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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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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진짜 복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본문: 시1:1-6절, 찬송가 28장, <통> 28장 복의 근원 강림하사
복이란 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것으로만 국한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기독교에서 말하는 복은 전혀 그와 다른 더 높은 차원에서의 복입니다. 예컨대 예수 믿는 것도 복이고, 직분 받는 것도 복이며, 구원 받은 것도 복이고, 성령 충만한 것도 복이며, 내세에 천국을 소유한 것도 복입니다. 우리는 이미 천국을 확보한 자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이미 천국을 확보한 자들이기 때문에 땅을 보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을 생각하면서 소망 중에 즐겁게 살아갑니다.
복, 축복, 행복 등은 다 비슷한 말로서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소원 사항입니다. 요즈음 기독교 신앙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기복 신앙을 꼬집고 있습니다만, 실제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종교가 인간의 축복과 행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 신구약 성경은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메시지가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문제는 일반종교나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복에 대한 이해와 성경이 말하는 축복이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읽은 시편 1편의 내용은 성도들이 일생을 살아가는데 참된 복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우리는 벌써 복 받은 사람입니다. 물론 이 본문의 말씀은 복 있는 사람의 조건을 말씀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 『복 있는』이란 말은 실제로 복수로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오는 풍성한 복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시편 1편의 사상은 렘17:5-8절에 사상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에게 은혜와, 구원과 사랑의 축복으로 찾아 오시는 것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성경은 의인과 악인을 구별했습니다만 의인이기 때문에 복받는 것이 아니고 사실 복 받은, 사람이기에 의로운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축복이니 복이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것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한결같이 자기중심적이며 향락추구적이며, 현세적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욕망을 충족 시켜주는 것을 축복이라고 합니다.
한국 사람만큼 복을 추구하는 민족도 없습니다. 수저에도 복자를 새겨서 밥을 먹고 벼개잎에도 복자를 수놓아 베고, 복자로 수놓은 이불을 덮고 잠을 잘 정도로 복을 추구합니다. 자녀가 많고, 건강하고, 눈이 밝으며, 치아가 좋아 먹고 싶은 것을 잘먹는 것 등을 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계시하여 준 축복관은 하나님 중심적이며, 하나님의 말씀 중심적이며, 하나님의 은혜 중심이며, 공동체적이며, 죄를 극복하는 것이 축복이란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이 성경을 볼 때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소원하고 기도해야 하겠지만, 그러나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안에 있는 사람은 벌써 복 받은 사람이란 확신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시편 1편은 이미 복받은 성도가 살아가야 할 삶의 지침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벌써 복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벌써 하나님의 은혜로 사랑 받은 사람입니다. 그 사실을 아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받은 사람으로서 지혜가 있어야 하고, 복받은 사람으로서의 삶의 길이 있어야 하고 복받은 사람의 자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 시편 기자의 호소입니다.
이 성경은 복받은 사람의 삶의 소극적 자세로 악인의 죄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어찌보면 이 성경의 내용은 복은 선택적인 듯이 보입니다. 내 스스로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으면 축복이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하나님의 축복 받은 백성으로 살아가야 할 삶의 철학이며, 확신이며, 뜨거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금년 한 해를 살아가면서 곁길로 가게 하는 유혹과 자신을 교만케 하는 함정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완전치도 못할 뿐 아니라 우리는 도리어 마귀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주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하며 죄악의 포로가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함정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선택받은 백성이며 왕같은 족속이며 하나님의 축복받은 백성이란 확신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명과 소명받은 택한 백성으로서, 축복받은 사람은 적어도 앉을 자리에 앉아야 하며 올바른 길을 걸어가야 하며 악한 자의 꾀에 빠져가는 어리석음과 무지를 범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는 복받은 사람으로서 긍지와 자부심과 확신을 가지고 죄를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축복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 것입니다. 죄를 이기는 것이 축복입니다. 죄를 정복하지 않고는 세상에 축복도 평화도 없습니다. 죄는 인간을 망하게 하고 병들게 하고 죄는 우리를 좌절케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죄를 이기는 축복받은 자가 되는 것입니까? 성경은 그 대답을 주셨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묵상함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축복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축복입니다. 하나님 없이는 축복일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것을 다 가져도, 훌륭한 학문이 있어도, 아무리 좋은 직장을 가져도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은 축복이 아니고 도리어 저주가 됩니다. 우리의 축복은 그래서 하나님 중심의 축복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축복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쾌락주의에서 얻는 일시적인 기쁨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입니다.
