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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김학현 목사 

19세기 콜레라 방호복만도 못한 메르스 방호복?
[책 뒤안길] 바이러스의 위력 다룬 <세상을 바꾼 전염병> 
김학현(연서교회목사) | 2015.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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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세상을 바꾼 전염병> 표지
<세상을 바꾼 전염병>(예병일 지음 / 다른 펴냄 / 2015. 6 / 175쪽 / 1만3000 원)


“시나리오 잘 보고, 읽고 나선 꼭 손을 씻도록 해.”


영화 <컨테이젼>(2011,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에 출연한 맷 데이먼이 감독으로부터 들은 충고다. 당연히 데이먼 뿐 아니라 모든 출연진들이 손을 열심히 씻었다. 당시 이 영화를 찍으며 벌어진 해프닝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다. <컨테이젼>은 21세기형 질병이라 불리는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을 다룬 영화다.


영화는 “아무 것도 만지지 마라. 누구도 만나지 마라”라는 슬로건으로 접촉성 전염병의 공포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홍콩 출장에서 돌아온 베스(기네스 팰트로)가 원인 불명의 발작을 일으키며 죽는다. 남편(맷 데이먼)이 원인을 규명하기도 전에 그의 아들 또한 죽는다. 비슷한 병세로 세계 각국에서 죽음을 맞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이 전염병으로 죽는 사람이 한 명에서 두 명, 두 명에서 네 명, 네 명에서 열여섯 명....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간다. 사망자는 수천 명에 이르고 미국 질병통제센터(CDC)와 세계보건기구(WHO)까지 나서서 원인을 규명하려고 애쓴다. 늑장 대응으로 감염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진다. 우리나라 메르스 대응과 너무 닮았다. 조류독감과 신종인플루엔자에 이어 최근 메르스까지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은 비단 영화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이다.


‘손 씻기’만으로 전염병 예방이 될까


"손 씻기라든가 몇 가지 건강습관을 잘만 실천하면 메르스 같은 것은 무서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월 16일, 오전 메르스 확산 때문에 휴업했다가 수업을 재개한 서울시 강남구 대모초등학교를 방문해 손 씻기 실습수업을 참관하며 한 말이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메르스가 중동식 독감’이란 표현을 사용하여 누리꾼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소더버그 감독과 박근혜 대통령의 말처럼 ‘손 씻기’만으로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이 예방될 수 있는 걸까. 물론 위생을 청결하게 하는 게 도움이 되지만 그것만으로 바이러스성 전염병을 모두 차단할 수는 없다. 다양한 경로로 바이러스는 침투하기 때문이다. 메르스 이야기는 아니지만 반대로 너무 위생수준이 높아져 걸리는 병도 있다.


“일반적으로 전염병은 위생 수준이 낮은 나라에서 더 많이 발생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레지오넬라 감염증은 냉방용 에어컨 사용이 일반화하기 시작하면서 널리 퍼지기 시작했으니 현대문명이 만들어낸 병이라 할 수 있다. 신기하게도 A형 간염은 위생 수준이 높아지면서 많이 발생하는 전염병이다.”- <세상을 바꾼 전염병> 163쪽


A형 간염이 선진국형 병인 이유는 위생이 열악한 나라에서 소아기 때 발생하면 그 증상이 약하다고 한다. 성인 때 다시 감염돼도 면역력이 생겨 발생 가능성이 낮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위생상태가 높을수록 소아기 때 발생할 확률이 낮아 면역력이 생기지 않게 된다.


방호복, 그 역사는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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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페스트 방호복, 콜레라 방호복, 현재의 메르스 방호복이다. 메르스 방호복만 차단 기능만 갖추고 있다.


‘손 씻기’만 잘하면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는 대통령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방호복까지 챙겨 입고 환자를 돌본 의료진에게까지 메르스에 감염되었다. 그래서 ‘1만 5000원짜리 방호복 싸구려 논란’까지 일었다. 이번에 감염된 20대 간호사는 레벨D 방호복을 갖춰 입었는데도 감염되었다. 보건당국은 레벨D 방호복이 안전하다는 입장이다.


우주인을 방불케 하는 방호복 차림으로 환자들을 돌보는 의료진을 보며 방호복의 기원은 언제부터일까 생각했다. 영화 <컨테이젼>에서의 방호복과 우리나라 방호복은 비슷한데 꼭 우주복 같다. 방호복의 기원은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6세기초 동고트족이 이탈리아를 지배하고 있을 때 동로마의 중심인 콘스탄티노플에서 페스트가 발생했다. 이후 이탈리아로 전파되었지만 800년 동안 잠잠했다. 그러나 1347년 다시 유럽을 강타했다. 이때부터 방호복이 등장한다. 14세기 페스트는 유럽을 거쳐 중국, 중앙아시아, 서남아시아를 덮쳤다.


