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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소경을 치유하신 예수님

마태복음 이승남............... 조회 수 713 추천 수 0 2015.07.30 19: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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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9:27-34 
설교자 : 이승남 목사 
참고 : http://koreacts.com 

두 소경을 치유하신 예수님

마 9:27-34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항상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헬라 철학에서도 인간을 '안드로포스'라 하여 '위를 바라보는 존재'라 했습니다.


세상에서 행복한 사람은 자기 곁에 좋은 멘토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진정한 멘토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이 우리 안에 오시면 우리의 삶에 변화가 오고 기적이 옵니다.

 
여러분, 우리의 두 눈이 밝은 것에 대해 감사해 본 일이 있습니까? 나이지리아 속담에 '외눈박이는 소경을 만났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두 눈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영국 속담에는 '눈은 얼굴의 진주'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흔히 '눈이 보배다'라는 말을 합니다. 독일의 괴테는 '눈으로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기쁨이 나의 최고의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두 소경을 알아봅시다(27).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가실 새' 거기가 어디입니까? 회당장 야이로의 집입니다.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의 외동딸을 살리신 후 그 집을 떠나 다시 가버나움으로 행하고 계십니다.


이때 '두 소경'이 따라옵니다. 예수님 당시 지중해 지방에는 특유의 기후와 햇빛 그리고 석회석 먼지 때문에 소경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소경들은 혼자 다닐 수 없었기에 짝을 지어 다녔습니다. 그들의 생계유지 수단은 구걸입니다.

사람이 두 눈을 똑똑히 뜨고 살아도 문제가 이렇게 많은데 두 소경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겠습니까? 이 소경은 나면서 소경이 되었는지 도중에 실명이 되었는지 성경에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어째든 앞을 못 본다는 것은 남에게 무시당할 수밖에 없고 천한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눈에는 모든 사물을 볼 수 있는 육안이 있고, 만사의 이치를 보는 지안이 있고,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영안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육안은 열려 있는데 지안이 닫혀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육안, 지안 다 열려 있을 때, 영안이 닫혀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소경들이 제일 싫어하는 단어가 소경이라는 말이랍니다. 소경이란 말은 굉장히 경멸조의 말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맹인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세 가지 맹인이 있습니다.

육신적인 맹인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우주 만물을 그 아름다운을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문맹이 있습니다. 문화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에서 맹인을 말합니다. 글자를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요즘 컴맹하나가 또 붙습니다.


이들보다 더 불행한 맹인이 있는데 바로 영적인 맹인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우주만물을 보면서도 하나님은 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눈 중에는 차라리 없어야 할 눈도 있습니다. 흘기는 눈, 노려보는 눈, 교만한 눈(시18:27), 시기의 눈, 멸시의 눈, 물욕에 어두워진 발람의 눈(민22:31), 범죄 하는 눈(마5:29), 형제의 눈에 티만 보는 눈(마7:3) 등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눈을 빼어 버리고 한눈만 가지고 천국에 가는 것이 축복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27절은 두 소경의 믿음을 잘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믿음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아무나 하나님을 만날 수는 없습니다. 아무나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믿음을 가진 자라야 믿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믿음은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믿음은 내가 가져야 합니다. 내 아내가 예수 믿는다고 남편인 나도 저절로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믿음은 내가 가져야 되는 것이고 내가 확신해야 됩니다.


두 소경의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인내의 신앙입니다. '두 소경이 따라오며' 예수님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따라온 것입니다.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라고 판단하고 죽기 살기로 따라갔습니다. 따라갔다는 것은 인내요, 결단입니다. 신앙은 인내입니다. 결단입니다. 인내 없이 결단 없이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이 두 소경이 예수님의 소문을 잘 들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신 그 예수님을 유연히 길에서 만났는데 이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결심으로 따랐습니다. 사람들에게 오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기회를 잘 붙잡는 것도 축복입니다. 기도하는 신앙입니다. '소리 질러 가로되' 기도를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서 소리를 질렀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조용히 하는 기도보다는 대게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기도에 귀가 번쩍 뜨이십니다. 렘33:3절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여기 '부르짖는다'는 말은, '땀을 짜며 피를 짜며 생명을 짜며 부르짖는 기도'를 의미합니다.


