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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골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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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2012.10.21 |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Ⅰ. 본문해설
골로새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에 첫 번째 투옥되었던 주후 61년 겨울부터 63년 봄 사이에 기록되었다고 여겨진다. 골로새교회는 훌륭한 신앙을 가진 성도들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많은 이단들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다시 사신 것이 무엇을 위한 경륜이냐고 물을 때 그것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교회를 위하여 우리의 육체에 채우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금 질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Ⅱ.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느 시대이든 그리스도인이 누구냐 하는 질문은 매우 중요했다. 교회의 수많은 분열과 타락 심지어 그리스도 교회의 영광스러운 회복까지도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놓치거나 다시 찾아온 역사와 관계가 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여러 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본문이 말하는 진리를 드러내기 위한 용도로 두 가지 측면, 즉 고백적 측면과 신령적 측면에서 설명하겠다.
Α. 고백적 측면
고백적인 측면에서 보면 첫째로 이것은 모든 구원에 이르는 길을 포기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자신이 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모든 길을 포기하는 것, 오직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이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다고 믿고 다른 모든 행복에 이르는 길을 포기하는 것이다. 둘째는 이러한 고백을 토대로 절대적인 의존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즉, 내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주님이 주신 구원의 은혜 이외에는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에 나는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내가 구원받기 위하여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제시하신 은혜만을 의지하겠다고 하는 고백이다. 셋째로 주되심 앞에 무릎을 꿇은 사람이다. 그리스도가 자신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즉, 자신의 힘으로는 죽음과 방불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비참한 인간이고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불행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존재를 구원해 주시고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기 때문에 나의 모든 것은 모두 하나님 앞에 바치고 이제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시라는 주되심 앞에 무릎을 꿇은 사람이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토대로 네 번째 측면이 무제한의 순종과 헌신을 바치기로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자기와 같은 죄인을 위해 죽으신 그 은혜의 깊이와 넓이가 너무나 무한하기 때문에,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예수가 사신 것이므로 그 하나님께 무제한의 순종을 드리고 주님이 나에게 당신을 위해 살라 하신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의미이다.
Β. 신령적 측면
신령적인 측면에서 한 사람이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하는 의미는 그 자체가 그리스도 예수의 몸에 접붙여져 그의 지체에 일부가 되었다고 하는 의미이다. 이렇게 해서 그는 예수의 생명에 참여하게 된다. 즉, 교회의 몸에 접붙여짐으로 머리이신 그리스도 예수께 내려오는 하나님의 생명과 은혜에 참여하고 머리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통치에 복종하고 그분의 마음과 뜻에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하는 의미이다. 그리스도 예수와의 생명적인 연합 속에서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 된 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다.
Ⅲ. 교회와 함께 살게 하심은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예수와 함께 살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예수와 함께 살 때 우리는 교회와 함께 살아난 사람들이다.
Α. 지체들을 위한 고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예수와 함께 죽은 우리를 교회와 함께 살게 하셨는데 이는 지체들을 위해서 고난을 받게 하기 위함이라고 피력한다. 우리는 구원받는 그 순간 영적으로 그리스도 예수와 떨어질 수 없는 한 부분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의 생명에 참여한다면 교회와 함께 참여하는 것이고 교회에 부여하신 생명의 은혜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교회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은 동떨어질 수 없고 이때 이 교회의 운명이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영적인 교회 전체의 운명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적인 교회들은 이제 보이는 이 교회 속에서 구체화 되는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이 교회는 무엇을 섬기기 위해서 수고하도록 우리를 예수와 함께 살아나게 해 교회와 함께 살게 하셨을까?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 첫째, 교회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부름 받은 공동체이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하나님을 향한 경배가 바로 이것이다. 그런가 하면 또 하나 섬김의 대상이 있는데 교회이다. 교회는 하나님을 섬길 뿐만 아니라 교회 자체를 섬긴다. 이것은 목양과 교회의 많은 헌신, 지체들을 양육하고 붙들어 주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구제하고 섬기고 봉사하는 일로 나타난다. 세 번째는 세상이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구제하는 것은 세상을 향한 섬김인데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세상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세상을 섬기는 것이다. 더욱이 교회를 위한 섬김이라고 사도가 말했을 때에 이것은 결국 하나님을 위한 섬김인 동시에 세상을 위한 섬김이다.
