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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마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620 추천 수 0 2015.04.22 09:5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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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12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설교 

1장 12절-13절: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이것이 예수님은 가기 싫은데 성령님이 예수님의 등을 떠밀어서 억지로 가는 거냐? 글자로만 보면 꼭 그런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 왜 이런 표현을 했을까? 예수님께서 성령님의 감화 없이 광야로 간다면 성령님이 예수님 몸 밖에 있을 것인데, 그 표현이 몰아낸다고 했으니까 성령님이 예수님의 등 뒤에서 막 미는 것처럼 느끼기 쉽다.


예수님께서 광야로 가시는 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이다. 그러면 구원이 뭐냐? 우리를 하나님처럼 존귀 영광자가 되도록 만드는 일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오셔서 지금 그 일을 하러 광야로 나가시는 건데 광야로 나가는 그 마음이 자원일까, 아니면 가기는 싫은데 억지로 가는 거냐? 자원이다. 이게 지금 성령의 마음으로 돼 있는 거다. 자원이다. 기뻐서 가시는 거다.


인간들은 마귀의 시험에 잘 넘어진다. 어떻게 보면 개가 주인에게 안 맞으려면 미리 넘어져서 땅에 엎드리듯이 제가 미리 넘어지는 것도 있다. 그런 것처럼 만일 예수님께서 사단의 시험에서 졌다고 한다면 어찌 될까? 우리의 구원 때문에 지금 광야로 나가셔서 마귀의 시험을 받는 건데 만일 이 마귀의 시험에서 졌다면? 우리의 구원은 없다. 시험에서 이겨야 만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얻을 구원의 효력성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역시 우리 개개인도 마귀의 시험에서 넘어진다면 이는 실력적인 면에서 진 것이므로 한 번 졌으면 한 번 넘어졌으니 그 면에서의 이룰구원은 없는 것이다. 이겨야 이루어 놓은 구원이 있게 되는데 지니까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마귀의 시험에서 지면 심판도 없다. 안 된다.


그러면 우리 입장에서 볼 때 심판이 없는 게 좋으냐, 있는 게 좋으냐? 예수님께서는 시험에서 이겨서 실력이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할 수 있는 모든 시험을 똘똘 뭉쳐서 크게 세 덩어리로 시험을 친 것이다. 40일 금식 후에 시험을 쳤으니 그냥 달랑 세 가지가 아니다. 의식주에 관한 시험, 유혹 미혹에 관한 시험, 세상에서 오는 모든 존귀 명예 영광 누림성의 시험 이게 다 들어있다.


말씀드렸지만 종목적으로 세 가지로 보이지만 그게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이 창세 이후 마지막 그날까지 한 사람 한 사람마다의 전 인류가 시험을 당해서 넘어간 그 시험들이 예수님에게 종목적으로 세 가지로 분류시켜서 우리에게 깨닫도록 그렇게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계시다.


예수님께서 시험에 져서 심판도 없어지고 구원도 없어지면 어떻게 되느냐? 모든 게 없어진다. 의미가 없다. 의미 없는 거 둘 필요가 없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구원도 없고 심판도 안 되고 이룰구원의 실력도 다 없어진다. 예를 들면 우리가 밥을 안 먹으면 그 결과가 죽는 거고, 죽는 사람에게는 뭐가 있느냐? 아무 것도 없다. 그런 거와 같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에서 하나라도 넘어져 놓으면, 다시 말하면 창세 이후 마지막 그 날까지 사람 하나하나마다 그 누군가가 시험을 당해서 그 시험에서 넘어진 그 사람의 시험의 종목이 예수님의 세 가지의 시험의 종목에 안 들어있는 것이라면 예수님이 이겨봐야 소용이 없다. 예수님이 시험이 온 세상 인류들에게 효력이 있는 것이다. 하나라도 지면 그건 없다. 다 무너진다.


천국도 없어져 버리고, 그러면 지구도 필요가 없다. 지구가 없어지면 사람을 살게 하는 모든 게 필요가 없다. 지구가 있는 거, 천체가 돌아가는 거, 사계절의 만물의 모든 존재성이 다 우리에게 예수구원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거다. 예수 믿는 게 믿어도 그만 안 믿어도 그만 그런 게 아니고, 또한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이 일반은총을 받는 것도, 먹고 마시는 거, 숨 쉬는 거, 공기 마시는 거 이런 모든 것도 예수 때문에 네가 사는 거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이방종교는 몰라도 되고 안 믿어도 된다.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 믿는다고 해도 구원은 없다. 그러니까 그런 거는 허황된 거다.


