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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함으로 받으라

야고보서 박상훈 목사............... 조회 수 585 추천 수 0 2015.10.17 18:56:18
.........
성경본문 : 약1:19-21 
설교자 : 박상훈 목사 
참고 : 2001-09-02 http://www.seungdong.or.kr 승동교회 

설교제목 :  온유함으로 받으라  

야고보서 1:19~21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사도 야고보는 오늘 본문 속에서 우리가 어떠한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에 임해야 할 것인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도 야고보는 이미 18절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낳으셨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거듭난 존재입니다. 또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우리는 떡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고,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는 마음 속에 있는 모든 인간적인 욕망을 내어버리고, 깨끗하고 순결한 마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온유한 심령으로 받아야 합니다. "아,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지금 이 말씀을 나를 위해서 주시는구나!" 늘 그러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우리가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에게 복있는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인지를 깨닫고, 우리의 마음 밭을 기경해서 옥토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양의 격언 가운데 이러한 것이 있습니다. "Any fool can count the seeds in an apple, but only God can count apples in a seed(아무리 바보라도 사과 속에 있는 씨앗의 수는 쉽게 셀 수가 있다. 그러나 씨앗 속에 있는 사과의 수는 오직 하나님만이 세실 수 있다)." 사람은 유한하지만 하나님은 무한하시다는 뜻입니다.

사과를 쪼개봅니다. 그 속에 기껏해야 10개 이내의 씨앗이 들어있을 뿐입니다. 어린 아이라도 쉽게 그 수를 셀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씨앗을 땅에 심습니다. 자라서 나무가 됩니다. 수백 개, 수천 개의 사과가 달립니다. 그것도 매년 그만큼 많은 사과가 달리게 됩니다. 또 거기에서 나오는 씨앗을 땅에 심으면 나무가 되고, 거기서도 엄청나게 많은 사과가 달리게 됩니다. 그 수는 오직 하나님만이 세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사과라고 하면 대구가 유명합니다. 대구의 근교는 과수원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대구에 사과나무가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약 100년 전에 스코틀랜드의 선교사님 한 분이 대구로 파송을 받으셨습니다. 그 분은 대구의 기후풍토가 자기가 살고 있는 고향 스코틀랜드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과를 좋아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집 뒤뜰에 사과나무 씨앗을 몇 개 심었습니다. 그 때 그 선교사님은 자기 손바닥에 있는 사과씨앗의 수를 쉽게 셀 수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서 그 근처가 사과나무로 빽빽이 둘러싸일 것을 미리 예측하지는 못하셨을 것입니다. 그 때 그 분이 심었던 몇 개의 씨앗을 통해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과가 열렸으며, 또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과가 열릴 것인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유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한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힘들고 어려운 시험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때때로 내 수중에 있는 사과씨앗 몇 알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괴로워하고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하십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우리가 당하는 화를 복으로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내가 잃어버린 사과씨앗 몇 개 대신에 엄청난 수의 축복과 열매를 안겨주실 수 있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인생을 지혜롭게 사는 것이겠습니까? 유한한 인간의 힘, 인간의 재주, 인간의 꾀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무한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또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내 삶을 하나님께 다 맡기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는 사람이 바로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셨습니까? 보잘 것 없는 내 힘으로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지 마십시다. 일이 더 꼬일 수밖에 없습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해결하면 하나님은 무한하신 능력으로 내 문제를 쉽게 풀어주실 것입니다.


야곱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고향을 떠났습니다. 20년 동안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생을 했지만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서 그는 거부가 되었습니다. 대가족을 이루었습니다. 20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금의환향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큰 문제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형 에서가 군사 사백 명을 끌고 그를 치기 위해서 올라온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제야 야곱은 지금까지 자기가 모아놓은 모든 것들이 쓸데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그 동안 욕심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세상적인 욕심이 많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이 있었습니다. 부자가 되기는 되었습니다. 자녀에 대한 욕심도 남달리 많았습니다. 큰 가족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모든 것이 물거품처럼 순식간에 사라질 지경에 처했습니다.


야곱이 그 때 그 큰 시험을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그는 마음 속에 있는 모든 인간적인 욕심들을 깨끗하게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얍복나루에 홀로 남았습니다. 자기 가족들과 가축들을 모두 먼저 건네 보내고, 자기는 밤새도록 하나님과 1:1로 대면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습니다.


야곱은 그날 밤에 자기의 환도뼈가 부러지기까지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항복을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사람의 환도뼈에서 인간적인 힘이 나온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야곱은 환도뼈가 부러졌습니다. 자기의 힘을 의지할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의 손을 붙들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는 삶을 살겠다는 결단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그를 도와주셨습니다.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어주셨습니다. 육적인 사람을 영적인 사람으로 바꾸어주셨습니다. 야곱이 자기 마음 속에 있는 모든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더러운 욕심들을 다 포기하고 내어버릴 때, 하나님이 그를 찾아와 주시고 만나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자기 힘으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해 주셨습니다.


