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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니라.

마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318 추천 수 0 2015.08.05 12: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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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3:1-6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3장 1절-6절: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편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엿보거늘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 일어서라 하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저희가 잠잠하거늘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것을 주는 손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것을 받을 줄 모르면 하나님의 것을 줄줄도 모르는 거다.


우리 인간은 손이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손이 있고 하나님의 것을 주는 손이 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 중에 그런 손이 없는 자가 많이 있다. 이 자는 손이 마른 사람이다.


그러면 손 마른 사람이 보기가 좋겠느냐, 보기가 나쁘겠느냐? 왜 여기 손 마른 사람이라고 표현을 하느냐 하면 손 마른 사람은 눈으로 보면 보기가 흉하니까 영적 면으로 그걸 느끼라 그 말이다. 그걸 못 느끼면 하나님의 성품과 인격의 사람으로서 문제가 있다 이렇게 보는 거다.


우리가 일반적으로도 보면 예수 안 믿는 사람도 부모로부터 가르침을 받지 못해서 그 다음의 자녀들에게 못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일반적으로도 육신적으로 봤을 때도 좋은 것은 부지런히 배워서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가르쳐야 한다. 사람이 그래야 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좋은 것을 봐도 자기가 배울 줄도 모르고, 다른 사람이 모르는 것을 봤을 때 ‘얼마나 답답할까’ 하고 가르쳐 줄줄도 모르고 있다면 그거 사람이 쓰겠느냐?


일반적으로 볼 때도 충분히 배우고 충분하게 가르치고 하면 그 사람은 기쁘고 살맛이 난다. 그런데 배우지도 못하고 가르치지도 못하면 무슨 살맛이 날까? 그래서는 안 된다.


육신적으로 봤을 때도 옳은 것을 충만히 배우고 다른 사람에게 충만히 알게 해주면 그 얼마나 풍부하냐? 영적인 면에서 보면 하나님의 것을 여러 각도로 보고 듣고 느끼고, 느낌도 여러 가지다. 그렇게 충만히 돼서 또 하나님 것을 다음 세대에게 가르쳐주고 느끼게 해야 사람이 사는 재미가 있다.


어쨌든 그런 건설적인 생각을 가져야지 쓸데없는 것을 많이 듣고 가지면 쓸데없는 그것이 자기 속에 들어있으니 벌어진 입이라고 계속 쓸데없는 짓만 하고 사람들 싸움을 붙이고 덕도 안 되는 일만 하게 된다. 그러니 쓸데없는 것을 많이 아는 것은 아는 것 같으나 헛 아는 거고, 헛 나이 먹은 거고, 헛 인생을 사는 거다. 그거 안 된다. 하나님의 것으로 풍만히 되는 것이 좋다. 하나님의 것으로 부요하게 되는 게 좋다.


바리새교인들은 예수님을 송사하려고 마귀 짓을 하고 있다. 마귀 짓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 고칠 생각을 못한다. 바꿔 말하면 자기 고칠 생각을 안 하는 사람들은 마귀 짓을 한다. 마귀 짓을 하는 사람은 안 고치려고 한다. 그게 마귀다. 고칠 마음도 없으니 남 헐뜯는 것만 한다. 남 헐뜯는 사람은 자기를 못 고친다. 영적인 뜻을 모르면 예수님의 말씀의 뜻도 모른다.


선을 행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선이시다. 따라서 우리 인간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을 입히는 것이 하나님의 선한 일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선을 입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종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을 즉, 하나님의 성품을 입힌다. 신실한 종들은 입히는 그 일에 수종을 든다. 그게 하나님의 종들이다. 그런데 세상을 자랑하는 것은 세상욕심을 품도록 하는 것이니 이건 선한 일이 아니다.


