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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2천마리나 되는 돼지떼가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마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570 추천 수 0 2015.10.11 16: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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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5:1-17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5장 1절-17절: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다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나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저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고 있었더라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이는 예수께서 이미 저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가로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자기를 이 지방에서 내어 보내지 마시기를 간절히 구하더니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이에 간구하여 가로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촌에 고하니 사람들이 그 어떻게 된 것을 보러 와서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이에 귀신 들렸던 자의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저에게 고하매 저희가 예수께 그 지경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기독교는 이방종교와 같은 선상에 있는 하나의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인간창조의 목적이 들어있는 인간 삶의 분명한 원칙을 가르치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은 인간이라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입었다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로 통해서 하나님의 정확한 구원목적에 맞게스리 하나님의 성품을 입어서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이라면 창조주 하나님을 알고, 그리고 하나님의 신을 통해서 기록케 하신 성경말씀을 인간 자기 생애의 기준으로 삼고, 인간기준 생의 삶의 기준을 성경말씀에 맞추어 깨닫고 순종해 나갈 때 지키고 다스리고 통치하고 지배하는 삶이 되는 것이며, 그렇게 살아갈 때 하나님의 영능의 실력이 입혀지도록 성령님의 역사가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인간으로서 하나의 종교생활이 아니라 인간 자기의 본분이다. 인간이 자기의 이 본분을 떠나면 신:에서 말하듯이 네가 고통이고 사망이지만 날 때부터 하나님의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에 적중성으로 믿어나갔다면 하나님의 성품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은 인간 자기의 본분이다. 기독교는 이 본분을 배우는 거다. 깨닫는 거다. 그래서 우리교회 교인들은 자기 속의 세상 속화된 주관성은 타락성이니 이 죄악성은 모두 버리고 자기의 속에 하나님의 지혜지식, 그 다음에 하나님의 인격의 도덕성인 선 거룩 진실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성인 하나님의 의과 주권 즉, 하나님의 옳은 것을 넣어야 한다.


자기 속에 타락되고 속화된 것이 들어있으면 그것이 자기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자기를 어리석게 만들고, 자기를 시험 들게 만든다. 그러니 하나님의 것으로 부지런히 갈아 넣어라. 그게 예수 잘 믿는 거다. 그냥 밥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도 동식물로부터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그런 생태다.


10절-13절: 본문을 보면 더러운 귀신이 나가는 것도 예수님의 허락이구나.


그러면 더러운 귀신이 언제 예수님의 허락을 받고 그 사람에게 들어갔느냐? 그것은 마귀의 꾀임에 빠져 선악과 따먹고 저주받고 타락된 자기의 성격과 성질대로 살아갈 때에 이는 마치 담이 없는 집과 같아서 더러운 악한 귀신이 얼마든지 들어올 수 있는 것으로 놓여져 있기 때문에 그 때 들어온 것이다. 더러운 시궁창에 각종 벌레가 서식을 하듯이 내 속이 더러우면 더러운 귀신은 자동적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는 것은 더러운 정신을 가졌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분별이 구별이 없다. 거룩하고 신령한 하나님 앞에서 세상을 소원 목적하고 사는 그 정신은 불결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신령한 하나님 것과 세상정신을 비교를 하면 하나님 앞에서 세상 것을 불결하다. 더러운 정신이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한 하나님의 성품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는 여기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신령한 교훈이 들어있고, 그 교훈이 인간을 하나님의 성품화 시키는 것이다. 그게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깨끗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 믿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세상 것을 가지고 ‘이것이 깨끗하지요?’ 그런다면 그건 불결하고 더럽다. 신령하고 거룩한 것에 비해서 불결하고 더럽다.


흔히 있을 수 있는 일반적인 차원에서 보면 친구들끼리 인격 대 인격으로 놀면 여기에는 물질 이해타산이 안 들어간다. 물질 이해타산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 친구관계는 인격 대 인격이라는 그 면이 쪼개진다. 다시 말하면 불결하다. 더럽다. 세상은 그렇다.