예수님은 마귀에게 시험을 치시면서 당신이 그 시험에서 한 종목이라도 지면 심판이라든지 우리의 구원이라든지 천국이라든지 모든 게 없어진다고 하는 것을 의식을 하고 계실까, 안 하고 계실까? 의식을 하셨다. 그러면 우리 예수 믿는 자기가 세상에서 살면서 시험에 넘어지면서 그런 것을 의식을 할까, 못할까? 시험에 한 번 이기고 두 번 이기고 세 번이기고 이기면 이길수록 그 사람은 올라가는 것이다. 올림픽에서 1등을 하면 그 나라의 제일이 되고 먹고 마시고 집 사고 하는 거 염려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그러나 지면 이것 저것 다 없는 것이다.


신앙세계에서도 영적인 면에서 자기에게 마귀의 시험이 왔을 때에 진리를 붙잡으면 올라오게 되고, 땅의 것을 붙잡으면 세상 것을 붙잡으면 자기가 땅으로 기어 들어가게 되어있다. 올라와야 구원이다. 올라오려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진리를 붙잡아야 올라오게 된다. 붙잡으면 잡고 올라와진다. 자기가 일부러 잡고 올라오려고 안 해도 붙잡고만 있으면 진리가 자꾸 끄집어 올려준다. 하나님이 끄집어 올려준다. 진리를 붙잡고 안 놓치면 우물의 두레박과 같다. 두레박에 물이 가득 차니 사람들이 턱 보고 ‘아, 물이 찼구나’ 하고 끌어올린다.


모든 사물을 보면 자기의 신앙에 유익이 다 들어있다. 그러나 미련한 사람은 하나도 못 깨닫고 하나도 못 고치고 밥만 먹다 가는 사람이 된다. 이런 사람은 이기적인 사람이다. 깨달아진 것을 쓸 줄을 알아야 하는데 못 깨달으니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 진리를 붙잡지 않은 사람이 일반적으로 ‘그 사람 참 좋다’ 하는 말을 듣는다면 그 사람은 결국 지혜가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규모가 없다.


예수님께서 시험을 치시면서 말하자면 ‘이 면에 져버리면 아무개의 이룰구원도 존귀영광성도 없어진다’ 그런 마음으로 이긴 것이지 그냥 당한 시험이 아니다. 우리를 의식한 거다.


그런데 여기에는 사단으로 나왔는데 다른 데는 마귀로 나왔다. 그러면 사단이 뭐하는 게 사단이냐? 또 마귀는 뭐냐? 알고 보면 똑같은 놈인데 마귀는 성경구절을 가지고 교인을 잘 속게 한다. 그런데 사단은 사람을 잘 헐뜯고 꼬집고 흉보고 해코자 하는 게 있다. 마귀는 성경구절 가지고 통째로 사람을 세상 쪽으로 내려가게 한다. 그런데 대부분 보면 사람들이 생각을 하기를 자기를 해코자 하고 헐뜯고 깎아내리고 하는 것 이런 것만 생각을 하지 성경을 가지고 자기를 통째로 잡아먹고 땅으로 처박는 건 잘 못 느낀다. 눈에 안 보이니까.


이 사단이라고 하는 영물을 왜 만들어놨을까? 하나님의 나라는 신령한 천국이요, 우리 인간은 영과 육의 결합체로 만들어졌는데 예수님을 믿은 후에 영인성장을 잘 하고 영능의 실력을 키워서 변화 부활되어 신령천국에서 각자 실력대로 왕 노릇할 자로 그렇게 만들어 놨다. 우리 인간은 그런 존재다.


영능의 실력을 키우고 능력자가 되게 하려면 영적 면에서, 육신의 실력을 키우게 하려면 사람이 많이 필요하고, 시합에서 이기게 하려니 그렇다. 영적 면에서 실력을 키우게 하려면 영물들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예수 믿으면서 밥만 먹고 세상 욕심이나 부리고 하는 그런 차원만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은 아무리 종교적 명예를 가졌다고 해도 육에 속한 사람이요 세상에 속한 사람이요, 이런 사람의 가르침은 이질이요 비진리다.


영능의 실력을 키우려면 영물들이 필요한데 이 영물들은 눈에 안 보인다. 그래서 깨닫게 하시느라고 그런 수하인들, 그러니까 거짓 인도자 거짓 목사 거짓된 사람들을 동원시킨다. 그러니까 교회 인도자가 천국과 반대되는 소원 목적을 말한다면 이는 성도의 이룰구원을 깨닫는 면에서 망가지게 하는 악한 종들이요 악한 목사다. ‘배만 위한다’ 하는 것은 성경구절을 물질축복 쪽으로 쓰면서, ‘축복 축복’ 하면서 교인들로 하여금 세상 것으로 소원 목적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게 배만 위하는 목사다.


그러니 영적 신앙실력 면에 사람이 민감해져야 한다. 그리고 주님의 일에 수종드는 일에, 진리, 구원에 관한 그 일에 사람이 활동이 민첩해야 한다. 민활하게 움직여야 한다. 생각하는 게 민감해야 한다. 둔하면 안 된다.


