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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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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fzari.com/150 
꽃자리로고_mini.jpg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8)

모기의 ‘도(道)’

-「비전론 무용 시대」 1934. 3월 -

 

뒤통수를 치는 것은 치사한 일이다. 동서고금, 언제나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40대 후반전을 살면서 이런 저런 인간 관계를 경험하다보면 요즘엔 상대방을 믿게 만들었다가 급작스레 뒤에서 공격하여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 ‘능력’으로 취급받는 시절이 된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앞에서 하는 이야기와 뒤에서 하는 행동이 다르다. ‘예능’조차 ‘다큐’(다큐멘터리)로 받는 나 같은 사람은 살아가기가 참 힘든 세상이다. ‘촌지 근절’이라고 써서 입학식에서 배포한 공문을 사실 그대로 믿고 아이를 맡긴 학부모는 영문 모를 선생님의 아이를 향한 신경질과 폭력에 당황한다. 제자에게 무한 신뢰를 허하며 온갖 잡업을 십 수 년 시키던 지도 교수가 학교의 역학에 편승하며 자신을 버린 것을 안 시간 강사는 배신감에 목숨을 끊기도 한다. 정치판의 뒤통수는 말할 것도 없다. 그건 옛날에도 그랬으니까.


실패나 좌절보다 인간의 마음을 더 바닥으로 내모는 것은 규범 혼란 즉, 아노미 상태다. 어느 것을 믿어야 하나? 무슨 말을 따라야 하나?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가? 도무지 도덕 판단이 불가능한 상태다. 에밀 뒤르켕에 의하면 문명 전환기에나 잠시 존재한다는 ‘규범 혼란’의 상태를 김교신도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니 이 상황이 ‘잠깐 있다 지나갈 일’은 아닌 듯하다.


인류가 지금처럼 타락하기 전, 즉 불가피하여 창검으로 결사(決事)하는 수 있더라도 우선 최후통첩을 발하고 선전포고를 한 후에 포문을 열 때, 그 시대까지는 인류 중에 호사자[일 벌리기 좋아하는 사람]가 있어 소위 비전론(非戰論)이라는 것을 주창하고, 이로 인하여 전국민의 핍박을 당한 일까지도 있었다. 실로 그 때까지는 인간이 기특한 시대이었다. 마는 지금 와서는 비전론을 창도하고자 하는 호사자가 있다 할지라도 저는 제창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말 것이다. 국제조약이 발달한 결과로 전쟁은 못하게끔 되었다 … [그러나] 세계의 열강이 무성의 총포와 무폭음의 비행기를 발명하기에 쟁선 몰두하고 있음은 저들의 절도 근성을 만족시키기 위함이다.


“인류가 지금처럼 타락하기 전”은 언제일까? 김교신이 염두에 둔 그 시간은 아무래도 ‘전근대’를 의미하는 것 같다. 우리가 배우기에는 신체적 보복이 개별화되어 있던 무법천지의 전통 사회를 그는 어찌 ‘지금처럼 타락한 것’은 아니라고 했을까? 그 시절을 이상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김교신은 그 시절에는 적어도 나름의 ‘도(道)’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듣고 보니 그렇다. 매복하고 있다가 죽이는 암살자들은 무협 영화에서도 보면 존경을 받지 못하더라. 진정한 무림의 고수는 늘 정면에서, 그것도 상대방이 칼을 뽑을 시간도 주고, 서로가 싸울 준비가 된 상태에서 맞붙더라. 유럽의 기사들은 장갑을 던져 결투를 신청했고, 서부 활극에서는 서로 뒤를 돌아 열 걸음 걸은 뒤에 싸우자, 합의를 하는 장면도 나온다. 적어도 죽을 줄 알고 서로 준비한 채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싸움, 김교신은 이 싸움이 ‘성서적’이라거나 ‘이상적’이라고 칭찬하는 것은 분명 아니나, 적어도 그것이 ‘무사의 도리’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소위 ‘인권’을 존중하고 반인륜적 전쟁을 지양하고자 국제법도 만든 ‘현대’ 사회는, 어이없게도 서로의 등 뒤에서 소리 없이 무기를 만들고 있다. 평화적으로 말로 하자고, 서로가 동등하게 테이블에 앉아 협상을 하자고 그리 말해놓고서, 상대가 모르게 뒤통수를 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이다. 앞과 뒤가 다른 이런 전쟁 전술에 대해 김교신은 ‘모기보다도 못한’ 일임을 꼬집는다.