남을 도와주기 전에 하나님의 것으로부터 네가 도움을 받아라. 하나님의 성품을 입는 것이 하나님의 선을 입는 거다. 그 다음에 그 사람은 하나님의 선한 도덕성이 들어갔으니 그가 손발을 움직이면 하나님의 것으로 나온다. 선이 나간다.


하나님은 당신의 신실한 종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입히는 일을 하신다. 그 하나님의 성품을 입으니 만큼 내가 하나님의 선을 나타낼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러니까 선한 사람이 된다. 이건 일반적으로 돈 주고 밥 주고 먹이고 입히고 하는 의미와는 다르다. 물론 하나님의 선한 성품을 속성적으로 입으면 그 다음에 눈에 보이는 면에서 성도들 중에 도울 자가 있으면 돕게 되는 거다.


우리 인간 모두는 날 때부터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나오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시는 하나님과 똑같은 질을 가진 하나님의 선의 사람은 아니다. 아담 타락 이후로 온 인류는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죽었다. 생명과를 먹었으면 하나님과 연결이 될 텐데 선악과를 먹은 고로 영적인 면에서 하나님과 끊어졌다.


영적 면이라야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건데 영적 면의 지식도 모르고 도덕성도 모르고 하나님의 성품도 없고 하니까 보암직 먹음직 탐스러운 눈에 보이는 것으로 자기 속에 가득 들어있다. 이건 하나님의 선이 아니다.


아무리 세상은 강대국이라고 해도 눈에 보이는 것을 많이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거나 빼앗거나 그렇게 들어가 있다. 하지만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않고 무기가 있는 것이나 먹을 것이나 석유가 있는 것을 자기 힘으로 삼고 살면 이건 하나님 앞에 죄다. 알고 보면 온 지구 땅덩어리는 에베레스트 산이고 석유고 뭐든지 다 하나님 것이다. 그걸 자기가 가짐으로서 죽을 수도 있다.


자기 것은 하나도 없는데, 죽을 때 다 버리고 가는데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속성적 성품 인격 지혜지식성 선 사랑 거룩 진실을 내가 덧입는 거다. 인간에게도 지혜지식도 있고 선 사랑 거룩 진실도 있다. 그런데 그것은 인간세계에서 말하는 거다. 그리고 인간세계에서는 자기에게 그게 있으면 써먹고 없으면 못 써먹는 거다.


그런데 이것은 선악과를 따먹은 데서 나온 것인 고로 그 질이 타락되고 저주받은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하늘나라로 신령한 곳으로 가지고 갈 수가 없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늘로 올라올 자가 없다’ 하는 것은 예수님의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니 인간 내가 그 예수님의 성품을 가지면 그것은 천국에 가지고 갈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 하는 것은 내가 예수님의 그 교훈을 받으면 나에게는 하나님의 지혜지식성과 도덕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것을 영적인 면으로 보면 나에게 없던 것이 생기는 것이니 이것도 새로운 것으로서 창조다. 영적인 면에서 신령한 것으로서 창조다. 예수 믿는 건 이게 들어있다.


그런데 거짓과 이단자, 혹은 교계에서 이단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예수를 믿으면서도 그런 면을 전혀 모른 채 예수를 믿는 자들이 많다. 그러니까 ‘부자 되자. 병 낫자’ 맨 이런 식으로 치닫고 있는 거다. 그러니 안 믿는 사람이 형벌을 받는 거나, 예수 믿는 자가 그렇게 믿다가 형벌을 받는 거나 다른 게 뭐냐? 믿는 가치가 뭐냐 그 말이다.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살리심은 하나님 것을 그대로 받게 하려는 것이다. 영이 죽은 것을 예수님의 구속으로 살렸으니 우리의 영은 질적으로 하나님의 속성과 똑같이 깨끗하게 거룩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질과 똑같다. 이게 기초가 돼서 교훈을 받는 면에서 진리생명의 이치의, 신적인 도덕성의, 하나님의 생명성의 교훈 받을 때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것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임시적이고 시간이 가면 변질되고 없어지는 우리의 소원 목적은 내 속에서 빠지고 하나님의 소원 목적으로 채워지게 되는 것이니, 이렇게 된 사람이 움직일 때는 하나님과 같이 움직이는 자가 된다. 그의 속에는 성령님이 계신다.