시16:2절에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라고 고백한 시편기자의 고백은 옳습니다. 예수님의 산상보훈 가운데 팔복도 하나님 중심 사상으로 보지 않으면 이해될 수 없는 내용입니다. 축복(祝福)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세상을 이기는 능력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시119:105절에서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펼쳐질 길을 알지 못하고 불확실의 먹구름이 드리운 채 출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묵상하고 그 말씀에 순종(順從)하며 살 때에 우리의 앞길은 환하게 빛날 것이며, 축복된 길이 될 줄 믿습니다.
본문 1, 2절을 읽겠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편 1편은 의인과 악인을 선명한 이미지로 대조해 보여 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전체 시편의 서론에 해당되는 것으로 세상 사람들의 두 가지 삶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먼저 악인이 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점진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악행은 먼저 생각을 통해 옵니다. 악행은 생각을 통해 다가와서 행동으로 옮겨지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죄인의 길』이란 악한 행동이 습관화되어 체질화된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런 상태가 깊어지면 죄악은 권세를 가지게 마련입니다. 죄악은 마침내 힘 있는 『자리』를 차지하게 되며 그 자리에 앉게 된 악인은 죄악을 일삼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악인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시편 기자는 악인과 구별되는 복 있는 사람의 특징을 한 마디로 『말씀을 가까이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말씀을 즐거워하는 자입니다. 말씀을 즐거워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서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기로 굳게 결심합시다.
본문 3절을 읽겠습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영국 런던의 템스 강 근처에 있는 재판소 뜰에는 유명한 포도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그 포도나무는 유난히 맛이 좋은 열매를 맺기에, 식물학자들이 그 포도를 종자로 하여 우수한 포도를 보급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학자들은 다른 포도나무와 별다른 특징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 포도나무는 뿌리가 템스 강 밑바닥까지 뻗어 있을 뿐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그 나무는 뿌리가 강 밑바닥까지 뻗어 있었기 때문에 수분을 충분히 빨아들일 수 있었고, 아울러 양분도 충분히 공급받아 영국에서 가장 맛있는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시편에서 말하는 복 있는 사람이란 뿌리를 물 근원에 두고 있는 그 포도나무처럼 하나님께 믿음의 뿌리를 두고 있는 성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라고 해서 환난과 어려움이 닥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심한 기근과 같은 어려움이 온다고 해도 하나님께 믿음의 뿌리를 두고 있는 성도들은 그 모든 환난을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146:5)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축복받은 사람은 시냇가에 심겨진 상록수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복받은 사람을 기술하면서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입사귀가 마르지 아니함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복있는 사람의 행복을 이토록 아름답고 절묘하게 표현한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복 받은 사람이 의인이며, 의인이 곧 하나님의, 구속함을 받은 성도이며 이 사람은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 같다는 것입니다. 이 개념은 한국 사람으로서는 그렇게 감동적이 아닐지 모르지만 광야와 사막이 널려 있는 팔레스틴 지방에서의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 대한 이미지는 그야말로 행복에 대한 가장 적절하고 완전한 시적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예레미야 17장 7, 8절에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가뭄이 오고 계절이 바뀌어도 사시사철 푸르름을 유지하는 상록수를 복받은 사람에 비유한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복받은 사람이며,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인은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없이, 하나님 말씀 없이 사는 삶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본문 4절을 보겠습니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며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악인이 하는 모든 것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것들입니다. 내가 먼저 악인인가? 의인인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의인과 악인이 함께 살아갑니다. 양과 염소, 알곡과 죽정이가 함께 존재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오실 때에는 악인은 버림을 당하고 의인은 천국으로 인도하십니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마25:34)
바람을 잡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육신적인 것, 즉 내 눈으로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것, 느낄 수 있는 것 대부분은 바람입니다. 바람이 아닌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힘쓰십시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롬8:6)
『어떻게 하면 세상에서 출세하고 부해질까? 쾌락을 즐길까? 내 몸을 멋있고 아름답게 할까?』 등의 생각은 육신의 생각이며, 하나님의 원수가 되며, 바람을 쫓는 것입니다. 반면에 영의 생각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 하나님 뜻대로 순종하며 살까?』 등의 생각입니다.
