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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마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452 추천 수 0 2015.08.17 11:4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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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3:20-35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3장 20절-35절: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저가 바알세불을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예수께서 저희를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단이 어찌 사단을 쫓아낼 수 있느냐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만일 사단이 자기를 거스려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이에 망하느니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늑탈치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무릇 훼방하는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하시니 이는 저희가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 때에 예수의 모친과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무리가 예수를 둘러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대답하시되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앉은 자들을 둘러보시며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나님께서 인간과 우주만물과 천지를 만드신 목적은 무엇이냐? 이방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선악과 따먹은 차원에서의 문학이나 소원 목적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오직 성령님의 감화로 된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보는 인간창조의 목적, 세상창조의 목적이 뭐냐?


천국의 누림은 나그네 생활하는 동안에 예수를 믿고 영능의 실력을 닦은 대로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약시대에는 안식일, 또 신약시대에는 보편적으로 보면 주님께서 부활한 날 즉, 주일날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보는 것이 창조의 목적 안에 들어있는 것이다.


안 믿는 사람은 제 멋대로 제 마음대로 사는 것이고, 예수 믿는 사람은 자기의 창조목적 존재목적이 성경에 들어있다. ‘왜 내가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하는 게 성경에 들어있다. 이 성경을 통해서 보면 내가 인간으로 이 땅에 태어난 것이 구원목적이 나오는데, 인간이면서 이 목적을 피해서 살 수가 있느냐? 인간 자기가 하나님께서 우주만물과 햇빛과 비와 공기를 만들어 놓은 것의 혜택을 안 보고 살 수가 있느냐?


교회 다니고 예수 믿는 것을 어떻게 보는 거냐? 제 마음대로? 자기 기준대로? 어디 한 번 그렇게 살아봐라. 예수 믿는 것을 어떻게 알고 있느냐? 주일도 제대로 못 지키며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말씀을 제대로 안 듣고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일반 자연은총으로 우로지택으로 곡식을 주고 햇빛이 나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해서 자기 입에 들어가는데 이게 다 자기가 갖고 나온 것이냐?


예수 믿는 사람이 주일 하나 제대로 못 지키고 있으면 그걸 어디서 배웠느냐? 누가 그렇게 가르쳐 줬느냐? 어느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쳐 줬느냐? 어느 목사가 그렇게 가르쳐 줬느냐? 예수 믿는 거 정신을 바싹 차리고 믿어라.


우리가 늘 신명기를 읽는데,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고 있느냐? 하나님을 섬기는 게 고역이냐? 아니다. 하나님이 가까워질수록 자기는 하나님을 닮는다. 모든 우주만물의 물질이치 자연이치 인간세상의 만사가 돌아가는 모든 사건이 하나님의 구원목적으로 들어가 있다. 안 들어간다고 변명할 사람이 있느냐?


자기가 코로 숨을 쉬는 것은 누가 만든 코로 숨을 쉬는 것이냐? 인간 자기 속에 어떤 병이 진행되고 있는지 자기가 아느냐? 그럼에도 인간 자기의 무능성을 시인을 못하느냐? 성경이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이냐? 성경은 자기 얘기다. 남 얘기가 아니다.


우리로 말하면 주일날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날. 비뚤어지고 꺾어지고 꼬부라지고 휘어지고 한 자기 성격 성질을 하나님의 온전으로 못 고치면 뭘로 고치느냐? 일반사회에 나가서 자기 성격 성질대로 하다가 두들겨 맞아야 고쳐지는 거냐? 두들겨 맞으면 사람이 고쳐지느냐? 아니다. 두들겨 맞아도 사람이 깨닫지 못하면 못 고친다. 그렇다면 깨달음을 가져야 한다. 성경을 통해 보면 예수님 당신이 어디를 가든지, 사도들이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 앞에 사람이 온전케 되는 역사를 하신다. 그게 들어있다.


