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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15:1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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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부겸 목사 |
참고 : | http://blog.naver.com/malsoom/93354692 |
성경말씀 : 누가복음 15장 11절~32절
설교제목 : 베이스 캠프의 영성
【아버지가 그에게 말하기를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지 않느냐? 또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 아니냐? 너의 이 아우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냐?” 하였다.(누가 15:11~32)】
<베이스 캠프 이야기>
히말라야에 등산하는 사람들이 가끔 TV에 나오는데, 그분들이 사용하는 용어 중에 ‘베이스캠프’[base camp]라는 말이 있습니다.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이렇게 정리되어 있더군요. “대규모인 장거리 등산·탐험을 하는 경우에 전진기지로서 물자를 저장해 두는 고정적인 시설 및 텐트. 이곳을 기지로 하여 공격에 들어간다. 베이스캠프는 가급적 각종 시설을 갖추고, 특히 공격 명령에 필요한 연락시설을 갖추며, 공격대원의 휴식도 할 수 있어야 한다. 히말라야 등산 등에서는 빙하 4,000∼5,000m 부근의 지점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한다. 산록으로부터 그곳까지 포터가 짐을 나르고, 그곳부터 위로는 대원과 셰르파(Sherpa)의 활약무대가 된다. 장거리 등산의 경우에는 그 위쪽에 전진기지를 설치하여 그곳에서 물자를 중계하여 더욱더 전진캠프를 진전시켜서 공격에 임하는 경우도 있다.”
저는 이 말, 베이스 캠프[base camp]라는 말이 참 좋았습니다. 베이스(base)라는 말은 근본 혹은 기본, 바탕이라는 뜻이고, 캠프(camp)라는 말은 안정적 장소라는 뜻일테니까, 베이스 캠프라는 말은 삶 속에서 바탕이 되는 안정적 공간을 의미하는 말일 것입니다. 불가피하게 인생은 전쟁 혹은 투쟁이기도 하고, 도전 혹은 모험이기도 한데, 그런 황량한 삶 속에서 베이스 캠프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좋고 다행인지요!
우리들이 섬기고 있는 교회가, 또 우리들이 꾸려나가고 있는 가정이, 혹은 우리들이 몸 담고 있는 학교와 직장이 ‘베이스 캠프’가 되어서 인생의 험난한 고개를 넘는데 ‘힘과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장소가 되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 이야기>
이제 성경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가 그에게 말하기를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지 않느냐? 또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 아니냐? 너의 이 아우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냐?” 하였다.(누가 15:11~32)】
여기 한 아버지가 있고, 두 아들이 있습니다. 어느 날 둘째 아들이 당돌하게도 유산의 조기 상속을 요구합니다. 너그러운 아버지는 먼 훗날 둘째 아들에게 주려고 모아두었던 재산을 그 아들에게 미리 주었고, 둘째 아들은 그 많던 유산을 다 날려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불과 몇 년 만에 둘째 아들은 허랑방탕했던 삶을 청산하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고, 아버지는 잔치를 베풀어서 그의 귀환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아버지 옆에서 함께 생사와 고락을 함께 했던 첫째 아들이 불만을 표시합니다. “나는 이렇게 여러 해를 두고 아버지를 섬기고 있고 아버지의 명령을 한 번도 어긴 일이 없는데, 내게는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삼켜 버린 이 아들이 오니까, 그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누가 15:29~30) 이 첫째 아들의 불만에 대해서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지 않느냐? 또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 아니냐? 너의 이 아우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냐?”(누가 15:31~32).
아버지의 이 말씀에서 저는 교회론, 가정론, 직장론, 일터론 … 공동체론의 신앙적(영성적, 신학적) 근거를 찾습니다. 아버지와 첫째 아들이 지키면서 가꾸고 있었던 가정은 그들 가족과 가문의 베이스 캠프였습니다. 이 베이스적인 캠프가 있었기 때문에, 그 가족들은 마음 놓고 인생의 도전에 나설 수 있었고, 삶의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우리 수도교회가 교우 여러분들에게 베이스 캠프 같은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결코 만만치 않은 인생살이를 개척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 수도교회가 여러분들에게 힘이 되고, 격려가 되고, 생명양식이 되고, 영성의 샘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교우 여러분들의 각 가정이 그에 속한 가족들에게 역시 ‘베이스 캠프’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우 여러분 각 가정이 베이스 캠프 역할을 잘 해낼 때, 그 가족들이 모두 행복하고, 또한 더 나아가서 우리 사는 시대가 건강하게 될 것입니다.
<‘베이스’에 대한 신앙적 성찰>
그런데 정작 중요한 초점은 ‘베이스 캠프’에는 반드시 베이스, 즉 근본(원형, 본질)이 살아 숨쉬고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베이스, 즉 근본은 곧 ‘하나님’(진리, 영성, 도)을 뜻합니다. 베이스에 베이스가 없다면, 속된 말로 앙꼬 없는 찐빵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미 그곳은 베이스 캠프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 가능해 집니다. 베이스 캠프를 지키는 아버지도, 또 아버지를 도와서 베이스 캠프 속에서 사는 첫째 아들도, 그리고 세상에 나가서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는 둘째 아들도 모두 ‘베이스’, 즉 근본(하나님, 진리, 영성, 도)에 접속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 베이스적인 삶이 없다면, 그곳은 이미 베이스 캠프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도덕적 인간의 최후?>
여기 도덕적으로(윤리적으로, 성품적으로) 훌륭하게 타고난 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서 인생을 마칠 때까지, 그가 도덕적인 인간의 삶으로서 훌륭하게 살아낼 수 있을까요? 그건 아주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각 개인이 아무리 도덕적으로 훌륭하다고 해도,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이 사회는 ‘비도덕적인 경우’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묘한 현상을 일깨워준 신학자가 라인홀드 니버였습니다. 그는 유명한 책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Moral Man and Immoral Society)에서 한 인간이 개인과 사회라는 곳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하며 설명했습니다. 즉, 도덕적이고 선한 인간이 어느 한 집단에 들어갔을 때 개인이 아무리 훌륭하다 할지라도 그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그 집단이 사회나 국가에 속하게 되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오히려 비 도덕적이고 이기적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불행하고 비극적이며 기묘한 모순을 극복할 대안은 무엇일까요? 저는 ‘베이스 캠프 영성’에 그 해법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깊고 본질적인 세계를 자주(매일, 매 시간, 최대한 자주, 혹은 주일에 한 번) 되새김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비도덕적 사회에서 도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베이스 캠프에서 얻는 ‘진리의 힘’으로서 우리는 험난하고 사악하고, 교만한 이 세상의 악을 물리쳐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진리의 힘이 북돋아주는 용기와 결단, 담대함과 지혜로움으로 우리는 저 비도덕 사회의 거친 풍랑을 능히 헤쳐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베이스 캠프의 영성입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말씀을 정리하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베이스 캠프의 영성’이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오늘 이 설교말씀의 제목을 깊이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잠깐 기도하겠습니다.
* 축도
이제는 진리의 길을 몸소 보여주신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우리의 생명과 영혼을 언제나 치유해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총과,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아름다운 동행이 사랑하는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언제나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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