『그들은 지붕의 풀과 같을지어다 그것은 자라기 전에 마르는 것이라』(시129:6)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4)
본문 5, 6절에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 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 하리로다 무릇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악인은 심판을 당해 망할 것이며 의인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내가 너희의 각기 행한 대로 심판하리라』(겔33:30)
성경은 단순히 권선징악(勸善懲惡)이나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단순히 축복과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라는 교훈이 기록된 책이 아닙니다. 본질적으로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이며,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의 승리를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의 택한 백성들에게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적으로 볼 때 우리는 참으로 박복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의 정황을 보면 물가는 치솟고, 정치나 경제에 대한 희망도 없고, 사회 구조는 생산직을 버리고 수백만 명의 여성들이 향락산업에 종사하고 사회의 도덕적 타락은 극에 달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살펴 볼 때, 건강문제로 늘 괴로워하고 자녀문제로 늘 가슴앓이를 하고 경제적 압박으로 늘 위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자신을 한없이 학대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희망과 꿈을 가지고 시작합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목자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사는 자체가 축복이며, 꿈이며, 희망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축복받은 사람이란 자각이 없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오늘날은 흔히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합니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은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확실성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는 이미 축복받은 사람이며, 축복받은 우리는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 있고 우리가 앉을 자리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며 살아가는 삶의 방향이 결정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복받은 사람이며, 우리교회는 복받은 교회이며, 우리 민족은 이미 복받은 민족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1. 악한 일을 멀리하는 사람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시1:1)
여기에서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 이 세 가지는 한마디로 말하면 모두 악한 일입니다. 이러한 악한 일을 멀리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가까이 할 일은 가까이 해서 복이 될 수 있고, 또 가까이 해서는 안될 일은 멀리 해야 복이 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좋은 스승이나 좇은 친구, 의로운 일을 가까이하면 복이 될 수 있지만, 강도나 악한 일은 멀리 해야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해야 합니다.
『악인』이란 말은 『어지럽게 하는 자, 소란케 하는 자, 위반케 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악인은 어지럽게 하고, 소란케 하며, 정로에서 탈선하여 위반케 합니다. 우리는 필요 없는 욕심 등으로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거나 역행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본적인 질서에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고 기뻐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악을 행하면서 누린 많은 소유로 기뻐하는 사람보다 선을 행하면서 비록 손해를 좀 보더라도 기뻐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복 있는 사람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묵상하는 자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1:2)
여호와의 율법은 곧 성경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을 읽을 때에 이 말씀이 즐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순종하고 준행할 때 그렇게 기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되는데 성경을 볼 때마다 이것도 하지 말라고 했고, 저것도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하면서 성경 말씀을 보면 어떻게 은혜가 되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속에 깊이 빠져 들어가 보면 구구절절이 얼마나 가슴에 와 닿는지 모릅니다. 성경을 많이 읽는 사람은 어딘가 모습이 다릅니다. 성경을 한 시간 읽고 난 후에 찍은 사진과 고민을 한 시간 동안 한 후에 찍은 사진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전혀 다를 것입니다. 같은 사람인데도 얼굴이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읽으면 생각이 달라지고, 성품이 달라지며, 행동이 달라지고, 취미가 달라지며, 말이 달라지고, 성격이 달라지며 품행이 달라지고 그의 모든 삶의 패턴이 달라집니다. 날마다 말씀을 즐거워하여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롬 1:16). 또 이적과 기사가 수반됩니다. 귀신들이 쫓겨나가고, 병든 자가 일어나게 되며, 죽고 싶은 심령들이 변하여 살고 싶은 심령으로 바뀔 뿐 아니라 춤을 추며 기뻐할 수 있는 이런 심령으로 변화가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즐거워하고 묵상하고 생활화해야 합니다. 시편 119:97에 보면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라고 말씀했고, 출애굽기 13:9에 보면 『여호와의 율법으로 네 입에 있게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어야 됩니다. 사실 설교란 예언입니다. 요한계시록 1:3에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설교 자체가 예언입니다. 예언이란 미래에 대한 것을 미리 알리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즐거워하고 사랑해야 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듣고 혼자만 간직하지 말고 이 말씀을 전해야 됩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눅11: 28)
3. 하나님께 심기운 자입니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1:3)
