혼은 주의 폭포소리와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영혼을 감싸는 거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바다를 느끼게 됩니다. 그처럼
‘영혼의 바다’는 오직 ‘하나님의 바다’를 통해서만 진정한 만족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영혼에 행복을 주는 절대조건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환경과 처지가 어떻든 하나님이 함께 하면 행복한 사람이고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불행한 사람입니다. 결국 행복이란 많이
가진 사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부자들은 그 진리를 체험적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행복의 파랑새는 부자에게 찾아오지 않습니다. 물질은
행복을 위한 최저의 가능성을 제공할 뿐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을 깊이 만날 때 주어집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깊은 바다’에
잠기기 전까지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본문의 시편 기자는 낙심이 될 때 하나님을 향해 달려가서 본문 8절 말씀처럼 “생명의 하나님께
찬송하며 기도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왠지 삶에 침체와 낙심이 있고 마음이 공허하면 하나님께 찬송하며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어느새 영혼 속에
흘러들어오는 ‘하나님의 바다’를 느끼고 그 ‘하나님의 바다’를 통해 ‘영혼의 바다’로 밀려오는 주의 폭포소리와 파도소리를 듣게 되면서 낙심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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