이런 기도를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서 했습니다. 그의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극렬히 타는 풀무불 속에 들어가면서도 이런 절규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본문의 배경을 보면 두 소경이 연합하여 기도한 것입니다. 한 사람이 천을 쫓고 두 사람이 만을 쫓습니다. 주님은 두 세 사람이 모여 합심하여 기도하면 역사가 나타납니다. 마18:19절에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그들은 바른 신앙의 고백을 드렸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신앙고백입니다. 이 소경들은 '다윗의 자손'이라고 소리지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눈뜨기 위해서 소리지르고 있는 일차적인 소원이 있지만, 자기들의 눈을 뜨게 해줄 수 있는 다윗의 자손 메시아가 오신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에게서 온다고 했습니다. 두 소경은 구약의 예언자들이 예언한 메시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예언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야이십니다. 당신은 만 왕의 왕이십니다.' 이런 고백이 '다윗의 자손이여!' 속에 들어 있습니다. 신앙은 바른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소경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간절히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은 무궁무진합니다.

두 소경의 애원은 여기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했습니다. 지금 둘이 합력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 한번 마18:19절을 보세요!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두 소경의 기도는 간추려 보면 이들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부르짖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기회를 놓치면 끝장이라는 마음으로 절규하고 있습니다. 고후6:2절에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지금 주님은 끈질기게 간구하며 따라다니는 소경들의 믿음을 테스트하십니다. 예수님은 어떤 경우에는 즉시 들어 주시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사람들 앞에 장애물을 놓으시기도 하십니다. 믿음을 시험하기 위함입니다.


백부장이 자신의 하인이 중풍병으로 누워 있을 때 고쳐달라고 애원하자 주께서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마8:7)고 선뜻 은혜를 베푸시는 예가 있는가 하면, 주님은 때로 의도적으로 무관심의 장애물을 놓으시기도 하십니다.

마15장에 나오는 수로보니게 여인에게는 무시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귀신 들린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께로 수로보니게 여인이 와서 소리를 지릅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렸나이다.'라고 말하자, 예수님은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와서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라고 하자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여인이 예수께 절까지 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하자 이번에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이 차별입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때 그렇게도 냉정하고 그렇게도 무정하신 주님의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하시며 그 딸을 고쳐 주셨습니다.우리가 기도할 때도 하나님은 침묵을 지키실 때가 많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들의 신앙은 시험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열심을 시험해 보셨고, 그들의 인내를 시험해 보신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들에게 시험해 보십니다.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아들을 위해 무려 15년이나 기도했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은 반응을 보이십니다.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줄을 믿느냐?' 지금 무엇을 물으십니까? 그들의 고향이나 학벌이나 재산을 물으신 것입니다. 아닙니다. 우리에게 향하신 가장 크신 관심은 '주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 부르짖는 기도는 응답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것도 요구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단 한 가지 보시는 것은 그 마음 중심에 믿음을 보십니다. '과연 내가 너희 눈을 고칠 수 있는 것으로 믿느냐?' 그 사람들에게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병을 고쳐 주시는 그 능력은 믿음을 통해서 옵니다. 성도에게는 믿음과 기도라는 두 날개가 꼭 필요합니다. 이 두 날개를 통해서 기적은 일어납니다. 두 소경의 대답은 '주여! 그러하오이다.' 이 말은 '네 믿습니다. 아멘!'이라는 고백입니다. 주님은 성도의 신앙을 항상 확인하십니다.


예수님은 '너희 믿음대로 되라'고 선언하십니다(29).

주님께서 말씀으로만 눈을 뜨라고 명하셔도 되는데 주님은 이들의 눈을 만져주셨습니다.

