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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야고보서 박상훈 목사............... 조회 수 538 추천 수 0 2015.10.17 19:01:51
.........
성경본문 : 약1:22-25 
설교자 : 박상훈 목사 
참고 : 2001-09-09 http://www.seungdong.or.kr 승동교회 

설교제목 :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야고보서 1:22~25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말라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옛날 어느 성에 아주 오래되고도 낡은 악기 하나가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그 악기는 누가 보더라도 값지고 귀한 것임에 틀림없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오랫동안 악기를 사용하지 않아서 악기의 외부에 하얀 먼지가 잔뜩 묻어있었습니다. 또 창고에 있는 습기 때문에 줄도 축 늘어져서 제대로 소리가 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그 악기를 연주할 수 없었습니다.


때로는 악기에 대한 전문가들이 나타나서 그 악기를 한 번 고쳐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악기의 구조가 너무나도 복잡해서 누구도 섣불리 손을 댈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악기의 외부에 묻어있는 먼지를 다 털어내고, 거기에 예쁜 색칠을 해서 겉보기에만 번지르르하게 만들뿐이었습니다. 악기의 본질은 소리를 내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연주할 수가 없으니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 노인이 그 성에 나타났습니다. 노인은 그 악기를 보더니 대뜸 팔소매를 걷어붙였습니다. 그는 먼저 다른 사람들이 불필요하게 악기의 외부에 칠해 놓은 페인트칠을 깨끗하게 벗겼습니다. 그리고 외부에 치장해 놓았던 것들도 다 제거해 버렸습니다. 그 뒤 그는 악기를 하나씩 분해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속속들이 악기 속에 있는 먼지들을 깨끗하게 제거했습니다. 그리고 난 뒤 그는 다시금 악기를 조립했습니다. 축 처진 악기의 줄을 팽팽하게 조이고 또 조율까지 마쳤습니다. 모든 작업이 끝난 뒤 노인은 그 악기를 손수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 동안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너무나도 멋지고 황홀한 멜로디가 그 악기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노인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고치지 못하는 악기를 그렇듯 손쉽게 고칠 수가 있었겠습니까? 노인은 다름 아닌 그 악기를 만든 장본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노인은 악기를 자기가 만들었으니까 악기의 본질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제점을 찾아내어 악기의 본질대로 다시금 회복시켰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은 어쩌면 악기와 같습니다. 때때로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죄라는 먼지 때문에, 세상이라는 습기 때문에 마땅히 우리가 살아야 할 본질적인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심령이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때 우리가 근본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야지 치유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윤리, 도덕, 교양 등으로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이 되겠습니까? 그것은 그저 악기의 외부에 페인트칠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것으로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만이 우리의 모든 근본적인 문제를 치유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에 맡겨서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연주하시도록 만들 때 우리의 삶은 비로소 본질적인 소리를 내는 삶, 곧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차를 새로 살 때 그 차와 함께 따라나오는 책이 있습니다. 그것을 매뉴얼이라고 부릅니다. 안내서입니다. 거기에 보면 차에 대한 자세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차를 어떻게 작동하며, 또 몇km정도 뛰고 나면 엔진오일을 바꾸어주어야 되고, 타이어를 갈아 끼워주어야 하는지, 또 간단한 고장이 났을 때 수리는 어떻게 하는지 등등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매뉴얼대로 차를 몰면 차의 수명이 다하기까지는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습니다. 그 매뉴얼을 만든 사람은 누구이겠습니까? 차를 설계한 사람, 자동차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그것을 작성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써 주신 매뉴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 우리는 탈없이 행복하게 본질적인 소리를 내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사도 야고보를 통해서 하나님의 귀중한 말씀 앞에서 어떠한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야고보는 세 가지로 우리에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깨끗한 마음으로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내 마음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들과 넘치는 악을 내어버려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제대로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로, 온유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서 주신 말씀이니까 내 경험에 어긋난 것 같고, 내 상식에 맞지 않는다 할지라도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그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 속에 살아 역사합니다. 구원의 역사를 가능케 하는 것입니다.


사도 야고보는 오늘 본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습니까? 물론 우리가 말씀을 듣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자체가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목적은 다른데 있습니다. 말씀을 붙들고, 말씀에 순종하며, 말씀을 실행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것은 그저 듣기만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들었으면 그 말씀을 붙들고 말씀대로 살라고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 야고보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교훈입니다.


오늘 말씀을 간단하게 세 대지로 나누어서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22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말라."

