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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신23: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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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부겸 목사 |
참고 : | 2010.04.24http://blog.naver.com/malsoom/104348031 |
2010년 4월 25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신명기 23장 19절
설교제목 : “나눔이 필요 없는 삶으로”
【너희는 친족에게 꾸어 주었거든 이자는 받지 말아라. 돈이든지 곡식이든지, 이자가 나올 수 있는 어떤 것이라도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된다. (신명 23:19)】
<책 이야기>
최근 저는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이지상 지음, 삼인출판사)를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그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10년 넘게 비주류 음악가로서 활동하던 이지상 씨가 이현필 선생이 세우신 동광원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그곳을 자주 방문합니다. 이지상 씨는 동광원의 늙은 수녀님들을 통해서 ‘무욕’(無慾), 즉 “욕심을 비운다”는 세계를 배우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이지상 씨는 동광원 수녀님들을 통해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합니다. 그것은 곧 “동광원 수녀님들의 내면에는 이미 ‘욕심’이라는 개념조차 세워져 있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마음 가운데 이미 ‘욕심’이라는 말조차 없으니, 애써 비울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깨달음의 연장선에서 이지상 씨는 ‘나눔이 필요 없는 자연의 세계’를 발견하게 됩니다. 여기 사자와 토끼들이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사자는 토끼를 잡아먹습니다. 그런데 사자는 ‘굶주린 배’를 채울만큼만 토끼를 잡아 먹습니다. 배가 부르면 아무리 토끼가 많아도 잡아먹지 않습니다. 바로 그 점입니다. 우리는 흔히 ‘나눔’의 최고의 윤리로서 주장하곤 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눔’보다도 훨씬 아름다운 최고의 윤리가 있는데, 그것은 애초부터 ‘나눌만한 그 무엇도 갖지 않는 윤리’입니다.
<또 다른 책 이야기>
몇 해 전에 정기구독하던 잡지가 하나 있는데 가톨릭(종교대화시튼연구원)이 발행하던 『영성생활』입니다. 그 잡지에 수록된 내용 중에서 지금 기억되는 것은, ‘자비를 베푸는 자’와 ‘그 베풀어진 자비를 받는 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현상에 대한 분석입니다.
제 식으로 풀어서 설명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여기 아주 선량하신 신부님이 한 분 계신데, 그 신부님께서는 교우들이 헌금한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곤 했답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신부님을 존경했더랍니다. 그런데 그런 선행이 계속되면 될수록 그 신부님은 자꾸만 교만해져 간다는 겁니다. 자꾸 높아지기만 하는 것이지요. ‘자비를 베푸는 자’로서 계속해서 우월적인 위치에 있다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꾸 신부님의 삶의 태도가 뻣뻣해져서 나중에는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권위주의적인 인간형으로 변형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반면에 ‘그 베풀어진 자비를 받는 자들’은 계속해서 낮아지기만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돈을 받으니까 자꾸 비굴해지고, 나약해지고, 우울해지고, 소극적인 인간형으로 변형되는 것입니다. 자유롭고, 당당하고, 담담하고, 솔직하고, 쾌활해야할 인간이 자꾸만 ‘굴종적인 인간형’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 잡지의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눔의 선행’이 불러일으키는 기묘한 죄악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결론의 이야기>
오늘의 결론은 아주 단순합니다. ‘나눔의 윤리’보다 더 아름다운 윤리는 애초부터 ‘더 가지지 않는’ 윤리입니다. 다만 내게 필요한 것들만 최소한으로 갖고 나머지는 그냥 세상에 깔아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대충 이런 것이지요. 최소화한 내 밥그릇만 채우고, 나머지 밥그릇들을 세상 밖으로 흘려보내서, 누구라도 원하는 자들이 스스로 그들의 밥그릇을 채울 수 있게끔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연이 가르쳐 준, 또 동광원 수도자들이 일깨워주는 ‘무욕의 윤리’인 것입니다.
<성경 이야기>
이제 성경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너희는 친족에게 꾸어 주었거든 이자는 받지 말아라. 돈이든지 곡식이든지, 이자가 나올 수 있는 어떤 것이라도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된다. (신명 23:19)】
오늘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일깨워주신 하느님의 ‘돈’에 관한 윤리입니다. 긴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일깨워주신 ‘윤리의 핵심’은 더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최소한으로 가지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나눔’이다 ‘사랑’이다 뭐다 해서 떠벌릴 필요도 없을만큼, 애초부터 최소한의 것들만 갖고 살고, 그 나머지 것들을 모두 세상 밖으로 흘려보내라는 것입니다. 그게 하느님께서 일깨워준 신성한 아름다움의 윤리입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나눔이 필요 없는 삶으로”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오늘 이 시간, 이 설교말씀의 제목을 깊이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축도
이제는 진리의 길을 직접 보여주신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우리의 생명과 영혼을 언제나 치유해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아름다운 동행이 사랑하는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언제나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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