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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3039. 천하의 명필 추사체는 거저 만들어지지 않았다
지난해 서울 인사동 공아트스페이스에서 진행된 고미술품 경매회사 (주)마이아트옥션(대표 공상구)의 제13회 메인경매 결과 추사 김정희의
“시우란(示佑蘭)”이 10억 4000만 원에 낙찰되어 13회 경매의 최고가를 기록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만큼 추사의 작품은 누구나 소장하고
싶어 하는 명품일 것입니다. 그러나 추사가 천하의 명필이 될 수 있었던 데는 그 누구보다도 엄청난 노력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임을 잘 모릅니다.
그는 유배 당시 쓰라리고 고독한 시간 속에서 자신을 부단히 담금질했던 것입니다. 화날 때에도 붓을 들었고, 외로울 때도 붓을
들었으며 슬프고 지치고 서러움이 북받칠 때도 붓을 들었다지요. 그리고 어쩌다 한 번씩 반가운 편지와 소식이 올 때에는 자다가도 일어나 붓을
들었습니다. 그는 또 중국의 비석 글씨 309개를 베끼고 베끼면서 고전과 글씨를 익혔고 일흔 살로 삶을 마감할 때까지 벼루 열 개를 갈아
치우고, 붓 천 자루를 닳도록 썼을 정도입니다.
친구 김유근이 자신의 벼루에 글씨를 새겨달라고 하자 마음에 들 때까지 글씨체를
연습한 것은 물론 후배 윤정현이 호를 써달라고 하자 윤정현에 걸맞은 글씨체를 찾으려고 고민하다 무려 30년 만에 글씨를 써주었을 정도로 자신의
글씨에 철저했습니다. 흔히 추사체는 변화무쌍함과 괴이할뿐더러 잘되고 못되고를 따지지 않는다는 '불계공졸(不計工拙)'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추사는 죽기 3일 전 봉은사 <판전(板殿)>이란 글씨를 썼는데 이것은 아무 기교도 부리지 않은 어린 아이 같은 순수함이 느껴진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오늘은 추사 김정희가 태어난 날 새삼 그의 작품들이 보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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