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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김학현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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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최고의 스캔들’... 이렇게 성서를 조작했다
[책 뒤안길] 세상을 바꾼 사랑 이야기 <정치가의 연애>
김학현(연서교회목사) 2015.07.27 11:12
책 <정치가의 연애> 표지
<정치가의 연애>(김응종 외 5인 지음/바이북스 펴냄/2015. 6/268쪽/1만 3,500원)
<헨리 8세 시즌 1 : 천년의 스캔들> 스틸컷
매우 자기중심적이고 괴물 같은 왕이 있었다. 그는 여섯 번이나 결혼을 했고, 부인 중 두 명을 무자비하게 처형했다. 이후 그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연극·소설·드라마의 소재가 되었다. <뉴욕타임스>는 그가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한 여인과의 연애를 평하길 “지난 천 년간 최고의 스캔들”이라고 말했다.
왕은 처음에는 이 20세기 최고의 스캔들의 여인에게 정부(情婦)가 되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보기 좋게 거절당한다. 끝내 왕은 “이후 나의 마음을 오직 그대에게 바칠 것이며, 그동안 그대에게 정부가 되어달라고 요구한 것을 사과하오.”(196쪽)라며 충성 약속과도 같은 연애편지를 써 사과의 뜻을 전한다. 이들은 결국 우여곡절 끝에 정식 부부가 된다.
왕의 정부가 될 뻔했던 여인은 ‘밀당’(남녀의 밀고 당기기 연애수법)의 고수였다. 그녀의 ‘밀당’ 덕분에 정부가 아니라 왕비가 되는 영광을 안았다. 왕은 영국의 헨리 8세(1491~1547)이고 왕비가 된 여인은 그의 둘째 왕비 앤 불린(1501~1536)이다. 이들의 결혼은 당시 교회법에 따르면 불가능했다. 왕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교회를 바꿨다.
세기의 연애사가 종교개혁을?
둘 사이에 벌어진 억지에 가까운 낯 뜨거운 연애는 1536년 앤 불린이 처참하게 처형당함으로 끝을 맺는다. 시리즈 <헨리 8세 시즌 1~4 : 천년의 스캔들>(브라이언 커크 감독 외, 2007)은 이들의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시리즈물로 나올 정도로 헨리 8세의 연애사는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려 왔다. 드라마 <더 튜더 : 천년의 스캔들>(찰스 맥두걸 감독, 2007) 역시 헨리 8세 연애 이야기로 우리나라에서도 방송을 탔다.
죽은 형의 아내였던 캐서린과 결혼을 한 헨리 8세는 그녀와의 사이에서 딸인 메리만 낳았다. 실증을 느낀 헨리는 캐서린의 궁녀였던 앤 불린과 결혼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결국 결혼에 골인하지만 앤 불린 역시 딸 엘리자베스를 낳았을 뿐이다. 앤은 3년 후 간통죄로 체포되어, ‘왕을 유혹해 아내 자리를 차지한 여섯 손가락의 마녀’라는 죄목으로 단두대에서 처형된다.
불가능한 가운데 진행된 이들의 억지 결혼 때문에 어부지리로 영국의 종교개혁이 이뤄졌다. 루터에 의한 중세의 종교개혁은 가톨릭의 타락과 부패를 원인으로 한다. 그러나 영국의 헨리 8세에 의한 종교개혁은 그의 연애사와 관련이 있다. 쉽게 말하면 결혼을 할 수 없는 사람과 결혼을 할 수 있도록 교회에 압력을 가하는 과정에서 종교개혁이 이뤄졌다는 뜻이다.
당시 교회가 허락해야만 왕도 정식 결혼을 할 수 있었다. 헨리 8세의 결혼은 형 아서의 아내였던 미망인 캐서린과의 결혼부터가 이상한 것이었다. 부친 헨리 7세가 아들의 결혼을 정략적으로 이용했다. 스페인 공주인 캐서린을 놓칠 수 없었던 헨리 7세는 큰아들이 죽자 둘째인 헨리 8세가 성장하기를 기다려 캐서린과 결혼을 시킨다.