친구가 돈 좀 빌려달라고 할 때 숨겨놓고서 감춰놓고서 없다고 한다면 이걸 아는 친구라면 ‘에이, 더러운 사람’ 한다. 그러니까 사람 속에 물질 이해타산으로 들어있다면 더럽다고 하는 것이다. 신앙인으로서도 하나님과 인격 대 인격으로 되어있지 않고 물질 이해타산으로 들어있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 불결하고 더러운 사람이다.


돈을 좋아하고 돈 욕심을 갖는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각종 시험이 들어간다. 돈 욕심에 진리를 팔아먹은 것은 가룟유다로 볼 수 있고, 또 다른 성경에 보면 부자 되기를 좋아하고 돈을 사랑하는 자는 각종 시험에 든다고 했다. 안 그렇다가 아니라 인간 너를 만드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니까 ‘그 정신에는 그 사상에는 어떤 시험이 들어오겠구나’ 하는 걸 하나님께서는 벌써 아시고 그 말씀을 하신 것이다.


돈이 많은 부자가 마음이 편할까, 아무 것도 없는 거지가 마음이 편할까? 돈을 많이 가졌으면 도둑맞을까봐 이리 저리 은행에 감추고, 땅을 파고 감추고, 늘 신경과 마음이 거기 들어가 있고, ‘누가 안 뺏어가나’ 하게 된다. 그러니 그 얼마나 하나님 앞에 편하지 못한 마음이겠느냐? 그런 게 시험이다.


하나님께서 앉으실 곳에 다른 것이 앉아있다면 이는 더러운 것이 앉아있는 것이다. 기독교인이 그렇게 했다면(하나님께서 앉으실 것에 세상과 세상 것을 앉혀놓는 것) 이는 더러운 신앙이고, 하나의 종교인이요, 더러운 귀신들린 자로 보게 된다.


예수 믿으면서 신앙인이 아닌 종교인이 많다. 종교인은 그저 주일 지키고 예배시간만 지키고, 그러니까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으로 자기 인격화 시키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어도 시간만 낭비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험을 잘 타게 된다. 어떤 크고 작은 시험이던 타게 돼 있다. 사람이 그만큼 가볍다는 것이다. 가벼운 것은 바람에 그냥 날리듯이 이런 사람은 시험에 그냥 날아간다.


오늘날 타락된 문명시대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남편은 싫어하고 남편 대신 개나 뱀을 데리고 잔다면 그 사람이 깨끗한 사람이냐, 더러운 사람이냐? 아내가 그렇다면 남편 표현이 더럽다고 하겠느냐, 깨끗하다고 하겠느냐? 더럽다고 한다.


자기 남편이 감기 들면 약국에 가서 약 사먹으라는 말은 해도 약 심부름도 안 하고 걱정 근심도 안 하지만 그러나 뱀이 감기 들면 병원 데리고 가고 ‘아이고, 내 새끼’ 하면 이게 미쳐도 보통 미친 게 아니다. 그러니까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고 보는 거다. 이건 사람의 정상적이 정신이 아니다.


성경에서 도덕성적인 면에서 ‘하지 말라’ 하면 일반법에서도 하지 말아야 한다. 무슨 말이냐? 동성연애가 법적으로 하락된 나라가 있느냐? 그걸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하시느냐? 돌로 쳐 죽이라고 한다.


타락된 세상이므로 타락된 세상이 그만큼 세력을 가지면 타락된 그 일을 하게 된다. 기독교인이 많은 나라에서 그렇게 한다면 이거는 정말 하나님의 어떤 일이 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이건 교회가 그만큼 신앙이 썩은 것이다. 교회가 인격적 사람의 본질로 들어가는 교육이 철저히 안 되고 종교적 세상을 자꾸 만들게 되면 여러 가지 방편이 합리화 돼서 교회가 아수라장이 돼버린다.


구별이 없으면 분별도 없어지고, 이거는 그만 무리화가 돼버린다. 교회는 성도인데 교회가 그렇다면 이건 성도가 아니라 무리화가 된다. 그러니까 세상화라. 이건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고 보는 거다. 계:에서 말한다. 그건 귀신의 집들이라.


