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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잠17: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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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617) 2015.5.18 |
복된 말을 위한 10계명 (잠언 17장 1-10절)
<
침묵의 힘 >
1992년 2월, 누님 친구 분의 소개로 아내와 플라자 호텔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저는 키가 작은 모습을
감추려고 먼저 가서 기다렸습니다. 얼마 후 아내가 왔습니다. 솔직히 외모가 맘에 들었고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키도 저보다
컸습니다. 그러나 긴 머리나 큰 키보다 말을 주도하는 스타일이 아닌 것이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침내 결혼에 이르렀고 결혼과
동시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30대 초반의 목사와 20대 후반의 사모가 아무 것도 없이 개척했으니 시행착오도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가장 힘든
일은 대략 1달에 한번 꼴로 찾아온 갈등상황이었습니다. 갈등이 원인은 돈 문제도 아니었고 시댁 문제도 아니었고 성격 차이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대부분 교회와 사역자와 교인 문제로 인해 생긴 갈등이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칭 40대 여자 전도사가 기도원에서 성령의 음성을
받았다면서 교회개척을 돕겠다고 찾아왔습니다. 전도사가 사례도 받지 않고 도와준다니까 너무 기뻤습니다. 그러나 곧 여러 뒷말을 하면서 사람들을
실망시켰습니다. 그러면 저도 속이 상했지만 사모는 더 속상하게 여겼습니다. 비록 사모가 되었지만 저는 직접 목회의 길을 결심했고 오랫동안
교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교회의 약점을 보아왔기에 교회문제로 받는 데미지가 적었지만 사모는 신실하게 믿은 지 얼마 안 된 상태였기에 교회문제로
받는 데미지가 컸습니다.
그때 교회문제로 아내가 속상함을 표시하면 조용히 아내의 감정을 받아주어야 했는데 조급한 마음으로 아내를
이해시키겠다고 말했습니다. “여보! 교회는 다 그래요. 사람은 다 부족하니까 저런 행동도 이해돼요. 이해합시다.” 그러면 아내의 이해의 폭이
넓혀지고 속상함이 풀릴 줄 알았지만 아내는 그 말 때문에 더 속상해했습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풀어준다면서 하는 “그가 이해돼요.
이해합시다.”란 말은 주의해서 써야 합니다. 그 말은 듣는 사람에게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히기보다는 “나는 이해되는데 당신은 이해도 못하고 그게
뭐요.”란 말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참된 이해란 “당신이 이해됩니다. 그가 이해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말이 없이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것입니다.
어느 가정에서 아들의 탈선으로 아내가 속상해할 때 남편이 그 마음을 풀어주겠다고 말합니다. “여보! 나도
옛날에 그랬어요. 나는 그 아이가 왜 그러는지 그 행동과 감정을 충분히 이해해요. 참으세요.” 그 고상하고 인격적인 말이 어떤 때는 위로가
되지만 어떤 때는 아내의 속을 더 뒤집어놓을 수 있습니다. 마치 아내는 아들에 대한 이해심이 부족해서 그렇게 속상해한다는 말로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이해심이 넓어지기보다 오히려 그렇게 고상하게 말하는 남편이 더 얄밉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예전에 어떤 야당
정치인은 논리도 그럴듯하고 맞는 말도 잘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야당 정치 선배들조차 그 맞는 말에 공감은 잘 못하고 버릇없게 생각하면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후배 야당 정치인이 그에게 지적했습니다. “선배! 선배는 옳은 말도 참 싸가지가 없게 하는 것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부부관계에서도 남편이 고상하게 옳은 말을 하는데 아내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그 고상한 말 때문에 더 속이
뒤집어질 때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해해!”란 고상한 말이 듣는 상대에게는 “나는 이해하는데 당신은 왜 이해를 못해!”란 얄미운 말로
들릴 수 있다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말해야 합니다.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니까 그런 고상한 말을 하고 난 후에 상대가 더 속상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것입니다.