이들의 결혼은 “당시 관습과 교회법에 따라 교황의 허락이 있어야 했다. 만일 캐서린이 형과 이미 합방을 했다면, 둘의 결혼은 교회법상 근친혼이 되기 때문에”(203쪽) 허락될 수 없었다. 헨리 8세는 루터가 종교개혁을 외치고 있을 때 교회를 두둔함으로 교황 레오 10세에게 ‘신앙의 수호자’라는 칭호를 받기에 이른다. 그러나 자신의 결혼을 정당화하기 위해 수호했던 교회를 모두 엎어버린다. 결국은 그게 종교개혁이 된 꼴이다.
성서로 짚어보는 헨리 8세의 결혼
<정치가의 연애>(바이북스 펴냄)에는 헨리 8세와 앤 불린의 연애사 뿐 아니라 나폴레옹과 조세핀, 쑨원과 쑹칭링, 루이 14세와 마담 맹트농, 고종과 명성황후, 후안 페론과 에비타, 히틀러와 에바 브라운 등의 연애사가 등장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각기 다른 작가들에 의해 쓰였다. 이들에게 정치와 연애는 그리 분리된 게 아니었다.
이 책은 ‘세상을 바꾼 그들의 사랑’이란 기획물로 <철학자의 연애>, <종교인의 연애>에 이은 세 번째 작품이다. “적도의 태양처럼 불타오르는 백만 번의 키스를 퍼붓고 싶습니다”(23~24쪽)라는 소름 돋는 닭살 멘트의 연애편지를 쓴 나폴레옹이나, 죽기 직전 유서에서 결혼을 승낙하고 유서를 쓰다말고 가 에바 브라운과 날치기 결혼식을 올리는 히틀러의 미친 사랑이 흥미롭다.
그러나 내게는 이들의 이야기보다 더 관심이 가는 연애사가 헨리 8세와 앤 불린의 성사될 수 없는 결혼 이야기였다. 헨리 8세의 첫 결혼부터가 웃긴다. 형수와의 결혼이라니. 물론 말할 수 없이 부패한 당시 교회는 그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기에 가능했다.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들의 결혼은 성서의 ‘계대결혼’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인다.
“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신명기 25장 5,6절)
계대결혼은 이스라엘 민족의 종족유지와 관계가 깊다. 헨리 8세와 형수 캐서린의 결혼은 어찌되었든 교회가 공인했고 정식으로 이뤄졌다. 그런데 문제는 이번에는 앤 불린과 결혼하기 위해 형수와의 합법적(성서적 ?)인 결혼을 없었던 걸로 하고 싶었다. 이때도 헨리 8세는 성서를 적용한다.
“누구든지 그의 형제의 아내를 데리고 살면 더러운 일이라 그가 그의 형제의 하체를 범함이니 그들에게 자식이 없으리라”(레위기 20장 21절)
그러나 이번에는 교회가 말을 안 들었다. 20년 전 캐서린과의 결혼을 “교회법에 어긋나는 것이니 무효다”라고 교회가 해주기를 바랐지만 교황은 요지부동이었다. 차라리 교황은 1532년 교지를 통해 캐서린과 화해하고 앤 불린은 궁에서 내보내라고 명령했다. 당시에는 교황이 왕 위에 있으니 당연한 명령이다. 그러나 헨리 8세는 그럴 수 없었다.
캐서린과의 결혼 무효화와 교회권력 몰수를 목표로 교회에 칼을 빼들었다. 결국 영국은 교황의 지배를 받지 않기로 했고, 대주교로 임명된 토머스 크랜머는 ‘캐서린과의 결혼은 무효’라고 선언한다. 이후 헨리 8세는 개혁의회를 꾸리고 크롬웰을 앞세워 영국교회의 수장은 헨리 8세라는 ‘수장령’과 앤과의 결혼 합법화 및 그녀가 낳을 아들이 적자라는 ‘계승법’을 만든다.
그야말로 헨리 8세에 의해 주도된 영국의 종교개혁은 그의 연애 스토리의 다른 면일 뿐이다. 성경을 시시때때로 바꿔가며 적용하는 무식함에 더하여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개악’을 만드는 전형적인 사례의 본보기이다. 요즘도 소위 ‘개혁’이란 이름으로 저지르는 ‘개악’이 얼마나 많은가. 정치도 종교도 말이다. 이현령비현령! 이젠 그만 할 때다.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그냥 지나치면 안 되는 길일 것 같아 그 길을 걸으려고요.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김학현(연서교회목사) nazunj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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