절족동물 비충류 쌍시류에 모기라는 동물이 있다. ‘있다’ 하기 보다 하절마다 너나없이 모기의 괴로움을 받고 지내서 잘 아는 터이다. 이 동물이 체소(體小)하고 근력이 약하고 극독이 없음도 우리가 잘 아는 바이다. 그렇다고 작당 군습하는 것도 아니요, 무기라고는 오직 일분장(一分長)도 못되는 침취(針嘴) 하나뿐이건만, 그래도 인축(人畜)을 내습할 때에는 당당히 선전포고하고서 접전한다. … 우리가 모기를 귀찮게 여기나 그러나 그 행동에 일종 경의를 표하게 됨은 근대 국가생활을 하는 인류들보다 매우 정당하고 고결하고 윤리적인 심지를 상실치 않았다고 보는 까닭이다.

 

사람_무는_모기.jpg
(https://www.flickr.com/photos/calgaryreviews/)

 

한 마디로 근대 국가의 작동 방식은 모기만도 못한 도덕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 글을 읽다보니 수년 전 미국 동부의 작은 해안가 마을 도서관에서 읽은 지역 문인의 ‘모기 용맹론’이 겹쳐 떠올랐다. 주변부의 마을 정서를 오롯이 담은 한 글에서 필립 윙게이트(Phillip J. Wingate)라는 학자는 ‘동부 해안 정신’을 표현하며 어린 시절 고향의 나이든 의사 타우스 선생님이 전해주었던 모기 이야기를 전한다. 모기를 ‘날아다니는 방울뱀’이라고 부르던 타우스 선생님은 모기를 지상에서 가장 용감한 동물이라고 칭했다고 한다. 자기보다 만 배는 더 커다란 몸집인 사람을 향해 앵앵 선전 포고를 하며 정면 공격을 감행하기 때문이란다. 그것만이 아니다. 모기는 ‘자신의 먹이를 오직 필요한 만큼’만 먹는 ‘도리’를 아는 생명체다.


모기가 먹이 사슬의 맨 꼭대기여야 해. 바로 인간 위에 … 오직 모기만이 정규적으로 인간을 먹고 사는 야생동물이니까. 상어나 호랑이가 어쩌다 사람을 먹을 수는 있지만, 그 녀석들은 항상 사람을 죽여서 먹지. 하지만 모기는 필요한 만큼 빨아먹고 말 뿐이야. 우리가 젖소에게서 우유를 먹듯 말이지. 모기는 제 먹이를 죽일 의사가 전혀 없어. 사실 모기는 이 세상에서 가장 신사적인 식인동물일 거야. 모기는 필요한 만큼만 먹지 더는 먹지 않으니까.(Before the Bridge, 1985, 19)


하나님이 모기를 만드신 이유는, 인간의 피에서 겁쟁이 기질을 뽑아내고, 인간 안에 모기의 용기를 주입하기 위해서라고 풀이했다는 타우스 할아버지의 해석을 곧이곧대로 믿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근대 국가가 가진 폭력적 작동방식을 한탄하던 두 지성인이 한국과 미국이라는 서로 다른 공간을 살면서도 같은 교훈을 담아 ‘모기의 용맹한 무사 정신’을 노래했다는 것이 흥미롭지 않나!


김교신이 옳았다. 남을 치고 부국강병을 이루려던 근대 국가들은 앞에서는 ‘평화’ ‘평화’ 외치면서 소리 없이 등 뒤에서 뒤통수를 칠 전쟁을 준비했다. 1937년에 중일전쟁이 발발했으며, 1939년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을 살상했던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기독인으로서 김교신은 ‘비전(非戰)’의 소망을 품은 자다. 그러니 1934년에 쓰여진 이 글 「비전론 무용 시대」는 전쟁의 정당함을 논하는 글일 리 없다. 두 세계 대전 ‘사이’에서, 근대 제국의 작동원리를 간파한 까닭에 그는 우려와 질타를 담아 이 글을 썼으리라.


공식적으로, 표면적으로, 앞에서는 ‘전쟁’을 논하지도 밝히기도 않는 시대, 김교신이 그 출발의 시·공을 살았다면 우리는 그 후반의 시·공을 살고 있다. 비전(非戰)을 떠나 평화에의 외침이 쉽게 ‘먹힐’ 세상이 아니지만, 국가 사이에만이 아니라 개별화된 무한 경쟁의 전쟁터에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가 된 이 시절에, 우리는 적어도 궁극의 도(道)는 아닐지언정, 현실적 도(道)로서의 ‘모기의 무사 정신’은 외쳐야 할 일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가 모기보다 못해서야 어찌 얼굴을 들고 살겠는가! 하니 제발 뒤통수는 치지 말자. 그리고 시장에서든 일터에서든 (그리고 말도 안 되지만 현실이니 언급해야겠다. ‘교회에서도’), 제발 좀 정정당당하게 싸우자. 폼 나게 장갑은 못 던져도 서로 투명하게, 상대가 알게, 결국은 실력대로 정당한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백소영/이화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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