뭔가 이해하는 것 같지만 더 깊은 이해를 못하면 인격적인 부부간에도 갈등과 말다툼이 의외로
지속될 때가 있습니다. 그처럼 갈등의 원인을 ‘자신의 깊은 이해력 부족’이 아닌 ‘단순한 성격차’로 돌리는 부부가 얼마나 많습니까? 옳은 말을
할 때는 듣는 상대에게 얄밉게 들리지 않도록 하는 사려 깊은 태도도 필요합니다. 자신은 옳은 말을 고상하게 했으니까 아무 잘못이 없다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결혼 초창기에 약 10개월 동안 가끔 그런 갈등이 생길 때 왜 목회자 부부에게 이런 갈등이 일어나야 하는지 갈등의
이유를 잘 모르겠기에 더 속상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저의 인격적인 말이 어떤 때는 아내의 속을 뒤집는 말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몰랐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교회문제로 아내가 속상해할 때마다 “왜 별일 아닌 것을 이렇게 속상하게 받아들이느냐?”고 하니까 문제가 더
커졌습니다. 사실상 그때 아내에게는 그 상황이 별일 아닌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다가 어느 때부터 부부갈등을 푸는
지혜가 생겼습니다. 아내가 속상한 감정에 빠지면 침묵하고 그냥 놔두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며칠 지나서 아내의 속상한 감정이 풀리면 그때 다시
대화를 합니다. 그러면 이해하라는 말은 없었지만 저절로 이해심은 조금씩 커지고 성숙해졌습니다. 그렇게 침묵하면 대개 3일 정도 되면 저절로
풀리는 체험을 하면서 침묵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깨달을 때가 많습니다.
갈등이 생기면 고상하고 인격적인 바른 말도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상대에게 “나는 이해가 돼!”란 말은 특히 주의하십시오. 이해가 되면 그냥 가만히 있으십시오. 말다툼이 생기면 잠깐
침묵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 이해를 못하느냐?”고 하는 말은 “나는 이해되는데 당신은 왜 이해하지 못하느냐?”는 말로 들릴 수 있습니다. 말을
많이 해야 갈등이 풀리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하는 좋은 말이 상대에게는 좋게 들려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까지 이해해야 합니다. 그처럼 말을
지혜롭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 복된 말을 위한 10계명 >
잠언에는 말의 중요성을
곳곳에 많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복된 삶은 복된 말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복된 말을 위해 성도가 지켜야 할 10계명이 있습니다.
1. 화목하게 말하십시오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행복은 물질과 소유에 있지 않고 사랑과 화목에 있습니다. 요새 많은 다툼이 돈 때문에 생깁니다. 돈도
중요하지만 화목은 더 중요합니다. 사람은 돈이 없다 보면 마음이 좁아질 가능성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돈 때문에
인색해지거나 다투는 인생이 되지 않도록 돈을 정당하게 잘 벌게 하소서! 저도 힘쓰겠습니다. 그러나 제 힘이 부족하오니 지혜와 창조성과 좋은
사람을 주소서.”
인생을 좌우하는 것은 부와 학벌이 아니고 관계와 사랑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행복이
꽃핍니다. 편안보다 평안이 중요합니다. 편안은 돈으로 얻을 수 있지만 평안은 화목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특히 가정과 교회의 화목은 행복의 제일
원천이고 내일을 위한 최선의 대책입니다. 그러므로 다툼이 없는 삶을 추구하되 가정과 교회에서는 더욱 다툼이나 말다툼이 없게
하십시오.
2. 슬기롭게 말하십시오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슬기로운 종은 부끄러운 짓을 하는 주인의 아들을
다스리겠고 또 형제들 중에서 유업을 나누어 얻으리라.” 주인의 슬기로운 종은 주인의 수치스러운 아들보다 더 주인의 마음을 얻어서 주인의 아들을
다스리기까지 하고 심지어 주인의 아들처럼 여겨져 주인의 유업을 나누어 얻는다고 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주인에게 충성했으면 주인이 아들처럼 여기고
더 나아가 아들보다 더 귀하게 여기겠습니까?
이 말씀은 자기 처지와 출신이 나빠도 얼마든지 복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강력한
도전이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순종과 충성으로 주인의 마음을 얻으면 됩니다. 종도 종 나름입니다. 순종하고 충성하는 종은 불순종하고
불충한 아들보다 더 귀하게 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신분과 출신과 처지로 인해 좌절하지 마십시오. 어디에 가든지 순종과 충성을 가지고 슬기롭게
말함으로 주인과 리더의 마음을 얻으면 수직상승의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다.
