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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동사(動詞)적인 뜻

마태복음 김부겸 목사............... 조회 수 639 추천 수 0 2015.05.24 23:4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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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19:30 
설교자 : 김부겸 목사 
참고 : http://blog.naver.com/malsoom/98481873 

2010년 1월 24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마태복음 19장 30절, 아모스 5장 24절

설교제목 : 하느님의 동사(動詞)적인 뜻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마태 19:30)./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아모 5:24)】

 

<흑인 영성 이야기>

  며칠 전 ‘미국 흑인 영성’이라는 짧은 논문(『기독교 영성』<은성출판> 중 일부)을 읽을 계기가 있었는데, 그 글을 읽으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뭐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제 입장에서는 아주 소중한 배움을 얻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대충 이렀습니다.

 

 저는 평상시에 ‘흑인 영성’ 이라고 하면, 그냥 대충 △아프리카 땅의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 △노예신분에서 해방되었으나 아직도 해방되어야할 부분이 남아 있는 사람들, △일부의 흑인들(예, 말콤 엑스)이 마르크스적 해방운동을 꿈꾸고 있는 현실, △재즈 음악을 연상케 하는 독특한 예술기질을 갖고 있는 흑인들 … 그냥 상식적인 차원에서 그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흑인 영성’에 기록되어 있는 흑인들의 ‘출애굽적 꿈’은 장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이 놀랐습니다. 미국의 흑인들은 자신들의 삶의 여정을 ‘출애굽한 히브리인들’과 동일시하고 있었습니다. 성서적인 맥락, 특히 출애굽기의 맥락에서 자신들의 삶을 재해석해내고 있었습니다. 아프리카를 떠나게 된 흑인들은, 정확히 말하자면 이집트를 떠난 흑인들은 현재 미국에 머물고 있습니다만, 이들의 ‘출애굽기적 꿈’은 미국 안에 머물지 않습니다.

 

 흑인들은 ‘탈 아프리카’ 한 전 세계의 흑인들을 통합시키는 꿈을 꾸고 있으며, 이를 디아스포라 흑인운동이라고 명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디아스포라는 어떤 의미일까요? 전통적으로 디아스포라[Diaspora]는 팔레스타인 외역(外域)에 살면서 유대적 종교규범과 생활관습을 유지하던 유대인, 또는 그들의 거주지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디아스포라는 ‘이산(離散) 유대인’ ‘이산의 땅’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이는 그리스어에서 온 말로 ‘분산(分散) ·이산’을 뜻합니다. 역사적인 서술에서 이 단어는 헬레니즘 문화 시대와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를 통해, 그리스 근역(近域)과 로마 세계에서 유대인의 이산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과거에 전 세계에 흩어져서 살고 있던 유태인들이 그들만의 독특한 영성적 정체성을 유지한 채 존속했듯이, 오늘날 흑인들 역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으로서 그들의 독특한 영성적 정체성을 간직한 채 살아가자는 운동이 곧 ‘흑인 디아스포라’운동이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흑인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디아스포라 흑인들’의 대통합 작업을 마친 후, 더 큰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과거에 아프리카인들이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로 강제 이송되었는데, 이제 거꾸로 그들은 아메리카를 떠나서 대서양을 건넌 후 아프리카로 이주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반전(反轉) 안에서 아프리카인들은 이집트로의 ‘역 출애굽’을 통해 흑인들의 역사적 대서사시를 마감하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범 아프리카 흑인들의 승리로 마감되는 인류의 역사를, 그 미국 흑인들이 꿈꾸고 있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떠실지 몰라도,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전율(戰慄)을 느꼈습니다. “아! 그렇구나. 아프리카 흑인들의 역사적 승리, 그것이 있을 수 있겠구나. 저들이 지금 가난과 무지, 배고픔과 무시당함을 겪으면서 불쌍하게 살고 있지만 장구(長久)한 인류의 역사를 조망해보면, 그런 놀라운 역전(逆轉) 현상이 벌어질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섬칫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성경 이야기>

  이제 성경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마태 19:30). /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아모 5:24)】

  그래요. 그런 것입니다. 지금은 유럽의 백인들이, 혹은 일부 동양인들이 역사의 승리자인양 으스대고 있지만, 그러나 그건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미래일은 누구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소위 “양지(陽地)가 음지(陰地) 되고, 음지가 양지되는” 놀라운 일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세상이치이고, 사실 그것이 성서의 메시지입니다. 누구도 최종적 승리자임을 자만할 수 없고, 누구도 하느님의 정의를 완전히 소유했다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사람처럼, 우리는 누구라도 조심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칫 자만해서 중심을 잃어버리면 누구라도 나락에 떨어질 수 있는 것이 ‘하느님의 정의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동사(動詞)적 영성이다>