처음 인간을 만들 때에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가 기본적으로 하나님 당신을 두고 인간을 만들었다. 개나 돼지를 두고 만든 게 아니다. 지렁이나 구더기를 두고 만든 게 아니다. 인간 자기의 참 기본적인 형상은 주님으로 하나님으로 들어있다. 따라서 자기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동안, 또 세상이 자기에게 있는 동안, 또 세상 안에 자기 존재가 있는 동안 자기는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성품을 입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아들’ 하는 것은 나는 진리와 성령으로 나아졌기(출생) 때문이다. ‘아들’ 하면 상속이 들어있다. 따라서 이런 자기에게는 영원 궁극적인 미래가 있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6, 70년, 오래 살면 100년, 보편적으로 70, 80년을 살다 간다. 꼭 그렇게 살라는 법도 없다. 젊어서 죽는 자도 있다. 그 기간 동안에 천국을 상속받아 누릴 수 있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


성경을 통해서 보면 바리새교인들을 따르던 그 자들도 바리새교인들과 함께 예수님께로 전향을 해서 깨달음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오니 바리새교인들 자기들의 입지가 곤란해지니까 시기가 나고 질투가 나서 구원 되신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훼방할 자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내려왔다는 것은 근원을 염두에 두고 보면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섬기는 도성인데 이곳에서 내려온 것이니 예수님 앞에 그들의 신앙이 낮고 저질이라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어디서부터 어디로 가는 거냐? 어디서부터 출발을 했느냐?’ 하는 그 결과를 가만히 보고 원인을 보면 ‘이게 낮아지러 가는구나’, 아니면 ‘올라가려고 가는구나’ 이게 들어있다. 우리 모두 자기의 삶이 더 나아지려고 하는 거냐, 더 못되게 낮아지려고 하는 거냐?


아브라함에게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하는 이 안에는 사상이 들어있다. 하나님께서 아들도 없는 두 노인을 쫄딱 망하게 하려는 것이냐? 복의 근원, 세상에서 최고로 높여주려는 게 들어있다. 이 성경을 보는 오늘날 자기는 어떻게 예수를 믿는 거냐? 이 성경의 약속이 자기에게는 해당이 안 되는 거냐? 거짓말이냐? 아닌 말로 집에 불이 나서 자기가 보던 성경이 타서 없어지면 자기에게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없어지는 거냐? 그대로 들어있다.


우리교회에 오신 분들은 저질로 예수 믿지 말라. 저질적으로 믿으려면 아무 데나 가라. 우리교회에 온 사람은 그만큼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어디서부터 왔던 ‘거기나, 여기나’ 하는 건 용납이 안 된다. 사람이라면 나아지려고 살고 실력적으로 올라가려고 노력을 하는 게 정신이 옳은 거지 하루살이 식으로 주일날만 지키려면 딴 데로 가라.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향하신 그 약속을 믿어라. 나는 그 약속을 믿고 오늘날까지 70여년을 왔다.


지금도 자기가 하나님 앞에 온전케 되는 것을 모르고 아무 쓸모없는 종교적인 이론과 학문을 따르며 세상에서 유명하다는 소리를 듣고 사는 사람들이 참 많다. 하나님 앞에 자기가 온전한 인격과 성품으로 사는 이것을 모르고 기독교 안에서 일반적으로 좋은 소리나 듣고, ‘세상에서 성공했네’ 하는 소리나 듣고 사는 사람이 많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려고 쓰여졌다고 했는데, 이는 곧 자기의 온전을 위해서 쓰여졌다는 것인데 이것과는 상관없이 예수 믿는 사람이 많다.


인간 너를 만들 때는 하나님의 온전을 두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우리를 지으셨는데, ‘우리가 우리의 모양대로’ 하는 것은 특수도모로 인간을 지었다는 의미가 붙어있다. 너를 개나 돼지나 지렁이나 소처럼 만들지 않고 하나님의 모형대로 만든 것은 하나님의 특수도모가 들어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왜 자기의 가치를 떨어뜨리느냐? 자기의 가치를 자기가 떨어뜨리면 모든 만물이 와서 자기를 밟아버린다. 밟으면 아프다. 남에게 무시당하면 싫다.


우리 인간은 인격적인 존재다. 밥만 먹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라면 얼굴이 있다. 얼굴이 뭐냐? 사람의 인격이다. 얼굴을 봐서 즉, 그 사람의 언행심사에서 ‘아, 이 사람의 인격이 어떻구나’ 하는 게 나온다. 예수 믿는 정신적 차원을, 인격적 정신적 사상적 차원을 고상하게 가져라.