Β.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관한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다 이루신 고난과 남은 고난, 홀로 당하기로 작정하신 고난과 우리를 참여하게 하신 고난으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 이루신 고난은 절대적으로 예수 홀로 당하기로 작정된 고난이다. 여기에 우리가 보탤 것은 추호도 없고 이 고난으로 말미암아 예수 믿는 우리들을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 그리스도의 교회에 일부가 되게 하셨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 있는데, 이것은 교회론적 지평과 관련이 된다. 다시 말해 남은 고난은 우리를 그 고난에 참여하게 하시면서 예수와 우리가 함께 고난을 당하게 하시는 종류의 고난을 말한다.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주님이 교회에 고난을 남겨두신 이유는 그렇게 하면서 예수의 마음을 알라고 하시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의 고난을 나의 육체에 채운다고 했는데 이것은 두 가지 의미이다. 첫째는 육체를 가지고 주님을 섬기며 산다는 뜻이다. 그것은 늘 고난을 동반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나의 육체에 채운다는 것은 몸을 아끼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해 수고한다는 뜻이다. 또 한 가지는 그의 고난을 나의 육체에 채운다는 것은 정욕을 죽인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을 나의 이 육체에 채움으로써 정욕을 죽이고 이 죄를 따라서 살려하는 나의 본성을 죽이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 길은 수고와 눈물과 고통이 있는 길이다. 그러나 그 길에는 하나님이 언제나 함께 하시며 충만한 생명과 은혜를 주신다.
Ⅳ. 적용과 결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우리로 다시는 육신을 위해 살게 하지 않기 위함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남겨 놓으신 이 고난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하여 참여하고 그 고난을 육체 속에 채우므로 교회와 함께 충만한 생명을 누려 복의 근원이 되는 성도들이 되기 바란다.
댓글 '1'
바울의복음
우리의 굳은 양심을 제하는 것이다. 히10-22 우리의 양심은 율법과 동일하다 롬 2-14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그리스도의말씀을 전파하는 교회이며 그리스도안에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것이다.
롬8-1~4 예수그리스도 안에거하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없다는 이것이라.
우리의 양심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가. 악을 행하면 스스로 죄인이라 칭하고 의를 행하면 의인이라 칭한다.
그런데 성경에는 그런말을 찾을수가없다. 롬 4-5 일을 아니할지라도 이를 의롭게 여기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의롭게여기셧다.
그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정죄받기에 합당한 가운데에서 우리의 화목제물이 되신 그리스도를 힘입어 성소로 담대히 나아가는 자들.
자신의 죄를 죄라 여기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자를 의롭게 여기셧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자신의 양심을 위해 거룩과 의를 향해 자신의 열심을 내는것은 자신의 양심에 합당하다 생각하며
꼭 그리하면 하늘의 상금을 자신이 쌓는것같아 뿌듯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의 의이지 하나님의 의가 아니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의를 힘입지 않고 자기의 의를 힘껏 내세우기위함이라.
롬10-3~4
유대인들또한 우리와같이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려하엿다. 아니 어쩌면 더욱더 혹독하게. 지켯을것이다.
그런그들은 구원을 받지못햇으니 이는 하나님의 의와 자기의 의에대한 지식을 알지못하여 자기의 의를 힘껏세워
멸망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의롭다 칭한 사람들을 보자
아브라함의 아들의사건은 매우 놀라운 사건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은때는 할례때가아니요 무할례때니라
아브라함이 한것은. 자기의목숨을 위해 사라를 2번 팔아먹은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의롭다칭함을 받은것은 그러할지라도 경건치아니할지라도 자기를 의롭게여기시는 하나님을 믿엇기때문이며
아브라함이 아들을 바칠수있었던 이유또한 그가 하나님이 자기의 아들 이삭을 통하여 민족을 이루시겟다고 약속하신
언약을 믿엇기에 바칠수있었던것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이란. 그리스도는 아무흠이없으나 우리의허물로 죽으셧다.
그리스도가 죽은 이유는 죄인들은 사랑하고 유대인들으 배척한것처럼 그들이 오해햇기 때문이다.
바리새인은 자기의 의로움을 드러내어 다른 자보다 자기를 낫게 여기엇는데 이들에겐 그리스도가 필요가없엇다.
죄인은 자기의 의로움을 드러낼수도없으며 자기를 남보다 못나게 여기는경우가 대부분이엇는데 이들은 그리스도가필요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란. 어떤죄를 짓는 가운데에서도 자기가 그리스도의핏값으로말미암아 의로워진것을 믿는믿음으로 사는자들이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고난을 자기의 육체에 채운것은. 자신의 맡은바가 말씀이었기때문이며
바울을 통한 하나님의복음은 결코정죄하지 아니하겟다는 것이였다 이사야 53-9~10
그것이 고난인 이유는 다들 자기의 의를 힘입어 하나님의복음을 전파하는 바울을 대적햇기때문이다.
또한 그런 고난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을 위해 이루신 그 십자가의 은혜가 어떠한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이 내용은 성도들에게도 중요하나 무엇보다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가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지 아니하고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수 업기 때문이다.
성도들에게 때로는 쓰디쓴 몰약을 주어야함에도. 그것을 통하여 핍박을 받고 고난을 받을걸 알면서도
그말씀을 전하는 임무를 수행한다는건 위대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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