성령님이 자기 속에 거하게 하려면 세상 소원 목적은 썩을 것 불탈 것이니 이런 건 다 내버리고 불타지 않는 하나님의 것으로 채우면 되는데, 이처럼 자기 속에 신령한 것이 들어있으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신이 거하는 거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자기 속에 하나님과 같이 동행 동사 동식 동숙하려면 자기 속에 하나님 것으로 넣어야 한다. 우리 속에 그 욕심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자기 몸속에서도 이적과 기사가 일어나게 된다. 일반세상은 이걸 볼 수가 없다.


우리가 이왕 예수 믿는 거 하나님께서 자기 속에서 역사하도록 믿어야지. ‘은혜 위에 은혜로라’ 하는 그 믿음의 질로 들어가는 신앙이 돼야지. 그런데 일반적으로 보면 죽어라 예수 믿고 죽어라 충성봉사를 하지만 나중에 예수님께서 ‘난 너를 모르겠다. 어두운 밖에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할 소리를 듣도록 믿어서야 되겠느냐? 이게 안 믿는 사람에게 한 말이 아니라 우리 믿는 사람에게 하신 말씀이다.


말하자면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종들이고, 하나님의 일을 주고받으면서 서로가 구원을 위해서 수종 드는 하나님의 선한 일꾼들이고, 그 일을 충성스레 하는 일꾼들이다. 우리 모두가 충성스런 하나님의 일꾼이지 목사만 하나님의 일꾼이 아니다. 목사는 교훈으로 제시만 하고 그 사람의 생각의 방향을 돌려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평신도 자기도 하나님의 일꾼이다.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신실한 일꾼이 되려면 하나님의 속성적인 성품화 인격화가 많이 돼라. 그렇게 된다고 해도 세상에서 밥 못 먹고 거지되라는 법은 없다. 머리가 된다.


미국사람들은 대통령도 성경을 놓고 취임선서를 한다.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스리겠습니다’ 이게 들어있다. 6. 25 때도 보면 맥아더 장군도 예수 믿는 사람인데 믿는 사람으로서 전쟁이 나니 그냥 볼 수가 없다. 적의 손에 넘어가면 다 죽는 거다. 그래서 기꺼이 전쟁에 참여한 것이다. 그게 전쟁영웅이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이 우리교회에 많이 왔으면 좋겠다.


군대에서 장군이 되려면 지혜가 있어야 한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부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으로 깃들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전쟁에도 지혜가 나오고 그러는 거다. 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사물이나 짐승의 생태계를 유심히 보는 거다. 그 안에 전쟁수법이 다 들어있다.


영적 전쟁에는 세상의 전쟁보다 사람이 더 지혜롭고 영특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이 기어서 어디로 돌아다니는지를 어느 정도 감을 잡고 있어야 한다. 그런 걸 보고 염려도 하고 걱정도 하고 기도도 하는 거지 단순히 잘 살고 못 살고 하는 것을 보고 기도하는 게 아니다. ‘그 사람의 중심이 어디로 움직이고 있나’ 하는 이걸 보고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의 일반상식을 지혜롭게 가지라는 것이다. 이건 안 믿는 사람이 갖는 일반상식과는 다르다. 질도 다르고 차원도 다르다.


하나님의 성품을 입히는 일을 하는 것이 선이냐, 악이냐? 선인데 이것을 못하게 방해하는 것과, 방해만이 아니라 이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악을 행하는 것이다. 방해하는 것은 악을 행하는 것이고, 하지 않고 가만있다면 이건 악을 행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 죽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이는 것을 가만 보고만 있다면 그건 악한 사람이냐, 선한 사람이냐? 악한 사람이다.