야곱이 에서를 만났습니다. 에서는 야곱을 보는 순간 뛰어와서 그를 얼싸안고 엉엉 울었습니다. 누가 에서의 마음을 바꾸어 놓았습니까? 누가 에서의 마음 속에 있는 동생 야곱에 대한 분노를 눈 녹듯이 녹게 했습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려운 시험을 만나셨습니까? 내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까? 나는 이겨낼 수가 없습니까? 우리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 지혜, 사랑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도우심을 간구합시다. 그리할 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으로 우리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십시다. 그리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와 주시고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에게 들려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면서 더욱더 말씀을 귀히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 나아갈 때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역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 속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면서 모든 어려운 문제들도 해결될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야고보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교훈입니다.
편의상 세 대지로 나누어서 오늘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갈급해 함과 같이 늘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살아가는 존재이니까 말씀을 늘 가까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우리의 영이 소생하는 은혜가 있게 됩니다. 그것이 19절 말씀입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지금 야고보는 우리가 잘 아는 속담 같은 말을 여기에서 인용하고 있습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귀는 두 개로 만드시고 입은 하나만 만드셨습니까? 많이 듣고 말은 적게 하라는 것입니다. 귓구멍은 늘 열려 있습니다. 입은 평소에 다물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는 것입니다. 또 성내기도 더디하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대로 내 주장대로 되지 않는다고 쉽게 성을 내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내 생각이 잘못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나와 너와의 인간적인 관계에서도 그러하다면 하물며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야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듣기는 속히 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했습니까?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위로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용기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새 힘을 공급받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축복 속에 형통합니까?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해서 방황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삶의 방향을 정할 수가 있습니다. 악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의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말씀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인생의 모든 문제가 말씀 속에 해답이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기쁨으로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가 처해 있는 어려운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아울러서 말하기는 더디하라고 했습니다. 내 뜻이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에게는 물론 예수님의 생각과 나름대로의 소원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더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내게 가장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언제나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시고, 또 나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나의 지혜는 유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는 무한하십니다. 어느 길이 내게 좋은 길인지 아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왜 우리가 기도를 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꺾고서 내 뜻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까? 그런 사람은 미련한 사람입니다. 기도는 내 마음에 품은 소원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일치되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내 삶 속에서 이루어질 때 그것이 나에게 가장 좋은 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울러서 성내기도 더디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불평하고 원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인도해 주신 길이 괴롭다고 원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20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극히 사랑하셨습니다. 종되었던 애굽 땅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축복의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은 잠시 잠깐 동안 광야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들은 광야 생활이 힘들다고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심지어 성내면서 돌을 들어 하나님의 종 모세를 치려고까지 했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놀라운 축복을 주시려고 했는데, 그들은 불평하고 원망하고 성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는 이루어지지 않고 만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축복의 땅을 밟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험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것입니다. 축복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기 위해서 시험을 통해 우리를 연단시키십니다. 그러니 힘들다고 해서 불평하고 원망하며 성내지 맙시다. 어떤 일에든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이 주신 것에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는 순결한 마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21절 상반부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어찌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으로 가득 차 있는 마음 속에 들어올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먼저 우리의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화가가 있었습니다. 그가 그린 그림들이 화랑에 전시가 되었습니다. 때를 맞춰서 친구들이 많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화가는 친구들을 먼저 그림들 앞으로 인도하지 않고, 지하실로 그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는 친구들에게 음료수를 간단히 대접하고 난 뒤에 갑자기 불을 꺼버렸습니다. 지하실에 불을 꺼버렸으니까 얼마나 캄캄했겠습니까? 놀란 친구들을 향해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10분 동안만 명상하는 시간을 가지세."
그는 10분 뒤에 다시 불을 켰습니다. 친구들이 물었습니다.
"왜 이렇게 하는 것인가?"
그 때 화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왜 그런 줄 아나? 자네들은 세상의 더러운 것들을 보느라고 눈이 너무 타락했어. 그냥 그대로는 그림들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네. 그러니 캄캄한 곳에서 우선 눈을 깨끗하게 씻고 난 뒤에야 내 그림들을 제대로 볼 수 있을걸세."