나무가 자라는데 무엇보다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은 수분으로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어떠한 일기의 변화에도 상관없이 잘 자랍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생명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께 심기운 자가 될 때에 영원토록 부족함이 없이 풍성한 삶을 누리는 복 있는 자가 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7:37, 38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심기운 자가 될 때에 복 있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토록 생명의 근원이 되시고 누구든지 목마르지 않게 해주시고, 영원히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하시는 주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21:6에 보면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4. 의인의 길을 걷는 자입니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시1:6)
의인의 길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길이지만 악인의 길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멸망하는 길입니다. 여기에서 『의인』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는 자를 가리키고, 『악인』은 믿음 없는 자를 가리킵니다. 또 『길』이란 말은 각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생활 방식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매일 매순간마다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을 선택할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그러할 때마다 악인의 길을 걷지 말고 의인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의인을 길을 걷는 자가 영원토록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시편 34:15에 보면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라고 말씀했고, 시편 37:25에는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에서 팔복을 설교하셨습니다. 성경 말씀에서 어떤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까?
1. 죄악을 멀리하고, 죄사함을 얻은 자가 복이 있습니다.
『오직 공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견고한 바위가 그의 요새가 되며 그의 양식은 공급되고 그의 물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사33:15, 16)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를 짓지 맙시다. 진리를 좇을 것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32:1)
복 있는 자는 허물을 사함 받고 자신의 죄를 용서받은 자를 말합니다. 그들은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 하나님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한 자들입니다.
고통 중에 인생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허물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자백하는 일입니다. 자신의 죄를 알리고 자신의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는 일입니다. 고통의 원인은 곧 자신의 죄와 허물 때문입니다. 이 허물과 죄를 사함 받을 때에 비로소 고통 중에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2.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5:3)
주님께서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복은 천국을 소유한 복입니다. 천국은 죽어서 올라가는 것이지만 이 땅에 살아있을 동안에도 마음속에 천국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가득한 탐심과 자기 의, 철학, 자기 주장, 자기 가치관을 배설물 같이 여겨 버리고, 내 마음에 진리되신 예수님을 모시면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의 놀라운 은총이 내 마음속에 강물처럼 넘실거리게 됩니다.
3. 애통하는 자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5:4)
요엘 2장 12절로 13절 말씀에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야훼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애통하는 마음은 하나님의 큰 축복인 것입니다. 영육간에 애통하는 개인이나 민족은 미래에 위로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애통해야 되고, 육적으로도 애통해야 신령한 은혜도, 물질적인 은혜도, 축복도 다가올 수 있는 것입니다.
4. 온유한 자입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
마태복음 11장 29절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주님 자체가 온유하고 겸손합니다. 주님은 자기를 붙잡아 가는 사람에게 몸을 맡기고 때리는 사람에게 얼굴을 돌리고 수염이 뽑히고 십자가에 못박혔지만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부드럽고 온유하고 따뜻한 분입니다. 로마의 군인들과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납게 몰아치고 십자가에 죽여서 그들이 이겼다고 생각했지만, 로마와 사나운 유대군인들은 온데간데 없고 예수님은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지금도 온 세상에 우뚝서 계신 것입니다. 온유한 자가 천지를 점령한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2절로 13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5.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5:6)
인간은 많은 수양이나 종교적 신앙을 통해 의인이 되고자 합니다. 그러나 구원은 예수 믿는 길밖에 없습니다. 의인은 용서받지 않고는 의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의로움은 행위로써 이룰 수 없으므로 믿음으로 선물로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온 천하 인간에게 구원받을 만한 이름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의롭게 살기를 사모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의로움을 선물로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로움을 선물로 받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곧장 성령을 보내 주셔서 성령을 통해서 의롭게 살 수 있는 능력과 힘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롭게 되기를 갈망하는 사람은 누구를 불문하고 예수님께 나오면 만족하게 되고 기쁘게 되고 의인이 되고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서게 되고 저 세상 천국 영원한 영광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6. 긍휼히 여기는 자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5:7)
내가 긍휼히 여기면 이웃으로부터 긍휼을 당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보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기 위해서 얼마나 처절하게 몸찢기고 피흘렸는지를 생각하고 이웃을 용서하고 긍휼히 여겨야 됩니다.