23절-27절에 보면 하나의 나라 안에서나 한 가정에서 분쟁이 일어나면 그 나라나 가정은 설 수가 없다. 어디서나 그 이치는 마찬가지다. 자기 안에 두 마음이 되면 ‘이래볼까, 저래볼까’ 하며 밤새도록 왔다 갔다 하다가 한 결정도 못 내리게 된다. 다시 말하면 일의 성사가 안 된다. 이건 일 그 이전에 사람이 문제다.


사단이 사단을 쫓아내고 자기 나라를 세울 수 있느냐? 사단이 자기 안에서 분쟁이 일어나면 스스로 설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사람 안에 분쟁이 일어나면 사람이 설 수가 없다. 자기 안에서 옳은 것으로 설 수가 없다.


예수님은 귀신뿐만이 아니라 사단 마귀를 부리신다.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에서 마귀를 굴복시킨 것은 예수님께서 강한 자 이심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또 부활 승천하심은 죄와 사망을 이기셨음을 증명해내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역사에 무엇이든지 붙들고 쓴다. 개개인 자기를 위해서, 또한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당신처럼 온전케 만들려고 얼마든지 적절하게 붙들고 쓰신다. 이걸 느끼느냐? 이걸 생각이나 하고 사느냐?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이것을 깨닫지를 못했다.


28절-29절: 사람의 모든 죄, 무릇 훼방하는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해진다.


첫째로, 사하심을 얻을 수 있는 훼방 죄는? 사람의 모든 죄 즉, 예수 믿기 전의 죄는, 행동을 기준 삼아서 말하는 모든 죄는, 밥을 안 먹고 일을 하니 미쳤다고 하는 죄는 회개를 하면 사함을 받을 수 있다.


그 다음에 사함을 얻지 못하는 죄는 성령 훼방 죄인데, 예수님은 사람을 하나님 앞에 온전케 하시는 분이다. 그런데 유대종교인들은 성경을 보는 자들이요, 사람이 온전케 되는 것을 자신들의 눈으로 보고도 귀신이 그 일을 했다고 말을 했다. 이건 성령 훼방 죄로 사함을 받지 못하는 죄이다.


사람이 바로 서고 넘어지는 것을 보면 무슨 교훈을 받고 무슨 정신으로 사는 것인지가 드러난다. 못 속인다. 자타에게 자기를 누가 드러내느냐? 자기가 자기를 드러낸다. 실력이 있으면 있는 대로 드러내고, 실력이 없으면 없는 대로 드러낸다. 자기가 자기를 드러낸다. 일반적으로 보면 그렇다.


그 다음에 ‘그 사람의 속이 어떻다’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사건을 통해서 나타낸다. ‘이 사람 속에 이런 게 숨어있었다. 자 봐라’ 하고 나타낸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런 역사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자기들은 성경을 가지고 보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주님의 일에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있으면서도 예수님의 온전케 되는 구원운동 천국복음 운동을 결사적으로 반대를 하고 있으니 이것이 성령 훼방 운동이다.


자기 속에서 양심적으로 ‘아, 이게 옳다’ 하고 증거가 되고 있는데도 자기의 그 선한 양심을, 하나님을 찾아가는 그 선한 양심을, 진리를 따르는 그 양심을 자기의 옛사람이 밟아 죽일 수가 있다. 이게 성령 훼방 죄다.


보고 듣고 만졌고 비교토록 했고 대화토록 했고 옳은 것이 선택이 되는 데도 주님의 구원운동, 온전케 되는 운동,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이 운동을 훼방을 했으니 그 면에 대한 구원은 없고 사함은 없다. 그러니 심판을 피할 수가 없다.


서기관들의 가르침은 사람이 온전케 되는 구원이 없는 가르침이다. 일반 사회 윤리 도덕적 가르침, 종교인으로서 신비체험적인 가르침, 사회의 어떤 법적인 질서를 둘러엎고 성경처럼 만들자고 하는 그거 안 된다. 이런 자들은 종교생활을 엄하게 가르치지만 이룰구원의 지혜가 없다.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하는 것은 말세에 성도들이 믿음이 있다는 말이냐, 없다는 말이냐? 없다는 말이다. 이룰구원이 없는 신앙들이고 성령 훼방 죄를 짓고 있다는 거다. 성령 훼방 죄를 짓는 자들이 예수님을 안 믿는 이방인이 아닌 예수 믿는 자들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성령 훼방 죄를 짓는 거다.


