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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대상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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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박성철 목사 |
참고 : | 성심샬롬교회 http://www.ss-shalom.com/ |
대상1장 1-4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박성철 목사 2011.01.25.
매주 주보 만드는데 - 문서사역으로 저를 도와주는 박성훈목자가 제게 문자를 보내왔다.
“목사님, 본문이 맞는 거죠? 이름만 나와서요.”
저도 이렇게 본문을 정한 것은 처음이다. / 저도 이 본문을 고르면서.... 얼마나 고민했겠나...
어떤 분들은 제가 본문 읽을 때 - 깜짝 놀라시는 것 같던데....
= 오늘 아담부터 노아까지 설교하나보다... 그렇지는 않다.
좀 넓고 길게 성경을 보고 싶어서였다.
- 등산을 하는 분들의 즐거움 중의 하나가 - 산 정상에서 멀리까지 보는 경치 아니겠나!
이제는 성도님들도 - 통찰력 있게 구약의 꿰뚫어보는 안목을 충분히 가질 수준이 되었다고 본다.
그러면 어렵진 않나?
= 어렵다기 보다는 / 성경을 많이 읽으시면 = 그만큼 더 재미있고 + 은혜가 넘친다.
이제는 저의 이런 <긴 안목의 설교>가 은혜스럽지 않다고 하시면 = 성경 안 읽으시는 게 된다. ^^;;
저는 이런 <긴 안목의 설교>일수록
= 그 설교시간이 짧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제 생각이 틀리지는 않았겠죠?
반면에 / 올해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좀 더 풍성하도고 깊이 있게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 이미 말씀드린 바 있다.
그래서 / 이제는 더 이상 억지로 음식을 먹이려고 하지 않으련다. / 알아서 맛있는 거 골라 잡숫고 = 알아서 영적인 건강 챙기시기 바란다.
[1] 어떤 분들은 역대기가 이렇게 시작하는지 모르는 분도 있다.
= 게다가 왜 역대기를 쓴 사람은 이렇게 썼을까? 그의 의도는 무엇일까?
또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이며
= 아담과 창세기 이야기를 할 것도 아니면서 이 본문을 고른 저의 의도는 뭔가? - 질문이 가능하다.
- 분명한 사실이 있다 = 성경은 그 시대에 따라 다른 관점으로 다르게 다시 봐야 한다는 거다.
진리가 변하는 게 아니라 / 그걸 깨닫게 되는 우리의 지식과 수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 역대기는 1) 주전 400년 경 =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 창세기부터 완전히 성경을 다시 보고 있다는 걸 우리에게 말해준다.
2) 하나님께서도 그런 관점에서 성경을 다시 쓰는 게 하나님의 뜻임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거다.
3) 따라서 오늘 우리는 = 이 시대의 관점에서 어떻게 성경을 봐야 하는지를 다시 고민해야 한다.
<히브리서 1:1-2> 는 그걸 아주 잘 설명해주고 있다. “..........”
오늘 우리가 구약을 볼 때에는 = 구약 시대나 예수님 이전의 신약 시대의 사람들처럼 보면 안 되는 이유가 이거다.
오늘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예언자들도 아니고 / 왕이나 제사장도 아니고 = 오직 <아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성경을 읽으면 - 어떻게 된다?
= 2% 부족.... + 심하면 이단... 3단... 된다.
오늘은 서론적으로 그 예를 간단히 말씀드리고 마치려고 한다.
[2] 1. 창세기의 첫 장면은 <하나님의 천지창조 이야기>이다.
= 믿는 우리에게는 너무도 소중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 오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 이 하나님의 창조가 무슨 의미를 주는가?
1) 학교에서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진화론이 맞나? 창조론이 맞나? 고민하게 만드는 거다.
2)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만물은 - 이미 많이 훼손되었고 = 그래서 이렇게 날씨도 엄청 춥고... 그렇다.
3) 어떤 분들은 힘들 때마다 하늘을 바라보고 힘을 얻으라고도 한다.
= 좋은 생각이기는 하지만 / 나중에 공해로 검은 하늘 되면 달라진다.
= 전도서에서 솔로몬은 = 이미 해 아래 새것이 없고 / 모든 만물이 피곤하게 보인다고 말한다.
바람은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면서 ... 열심히 불고 있는 게 얼마나 피곤할가?
태양은 하루도 빠짐없이 동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게 매일 반복되는데 얼마나 피곤할까?
강물은 계속 한 곳으로만 흘러서 바다로 다 모이게 되지만 - 채워지지 않으니 얼마나 피곤할까? ...
뭐 이러면서 다 피곤하다고 본다.
= 본인이 피곤하니까 그렇기도 하겠다 = 그런데 <해 아래 새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거 잘못하면
= 하나님은 세상을 참 피곤하게 만드셨구나... 이렇게 된다. / 아니다. 인간이 그렇게 보고 있는 거다.
= 히브리서는 <그 아들>을 통해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우리에게 가르친다. / 그 아들을 통하지 않으니까 허무하다.
그러니까 <창조> / <창조된 세상>
=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읽지 않으면 - 그 의미는 구약 수준으로 끝난다.
* 바울은 <고린도후서 5:17>에서 = 새 창조를 말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예수 안에서 <두 번째 창조 사역>이 일어난 거다.
== 그래서 예수님도 <사람이 거듭 나는 것=중생>이라고 말씀하신 거다.
= 그런데 - 예수님의 이 재창조의 사역이 이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 이 사역으로 말미암아 =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니까 창세기의 창조는 = 세상 끝 날에 있을 <새 하늘과 새 땅>까지 이어지는데 = 그건 <예수님의 중생 사역>을 거쳐야 한다!
# 하나님의 창조와 / 창조된 세상을 = 있는 그대로만 보는 사람은 = 그냥 <자연인 사람>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와 / 창조된 세상을 보면서 =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다.
기가 막히게 멋있는 자연 경관을 보면서 - 새 하늘과 새 땅은 얼마나 더 기가 막힐까를 생각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은 = 세상으로 만족하지 않고 / 그 안에서 교만하지 않는다.
파괴되고 훼손된 자연과 그로 인한 피해를 보면서 - 새 하늘과 새 땅은 완전히 반대가 될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은 = 세상에서의 고난에 좌절하지 않고 / 그 안에서 참 소망을 발견한다.
저는 이런 것들이 <축복의 사람>으로서의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의미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 하나님의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두 가지 같다. 하나 더 있다. = <축복의 사람> + <섬김의 사람>
이런 세상에서 - 나는 그냥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대하고 / 바라보고만 있는 게 아니라 = 그 안에서 내게 주어진 사명을 찾고 행하는 것!
그 <사명 감당>의 삶이 있어야 한다. = 그래야 <섬김의 사람>이 된다.
<섬김의 사람>으로서의 <하나님의 사람>의 삶이 없으면 늘 부족하다.
= 기독교는 행함과 삶의 종교이다.
= 그래야 삶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기도 하고 + 그 놀라운 은혜를 맛보기도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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