내가 하는 짓이 설교시간에 어떻게 움직여지는 건지? 자기의 민감성이 예배 올리는 시간에 머릿속에서 움직여야 한다. 누구보고 하는 소리인지? 누구가 아니라 전부는 나에게다. 성경 모두가 나에게다. 그런데 행동 활동을 기준으로 하는 생각을 주격적으로 갖고 있으면 ‘그 행동을 누가 했더라’ 하고 그 쪽으로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사람은 성경을 못 깨닫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마귀가 사단이 잡고 쓰기가 좋다. 왜냐하면 자꾸 남쪽으로 가니까. 사단의 역사는 남 쪽으로 헐뜯는다. 말로 씹고 헐뜯고 소문을 퍼뜨리고 인격적으로 죽이려 하고. 내가 그런 일이 있었다면 사단에게 이용된 거니 고쳐라. 성령님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 옳은 진리이치를 자기에게 쓰면서 자기가 이치의 사람으로 돼야 하는데 그게 안 되고 다른 사람을 행해 들어가 있다면 마귀가 잡고 쓰기에 참 좋은 사람이 된다.


그리고 아무리 옳은 것을 배웠어도, 가령 교회에 와서 진리말씀을 듣고 집에 갔다. 집에 있는 자식이 보기 싫거나 영감이 보기 싫다고 해서 자식이나 영감에게 안 좋은 소리를 하며 성질을 부리고 하면 은혜 받은 거 다 쏟아버린다.


계:에 보면 하나님께서 마귀를 얼마든지 무저갱에 가뒀다 풀어냈다 한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마귀의 시험을 주는 것은 미워서가 아니라 특별대우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에게 예수님과 똑같은 시험을 준다면 넘어지겠느냐, 안 넘어지겠느냐? 넘어진다. 그러니까 줄 수가 없다. 그래서 예수님께 주는 시험은 아무에게나 주는 게 아니다. 예수님이라야 이기신다. 창세 이후 마지막까지 딴 분은 없다.


그것을 우리에게 가져와 적용하면 하늘로부터 온 것을 받아 가진 자는 시험을 이길 수 있다는 이치를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면 어떤 세상의 유명한 목사 나타났다. 그런데 그 목사가 ‘세상 물질축복, 복 받아라. 불로 불로’ 한다면 그게 예수님이 전하신 천국복음인지, 성도를 예수님처럼 이치적으로 깨닫게 해서 하나님의 성품적으로 올라가게 하는 건지, 아니면 사람의 마음과 정신에 바람을 넣어서 그 분위기에 휩싸이게 해서 뱀이 한 입에 삼키듯이 마귀가 교인들을 한 입에 삼키는 마귀 같은 짓을 하는 건지?


종이라 할 때 마귀의 종이 있고, 주님의 종이 있다. 주님의 종은 하나님의 것이 들어오니 자기 것은 다 내버리고 하나님의 것을 자기화 시켜서 자원적 자의적으로 나온다. 이게 참 종이다. 그런데 세상 마귀의 종은 그와 다르다. 어떻게 다르냐? 세상 것으로 들어와서, 그러니까 자기에게 기존에 있던 것에다가 세상 것으로 성경구절까지 들어오니 얼마든지 써먹기가 좋다. 그렇게 해서 세상 쪽으로 잔뜩 종교적인 사업적인 영웅성에 욕심을 품게 하는 이게 마귀의 종이다.


인류를 위한다고 하나, 대한민국을 위한다고 하나, 백성을 위한다고 하나 주님을 위하는 위함이 아니고 세상에 있는 자기 나라 사람을 위하는 땅의 생각이다. 그 이치가 그렇다. 안 믿는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가진다면 안 믿는 차원에서 고상한 것이지만 그러나 생명과 먹은 고상함은 사람을 천국의 사람으로 끌어 올리는 것이다. 참 사람이 되도록. 발아래의 것은 자기 머리 위로 올리는 게 아니라 자꾸 밟도록 만든다. 세상을 밟도록 만들면 자기가 자꾸 서고 짐이 가벼워지고 지혜로워진다.


세상살이가 짐스럽다고 해도 그것을 고생으로 여기지 않고 그것을 사랑으로 구원으로 이뤄가는 그런 삶이 있고, 그러나 그런 것도 크게 아닌데 세상이 짐스럽다고 하게 되면 세상 자체는 짐이기는 하지만 어떤 면으로 보면 그런 사람은 자기 머리 위에 짐이 올려져 있다는 것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무겁다. 염려 걱정 근심이 떠나지 않는다. 그러면 스스로 병이 되고 스스로 늙어지고 한다. 누가 뭐라고 안 해도 마음속에서 오그라진 마음이 튕겨져 나온다.