그런 것에 물들지 않으려면 예수 믿으면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하는 하나님의 신적인 도덕성으로 자기를 만들어야 한다. 교회 문턱만 밟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했다가는 인격적 차원적 면에서 벌써 머리통에서 문제가 들어가 있는 거고, 그 다음에는 자녀교육에도 문제가 들어가 있다. 세상 제일주의로 나가게 된다. 이거는 구약에서도 말하는 것처럼 우상 앞에 자녀를 불태우는구나. 세상에 자녀를 산제사로 드리는 것이다. 세상 앞에 혼신을 다 바치게 한다. 이게 자녀를 세상에게 제물로 바치는 거다.


‘너무한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원칙이요 기준이다. 여기서 한 발 두 발 물러나느니만큼, 자기가 비뚤어진 만큼 자기에게는 그만큼 눈물로 고통으로 한숨으로 작용을 한다. 안 한다가 아니다. 성경은 원칙이다.


예수님께서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바리새교인들을 향해서 ‘마귀의 자식들이라, 독사의 자식들이라’ 했다. 그러면 로마 군인들이 볼 때 그 유대 종교지도자들 랍비들 서기관들 율법사들 바리새교인들이 다 독사 짓을 하고 다 도둑 짓을 하느냐? 겉으로 보기에는 그들이 얼마나 거룩하게 보이는지? 성경을 달달 외우고, 여호와 앞에서 ‘거룩 거룩’ 하면서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중심을 보시고 ‘독사의 자식들아, 마귀의 자식들이라’ 했다. 뭘 보고 그러신 것이냐? 그들의 중심 사상의 질이 마귀가 좋아하는 그런 짓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마귀가 좋아하는 짓이 뭐였느냐? 그들이 당시에 세상을 따라가고, 로마를 따라가고, 유대민족의 독립을 현 세상에서 가지려고 했다.


니고데모도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당신의 만능의 능력을 가지고 유대나라를 위해서 손잡고 일을 좀 해 봅시다’ 하는 그런 냄새를 풍기는 대화라. 소리로만 단순히 듣지 말고 말은 표현인데 속의 마음은 딴 게 들어있는 게 있다. 말로 통해서 나오는 그 냄새 그걸 맡을 줄 알아야 한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이방 우상을 섬기고 세상을 좇는 자신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예수님을 성경의 율법(모세오경)을 가지고 죽였고, 또한 사도들을 죽이는 일도 했다.


그러면 유대민족이 언제 이방 우상을 섬겼느냐? 돌부처 같은 걸 만들어서 섬기지는 않았다 해도 세상은 우상이니 그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우상을 섬기는 것이다. 세상을 달라는 소원 목적은 가지고 예수를 믿고 있다면 무슨 형상을 만들어 그것을 섬기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세상을 우상으로 섬기는 자라. 불에 타질 것을 섬기는 사람이라, ‘이것이 있어야 만이’ 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는 그게 바로 하나님이라. 그걸 하나님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구약에 보면 선지자들이 이방 우상을 섬기고 따라가는 자기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외친다. 그러나 더러운 이방사상의 정신과 이방 소원 목적이 들어있는 그들은 회개하여 돌아오지를 않았다. 세상 소원 목적을 가진 그 정신을 하나님께로 돌리면 이게 회개가 되는 건데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세상정신이 그대로 들어있으니 회개가 안 됐다. 회개를 못한 자들이라. 그들은 끝내 하나님의 형벌을 받고 끝났다.


군대귀신이 들렸는데 예수님께서는 군대귀신이 6천 명이던 6만 명이던 그거 무서워하는 분이 아니다.


아마 산에서 돼지를 치고 있었던 모양인데 그 군대귀신이 예수님께 ‘우리로 돼지 떼에 들어가게 허락해 주옵소서’ 하니 ‘그래, 들어가라’ 했다.