부모를 거역하는 것이 남의 집 자식이냐, 자기 집 자식이냐? 하나님을 욕 먹이는 게 하나님 집 자식이냐, 이방 종교인들이냐? 성령 훼방 죄는 예수 믿는 자가 짓는 거다.


31절-35절: 예수님께서 어느 성도의 집으로 들어가시면 이거는 신앙으로 되는 가정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어느 장소에 갔다 하면 뭘 의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천국복음을 한참 전하고 계실 때 예수님의 육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찾아와서 사람을 시켜서 예수님을 불러내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유인즉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종교지도자들이 예수가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고 하니까 가족들이 그걸 그대로 알아듣고 예수님께서 귀신이 들린 줄로 알고 예수를 찾으러 온 것이다.


예수님의 일은 성령의 눈으로 보면 천국복음의 구원의 일로써 ‘사람이 영원히 사느냐, 영원히 죽느냐’ 하는 촉각을 다투는 일인데, 말하자면 예수님보고 미친 짓을 말고 집 밖으로 나오라는 것이다.


옛날 분들 농사 다 짓고 나서 겨울에 어느 집 사랑채에서 화투칠 때 자식이 엄마의 시킴을 받아서 아버지를 부르러 가면 달려가서 화투치는 아버지를 빨리 나오라고 하는 것처럼 예수님께 미친 짓을 하지 말고 빨리 집 밖으로 나오라는 것이다.


사실 사람이 인간창조의 목적을 모른다면 자기가 미친 짓을 하면서도 미친 짓인 줄을 모른다. 미친 사람에게 ‘너 미쳤지?’ 하면 ‘난 안 미쳤다’ 한다. 미쳐도 곱게 미치지 않고 악독하게 미치면 그 사람에게 붙잡히면 죽는다. 예수 믿는 사람 중에도 미친 사람이 더러 있다. 누가 안 거드니까 가만히 있는 거지 옆에서 누가 자기를 인격에 모독이나 주고 하면 속에 든 대로 지푸라기에 불붙는 것처럼 파르르 일어난다. 인간창조의 목적을 모르면 자기가 미친 짓을 하면서 사는 그게 미친 짓인 줄을 모른다. 주님 보시기에 그렇다 그 말이다.


미친 사람들끼리 모인 곳에서는 자기도 미친 줄을 모르고 다 자기 같은 줄 안다. 그러면 지금 여기에 앉아있는 분들이 예수 안 믿는 사람들과 같은 정신이냐, 다른 정신이냐? 확실히 다르냐?


그러면 예수 안 믿는 사람을 여기에 끌어다 놓으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나랑 똑같네’ 하고 보겠느냐, ‘나와 다르다’ 하고 보겠느냐? 똑같이 본다. 사람을 보는 눈, 인간을 보는 눈, 중심사상을 보는 눈은 성령으로 보는 눈이라야 정확하다.


이 세상에서는 생명과 따먹은 지식과 선악과 따먹은 지식이 항상 정 반대적 목적적인 지식인고로 늘 대립이 되어 있는 거다. 대립을 하고자 해서 대립이 아니라 지식 자체가 그 질이 하늘과 땅으로 돼 있기 때문에, 생명과 사망으로 돼 있기 때문에 성질 자체가 성격 자체가 늘 대립성을 띠고 있다. 아예 대립이다. 대립을 해서 대립이 아니라 대립을 안 해도 갖고 있는 그 질이 다르기 때문에 즉, 하나는 하나님의 본질이요, 하나는 이질인 고로 이 둘이 각각 말을 내면 한쪽에서는 천국복음을 말을 하게 되고, 한 쪽에서는 세상 말을 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나오라고 하는 것은 예를 들면 지금 사람의 뇌를 수술하고 있는데 밖에서 집안 식구 중 아는 사람이 부르면 나가야 하느냐? 그렇게 중요하다 그 말이다. 쉽게 말하면 주님이 사람의 뇌를 수술하고 있는데, 창조주 하나님이 땅의 것을 버리게 하고 하늘의 것을 넣는 수술을 하고 있는데 부르면 나가겠느냐? 이게 주님의 일이요 구원의 일인데 누가 부른다면 그 일을 중단하고 나가겠느냐?


전쟁을 하다가 집에서 자식이 죽었다고 하는 소식이 전해지면 아버지가 하던 전쟁을 다 내버리고 집으로 달려가겠느냐? 예수 믿는 사람은 ‘이것보다 이게 중요하구나, 아, 이것보다 이게 더 중요하구나’ 하는 게 있는 거다.


