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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11: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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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허태수 목사 |
참고 : | 2015.5.22 주일예배 http://sungamch.net 춘천성암교회 |
세상을 지배하는 의식과 질서를 거부하라!
눅11:52
몇 해 전 겨울에 거창고등학교의 신앙수련회에 강사로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학생들 전원이 참여하는 2박 3일 집회였습니다. 거창고등학교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분이 알고 계시지만, 실내 체육관에 걸렸던 ‘취업 10훈’이라는 걸 소개하면서 오늘 설교를 시작하겠습니다. 취업 10훈이란, 학생들이 졸업을 하고 직업을 선택할 때 이런저런 직업은 피하고 저런이런 직업은 꼭 선택하라는 일종의 계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것을 택하라
3. 승진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4.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5. 앞 다투어 모여드는 곳에는 절대로 가지 말고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6.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7.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은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으니 의심하지 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거창 중학교 교장선생님 방엘 들어갔는데 교장실엔 아무런 집기도 없이 달랑 책상 하나가 있고 그 옆에 누룽지를 찍어내는 기계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식당에서 남은 밥을 교장 선생님이 가져다가 누룽지를 만들어 주머니에 넣고 다니시다가 아이들에게 나눠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저 ‘취업 10훈’을 볼 때, 그리고 교장실에서 누룽지나 만들고 계신 선생님에게서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저는 거창학원의 교육가치 즉 학생들로 하여금 [세상을 지배하는 의식과 질서를 거부하라!]고 가르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거창고등학교, 중학교, 샛별 초등학교에서의 참 교육이란 ‘세상을 지배하는 의식과 질서를 거부하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제 이걸 교회 안으로, 기독교 신앙에 연계해서 ‘올바른 그리스도교 신앙’ 혹은 ‘교회가 추구해야 할 것’또는 ‘교회는 교인들에게 뭘 가르쳐야 하는가’하는 질문들을 할 때에, 거창고등학교의 취업10훈이 주는 의미와 기독교 신앙이 실현해야 하는 가치는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지배하는 의식과 질서를 거부]하는 사람으로 가르쳐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은 어떤 의식과 질서가 지배를 합니까? 쉽게 말해 ‘잘난 사람 중심’즉 ‘엘리트 중심’의 세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이 공부를 해도 상위 몇 %냐 묻습니다. 또 그 몇 %안에 들기 위해 죽기 살기로 공부합니다. 그 상위 몇 %가 곧 그의 인생을 결정짓는다고 믿고들 있습니다.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좀 더 넓게 상위 의식 혹은 엘리트 의식이 확산되어 있습니다. 직업, 학교, 사는 아파트, 타는 자동차, 비행기 좌석 등등이 바로 그런 의식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비행기회사의 젊은 여자 부사장이 직원에게 함부로 했던 처신도 이런 우리사회의 그와 같은 지배의식과 질서에서 비롯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더 우려되는 것은 그런 사건과 현상에 분노하는 그 사람들도 결국은 ‘상위사회의 지배의식과 질서’를 매우 동경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촘촘한 새 그물처럼 이런 상위의식이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런 세상의 의식과 질서에 굴복하지 말고 여럿이 예배당에서 배워 깨친 다음에 함께 힘을 뭉쳐 싸우라.”고 말입니다. 어디에 그런 말씀이 있냐고요? 두 곳에 나옵니다. 첫 번째는 눅11:52절이고 다음은 마23:13입니다. 우리가 본문으로 눅11:52을 함께 보았으니까 이번에는 마태복음에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 봅시다.
“너희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는 겨우 한 사람을 개종 시키려고 바다와 육지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개종시킨 다음에는 그 사람을 너희보다 갑절이나 더 악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고 있다.”