그러면 그 귀신들이 예수님께 ‘우리로 마귀 짓을 하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들어가게 하옵소서’ 한다면 예수님께서 ‘들어가라’ 하시겠느냐? 마귀 짓을 하고 있으면 허락만 떨어지면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 더러운 귀신들이 예수님의 허락을 받고 돼지 떼에 들어가니 어떤 현상이 일어났느냐? 거의 2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가 전부는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로 향하여 뛰어들어 몰사 했다. 어미의 뒤를 따라서 새끼들도 전부는 바다로 뛰어들어서 몰사 했다.


바다로 뛰어드는 그 장면이 참으로 장관일 것이다. 그 때 그 장면을 사진을 찍어놨다면 돼지 떼들이 용감하다고 하면서 굉장히 붐을 일으킬 것이다.


그러면 그 돼지 떼들이 정말로 용감한 것이냐? 이것이 무엇을 말해주는 것이냐? 사람에게 더러운 귀신이 들어가면 인간 자기의 결과가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교인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예수님과 인격적 결합적 관계가 없는 것을 구하는 것은 더러운 정신이요 귀신이 들린 것으로써 이런 자들은 세상이라는 물속에 빠져죽은 자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다른 데는 귀신들린 자가 둘인데 여기는 한 사람으로 나오는데, 어쨌든 군대귀신이 들린 그 자가 무덤 사이에 살고 있었다. 이는 사망권 사망계에서 하는 일마다 죽어나가고 죽는 일을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게 세상이다. 이 물질세상은 영원히 살 수 없는 곳이다. 비유하여 이 세상은 광야 같은 세상이라.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특히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 사상을 가지고 예수님께 달려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주님과 인격적 결합은 하지를 않는다.


오늘날 교회에 다니면서 예수 믿으면서 세상 것을 구하고 있다면 이 사람은 귀신들린 사람이다. 왜? 예수님과 인격적 관계를 가지지 않는구나. 예수를 믿으면서 예수님과 인격적 성품적 관계를 가지지 않고 고차원적 신의 성품을 입지 않고 있다. 이러면 어떤 사람이 되겠느냐?


사람이 돈만 따라가면 사람노릇이 되느냐? 이런 사람은 부모형제 다 버리고, 아내 남편까지 다 버리고 돈만 따라가게 된다. 돈만 따라가면 그 사람이 사람노릇이 되겠느냐? 결과는 비참이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의 눈으로 보면 예수를 믿으면서도 사망권 사망계에서 세상이라는 물속에 빠져죽은 자들이 참 많다. 너무 많다.


베드로가 바다 위를 걷다가 풍랑을 바라보니 바다에 슬슬 빠져 들어갔다. 그걸 그대로 뒀다면 그대로 죽는 거다. 예수님만 바라보고 바닷물에 풍덩 뛰어들어서 몇 발짝이라도 물 위를 걸었으니 계속 예수님만 바라보며 걸어갈 일이지 왜 풍랑을 보느냐? 왜 세상을 보느냐? 왜 사람을 보느냐? 왜 배후의 세상풍랑을 보느냐? 시선이 흩어졌기 때문에 물에 빠졌다.


그 사건을 들고 우리에게 비유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세상이라는 물속에 빠져있는 그대로 두면 그대로 죽는 거다. 어떤 면에서 죽는 거냐? 구원도 죽고 하나님의 성품을 입는 것도 없다. 그러나 예수님께 잡히기만 하면 모두는 사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가신 것은 인간이 세상정신에 빠지지 않고 세상을 밟고 세상을 이용 응용 활용하여 구원을 이뤄가는 것이 인간창조의 목적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뜻인데 베드로는 그만 세상을 바라보다가 물속에 빠져버렸다. 그러니 자유가 없다. 물질 밑으로 빠졌으니 물질에 노예가 된다. 그러니 물질이 가자는 대로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환경에 노예가 되는 수밖에 없다. 환경을 다스리는 게 아니라 환경의 노예다. 이러면 신앙 믿음은 다 죽는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향해 성장돼야 할 베드로가 그대로 빠져 죽는 것을 원치를 않으신다. 또 베드로도 자신의 입으로 통해서 ‘나를 건져주소서’ 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이름을 부르면서도 물속에 더 빠지겠다고 그러고 있고, 세상을 더 달라고 그러고 있으니 그런 사상에서는 ‘나를 건저 주십시오’ 하는 이 기도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기독교계 방송을 들어봐라. 한국에서 크다고 하는 교회의 설교를 들어봐라.