3. 세련되게 말하십시오
본문 3절 말씀을
보십시오.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도가니와 풀무는 고난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마음을 연단하고 성숙한 인생으로 빚어냅니다. 그런 연단된 인생은 대개 말도 성숙하고 세련되게 합니다. 평소에 말의 세련됨이 조금 부족한 것
같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평소에 말을 줄이고 용서와 감사가 넘치는 말을 많이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요셉은 십대 후반에
형들의 미움을 받아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그리고 고생 끝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총리가 된 후 자신을 팔아넘긴 형들을 만났을 때
말했습니다. “형님들! 저를 이곳으로 팔아넘긴 것으로 인해 너무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저를 이곳으로 보낸 분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얼마나 품격이 있고 세련된 말입니까? 세련된 말을 쓰면 돈이 없고 출신이 나빠도 사람 자체가 우습게 보이지 않습니다. 성도는 고난과 시련을
통해서 날이 잘 갈린 엣지(edge) 있는 세련된 언행을 가져야 합니다.
4. 말을 잘 들으십시오
본문 4절 말씀을
보십시오. “악을 행하는 자는 사악한 입술이 하는 말을 잘 듣고 거짓말을 하는 자는 악한 혀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느니라.”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은 깊은 연관성이 있습니다. 나쁜 말을 즐겨 들으면 나쁜 말을 하게 됩니다. 저는 믿지 않던 청소년기에 여러 일탈적인 행동을 하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오직 한 가지 부류만은 절대 친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친구에게 ‘새끼’라는 말을 하는 부류입니다. 아버님의 엄한
교육으로 욕은 저의 귀가 아예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귀도 잘 지켜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0절 말씀을 보면 사탄의 제일
특징은 ‘참소하는 것’입니다. 참소란 정죄적인 비난을 뜻합니다. 바른 비판은 필요하지만 비난은 주의해야 합니다. 특히 험담과 불평은 잘 분별해서
들어야 합니다. 입만큼 귀도 잘 지켜야 합니다. 험담과 비난과 불평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훔친 물건을 사는 장물아비의 행동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약점을 은근히 지적하고 깎아내리면서 자기 열등감을 표출하고 또한 ‘기도제목’이란 미명하에 남의 비밀을 소문내는 말을 할 때 자기 귀를
잘 지키십시오.
5. 조롱하지 마십시오
본문 5절 말씀을 보십시오.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할 자니라.” 가난한 자를 조롱하지 말라는 말은 사람을 물질 유무로 판단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가난한 자들을 짓밟고 조롱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그들을 지으신 하나님을 멸시하고 모욕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를 조롱하지 말라는
말은 부자는 조롱해도 좋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가난한 자가 흔히 조롱을 많이 받기에 앞에 ‘가난한 자’란 말을 붙인 것이지 그 말씀의
본질적인 의미는 사람을 조롱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또한 잠언 기자는 남의 재앙을 기뻐하면 자신도 형벌을 면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남의 재앙을 기뻐하지 마십시오. 아리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얼마나 솔직한
노래입니까? 목회를 하다 보면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발병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런 생각을 극복하고 그의
앞날에도 복이 있기를 원하는 것이 진짜 목회입니다. 그 떠남이 좋은 떠남이 될 수도 있고 나쁜 떠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결과든지 그것은
자기 선택으로 얻는 자기 분복일 뿐입니다.
6. 가족을 세워주십시오
본문 6절 말씀을 보십시오.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 이 말씀은 가정에서 세대를 초월해서 서로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특히 가정과 교회에서 선대와
당대와 후대의 3대가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처럼 아름답고 복된 모습은 없습니다. 가정과 교회에서 3대의 교류를 잃어버리는 것은 비극입니다.
반면에 3대가 하나님을 섬기며 화목하게 사는 가정과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을 받습니다.
부모나 자녀는 필요하다면
자기의 용기 있게 잘못을 고백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회개는 하나님관계를 회복시키고 고백은 인간관계를 회복시킵니다. 특히 자녀가 힘들어할 때
좋은 말을 많이 해주십시오. “아들아! 딸아!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너를 내 자녀로 주신 하나님께 정말로 감사한다.” 자녀가 바른 길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때로는 엄한 모습도 가져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녀가 힘들 때 자녀의 감정을 깊이 어루만져 주는 일도 잘해야 합니다.
