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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2:13-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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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허태수 목사 |
참고 : | 2014.12.30 주일예배 http://sungamch.net 춘천성암교회 |
‘빡! 끝!’
요2:13-22
연말에 차분한 마음을 갖겠다고 책 몇 권을 사다 놓고 틈틈이 읽었습니다. ‘라캉과 성서해석’, ‘모름의 인식론과 살림의 신학’, ‘파이 이야기’와 ‘킬링 지저스’라는, ‘예수님은 왜 죽었는가?’라는 책 등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예수님은 왜 죽었는가?’라는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쾅쾅 요동치는 것이었습니다.
거기, 기원후 27년 4월 어느 날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장면을 묘사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예수는 손에 채찍을 감아쥐고 예루살렘 성전 뜰로 통하는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유대인 수십만 명이 갈릴리, 시리아, 이집트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멀리 로마에서까지 예루살렘을 찾아와 또다시 유대교 최대의 명절을 지내고 있었다. 사실 유대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유월절에 성전을 찾지 않는 것은 36가지 죄 중 하나로 만약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내린 벌을 받기 때문이었다. 유월절을 지키지 않는 이에게 내리는 벌은 카레트라고,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으로 떨어져 나가는 벌이었다. 예수는 예루살렘에 들어가기 직전에 미크바 물속에 몸을 담갔다. 정결의식을 거쳐야 성전 안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유월절은 여느 해와는 달랐다. 잠시 후 그는 대담하고도 충격적인 혁명 같은 행동을 보여줄 것이다. 그것은 이후 역사에서 예수가 쏟아낸 분노로 기억된다.’
책에는 계속해서 예수님의 충격적이고 혁명적인 행동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수도 없이 듣고 읽었을 이 대목이 제 가슴을 쾅쾅 울리는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에 대한 ‘말’ 혹은 예수님이 하시는 ‘언어’때문이 아니라 온몸을 던지는 ‘행동’ 때문입니다. 저는 이 사실 앞에서 하나의 통찰을 얻었습니다. 진리는 말에 있는 게 아니라 ‘행동’ 즉 그것을 실현하는 삶에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잠시 동영상 하나를 보겠습니다.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 나오는 개그의 한 장면입니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으니까 전화기로 주일 저녁에 개그콘서트를 보다가 잠이 들곤 합니다. 그런데 제게는 이 코너, ‘당황하지 않고 빡! 끝!’이 대사가 너무 감동적입니다. 그냥 헤벌래 감동이 되는 게 아니라 교훈이 됩니다. 이 개그는 상황이 그걸로 끝나지 않고 이어집니다. 항상 그 말을 뱉은 그 ‘당황하지 않고 빡! 끝’한 그 조폭의 승리가 아니라 ‘끝’이라고 말하는 조폭의 허당으로 끝나게 됩니다. 그야말로 허당조폭입니다. 이게 이 개그의 절정이고 개그가 주는 교훈입니다. 뭡니까? 왜 이 조폭은 그 자신이 힘을 쓰는 조폭임에도, 끝이라고 주장하는데도 불구하고 실상은 그 자신이 끝나는 허당으로 마무리 되는 걸까요?
그렇습니다.
조폭이라는 작자가 싸움을 몸이 아니라 입으로, 실전으로가 아니라 이론으로, 주먹으로가 아니라 머리로, 싸움판의 현장이 아니라 책으로 배우고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를 이 조폭처럼 믿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런데 의외로 이런 종교인들, 예수 믿는 사람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겁니다. 이래서 믿기는 믿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겁니다. 소리는 요란한데 판판이 삶이 깨지고 터지는 겁니다. 조폭은 싸움을 입으로 하지 않습니다. 책으로 하지 않습니다. 이론으로 하지 않습니다. 그냥 온 존재를 던져 몸으로 합니다. 예수도 그렇게 믿으세요. 예수님이 진리라면 그것은 그의 말씀이 진리가 아니라 그의 행동 즉 삶으로 보여준 그것이 진리입니다. 그러니 예수의 진리는 말에 있는 게 아닙니다. 그가 하신 대로, 그가 말하신 대로 사는데서 진리가 드러납니다.
조폭은 조폭인데, 허당 조폭처럼 말로 ‘당황하지 않고 빡! 끝’이런 식으로 예수 믿지 말고 온 몸으로 빡 끝! 이렇게 예수를 믿어서 진실로 내 삶이 ‘빡! 끝’을 보여주는 믿음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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