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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호6: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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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구하라 목사 |
참고 : |
호세아 6장 1-11절
찬송: 525장 (돌아와 돌아와)
말썽 피우는 10대 자식을 둔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가슴앓이를 하기 마련입니다.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보내는 철없는 자녀에게 있어서 부모는 감사의 대상이거나 고마운 존재이기보다는 되도록 피해야 할 존재이거나 속히 독립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자주 부모가 간섭하지 못하도록 자기 방 문을 잠근다든지, 부모와의 대화를 거부하기도 합니다. 반항의 표시와 자기 존재 확인의 방법으로 가출 하기도 합니다.
긴 인생 여정을 놓고 보면 누구나 겪어낸 나름대로의 사춘기가 있었고, 갈등기가 있었기에 조금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모두 아련한 추억으로 기억되곤 합니다. 그래서 연예인이나, 유명인사들에게 철없던 시절의 가출이야기가 추억의 이야기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치기 어린 시절의 해프닝이 아름다운 한 때의 추억으로 기억될 수 있는 것은 그런 갈등이나 반항의 시기를 이미 모두 극복하였기 때문이지 아직도 그때 뛰쳐 나온 부모의 집을 지금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추억이 아니라 여전히 아픔과 슬픔일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기원전 8세기 중엽, 당시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나누어져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에게 있어서 소중한 자식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호11:1절에도 이스라엘을 아들이라 호칭하십니다. 그러나 자기 하고 싶은 데로 철없이 망나니 짓만 행하는 북 이스라엘과 남유다를 놓고 하나님 아버지는 한탄하십니다. 반복해서 엇나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 아버지는 엄중하게 꾸짖으십니다. 더 이상 받아 주지 않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잘못에 대해서는 철저히 징계하겠다고 선지자와 예언자들을 통해서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결국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표현일 뿐입니다. 언제나 철없는 두 아들이 돌아올 것인지를 노심초사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마음의 표현일 뿐입니다. ‘그렇게 살려거든 더이상 나를 아버지라 부르지 말거라’ 엄히 명하시는 옛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을 5장 15절에서 발견합니다.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오기 전에는 나를 볼 생각하지 말라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선지자 호세아의 입을 빌려서 아버지의 마음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한번 전해집니다. ‘회개하고 잘못을 뉘우치라’는 엄한 명령이 아니라, 메시지를 전하는 호세아 자신을 포함시켜 ‘함께 주께로 돌아가자’라는 메시지에서 아버지의 마음은 둘러서 표현되고 있습니다. 선지자를 통해서 달래시는 아버지의 간접적인 사랑의 표현입니다. 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일부 성경의 해설은 이 부분을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의 모습이라고 설명하기도 하만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고백이 아니라 호세아를 통해서 나오는 말 곧, 호세아를 통해서 권면하시는 메시지로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하는 메시지인 것처럼 형식을 갖추었지만 사실 호세아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호세아는 외칩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1.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집 나온 자녀가 겪게될 고생은 당연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루 이틀은 어떻게 견뎌보겠으나 금세 씻지 못하고 갈아 입지 못해서 나는 온갖 냄새와 행색은 누가보아도 영락없는 노숙자나 행려자와 같습니다. 생소한 길을 걷다 다리가 붓고 생채기가 나도 그저 그뿐, 아무도 신경쓰지 않습니다. 이 때 필요한 것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꿈꾸던 일, 내가 바라던 독립이 철없는 치기어린 행동임을 빨리 깨닫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했던 오만과 방종에서 돌이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바라던 독립된 인생은 결국 찢기고 상처 투성이로 범벅이 되는 치욕의 인생임을 고백하며 돌아가는 것입니다. 참 자유는 아들의 신분이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아버지의 아들로 살아야 자유와 권리를 누릴 수 있지 아들의 신분에서 벗어나면, 곧 아버지의 집에서 떠나면 겪게 될 온갖 일들이 나를 조여옵니다. 부딪칠 모든 상황과 환경의 노예로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안에 자유와 풍요가 있지 하나님 아버지 품을 떠나 아무리 애써 보아야 결국 겨우 입에 풀칠하는 인생의 가시 굴레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을 쫓겨난 아담의 운명과 같습니다.