페스트가 전염되는 병임을 알게 된 의료진들은 가운, 장갑, 보안경, 약초를 담은 새 부리 모양의 마스크 등을 착용하고 환자를 돌봤다. 이것이 방호복의 효시라 할 수 있다. 이때부터 ‘검역’도 시작되었다. 결국 검역은 마녀사냥이라는 집단적 광기의 발로가 되기도 했다.


좀 더 진전된 방호복은 1835년 영국에 콜레라가 유행할 때 스노가 콜레라가 먹는 물에 의해 전염된다는 것을 발견한 때로 한참 후이다. 고무와 타르로 피부를 덮고 가슴에 등판을 대고, 플란넬로 온몸을 감쌌다. 온갖 약초를 넣은 마스크를 만들어 얼굴을 덮고, 약초를 담은 수레를 끌고 다니기까지 했다. 19세기 콜레라가 얼마나 위력적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우주복 같은 현대의 메르스 방호복을 보며 콜레라 방호복만큼도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 현대의 방호복은 차단기능만 있다. 그러나 페스트 방호복이나 콜레라 방호복은 약초를 넣은 마스크를 씀으로 예방이나 치료의 기능까지 갖추고 있지 않는가. 기능을 다했는지는 차치하고 말이다. 물론 이는 단순비교일 뿐이다. 하여튼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까지 뚫렸다는 뉴스에 가슴이 아프다.


전염병, 역사의 방향을 바꾸다


메르스 때문에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소비위축은 물론 관광객이 급감했다. 거리에는 사람이 사라졌다. 메르스 사태가 좀 수그러들며 조금은 기지개를 켜고 있지만 정부는 추경을 편성하면서까지 경제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한마디로 메르스가 우리의 삶의 패턴을 송두리째 바꿨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전염병이 삶의 패턴은 물론 세계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꿨다. <세상을 바꾼 전염병>은 실은 이에 대한 기록이다. 저자 예병일은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에서 유전자분석 및 발현 조절과 이온 통로의 전기생리학적 현상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의학의 사회·문화·역사·철학적인 측면을 연구하면서 이번에 이 책을 통해 전염병이 세계사에 미친 인문학적 영향을 들려주고 있다.


저자는 서슴없이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성공한 요인이 전염병 때문이라고 말한다. 전염병에 대해 아는 자들이 모르는 자들에게 승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고대 로마의 멸망도 전염병인 두창과 말라리아 때문이라고 한다. 로마제국에 말라리아가 창궐하며 군사력을 잃었다. 165년에는 시리아 원정 중인 로마군에 두창이 유행했고, 180년에 세상을 떠난 아우렐리우스도 두창 때문에 죽었다.


아즈텍과 잉카문명 또한 두창 때문에 무너졌다. 1519년 코르테스가 이끈 스페인군대도 아프리카인들과 싸워 승리했지만 두창 때문에 사망했다. 이후 아즈택에도, 페루의 잉카에도 두창이 유행했다. 두창이 아메리카 대륙의 곳곳을 누비며 아즈텍과 잉카문명을 멸망으로 몰아넣었다.


‘나의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던 나폴레옹 또한 러시아에서 맥을 못 춘 것이 발진티푸스 때문이다. 저자는 “발진티푸스가 나폴레옹 군대의 전투력을 약화시킨 가장 큰 원인”(57쪽)이라며 전염병이 세계사를 바꿨다고 말한다. 나폴레옹 사망 원인이 위암인데 이는 헬리코박터균 감염에 의한 것이라며, “나폴레옹은 평생 전염병으로 고생하다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난 셈”(58쪽)이라고 말한다.


책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처칠이 폐렴에 걸렸지만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설파제 때문이라고 말한다. 처칠은 2차 세계대전 승리의 주인공이다. 그가 죽었다면 판도가 달라졌을 수 있다. 저자는 ‘도마크가 발견한 항균제가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신문기사가 과장이 아니라며, “도마크의 프론토질이 전쟁의 판도와 인류의 역사를 바꿨다”(95쪽)고 주장한다.


책은 외에도 우리의 삶과 밀접한 전염병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과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한 전염병을 상세히 설명해 준다. 전염병을 이겨내기 위한 인간의 노력과 연구, 일상마저 바꾸는 전염병의 위력, 앞으로 우리는 전염병과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도 일러준다. 메르스가 우리를 두렵게 하고 있는 이때, 꼭 읽어야 할 책이다.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그냥 지나치면 안 되는 길일 것 같아 그 길을 걸으려고요.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김학현(연서교회목사)  nazunj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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