주님의 손은 창조의 손, 구원의 손, 능력의 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이 만져주신 것은 치료의 방법으로보다는 그들을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만져 주셨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너희 믿음대로 되라' 우리가 늘 말하는 믿음은 근본적으로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구원받는 믿음과 또 하나는 하나님의 도움을 입는 믿음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사건을 믿을 때 믿음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크기로 나눈다면 작은 믿음과 큰 믿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작은 믿음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소극적인 믿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큰 믿음은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를 믿고 부르짖고 믿는 만큼 순종하는 마음으로 도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누구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세상에는 믿어야 할 일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지 못하는 것은 하나의 불행이요, 질병입니다. 정말 좋은 약이 있어도 믿지 못하는 것, 정말 좋은 기회가 왔는데도 믿지 못하는 것. 그것은 질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어진다는 것은 얼마나 복입니까? 모든 것은 믿음의 역사입니다. 큰 믿음은 큰 역사가 나타납니다. 작은 믿음은 작은 역사를 일으킵니다. 그러나 아무 믿음이 없는 사람은 아무 역사를 일으키지 못합니다. 히11: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또 막9:23절에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치유하신 눈 주님이 '삼가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30).

'그 눈이 밝아진지라' 소경이 눈을 떴습니다. 한 사람만 뜬 것이 아니고 두 사람 다 떴습니다. 여러분 기적이 무엇입니까? 소경이 눈을 뜬 것이 기적입니다. 능력과 기적의 크기는 믿음의 크기입니다. 두 소경은 믿음의 크기대로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소경이 눈이 밝아졌습니다. 제 2의 탄생, 새로운 삶이 왔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영적으로 소경 같은 삶을 살아왔습니다. 세상 적인 것은 잘 보고 살아왔으나 영적인 것은 볼 수 없는 죄는 열심히 보았으나 거룩은 보지 못했고, 사람들은 많이 만나고 보았으나 예수님을 보지 못했던 소경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 소경처럼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기적입니다. 예수님은 '이 일은 삼가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의 본질은 구원에 있는 것이지 어떤 능력은 나타내어 과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은 조용히 그들을 보내주었습니다. 주님은 겸손하십니다. 마6:3절에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신 말씀을 실천하셨습니다.

'삼가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라' 왜 예수께서 소경들의 눈은 띄워 주시고는 이 말씀을 하시는가?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눈 뜬 소경들의 신변을 보호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요9장에도 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눈을 뜬 사건이 나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 친구가 나가서 예수가 눈 띄워준 것을 전파하다가 유대인들에게 붙잡혀서 그 가족과 함께 출교를 당한 사건이 나옵니다. 출교는 어마어마한 형벌입니다. 이렇게 눈을 뜬 소경들이 유대인들에게 불이익을 당할 것을 주께서 아시기 때문에 '삼가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삼가 아무에게나 가서 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들은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온 땅에 전파'했습니다. 그것도 '온 땅에' 전파했다고 했습니다. 여기 '온 땅에'라는 말은 '가는 곳마다'라는 뜻입니다. 한 곳에서만이 아니라 가는 곳마다 그 일을 말했고 한 번만이 아니라 계속해서 예수의 그 능력을 전파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의 은혜에 너무나 감격해서 복을을 전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견딜 수가 없어서입니다. 우리들에게도 이런 은혜가 넘쳐나야 됩니다. 이 소경들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들에게 일어났던 기적, 저희 믿음대로 이루어졌던 그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자기들에게 입혀졌던 그 은혜는 자기들이 시력을 찾고 팔자를 고치는 데에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들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도록 성령이 그들을 몰아낸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과 함께 이들은 목숨을 걸고 예수의 소문을 전파했던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소원 성취가 목적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소경의 두 눈을 고쳐주시는 안과의사로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메시야로 오셨습니다. 메시야로 오셨다는 것은 영생의 문제를 위해서 오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육신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생을 해결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메시야입니다. 그 메시야를 알기 때문에 메시야를 만난 이들은 눈뜨고 거기에 머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믿음이 그 자리까지 나아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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