욥의 시험은 아무에게나 못 준다. 하나님 앞에 바로 살려고 하는데 시험이 오면 그 사람은 감사함으로 받게 되지 원망으로 받지를 않는다. 그리고 시험이 오면 지혜를 구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시험을 이길 사람이다. 그런데 대부분 보면 자기가 잘못해서 시험에 걸려 넘어진 사람이 많다. 뜀박질을 할 때도 운동장에 큰 바위도 없는데 자기가 뛰다가 자기 발에 걸려 넘어져서 뒹구는 자도 있다. 그런 경우 천천히 가서 그러냐, 발보다 마음이 앞서서 그러냐? 발보다 마음이 앞서서이다.


진리의 말씀을 붙잡은 거기에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목숨을 안 걸면 진리를 붙잡을 수가 없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지혜를 얻을 것이다.


또 한 면은 광야란 타락된 인간세상을 말하는 것인데, 세상이란 세상은 성령이 계시고 악령이 존재하는 곳이니, 사단의 헐뜯고 비방하고 깔고 뭉개고 하는 이런 시험의 곳이니 세상이란 세상은 영원히 자기가 누릴 곳이 아니다. 그러니까 영능의 실력을 닦는 곳임을 알고 살아야 한다. 세상에 살면서 천국처럼 편해지려고 하면 시험에 걸린다. 하나님 앞에 이룰구원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살면 시험에 들 게 없다.


자기가 이 교회에 와서 또 믿은 지 얼마 안 되지만 처음 올 때의 그 자기하고, 오늘날까지 이 교회에서 몸담고 듣고 이렇게 있으면서 그 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차이가 나느냐, 안 나느냐?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다른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에서 이기신 후에 40일 동안 금식을 했으니까 힘이 빠질 대로 빠진 건데, 그 때 천사들이 수종든다고 돼 있다. 그런데 본문에는 이 사건이 간단하게 기록이 됐는데 이것도 계시이니 그 의미가 살짝 달라진다.


‘광야에서 40일을 계시면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한 이걸 그대로 다른 성경과 대조시키면서 다른 쪽으로 합리화 시키려 하지 말고,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다.’ 그러니까 계속 시험을 치면서 마귀들이 수종을 든다. 그러니까 그만큼 존귀한 수준이구나 하는 이걸 느낄 수 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특별 보호하심이다.

왜 짐승들 틈에서 짐승들과 같이 있다는 표현을 하느냐? 짐승들이라면 무서운 짐승들인데, 밤에는 이리 늑대 등이 온다. 이런 짐승은 사람을 잡아먹으려고 한다. 여기서 짐승과 같이 있다고 한 것이 물론 지역적으로 그곳에 무슨 사자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만 보지 말고 호랑이도 있고 사자도 있다는 것은 계시적으로는 사람을 제일 잘 넘어뜨리는 것이 사단인데 이 사단과 함께 있었다는 것은 사단의 시험을 능히 이겼다는 말이요, 또한 짐승들과 같이 있었다는 것은 두려움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을 잡아먹는 독한 짐승들이 있었지만 하늘의 것으로 들어있으니 하나도 두려울 게 없다.


밤에 뭐가 나타나면 제일 무서우냐? 사람이다. 사람이 제일 무섭다. 이 세상에 무서운 짐승 같은 사람이 참 많다. 그러니 믿음도 없으면서 밤에 돌아다니지 말라. 큰 코 다칠 수 있다. 천지를 모르고 밤에 돌아다니지 말라. 잡혀가면 그걸로 끝나는 거다. 젊은 애들은 밤에 불이 번쩍번쩍 하고 돌아가니까 천국으로 보이는 모양이지만 그게 아니다. 너를 잡아먹으려고 지금 홀리는 것이다.


들짐승과 같이 있다는 것은 짐승들이 사는 곳에 그렇게 있어도 자기의 목숨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살았구나. 하나님의 특별보호구나. 왜? 그 사람 속에서 구원의 정신과 소원 목적으로 사니 보호가 된다. 비진리고 비복음이고 세상적인 사고방식으로 산다면 늘 피해가 놓여있다. 사람이 피해를 보면 딴 것은 통째로 날아간다. 그런데 사단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서 꾀임을 받아서 사단 마귀 밑에서 졸병노릇을 하는 종들이 수없이 많구나.


천사들이 와서 예수님께 수종들더라. 그러니까 얼마나 사람이 고상하냐 그 말이다. ‘도둑놈들이 와서 수종들더라. 천사들이 와서 수종들더라’ 할 때 사람의 성품적 가치와 수준을 느낄 수 있다. 그만큼 고상하구나. 우리를 염두 두고 이 말씀이 전개돼 있는 것이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이 15년 이상 진행되면서 하나님께서 인간과 세상을 창조하신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알고 진리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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