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호1:1-11 |
---|---|
설교자 : | 구하라 목사 |
참고 : |
호세아 1장:1-11절
찬송가 220 “사랑하는 주님 앞에”
호세아서는 선지자 호세아가 처한 혼인관계를 통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적 관계를 회화적으로 보여주는 선지서로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부모와 자녀의 관계로, 농부와 암소의 관계로 사냥꾼과 비둘기의 관계 등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보여줍니다.
특별히 호세아서의 독특한 점은 대부분의 선지서들의 저자는 남 유다출신인 반면, 호세아는 유일한 북 이스라엘 출신 선지자입니다. 물론, 아모스도 북 이스라엘에서 선지자로서 사역을 했으나 그는 남 유다 출신입니다. 이 두 북이스라엘 선지자들에 관해 유대 신학자인 ‘Abrahm Heschel’은 그의 책 ‘예언자’에서 “아모스가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들을 강조한다면, 호세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느끼신 것들을 강조한다” 했습니다.
또 다른 한가지는 호세아서는 북이스라엘의 패망을 앞드고 마치 암초에 충돌하여 배가 가라 앉기 시작한 시대의 선지서라는 점입니다.
1절입니다.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엘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위에 언급된 왕들은 783년부터 687년 사이에 통치한 남유다의 왕들이고 후반부에 언급된 여로보암만이 786-746년까지 통치한 북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북이스라엘이 722년에 멸명당하기까지 약 24년이 남아 있으나 이 기간은 열왕기하 14장부터 17장 사이에 나오는 서로 죽고 죽이는 기간으로 생략되었습니다.
시대정황을 설명한 이후, 하나님께서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것을 호세아에게 명령하는 것으로 호세아서는 시작됩니다.
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에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하나님께서 선지자 호세아를 부르시고 음란한 여자와 결혼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명하셨습니다. 그 명령대로 호세아는 ‘고멜’이라는 여인을 맞이하여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낳습니다. 그들의 자녀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임박한 북이스라엘의 종국을 호세아를 통해 예언케 하십니다.
첫째 아들의 이름은 ‘이스르엘’입니다. ‘이스르엘’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심으신다’입니다. 동시에 ‘이스르엘’은 지명으로 사마리아 성읍와 갈릴리 사이에 있는 아름다운 성읍의 평원지대입니다. 그러나 곡창지대로 풍요의 상징인 ‘이스르엘’은 그러나 대량학살의 장소였습니다. 예후가 아합의 70명의 왕자를 죽이고 이세벨로 죽인 곳이 바로 이스르엘이였습니다.(왕하9-10장) 그리고 그곳에서 바알숭배자들을 처참히 대량 학살 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대량학살하면 떠오르는 장소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 같은 곳이 바로 이스르엘인 것입니다.
둘째 딸의 이름은 ‘로루하마’입니다. ‘긍휼 또는 자비’라는 어근을 갖고 있으나 부정접두사 ‘로’로 인해 긍휼이 없는 이란 뜻입니다.
셋째 아들의 이름은 ‘로암니’입니다. ‘암니’는 ‘내 백성’을 뜻하나, 동일하게 부정접두사 ‘로’로 인해 ‘내 백성이 아니다’란 뜻입니다.
호세아를 읽으며 우리가 불편한 마음을 갖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개인의 삶과 선지자의 삶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아내는 음란한 여인입니다. 그녀는 남편을 마음에 두고 있지 않습니다. 다른 남자들을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몸도 마음도 모두 다른 이들에게 가 있습니다. 이런 부부관계 속에서 낳은 첫째 자녀의 이름이 의미하는 것이 대량학살이고, 둘째는 긍휼이 없음이고 셋째는 내 백성이 아니다 입니다. 이들의 이름은 호세아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동시에,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호세아는 그의 예언자적 삶과 그의 결혼생활을 통해 깨어진 관계로 인한 상처와 고통을 들어내고 있습니다. 동시에, 호세아는 그의 삶을 통해 북이스라엘에게 임박한 파멸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에서 대량학살이 일어날 것이고, 더 이상 북이스라엘에 부어주셨던 긍휼은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으며, 결국 북 이스라엘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게 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될 것임을 세자녀의 이름을 통해 암시하고 있습니다. 호세아는 음란한 여인 고멜과 결혼해야 했습니다. 결혼은 두 인격이 하나님 안에서 한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호세아는 음란한 여인 고멜과 결혼하여 음란한 자녀를 낳아야 했습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기업이고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라 했습니다. (시편 127:3)
자녀를 통한 호세아의 상급은 파멸이였습니다. 파멸할 가정을 붙들고 끝까지 살아가는 것이 호세아의 사명이였습니다. 호세아가 아내 고멜로 인해 느낀 감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느낀 감정과 같습니다. 결혼한 부부가 하나 되기 위해 애쓰기보다 다른 곳에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두고 있을 때 느끼는 그 처량함과 분노를 호세아는 느끼고 있습니다. 그 처량함과 분노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너무나 오랫동안 느끼고 계셨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부부사이에서 누군가가 마음을 다른 곳 또는 다른 이에게 두고 한 마음이 되지 않는다면 이보더 더 처절하고 가슴 아픈일은 없습니다. 이 배반감은 치유되기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유월절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드셨습니다. 그리고 다 함께 앉아 먹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4:18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서로 서로 자신은 아니라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21절에 예수님은 그의 감정을 표출하십니다.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이후 겟세마네에 이르러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을 만큼 고통속에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깨어 기도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깨어 있지 못하고 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마음을 함께 하지 못한 제자들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제자중이 하나인 가룟유다로 인해 팔렸고, 수제자인 베드로에게는 부인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마음을 함께 하지 못한 제자들을과 함께 하시고,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1입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과 마음을 함께 해야 합니다. 교회를 정말 사랑하십니까? 그렇하면 마음을 함께 해야 합니다. 한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사랑입니다. 같은 곳에 시선을 두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두마음을 품고 다른 곳에 시선을 두는 삶의 종국은 파멸입니다.
하나님과 한 마음, 한 뜻, 같은 곳에 시선을 두고 살아가는 미쉘원 모든 가족들이 되십시다. 그리하여 십자가 사건 이전의 제자들처럼 두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인생이 아닌 부활이후 제자들처럼 한 마음 갖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 품고 살아가는 미쉘원 가족들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갈라지고 깨진 인생이 아닌, 하나 되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인생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