7. 지나친 말을 삼가십시오
본문 7절 말씀을 보십시오. “지나친 말을 하는 것도 미련한 자에게 합당하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거짓말을 하는 것이 존귀한 자에게 합당하겠느냐.” 균형감각을 잃고 지나친 말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대화할 때 생각과 입장 차이가 크면
대화를 그치는 것이 좋습니다. 생각과 입장이 달라서 상대를 이해시키기 힘들면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당신과 대화할 때는 마치 벽하고 대화하는
것과 같아요.”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대개 더 벽일 때가 많습니다.
대화가 막힐 때는 그 문제로 더 대화하지 말고 조용히
자기를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낫습니다. 사람에게는 스스로의 침묵 시간도 필요하지만 관계상의 침묵 시간도 필요합니다. 침묵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침묵할 때는 미워하거나 한탄하며 침묵하지 마십시오. 냉철하게 되고 감정을 가라앉히고 자기를 성찰하고 상대를 이해하려고 침묵하십시오.
그처럼 늘 지나친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거짓말은 더욱 주의하십시오.
8. 좋은 말을 해주십시오
본문 8절 말씀을
보십시오. “뇌물은 그 임자가 보기에 보석 같은즉 그가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하게 하느니라.” 뇌물은 순수한 선물과는 달리 욕심을 채우려는 불의한
동기로 바치는 선물을 뜻합니다. 그런 악한 뇌물조차도 그릇된 형통함을 줍니다. 하물며 순수한 선물과 헌물은 얼마나 더욱 형통함을
주겠습니까?
선물을 많이 주십시오. 물건이 아닌 좋은 말도 최상의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같을 좋은 말이라도 딱 들어보면 그
말이 ‘뇌물의 말’인지 아니면 ‘선물의 말’인지 쉽게 구분됩니다. 좋은 선물의 말을 많이 해주십시오. 의도성 뇌물의 말도 형통함을 주거든 순수한
선물의 말은 얼마나 더욱 형통함을 주겠습니까? 게다가 눈물까지 배인 따뜻한 선물의 말을 많이 해주면 신비한 역사를 통해 어디선가 형통한 길이
반드시 열릴 것입니다.
9. 이간질하지 마십시오
본문 9절 말씀을 보십시오.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사랑이란 허물을 덮어주고 좋은 면을 보는 것입니다. 사랑은 좋아함이나 낭만적인
느낌이 아닙니다. 사랑은 실천이고 선한 변화와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는 능력입니다. 그것을 위해 장점을 많이 보고 약점을 힘써 덮어주십시오. 특히
가족과 교우와 친구는 서로의 허물을 더욱 덮어주려고 해야 합니다.
공동체가 어려워지는 것을 보면 대개 뒤에서 이간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열등감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열등감을 극복하며 사는 것입니다. 땀과 노력과 자기 성찰로 열등감을 극복해나가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그러나 가끔 보면 뒤에서 이간질하면서 자신을 높임으로 열등감을 감추려다가 오히려 열등감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이
습관화된 사람은 자기 영혼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최대한 멀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은 이간질을 좋아하는 사람이 반성할 기회를 제공하는 일종의
사랑의 행위입니다.
10. 말을 적게 하십시오
본문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한 마디 말로 총명한 자에게 충고하는
것이 매 백 대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박히느니라.” 들을 귀를 가진 총명한 사람에게 한 마디 말을 하는 것이 매 백 대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 변화를 일으키고 더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격려하라는 말이 그에게 훈계나 충고를 하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필요하면 때에 맞게 적합하게 훈계도 하고 충고도 해야 합니다.
충고할 때는 많은 말이 필요 없습니다. 많은 말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충고를 가급적 삼가십시오. 그런 사람에게는 말을 많이 할수록 초라함과 비천함과 어둠만 확대됩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침묵하십시오.
때가 되면 통할 때가 옵니다. 그때가 되면 한 마디 말만 해도 두 마디를 알아듣고 순종하고 실천합니다. 억지 교훈은 오히려 역효과만 낳습니다.
미련한 자는 매 백 대로도 돌이키지 않지만 총명한 자는 말 한 마디로도 돌이킵니다. 그처럼 한 마디 말로도 움직이는 총명한 자에게 희망을 걸고
꿈과 비전을 향해 나가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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