아버지께로 돌아가면 찢어진 상처가 낫게 됩니다. 아버지 집에 돌아가면 상처를 싸매어 주십니다. 상하고 지쳐 쓰려진 몸과 마음을 일으켜 주십니다. 1-2절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삼일째 되는 날 예수를 죽음가운데서 일으켜 세우신 것처럼 절망속에서 억압과 굴레, 환경의 눌림속에서 살아가던 인생들이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서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아들이 돌아오는 것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호세아를 통해서 이렇게 권면하십니다. 3절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2. 힘써 여호와를 알자
여호와께로 돌아온 주의 백성들과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기를 바라십니다. ‘여호와를 알자’ '여호와를 안다'는 의미는 단순히 지적 앎이 아니라 친밀한 관계를 통한 온전한 인식과, 전인적인 앎입니다. 하나님을 피상적으로 알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단지 머리로만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 깊이 알아가는 것입니다. 단지 지적, 정신적, 감성적 어느 한 부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인적으로 그분을 알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칠흙같은 어둠의 시간을 지나고 나면 어김없이 한줄기 새벽빛이 비취이고 새 하루가 시작되듯이 하나님은 주님을 기다리고 찾는 어둠의 인생들에게 비추이시는 한줄기 빛처럼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새 하루처럼 새 소망의 인생을 시작하시게 하시는 분입니다. 메마른 땅에 가을 비가 내려 열매를 맺게 하고 봄비가 내려 새싹을 움트게 하듯이 하나님은 우리 메마른 인생을 적시는 단비처럼 우리 인생가운데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단순히 머리로만 아니라, 가슴으로, 감성으로, 삶으로, 호흡으로 영혼으로 시간으로, 몸으로, 인생전체, 인격 전체로 알아가는 것입니다.
3. 순결한 사랑
여호와께 돌아가자,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6절에서 다시한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여기서 '인애'(히브리어:헤세드)라는 단어는 하나님에 대해서 사용될 때는 '언약에 기초한 불변적인 사랑'을 의미하고 사람에 대해서 사용될 때는 다른 사람에 대한 '친절,자비'나 하나님에 대한 '순결과 충성'을 표현할 때 사용됩니다. 새번역에서는 '변함없는 사랑'으로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기 본문에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인애'라는 단어의 뜻은 하나님에 대한 순결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순결한 사랑을 원하십니다. 그 순결한 사랑의 대상이신 하나님에게로 돌이켜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하루 하루 전인격적 관계를 통해 점점 더 깊이 알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어둠에 찾아오는 빛처럼, 메마른 땅에 찾아오는 단비처럼 인간의 삶의 중심에 찾아오시는 그 하나님을 온 몸과 마음으로 이해하고 경험하고 인식하기를 원하십니다. 변치않는 순결한 사랑으로 주님을 하루 하루 더 풍성히 알아갈때 우리는 하나님안에서,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2절: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오늘 하루라는 시간속에서, 인애로 여호와를 전 인격적으로 알아가는 복된 하루 되시길 소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호세아를 통해서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권면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게 하옵소서. 세상의 욕망과 헛된 가치관이 꿈틀거리는 이 시대속에서 해만 뜨면 금새 증발해버리는 이슬처럼 순간적 감정이나 일시적 사랑에 기대어 살지 말게 하시고, 한 평생 전 인격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셨던 예수님처럼 순결한 사랑으로 주님을 깊이 알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그저 그런대로 자만하지 않고 더욱 힘써 주를 알기 소원함으로 주님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체득하는 오늘 하루 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를 주님께 의뢰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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