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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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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624) 2015년 6월 9일 |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
(마태복음 5장 6절)
<
주님에 대한 목마름을 가지라 >
사람들은 온유함을 화도 안 내고 불의조차 부드럽게 덮어주는 것으로 오해할 때가 많다.
그러나 온유함이란 단순히 부드러운 것이나 약한 것이 아니다. 우유부단함은 더욱 아니다. 온유함은 부드러움 속에 강함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불의를 보고 분노하기도 한다. 결국 ‘온유함’과 ‘의에 주리고 목말라함’은 겸비되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팔복설교에서 온유함이 불의를
덮는 삶이나 우유부단한 삶이 되지 않도록 온유한 자의 축복에 이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축복을 말씀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이란 표현은 아주 강한 표현이다. 그것은 ‘조금 더 의롭게 되는 것’을 뜻하는 표현이 아니라 ‘의가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을 뜻하는
표현이다. 의에 주린 자에게 의는 음식이나 물처럼 중요하다. 또한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것은 사회정의에 대한 목마름도 포함된 개념이다.
요새 많은 사람들은 불의가 보여도 그냥 지나친다. 불의를 지적하면 불편과 고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산중에 숨은
은둔의 종교가 아니라 삶 중에 사랑을 전하는 종교이기에 때로는 어려움이 예상되어도 불의를 지적해야 한다. 그처럼 사회정의의 추구도 의에 주리고
목마른 모습이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모습은 훨씬 차원이 깊다. 즉 그것은 ‘주님에 대한 목마름을 가지는 것’을 뜻한다. 사실
주님과의 관계가 깊어져야 영혼의 만족감도 커진다.
할리우드의 최고 미인 중의 한 명이었던 라켈 웰치(Raquel Welch)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부와 명예 등 원하는 것을 다 얻었지만 영혼은 너무 불행했어요.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얻고도 어떻게 여전히
그렇게 불행할 수 있는지 놀라워요.” 그녀는 자신이 추구한 모든 것을 얻었지만 만족감은 얻지 못했다. 그것이 삶의 중심에 하나님을 둬야 하는
이유이다. 영혼은 하나님을 만나야 진정한 만족과 행복을 얻는다.
<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 >
2010년
어느 날, 그때까지 완성한 성경 각권 강해설교의 숫자가 30세트를 넘어서며 필자에게 ‘천년영향력의 꿈’이 생겼다. 생각은 참으로 신기했다.
‘천년영향력’을 생각하자 생각한 대로 진행되었다. 기도도 신기했다. 천년영향력을 생각하며 기도하자 기도 시간이 단순한 탄원으로 끝나지 않고
창조적인 지혜를 받는 시간이 되었다. 말도 신기했다. ‘천년영향력’을 계속 말하니까 그 방향으로 인생이 진행되면서 하나님이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열매도 주시고 비전 동역자도 주셨다.
그처럼 자신이 피땀 흘려 성취한 사역 열매들도 천년영향력의 재료들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천년영향력의 재료는 ‘주님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삶’이다. 주리고 목마른 모습으로 간절히 예수님을 추구하면 예수 믿고 인물이 되는 역사가 나타나고
동시에 천년영향력의 꿈도 더욱 멋지게 이뤄질 수 있다. 주님을 추구하는 열정은 돈과 배경과 인맥보다 중요하다. 때로는 돈과 배경과 인맥을 거절할
줄도 알아야 그때 주님의 임재가 뚜렷해진다.
일전에 한 교회에서 필자에게 담임목사 청빙 제의를 해왔다. 그 교회는 옛날부터 마음이
많이 갔던 지역에 있었다. 교인들도 꽤 많고 자체 성전도 있었다. 자녀의 교육 문제를 생각해서 사람들은 다 가라고 했지만 전혀 갈 생각이
없었기에 그냥 웃어넘겼다. 주변 사람들은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고 여겼다. 눈앞의 것만 보면 이해되지 않겠지만 때로는 거룩한 뜬 구름을 잡는 것이
더 행복할 수 있다.
얼마 전에는 은퇴를 앞둔 한 원로목회자가 후임자를 찾는데 동료 목회자가 필자를 추천했다. 그 추천을 받고 그
원로목회자가 필자의 의향을 물어왔다. 그 제의에는 좋은 조건들이 많았다. 자체 성전이 있었고 재정 문제, 교회위치 문제, 성장 가능성 문제
등에서 매력적인 요소들이 많았다. 감사한 제의였지만 필자가 말했다. “저를 잘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는 현재 섬기는 교회에서 지금까지
하던 사역들을 통해 꿈과 비전을 향해 나가야 하기에 갈 수 없습니다.”
목회자가 사역지를 옮길 수는 있다. 그러나 인간적인 유익
때문에 쉽게 옮긴다면 복된 결정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려고 하면 눈앞의 유익을 거부하고 손해도 감수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의 손해는 나중에 보면 반드시 유익이 된다.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이 너무 추상적인 것 같아서 실제로는 아무 것도 못 얻을 것 같지만 사실상
그것이 모든 것을 얻는 길이다.
왜 하나님을 열망하며 추구해야 하는가?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 대해 열망을 가지셨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과 함께 하려는 사람의 열망을 나타낸 책’이라기보다는 ‘사람과 함께 하려는 하나님의 열망을 나타낸 책’이다. 그래서 성경에 있는
가장 흔한 하나님의 약속은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는 약속이다. 그 사랑의 하나님을 열망하면 하나님은 어느새 찾아와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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