물질세상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위한 훈련물로 주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깨닫지를 못한다. 그렇게 알지를 못한다. 그러니 예수 믿으면서 ‘축복 축복’ 하면서 세상 것을 자꾸 자기에게 달라고 한다. 그러면 그걸 주면 그 자가 그걸 다스릴 수 있느냐? 아니다. 푹 빠져버린다. 그것 때문에 네가 죽는다.


우리가 생각할 때 돈 많고 부자면 정말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일도 많이 하겠고, 예수 믿는 사람이 부자라면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일을 다 할 것 같으냐? 안 그렇다. 왜 안 그러냐? 사람이 하나님의 속성적 성품적으로 자라나지 못하면 세상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을 통치하고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헌금이 많이 나오니 신협을 차리고 신문사를 차리느냐? 그건 세상이지 천국은 아니다. 그런데 교회들이 그 짓을 못해서 안달이다.


오늘날 교회들이 계:에서 말하듯이 교인들의 인격과 성품이 본질에서 얼마나 이질적 비도덕적 신앙으로 빠져 들어갔는지 생각을 못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기성교회에서 이단자들을 향해서 ‘저건 이단자다’ 하고 손가락질을 하지만 그 이단자들은 오늘날 교회들이 하는 행태를 보고 성경구절을 들고 와서 구절적으로 기성교회를 비판을 하는 것이다.


그 이단자들이 구절적으로 말을 할 때 일리는 있지만 그러나 그들의 말은 계시는 아니다. 그러니까 너도 똑같다.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정신과 사상적으로 온전하게 바로 서야 하는 것인데 정신은 세상으로 붙어있으면서 남을 손가락질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본문의 귀신들린 자가 무덤 사이에 사는 것은 교인들이 세상 것을 구하는 것은 그 신앙이 공동묘지 사망권 안에 사는 자로서 자타의 구원을 죽이는 일을 하다가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의 바다에서 죽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짧은 광경이지만 이 광경 속에는 복합적인 많은 이치가 들어있다. 이걸 속속들이 끄집어내서 우리에게 대고 보면 우리 모두 자기의 성격 성질도 그런 요소들이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교인이 많은 것만 자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의의 옷을 입지 않고 있다면 이는 사망권 안에서 귀신들린 짓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오늘날 교회들이 사람들을 전도해서 사망권 안으로 끌어다가 비석을 세우는 일 즉, 기념적인 일을 만드는 짓을 많이들 하고 있다. 교회에서 사망권 안으로 끌어다 비석 세우는 일, 죽기 전에 기념될 만한 일을 시키고 있다.


돼지 치던 자들이 돼지 떼가 내리달아 바다에 빠지는 것을 보고 놀라서 읍내와 촌으로 달려가서 신고를 하고 그 소문을 퍼뜨렸다. 그 소문을 들은 읍내와 촌사람들이 몰려와서 호수 쪽으로 달려가서 보니 호수 안에 돼지 떼가 물을 먹고 죽어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상 위에 돼지 대가리를 올려놓은 것을 보면 빙그레 웃으면서 죽은 돼지 대가리를 올려놓는다. 거기다 또 이 돼지가 돈을 물고 있으니 그거 참 어떻게 그렇게 격에 맞게 되어있는지! 사람들 입에 돈을 물려주면 좋다고 웃느냐, 싫다고 우느냐? 그러니 꼭 고사상 위의 돼지 대가리 같은 인생들이다.


더러운 귀신이 들렸던 자가 예수님 앞에서 정신이 온전하여 옷을 단정히 입고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고 있는데 처음부터 이 일을 끝까지 본 자들이 빠짐없이 그 사건을 다 들려줬다.