‘생명을 구하는 것’이란 말씀의 뜻은 하나님의 성품이 입어지도록 영적 지혜지식성으로 영적 도덕성으로 영적 능력성으로 살아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영적’이라 할 때는 하나님의 것을 말하는 거다.


이 일은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건데 이 일에 협조 동참도 없고, 자기는 이 일을 하지도 않으면서 남이 하는 것을 방해하고 파괴하고 즉, 신앙을 세상 쪽으로 갖게 하는 것, 다시 말하면 세상 소원 목적적으로 신앙을 갖게 하는 것 전부는 영적인 면에서 죽이는 거다.


예수님은 영적으로 살리는 일을 했으니 우리도 그 살리는 일을 해야 옳은 건데 많은 교회들은 세상눈에 보이는 일을 목적적으로 하고 있으니 성도들이 영적인 면에서 죽어버린다. 영적인 면을 살리면 육적인 면이 사는 면에서 지혜가 나가고 관계성이 이뤄지는 건데 예수 믿는 목적이 눈에 보이는 것으로 들어있으니 영적인 면은 죽는다. 마귀가 그런 짓을 한다.


저희가 예수님의 물음에 잠잠하게 된 것은 자신들이 양심적으로 찔렸으니 이렇게 말해도 틀리고 저렇게 말해도 틀리고, 이렇게 말을 해도 걸려들고 저렇게 말을 해도 걸려들고 하니까 잠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묻는 말에 정답을 제시해야 되는 건데 잠잠하면 잠잠한 그게 정답이 되는 거냐? 시험을 볼 때는 그 원칙이 정답을 쓰는 거다. 그런데 정답을 쓴 것은 맞힌 것이고, 답을 몰라서 정답을 안 쓰면 틀린 거고, 알면서도 정답을 안 쓰면 정답이냐? 썼어도 틀리면 틀린 거고, 알면서도 정답을 안 쓴 것도 틀린 거다.


그런데 그럴 경우 누가 더 정직한 것이냐? 엉터리 답을 쓴 사람이 정직한 거냐, 답은 아는데 정답을 안 쓰고 하얀 종이로 낸 사람이 정직한 거냐? 그것도 볼 줄 알아야 한다. 정답을 몰라서 안 쓴 사람이 더 정직한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는 안다고 썼는데도 틀리는 경우도 있는데, 이 사람보다도 어찌 보면 몰라서 안 쓴 사람이 더 솔직하다. 이걸 좀 과대적으로 생각을 해보면 ‘엉터리로 답을 쓴 사람은 아무 데나 가서도 엉뚱한 짓을 많이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답을 몰라서 안 쓴 사람은 정직한 그대로 ‘나는 모릅니다’ 한 것이니 어떻게 보면 좀 미련한 데가 있겠지만, 융통성은 없겠으나 솔직한 데도 있다. 남을 속여먹거나 하는 일은 별로 없을 듯하다. 다 그렇다는 게 아니라 생각이 그렇게 느껴진다.


바리새인들의 말대로라면 안식일 날을 고집하면 사람이 죽고, 사람을 살리려니 안식일 날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사람이 죽는다. 안식일 날인데 우물에 개가 빠졌다면 그걸 안식일 날 살려내면 안식일을 안 지키는 것이 되고, 그대로 두면 개가 죽는다. 개를 살리려니 안식일을 제대로 못 지키게 된다. 바리새인들의 말이 그렇다.