자기 집 개가 아파서 앉고 병원에 가고 있는데 누가 ‘당신 아들이 큰 사고가 났습니다’ 하면 그 강아지를 누가 주워가던 말던 얼른 내버리고 자식에게 달려가겠느냐, ‘조금만 기다려라. 이 개부터 치료하고 갈께’ 하느냐? 사람이 가치판단을 못 느끼느냐? 우리의 삶 속에 그게 다 들어있다. 그럼에도 자기 사상 속에서 그걸 판단을 못하며 예수 믿는 사람이 많다. 무엇보다 무엇이 중요한지 그걸 모른다.


생명의 말씀을 듣는 예배중간에 전화신호가 왔다고 해서 예배드리다 말고 일어서서 나가면 되겠느냐?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핸드폰 신호 받고 그길로 가버리는 자도 있다. 성경에 하나님을 섬기는데 힘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섬기라고 한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말하기를 부친을 장사하고 오겠으니 허락해 달라고 하니까 ‘죽은 자는 죽은 자들로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했다. 이걸 세상 사람들에게 물어봐라. 이게 옳게 들리겠느냐? 그런데 이것도 계시의 말씀이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예수님의 말씀이 100% 옳은 거다.


모두 말하길 한 사람의 영혼이 중하다고 하면서 사실은 자기 주관적이고 육신적인 것만 알지 자기 자신의 영적문제가 더 시급하다는 건 모르고 있다. 한 사람의 영혼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그 말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 자기가 한 말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 줄도 모르고 말을 하는 사람이 참 많다. 이 말한 것이 저기서 들통이 나고 또 저기서 들통 나고 있는데 그걸 전혀 모른다. 의식을 못하고 있다. 일괄성이 없다.


32절-35절에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가만히 새겨들으면 육적 혈통적 기준을 가지고 따지는 것은 예수님에게는 큰 비중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의 뜻대로 관계성을 갖는 것을 더 강조를 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창조자가, 인간을 만드신 분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고 계신다. 예수님의 말씀은 절대 정확하다.


선악과 따먹은 이방세상 인간들은 육적 혈통을 기준하여 모든 면에서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러면서 자기에게 물질 이해타산의 손익에 따라 상대를 미워하고 질투하고 심지어 격투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죽이게 된다. 한 식구인데도 이런 것들로 인해 큰 원수가 되기도 하고, 없느니 만도 못한 식구로 여기기도 한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예수님의 이 말씀에 큰 공감이 간다.


그렇다면 가정을 왜 줬을까? 무엇을 하라고 준 것일까? 애정적으로 동거 동락 동사 동행하는 부모형제들이 아내와 남편이 제일 가깝다. 한 몸이니까. 이 가정이라는 방편을 통해서 수시로 늘 하나님의 말씀을 주거니 받거니 관계성을 가질 수 있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다. 또 자녀들에게 천국복음 구원복음이 교훈되어 후손들에게 천국복음이 이어져 내려갈 수 있는 매우 좋은 자연스런 방편이다. 그래서 가정을 만들었다.


만일 길이요 진리요 생명적 이룰구원의 관계가 아니란다면 아무리 육적 혈통적 관계가 화목하다고 해도 이건 가정을 통한 구원목적에서 벗어난 화목이다. 구원과 상관이 없는 화목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가정이나마 참 보기가 힘들다.


주님의 형제요 자매요 모친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느냐?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의 뜻대로 살면 이룰구원이 들어있다. 우리교회도 그러기를 바란다. 하지만 주님의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요 가족이요 식구요, 주님이 계시고 주님의 돌보심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게 산다면 이는 주님의 가족이 아니다. 주님의 보호를 못 입는다는 말이다.


주님의 형제자매들은 물질의 손익에 들어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육적 혈통적인 가정에서는 선악과 따먹고 타락되고 저주받은 사고방식을 가졌기 때문에 자기에게 물질적인 해가 되면 부모라도 죽이고 자식이라도 죽인다. 자기에게 물질에 손해가 있으면 육적 혈통적 가족일지라도 ‘언제 형제였더냐’ 하면서 ‘헤어집시다’ 하고, 법정에 서자고 한다. 이런 일들을 세상에서 너무나 많이 본다. 그럼에도 주님의 말씀을 이해 못하겠느냐?