7. 마음이 청결한 자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
경건한 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기회를 얻고 기도해야합니다. 홍수가 범람할 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인생의 은신처이며, 경건한 자들을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그들을 두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8. 화평케 하는 자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미국의 카네기 공대에서는 졸업생들 가운데 성공한 사람들을 조사하여 그 원인을 분석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공하는 데 전문 지식이나 기술은 15%밖에 영향을 주지 않았으며, 나머지 85%는 인간 관계였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기술이 탁월해도 그것이 성공을 가져 오는데는 15%밖에 영향력이 없다, 인간성이 좋아야 성공하는 것이 85%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세 가지 방문』을 잘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입의 방문』, 『손의 방문』, 그리고 『발의 방문』입니다. 『입의 방문』은 전화나 말로 상대방을 칭찬하고 용기를 주는 방법입니다. 『손의 방문』이라는 것은 편지를 쓰거나 이메일을 통해 사랑하는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고, 『발의 방문』은 상대가 병들거나 어려움이 있을 때 찾아가는 것입니다. 이 중에서 서로간에 화평하기 위해서는 특히 『입의 방문』이 절대로 필요한데 『입의 방문』이라는 것은 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대화를 통해서 화평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가족 간에 이웃 간에 심지어 원수 간에도 대화를 통해 화평을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화평케 되기 위해서는 서로 비평하지 말고, 판단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9. 의를 위해 핍박받는 자입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5:10, 11)
빌립보서 3장 20절에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로운 삶을 살다가 핍박을 받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춤을 추라고 말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핍박을 받고 욕을 얻어먹고 손가락질을 당하면 슬퍼하고 통탄하고 괴로워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안에서 의로운 삶을 얻은 우리들이 핍박을 받고 고난 당할 때는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춤을 추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의로운 삶을 살다가 핍박을 받을 때 하늘에서는 엄청난 상을 예비하고 축복해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10. 여호와를 경외하고,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는 자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시128:1- 4)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시2:12)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시84:12)
11.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는 자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1:1- 3)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며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수1:8)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시65:4)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셀라)(시84:4)
12. 선한 눈을 가지고, 고아를 과부를 돌보며, 빈약한 자를 권고하는 자가 복이 있는 자입니다.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잠22:9)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14:29)
『빈약한 자를 권고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저를 건지시리로다』(시41:1)
13.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며, 공의를 지켜 행하는 자가 복이 있는 자입니다.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그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겠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아름다운 땅을 차지하리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니라』(신6:18)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시112: 1- 2)
『정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공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106:3)
이밖에 시험을 참는 자가 복이 있고(약1:12- 14), 여호와께 소망을 두는 자(시146:5),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자가 복이 있는 자(시144: 15)이며, 주께 힘을 얻은 자가 복이 있는 자입니다.(시84:5)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민6:24-25)
내 평생 소원은 주님께서 『내가 너로 인하여 기뻐하노라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는 말씀을 듣기 원합니다.(마3:17, 습3:17) 이보다 더 큰 복은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악한 일을 멀리하고,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묵상하며, 하나님께 심기운 자가 되고, 의인의 길을 걷는 자가 되어 항상 복 있는 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복의 근원이 되신 주님, 올 한 해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의 인도함을 받아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주님을 찬송하며 기쁨으로 살 수 있도록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악한 일을 멀리하고 복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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