그러나 저러나 거의 2천 마리나 되는 돼지 값을 누구에게 물릴까? 내가 아는 기독교인 중에 돼지 키우는 사람이 있었는데 돼지가 아프거나 하면 그 돼지를 돌봐야 하니까 주일날 교회에 못 나온다.


그런 식으로 돌보다가 돼지가 돌림병으로 다 죽는다면 그 교인이 기분이 좋을까, 나쁠까? 병 든 돼지는 못 팔아먹는다. 그러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그러면 어딘지 모르게 교회에 와도 기분이 좋지 못하고 속에서 불평이 잔뜩 들어있다. 그러면 그건 누구에게 불평이냐? 목사에게 불평이냐, 하나님에게 불평이냐, 자기 자신에게 불평이냐? 하나님께 불평이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그런 식으로 예수 믿을 때는 무슨 뜻으로 믿은 것이냐? 예수님보고 자기 사업이 잘 되게 해달라고 믿었는데 돼지가 다 죽어서 손해가 났으니 누구에게 그 값을 물려야 할까? 그런 식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예수님에게 물리려 할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이 사업을 하다가 그 사업이 잘못되면 누구에게 원망불평을 하느냐?


그러면 돼지 값을 누구에게 물릴까? 첫째,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에게 물린다? 둘째, 더러운 귀신에게 물린다? 셋째, 예수님에게 물린다? 누구에게 물려야 할까? 앞에서 말한 돼지 키우는 교인과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예수님에게 물릴 것이다. 즉 예수님께 돼지가 병 안 들고 잘 크게 해 달라고 기도할 것이다.


오늘날 자기는 예수 믿으면서 어느 쪽에 손해가 난다면 누구에게 원망불평을 할런지? (계속)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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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69 요한복음 架上七言-가상칠언(6) 내가 목마르다 요19:28  이정수 목사  2015-10-10 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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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67 시편 겨울의 숲의 음악 시69:1-18  이한규 목사  2015-10-08 367
12566 시편 고난을 이겨내는 기도 시69:1-18  이한규 목사  2015-10-08 1258
12565 로마서 영적인 천상의 귀족 롬8:31-39  이한규 목사  2015-10-08 398
12564 로마서 최종적인 승리의 길 롬8:31-39  이한규 목사  2015-10-08 472
12563 요엘 정신을 차리고 믿으십시오 욜1:1-12  이한규 목사  2015-10-08 861
12562 시편 은혜를 지속시키는 비결 시68:24-35  이한규 목사  2015-10-08 523
12561 시편 성도는 결국 승리합니다 시68:19-23  이한규 목사  2015-10-08 526
12560 창세기 이스마엘 창16:7-16  이정원 목사  2015-10-07 450
12559 창세기 인간적인 방법 창16:1-6  이정원 목사  2015-10-07 525
12558 창세기 언약의 주 하나님 창15:7-21  이정원 목사  2015-10-07 473
12557 창세기 방패와 상급이신 하나님 창15:1-6  이정원 목사  2015-10-07 445
12556 히브리서 삶을 바꾸는 말 히4:12-16  강승호 목사  2015-10-07 736
12555 이사야 나의 결심과 각오 사6:8  한태완 목사  2015-10-07 930
12554 역대상 섬기는 직업 대상23:1-32  구하라 목사  2015-10-07 361
12553 민수기 관점을 바꾸자 민35:1-21  최장환 목사  2015-10-06 551
12552 사사기 비가와야 무지개뜬다 삿6:1-18  최장환 목사  2015-10-06 701
12551 역대상 아버지의 소원 대상22:6~13  김근중 목사  2015-10-06 462
12550 역대상 너는 일어나 일하라 대상22:6-19  서명성 목사  2015-10-06 508
12549 역대상 하나님의 거절 대상22:6-16  박상희 목사  2015-10-06 486
12548 마태복음 분별(심판) 기준 마7:20-23  강종수 목사  2015-10-04 283
12547 마가복음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막5:9-13  김경형 목사  2015-10-04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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