그냥 돈 벌어서 밥 먹고 한 세상 살다 가면 되는 거냐? 이게 제 마음대로 될 것 같으냐? 자기의 가정으로 통해서 주님 오실 때까지 천국복음이, 구원계대 생명계대 진리이치의 계대가 이어져야 한다. 그 시대에 주님이 잡고 쓰실 수 있는 가정이 돼야 한다.


성경에 보면 주님의 식구를 보니 참 형제자매가 있고 거짓 형제자매가 있다. 또 참 과부가 있고 거짓된 과부가 있고, 참 고아가 있고 거짓된 고아가 있다. 주님의 말씀의 원칙을 놓고 볼 때 환난 때 참 고아와 참 과부를 돌보라. 그게 주님의 부모형제 자매들이다. 이게 진리이치로 서로 허리를 동이고 주님의 일을 향해서, 복음사업을 향해서 나가는 주님의 식구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자기 부모형제 자매는 세상이 끝날 깨까지 가는 거다. 그러나 부모형제 자매라 할지라도 육적으로 연결돼 있으면, 육의 이해타산이 되면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고 모레도 다르고, 큰 원수가 되기도 하고 철천지원수가 되기도 한다. 이건 하나님의 심판의 형벌에 떨어지게 되는 거다. 예수 믿어도 그렇게 믿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부모형제에 대해 주님이 말씀하시는 부모형제관을 가져야 한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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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가복음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막3:20-35  김경형 목사  2015-08-17 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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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32 에배소서 부르심에 감격하라 엡1:4-6  강종수 목사  2015-08-16 684
12431 요한복음 현실의 한계를 깨우는 지혜 요6:51-58  강승호 목사  2015-08-15 503
12430 고린도전 사람을 높이고 자랑하지 말라 고전3:21-23  한태완 목사  2015-08-15 991
12429 마태복음 예슈아, 임마누엘의 이름 마1:18-25  류공석 목사  2015-08-14 1170
12428 누가복음 이해를 뛰어넘는 순종 눅1:26-38  류공석 목사  2015-08-14 1006
12427 마태복음 낳고에 담긴 진리 마1:1-17  류공석 목사  2015-08-14 491
12426 마태복음 놀라움과 권위의 차이 마7:28-29  류공석 목사  2015-08-14 771
12425 마태복음 힘이 있습니까? 마7:24-27  류공석 목사  2015-08-14 626
12424 마태복음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7:15-23  류공석 목사  2015-08-14 694
12423 마태복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하심은... 마7:13-14  류공석 목사  2015-08-14 667
12422 마태복음 그러므로의 황금률 마7:12  류공석 목사  2015-08-14 529
12421 창세기 하나님의 사인 읽기(Reading the Signs of God) 창24:10-14  김영봉 목사  2015-08-12 945
12420 창세기 히네니!(Hineni) 창22:1-14  김영봉 목사  2015-08-12 1518
12419 창세기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창21:8~21  김영봉 목사  2015-08-12 1171
12418 시편 하늘 아빠(Heavenly Daddy) 시8:1-9  김영봉 목사  2015-08-12 802
12417 사도행전 신비의 세계로!(Into the World of Mysteries) 행2:1-8, 12-13  김영봉 목사  2015-08-12 798
12416 사도행전 내게 일어난 일을 보라(See What's Happened to Me) 행1:6-11  김영봉 목사  2015-08-12 739
12415 요한복음 보게 하소서(Let Me See You) 요14:1-10  김영봉 목사  2015-08-12 869
12414 요한복음 어머니를 찾습니다 요10:11-15  김영봉 목사  2015-08-12 520
12413 신명기 최고의 선택은 무엇인가? 신30:19  한태완 목사  2015-08-12 1019
12412 레위기 기억해야 할 것들 레20:22-26  최장환 목사  2015-08-11 496
12411 레위기 믿음의 사람 레22:1-22  최장환 목사  2015-08-11 474
12410 에배소서 땅에서 사는 영원한 삶 엡4:25-5:2  강승호 목사  2015-08-11 564
12409 마가복음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막3:13-19  김경형 목사  2015-08-10 493
12408 마가복음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계하시니라. 막3:7-12  김경형 목사  2015-08-10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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