마음과 눈이 깨끗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그림들을 바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마음 속에 더러운 욕망들, 세상적인 생각들로 가득차 있는데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수가 있겠습니까? 마음 속에 있는 인간적인 더러운 욕심들을 깨끗하게 떨쳐버려야 합니다. 교만한 생각과 선입견 그리고 고정관념 등을 다 떨쳐버리고 어린 아이와 같이 깨끗한 마음이 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 속에 제대로 심겨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컨대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설교자와 서로 개인적인 원한이 있어서 감정이 좋지 않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그러면 그 설교자가 아무리 천사의 말로 은혜로운 말씀을 준비해서 전한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마음의 문이 열리겠습니까? 그가 은혜를 받겠습니까?


스데반이 공회 앞에 섰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사람들이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천사의 얼굴처럼 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스데반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그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던 공회원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그들이 은혜를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귀를 막았습니다. 듣기 싫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큰 소리를 치면서 스데반이 진리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스데반을 성밖으로 내쳤습니다. 그리고 돌로 때려죽였습니다.


여러분, 스데반이 나쁜 말을 했습니까? 바르지 못한 말을 했습니까? 그는 그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진리의 말씀을 선포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공회원들이 그런 반응을 보였습니까? 그들이 마음의 문을 닫아 놓았기 때문입니다. 마음 속에 고정관념, 선입견 등이 가득차 있으니까 아무리 스데반이 은혜로운 말씀을 전해도 그 말이 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씨뿌리는 자가 밭에 나가서 씨를 뿌렸습니다. 길가에, 돌밭에, 가시떨기 위에 떨어진 씨앗들은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옥토에 떨어진 씨앗들은 혹 100배, 혹 60배, 혹 30배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우리의 마음 밭이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좋은 땅, 옥토가 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 속에 제대로 심겨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랍비가 자기의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얘들아, 진리라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평범한 일 가운데서도 우리는 쉽게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단다."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선생님, 그렇다면 진리는 저 길바닥에 있는 돌멩이처럼 흔한 것입니까?"
랍비는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또 물었습니다.
"그러면 선생님, 왜 세상 사람들은 그 흔한 진리를 쉽게 터득하지 못합니까?"
그 때 랍비는 중요한 일깨움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허리를 굽히기 싫어하기 때문이란다."
조금만 허리를 굽히면 얼마든지 진리를 쉽게 주울 수가 있을 텐데, 마음이 교만하고 뻣뻣해서 허리를 굽히지 않기 때문에 진리를 터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마음의 밭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먼저 준비해야 합니다. 세상적인 더러운 욕심들, 인간적인 욕망, 교만한 생각, 뻣뻣한 마음, 고정관념, 선입견 등이 없어지기 전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주시는 말씀이니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 말씀을 내가 기꺼이 받겠습니다"라는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21절 하반부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우리가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을 때 우리의 영혼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그것이 내 뜻에 맞지 않는다고 성내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기쁜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온유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순종할 때 하나님의 의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아람 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신하였습니다. 온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위대한 장군이었습니다. 그러나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살이 썩어 들어갑니다. 불행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집에서 기르고 있는 여종 하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 조국 이스라엘에 가면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는데, 그에게만 가면 어떠한 병이든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 고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아만 장군은 종들을 데리고 이스라엘로 왔습니다. 선지자 엘리사의 집 문 앞에 이르렀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당연히 엘리사가 뛰어나와서 자기를 반갑게 맞이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얼굴을 내비치질 않았습니다. 그저 사환을 보내어서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는 전갈만을 보냈습니다. 그러니 나아만 장군이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겠습니까? 자기는 큰 대국의 위대한 장군이니까 이곳까지 자기가 찾아왔으면 빨리 나와서 기도라도 해 주고 반갑게 맞이해 주어야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결국 나아만 장군은 그의 자존심 때문에 종들에게 그냥 돌아가자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 때 만약 나아만 장군이 성을 내면서 그냥 돌아가 버렸다면 그는 문둥병을 고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종들이 극구 만류했습니다. 그래서 나아만은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그는 엘리사의 말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엘리사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은 것입니다. 그는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담그고 씻었습니다. 그리할 때 그의 몸이 깨끗해 졌습니다. 