그러면 누가 안식일의 주인이냐?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시다. 안식일의 주인이 있는 것은 사람을 위해 있다는 것을 말해주기 위해서이다. 안식일을 만드신 분이 누구냐? 주님이시다. 바리새인들은 그 주님이 안식일 날 무슨 일을 하는지를 모르고 날짜만 가지고 ‘주일이다. 예수 살아난 날이다, 아니다. 안식일은 창조 때부터 있었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 말 할 것 없다.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님이라고 당신이 직접 말씀을 했으니까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말씀만 들으면 된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한 그 자가 안식일을 지켰는지 안 지켰는지를 누가 더 잘 아느냐? 주님이 더 잘 아신다. 그러니까 인간 자기들끼리 날짜가지고 씨름하지 말아라. 따라서 결과적으로 이 바리새교인들은 안식일을 철저히 지켰다고는 하지만 안식일이 주인이신 주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악을 행한 것이고 죽이는 일을 한 셈이 된다.


5절: 그들은 양심에 찔리고 있는데도 시인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얼마나 악한 자들이냐?


‘네 손을 내밀라. 내밀매 회복이 되었더라.’ 이 말씀을 이치대로 보면 그 사람이 손을 내밀지 않아서 말랐다는 말도 된다. 사람은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데, 받았으면 건네주기도 하고 건네받았으면 또 건네주기도 해야 하는 건데 주고받는 게 없다면 그 사람은 관계성적인 면에서 손이 말랐다. 손이 마르면 보기가 흉하다. 그런 마음 정신이 보기가 흉하다.


지금은 아파트라도 이웃사람들끼리 왔다 갔다 하지를 않는다. 그러나 시골은 이웃끼리 맛있는 거 하면 담 넘어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그 얼마나 재미가 있느냐? 그런데 분명히 저 집에서 불고기를 굽는지 냄새가 솔솔 나는데 그 집은 남이 주는 것만 받아먹고 도무지 남에게 줄 줄을 모른다면 동네사람들이 그 사람을 생각할 때 마음이 좋아보이겠느냐, 나쁘게 보이겠느냐?


사람은 관계성이 없으면 안 된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끼리 관계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과 왜 그렇게 관계가 좋으냐? 그 참 이상한 일이다. 전도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은 필시는 믿지 않는 그런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믿지 않는 요소가 많다.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의 것을 주지 못하고, 이런 사람은 영적인 손은 마를 수밖에 없다. 설령 물질이 풍부할지라도 이 물질을 진리생명의 운동에 활용을 못하고 있는 것은 손이 말랐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따지고 보면 이 마른 손은 바리새교인들의 손이기도 하다. 영적인 면에서 보면 바리새인들의 손과 같구나.


6절: 이렇게 악할 수가 있을까? 여기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 그것만 생각하면 안 된다. 다양한 방법으로 생각을 해야 한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사역을 헛되게 만드는 것도 예수 죽이는 것, 예수님의 공력을 헛되게 만드는 것도 예수 죽이는 것, 예수님의 수고를 헛되게 만드는 것도 예수 죽이는 것, 예수님의 존자가치를 무효화시키는 것도 예수 죽이는 것, 교인들을 세상 정신을 갖게 하는 것도 예수 죽이는 거다. 질이 그렇게 들어가는 거다. 집을 잘 지어놓은 것을 불태워 버리면 그 집을 지은 사람의 수고와 노력과 시간과 물질투자 전부를 망하게 하는 것이다. 무효화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게 하면서 예수님께서 원하는 그 믿음을 못 갖게 하려면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게 하면 된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육체로 와서 이룰구원을 이루는 그 일을 하셨는데 그 면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교인들로 하여금 세상 쪽으로 나가게 하면 이룰구원은 없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우리의 이룰구원을 위해 사신 그 삶이 통째로 날아가는 것과 같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의 신앙 믿음 면에서 이룰구원 면에서 손해가 안 가도록 말씀의 지혜지식을 가지고 사사건건이 잘 살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이 영특하고 총명해서 믿음에 손해를 안 보도록 영의 눈을 가지고 지혜를 쓰고 해야지 안 믿는 사람처럼 뭐가 그렇게 바쁜 거냐? 어떤 사람은 너무 바빠서 죽을 시간도 없단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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