  저는 특히 아모스의 말씀,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아모 5:24)는 말씀을 읽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왜 굳이 정의라는 것이 강물처럼 흐르는 것이어야 할까? 예를 들면, 하나님의 정의가 이 땅에 완전히 실현되도록 하라는 식의 말씀이 아니었을까? 즉 하나님의 정의가 명사(名詞)적 차원에서 종료되지 않고, 동사(動詞)적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런데 이런 저런 생각 중에 문득 “아! 그것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불교의 경우는 깨달음을 통한 득도(得道)를 이상적인 영성 모델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결국 명사(名詞)적인 세계입니다. 득도 이후에 더 이상의 움직임은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다릅니다. 기독교의 경우는 완료(完了)가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다만 하느님과 더불어서 끝없이 여행할 뿐입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지속되는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의 여행, 그것이 기독교 복음의 정체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세계에서 ‘완성’이라든가, ‘완료’라든가, 100% 승리라든가, 100% 패배라는 따위의 완성적 세계는 없습니다. 다만 진행이 있을 뿐입니다. 명사적인 차원이 아니라 동사적인 차원입니다.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하느님과 동행하는 인격적 실체, 그것이 기독교적 인간형입니다.

 

<지구적, 우주적 차원의 이야기>

  그런데 이 진행(進行)의 영성이 단순히 철학적이며 이론적인 맥락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느님과 더불어 진행되는 삶”이라는 맥락은 지구적이며 우주적인 맥락에서도 적용됩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지구촌 이곳저곳에서 강력한 지진이 일어나서 우리를 슬프게 했습니다만, 그 지진사태가 말해주는 핵심적인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즉 지구는 살아 있다는 점입니다. 지구는 평평하게 서 있는, 어떤 완성된 실체, 즉 죽어 있는 존재가 아니라 아직도 여전히 그 생명의 진행을 계속해 가고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 생명의 노래를 불러대는 ‘살아 있는 실체’라는 것입니다. 즉 명사적 존재가 아니라 동사적 존재입니다. 태양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더 태양이 언제나 계속해서 그 빛을 비춰주는 실체로 인식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먼 훗날 태양이 그 빛을 잃어버리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 엄정하면서도 무서운 변화, 그 진행, 그 동사적 변화가 태양의 진실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에베레스트 산을 비롯한 지구촌의 거산들이 하나 같이 아주 오랜 과거에 바다속이었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살아있는 지구’가 지각변동을 일으키면서 음지(陰地)였던 바다속을 양지(陽地)인 거대한 산맥으로 밀어올렸던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 영원한 동사(動詞)의 세계, 그것이 기독교 복음의 정체성이면서 동시에 인간과 자연, 우주와 진리의 실체입니다.

 

<설교의 결론>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마태 19:30)./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아모 5:24)】

 

 이 성경구절에 담겨져 있는 하느님의 메시지는 크고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마어마하고 거대한 변화 속에서 살고 있는데, 그 어마어마하고 거대한 변화가 곧 ‘하느님의 뜻’입니다. 그 놀라운 ‘동사적인 뜻’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그 ‘동사적인 뜻’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동사적인 뜻’을 소화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동사적인 뜻’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동사적인 뜻’이 우리 인간과 우주의 세계에서 소통될 수 있도록 우리는 한 없이 겸허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즉 나의 에고(거짓 자아<自我>)를 비우고, 그 빈자리에 하나님의 진리를 채워야만, 그때 비로소 우리가 영성으로 해방된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하느님의 동사(動詞)적인 뜻’이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오늘 이 시간 이 설교말씀의 제목을 깊이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잠깐 기도하겠습니다.

 

* 축도

이제는 진리의 길을 직접 보여주신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우리의 생명과 영혼을 언제나 치유해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아름다운 동행이 사랑하는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언제나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댓글 '1'

이성일

2015.05.30 19:05:19

우선 하느님과 하나님의 차이를 모르시는 건지 하느님은 하늘님의 변형으로 하늘에 있는 모든 신들을 가르키는 용어로 다신론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일신인 여호와를 가르키는 것으로 고유명사로 되어 있습니다. 예전에는 한글에 법칙에 맞지않는다고 하여 하느님으로 한글에서 자동수정되기도 했지만 이젠 고유명사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천주교는 다신론을 추구하기에 하느님을 사용하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을 사용하는 것이 맞습니다. 기독교 강요도 유일신 하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용어 선택에 주의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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