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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12:16-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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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부겸 목사 |
참고 : | http://blog.naver.com/malsoom/100051091 |
2010년 2월 14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마태복음 12장 16절~50절
설교제목 : 혈연(血緣)을 넘어선 사인여천(事人如天)
【예수께서 아직도 무리에게 말씀하고 계실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와 말을 하겠다고, 바깥에 서 있었다. 어떤 사람이 예수께 와서 "보십시오, 선생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선생님과 말을 하겠다고 바깥에 서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그 말을 전해 준 사람에게 "누가 나의 어머니며, 누가 나의 형제들이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보아라,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 하고 말씀하셨다.(마태 12:46~50)】
<설 명절 이야기>
우리 민족의 고유한 명절 ‘설’입니다. 이날은 객지에 나와서 생활하던 사람들이 모두 잠시나마 고향으로 돌아가 일가친척들과 함께 차례를 지내면서,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날입니다. 가장 큰 명절입니다. 먼저 우리 수도교회 가족 여러분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여러분들이 하시는 모든 일들이 정말 잘 되시는 한 해 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설 명절을 맞아서 다소 역설적인 방법으로 혈육과 친척,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인간에 대한 영성적 깨우침을 일러 주시는 이야기를 준비해 보았습니다. 교우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책 이야기>
최근에 읽은 책 이야기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누구 없는가』(법전 스님의 자서전, 김영사)라는 책 중에 ‘출가자의 참된 효도’라는 작은 이야기가 있는데,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4살에 출가한 소년이 이제 머리가 희끗할 정도의 중늙은이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의 부모 역시 늙고 병들었습니다. 어느 날 법전 스님이 거처하고 있는 한적한 절간으로 아버지가 찾아왔습니다. 이야기인 즉은, “너희 어머니가 병들어 사경을 헤매고 있으며, 그 어머니가 너를 보고 싶어하니, 함께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잠깐 고민하던 법전 스님은 이내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내가 그곳에 가서 오래 있을 것도 아니고, 또 간다고 해서 어머니의 병이 나을 것도 아닙니다. 더구나 어머니가 나를 보면 내 손을 놓지 않으실 것입니다. 너무 오랫동안 보지 못하던 아들을 보면 섶에 불붙인 듯 아들에 대한 애착이 더해진 채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결코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아버지는 홀로 산을 내려가셨고, 오래 지 않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법전 스님은 그 편지를 한 번 읽고 아궁이에 넣어버렸고, 어머니의 장례식 조차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건 “작은 정에 이끌리게 되면 자기는 물론이고 결국 부모까지도 지옥으로 인도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속세(俗世)에서는 부모를 모시며 맛있는 음식을 해드리고 옷도 따뜻하게 입혀드리는 것이 효도라고 하지만, 불가(佛家)에서 출가자의 진정한 효란 “내가 공부해서 마음을 밝혀 생사윤회(生死輪廻)에서 벗어나는 일”인 것이었습니다.
<성경 이야기>
그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가 성경에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 성경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아직도 무리에게 말씀하고 계실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와 말을 하겠다고, 바깥에 서 있었다. 어떤 사람이 예수께 와서 "보십시오, 선생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선생님과 말을 하겠다고 바깥에 서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그 말을 전해 준 사람에게 "누가 나의 어머니며, 누가 나의 형제들이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보아라,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 하고 말씀하셨다.(마태 12:46~50)】
예수님에게 있어서 ‘혈육의 인연’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가족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에게 있어서 진정한 혈육은 ‘하늘 아버지를 섬기는 자들’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예수님에 대해서 오해하는 분들이 여럿 생기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곰곰이 새겨보면, 그 말씀하시는 바 놀라운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그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 말씀의 해석>
예수님에게 있어서 중요한 초점은 ‘하늘 아버지’였습니다. ‘혈육의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혈육의 아버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형제자매는 ‘제한 된 소수’일 수밖에 없습니다. 서너 명 혹은 십여 명이 중요한 인연의 사람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늘 아버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라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집니다. 왜냐하면 전 세계의 인류는 모두,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하늘 아버지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혈육의 인연을 끊어버린 대신 지상의 모든 인류를 형제자매로 새롭게 인연을 맺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점이 중요했습니다.
<말씀의 적용>
설날 명절을 맞아서 우리는 많은 일가친척들을 만납니다. 우리가 그분들 모두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화합해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몇 배나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그분들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그분들이 우리의 혈육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분들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그분들 역시 한 하느님의 아들 딸들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의 몸과 영혼과 정신에 하느님의 숨결이 호흡하기 때문에 그들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하느님의 숨결이 살아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즉 그들 모두 하느님의 지체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느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그분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지체들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아끼는 것입니다.
이것이 동학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사인여천(事人如天) 사상입니다. 즉 천도교(天道敎)에서, 한울님을 공경(恭敬)하듯이 사람도 그와 같이 공경(恭敬)하여 서로의 인격(人格)과 예의(禮儀)를 존중(尊重)하는 윤리(倫理) 행위(行爲)를 말합니다.
<말씀의 확대적용>
사인여천(事人如天)의 사상은 인류에게 굉장히 중요한 사상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결국 “인간이 인간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 모든 사람을 하느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 아름다운 인간사회에서 ‘불행한 사건들’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모두 하느님으로 섬기는데, 어떻게 그 사람들을 미워할 수 있으며, 저주할 수 있으며, 때릴 수 있으며, 죽일 수 있겠습니까!!! 즉 하느님의 지체인 우리가 또 다른 하느님의 지체들인 저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고, 존경하지 않고, 아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현대 사회는 폭력의 사회입니다.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현실,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서 가족을 살해하는 현실, 다른 사람을 밟고 일어서야만 성공하게 되어있는 현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또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를 강압하는 폭력적 현실, 다른 나라를 제압하기 위해서 더 많은 무기를 개발하는 현실 …… 이게 현대인류의 현주소입니다. 사인여천(事人如天)의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불행한 시대의 삶, 그것이 현대입니다.
그러므로 ‘사인여천’(事人如天)의 영성은 인류의 폭력적, 폭압적 현실을 깨트리고 참다운 지상낙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사상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말씀의 핵심에 사인여천(事人如天) 사상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혈연(血緣)을 넘어선 사인여천(事人如天)’이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오늘 이 시간 이 설교말씀의 제목, ‘혈연을 넘어선 사인여천’을 깊이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축도
이제는 진리의 길을 직접 보여주신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우리의 생명과 영혼을 언제나 치유해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아름다운 동행이 사랑하는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언제나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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