문둥병이 나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온유한 마음으로 받아야합니다. 그것이 내 뜻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성내고 마음의 문을 닫아놓으면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주시든지 우리는 그저 온유한 마음으로 그 말씀을 받을 때 구원의 역사는 일어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힘든 일을 당하셨습니까? 시험을 만나셨습니까? 이런저런 일로 마음에 근심과 염려가 가득차 있습니까? 그럴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바른 자세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면서 심령에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를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그들의 집을 찾아오셨습니다. 식사 때가 되었습니다. 마르다는 음식을 장만하느라고 분주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 마리아는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님의 발아래 앉았습니다. 고요히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 이 두 사람 가운데 누구의 마음에 평안이 있었습니까? 마리아는 평안했습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괜히 분주해서 마음 속에 이 걱정 저 걱정, 염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급기야 마르다는 속이 상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나아와서 원망 섞인 말을 했습니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아마도 마르다는 예수님이 이렇게 답변해 주기를 바랬을 것입니다.
"얘, 마리아야. 네 언니가 혼자서 수고하고 있는데 가서 도와주어라."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대답지 아니하셨습니다. 눅10:41∼42의 말씀입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르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조금 섭섭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지극히 기뻤을 것입니다. 말씀을 귀히 여기고,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을 가까이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을 예수님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그 심령에 평안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야고보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가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말씀으로 사는 존재로 삼아주셨으니까 늘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내 마음 속에 욕심, 교만한 생각, 미움, 증오, 원한 등이 들어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먼저 깨끗하게 비워야 합니다. 그리고 무슨 말씀을 주시든지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니까 이 시간에 바로 나에게 이런 은혜를 주시는구나!"라는 온유한 마음가짐으로 말씀을 받을 때, 영혼구원의 역사와 말씀으로 승리하는 체험을 우리의 삶 속에서 누리게 될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누가 말씀을 전하든지 간에 사람의 말로 받지 말고, 늘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을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길 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대접해 드리고 높이는 길입니다. 늘 말씀을 귀히 여기고,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함으로 모든 문제를 이겨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령의 평안함과 영혼의 소생함을 받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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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13 마가복음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막5:21-34  김경형 목사  2015-10-19 519
12612 갈라디아 구원과 복 갈3:6-9  강종수 목사  2015-10-18 367
12611 이사야 높은 산에 오르라 사40:9-11  강승호 목사  2015-10-18 641
12610 야고보서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약1:22-25  박상훈 목사  2015-10-17 538
» 야고보서 온유함으로 받으라 약1:19-21  박상훈 목사  2015-10-17 585
12608 사도행전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행9:31  박상훈 목사  2015-10-17 563
12607 누가복음 실패를 성공으로 눅5:1-11  박상훈 목사  2015-10-17 541
12606 마태복음 진주의 비유 마13:45~46  박상훈 목사  2015-10-17 641
12605 시편 과거로부터 온 뉴스 시104:1-9,24,35c  강승호 목사  2015-10-17 308
12604 마태복음 원수사랑, 하나님 나라 열쇠 [1] 마5:43-45  한완상 형제  2015-10-16 476
12603 요한복음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file 요9:32-41  김근철 외4  2015-10-16 401
12602 에배소서 펜들힐에서의 만남 엡5:8-9  조성희 자매  2015-10-16 445
12601 빌립보서 세상 살다보니까 빌1:6-14  윤여성 형제  2015-10-16 414
12600 마태복음 빠른 생각, 느린 생각 file 마7:21  조혜자 자매  2015-10-16 560
12599 히브리서 환대하는 공동체 히13:1-3  정경일 형제  2015-10-16 383
12598 요한복음 이제 우리의 신앙은 교회가 아니다. 요4:39-42  허태수 목사  2015-10-15 370
12597 요한복음 우리가 넘어서야 하는 것들 요6:1-15  허태수 목사  2015-10-15 650
12596 요한복음 이런 여자 어디 없습니까? 요11:17-35  허태수 목사  2015-10-15 460
12595 요한복음 허튼 수작에 넘어가지 마시고요. 요13:1-11  허태수 목사  2015-10-15 435
12594 마가복음 요즘 [교회]는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까? 막11:12-14  허태수 목사  2015-10-15 435
12593 시편 남겨둘 줄 아는 사람 시49:1-20  최장환 목사  2015-10-13 547
12592 예레미야 엎드림의 영광 렘31:1-14  최장환 목사  2015-10-13 579
12591 에배소서 복종하고 사랑하라 엡5:24-25  김남준 목사  2015-10-13 397
12590 신명기 네 부모를 공경하면 신5:16  김남준 목사  2015-10-13 568
12589 에배소서 네 자녀를 사랑하라 엡6:4  김남준 목사  2015-10-13 476
12588 요한복음 장애와 하나님 영광 요9:1-4  김남준 목사  2015-10-13 477
12587 베드로전 구원의 은혜를 전파함 벧전2:9  김남준 목사  2015-10-13 519
12586 호세아 미끄러진 자를 돌이키심 호5:15-6:1  김남준 목사  2015-10-13 337
12585 로마서 예수부활과 우리 생명 롬1:4  김남준 목사  2015-10-13 626
12584 누가복음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눅23:26-27  김남준 목사  2015-10-13 1006
12583 로마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8-39  조용기 목사  2015-10-11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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