이 두 구절들에서 우리가 말하는 상위인간에 해당하는 대상은 고급 바리사이, 즉 율법학자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왕족이나 귀족, 혹은 종교귀족인 고위사제 등은 여기에서 주목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세습을 통해 자신의 신분적. 계급적 질서에 귀속이 되며, 따라서 그들은 이를 위해 대중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요즘말로 하면 시험을 치거나 공부 잘해서 올라가는 자리가 아니라 저절로 되는 자리입니다. 태어날 때 이미 부와 권력이 보장된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겁니다. 그들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상위의 인간인 것입니다. 반면 누가나 마태복음 본문에 나오는 고급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은 대중에 의해서 그 지위가 보장된다는 점에서, 끊임없이 대중과의 연관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이들입니다.
눅11:52은 율법학자나 랍비가 나머지 사람들과 구별된 변별적 존재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칭 ‘지식의 열쇠를 소유한 자들’입니다. 여기서 ‘지식(그노시스)’이란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 나라를 얻는 지식’을 말합니다. 이런 새로운 의식은 서기 70년에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고 ‘제사중심 사회제도’가 붕괴 된 이후의 일입니다. 하나님 나라란,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의 근원이요 목적이요 존재 이유입니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통해서만 그걸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대중들에게 율법학자란 ‘더 나은’가치의 자격을 가진 존재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자신도 하나님의 나라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우리사회가 ‘잘나고 많이 배운 사람이 있어야 그래도 내게 유익할 것’이라고 막연하게 믿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은연중에 우리는 사람을 고를 때 ‘학벌, 인맥, 소유’같은 것에 기울어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본문에 따르면, 예수님은 그 율법학자들, 세상 사람들이 믿어 의심치 않아 든든하게 여기는 그들이 그 지식의 열쇠를 치워버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율법학자와 대중의 ‘구별 짓기’가 결정화되었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자기들이 동경하는 율법학자들의 경지, 그들의 구원의 위격을 결코 얻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그런 율법학자들이 소수의 엘리트 집단이며, 그들의 상징적 위격은 그렇게 한정된 형태로 계승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의 제자도 대중에게 하나님 나라의 열쇠를 결코 제공해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들의 엘리트 양성 교육체제는 자기들만의 세상을 재생산하기 위한 방식에 불과하다고 비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체계 속에서 양성된 사람은 스승보다 결코 못하지 않는 자폐적 존재로 태어날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렇습니다. 율법학자 시스템, 곧 그들의 충원이나 권력연계나 상징적 위계의 형성 등의 문제는 사회 전 구성원의 의식. 무의식적인 동의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저들 율법학자들을 향해 뭐라고 하십니까? “저주받아라. 이놈들아!”라고 부르짖음으로써, 그러한 체제의 재생산 맥락에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런 모진 말씀을 하시다니, 할 만큼 엄청난 말씀 아닙니까? 그것은 율법학자들을 향한 도전과 비판인 동시에, 그러한 시스템에 자기도 모르게 흡수 통합된 대중을 향한 근원적 문제제기였던 것이죠.
우리는 지금 명문대학 열병을 앓고 있습니다. 대기업 질병에 걸려 있기도 합니다. 이런 사회현상은 모두 상위가 되기를 바라는 구별 짓기 문화입니다. 이게 이 세상의 지배의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중도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있고요. 이런 의식의 내면에는 ‘사람답게 되려면 이래야 한다’는 무의식이 깔려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그걸 정당화하고 미화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이런 의식이 사회와 인간 개개인을 황폐화 시키는 겁니다. 물론 사람들이나 사회는 어느 정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무의식중에 그런 사회지배 질서를 옹호하고 흠모합니다. 공조하는 겁니다. 알면서도 자신과 관련된 사항에 관해서는 모순적으로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눈을 감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거창고등학교도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단호하게 거부하고 부정합니다. 그리고는 그런 체제에서 이탈합니다. 그렇다면 거창고등학교의 취업 10훈, 예수님의 율법학자들을 향한 저주의 부르짖음, “재앙이 있을 지어다!”라는 말은 바로 우리 자신, 이 시대, 시대의 질서에 공조하고 뒤로 그걸 흠모하며 그렇게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조르는 기독교 신앙, 우리 자신을 향한 경고인 것입니다.
“재앙이 있을 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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