도, 곧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여기서 동사형을 쓰지 않고 명사형을 썼습니다. "말씀을 행하라"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라"고 더 강조적으로 말씀해 준 것입니다. 예컨대 "싸워라"고 하지 않고, "싸우는 군사가 되라"고 하면 더 강조하는 것입니다. 삶 전체가 싸우는 일에 바쳐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르쳐라"고 하는 말보다는 "교사가 되라"고 하면 삶 전체를 가르치는 일에 종사해야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집을 지어라"는 것보다 "건축가가 되라"고 하면 그 일에 더 철두철미하게 전념해야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말씀을 행하라"고 하는 것보다도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라"고 하면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일에 쓰임받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까?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는 믿음이 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산 것이 아닙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2:17의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여러분, 죽은 시체를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죽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살아있어야 역사합니다. 믿음이 죽었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6·25 동란 때였습니다. 그 때 미국에서는 아이젠하워 장군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가 동란 중에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일정이 잡혔습니다. 일정 가운데는 부산에 있는 유엔군 참전 용사들의 묘소를 참배하는 계획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서 미8군 당국이 난리가 났습니다. 전시입니다. 말이 묘지이지, 거기에 무슨 잔디가 있었겠습니까? 황량한 벌판일 뿐이었습니다. 그저 시체가 생기면 땅 속에 파묻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러니 황량한 모습의 묘지를 어떻게 대통령 당선자에게 그대로 보여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때는 늦겨울이었습니다. 그러니 어디 가서 잔디를 구하겠습니까? 난리가 났습니다.


지금은 작고하셨습니다만, 당시 현대상사의 정주영사장이 그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미8군 당국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제안을 했습니다.
"내가 묘지에 풀이 나게 할 테니까 돈을 주겠느냐?"
그들은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래 좋다! 돈은 얼마든지 주겠다. 방법을 한 번 들어보자."
그러자 정주영사장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방법을 말해주는 것은 좋은데 그 방법만 듣고서 돈을 주지 않으면 나만 손해볼 것 아니냐? 그러니 먼저 계약을 체결하자."
미8군 당국자들은 마음이 급했습니다. 그래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좋다. 돈은 실비의 3배를 주겠다. 좌우지간에 그 날 묘지가 새파랗게 되도록 바꾸어만 달라!"


그 길로 정주영사장은 그 주위에 있는 보리밭을 모두 사들였습니다. 때마침 눈속에는 보리싹이 새파랗게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인부들을 시켜서 그 보리를 다 파내었습니다. 그리고 때를 입히듯이 그것으로 묘지를 다 입혔습니다.


예정한 날 아이젠하워장군과 그 일행은 유엔군묘소를 참배하고 돌아갔습니다. 묘지마다 새파란 보리싹이 덮여 있었으니까 보기에는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사흘 뒤에 그 묘지는 다시금 누런 색깔로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보리에 뿌리가 없으니까 메말라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그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결국은 그 영혼이 메말라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병들어서 죽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듣기만 하고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맙시다.


둘째로,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습니까?


그저 듣기만 하라고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말씀을 주신 목적은 그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듣는 대로 나아가서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사도 야고보는 그것을 하나의 비유를 통해서 알기 쉽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23∼24절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앞에 거울이 있습니다. 얼굴을 쳐다봅니다. 머리가 헝클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빗을 가지고 머리를 바르게 빗어야 할 것입니다. 얼굴이 더럽습니다. 그러면 가서 물로 깨끗하게 세수를 해야할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거울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머리가 헝클어져 있고, 얼굴이 더러워져 있는데 그냥 다른 일을 하려고 깜빡 잊었다면 거울을 본 의미가 어디 있겠습니까?


여기서 거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늘 이러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오, 하나님! 말씀의 거울을 통해서 내 모습을 바르게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나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고쳐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내가 깨끗이 씻어버려야 할 더러운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을 바르게 볼 수 있도록 해 주옵소서."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닙니다. 그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을 깨달았으면 나아가서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씨뿌리는 비유를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씨뿌리는 자가 좋은 땅에 씨를 뿌렸습니다. 혹 100배, 혹 60배, 혹 30배의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크게 네 단계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줄 압니다.


첫째로, 씨를 뿌려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 단계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믿음이 생기겠습니까? 우리가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부지런히 들어야 합니다.
둘째로, 싹이 터야 합니다. 깨닫는 단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깨닫는 은혜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나의 문제점이 무엇이고, 내가 고쳐야 할 점은 무엇인지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는 이렇게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오, 하나님! 내게 깨닫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셋째로, 꽃을 피워야 합니다. 깨달았으면 작정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구나! 내가 이제는 이렇게 살아야겠구나!" 이러한 결심이 서야 합니다.
넷째로, 열매를 맺는 단계입니다. 깨달은 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100배, 60배, 30배의 결실을 맺을 수가 있습니다.


창세기 5장에 보면 에녹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65세에 자기 아들 므두셀라를 낳았습니다. 그가 므두셀라를 낳기까지는 아무렇게나 살았습니다. 되는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들을 낳고 보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 것입니다.
"너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된다. 고쳐라!"
그는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잘못 살았구나! 내가 바르게 살지 못했구나!" 그는 결심했습니다. "내가 이제부터라도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지!" 그는 결심한 것으로 끝내지 않았습니다.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로부터 300년 동안 그는 하나님과 더불어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그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에녹은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나라로 올려졌습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탕자가 집을 나갔습니다. 이국 땅에서 허랑방탕하면서 자기의 재산을 모두 허비해 버렸습니다. 그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는 먹고 살기 위해서 더러운 돼지나 치는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다 배가 고프니까 돼지들이 먹는 쥐엄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서 탕자는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왜 거기서 주려 죽으려고 하느냐?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라."

그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큰 죄를 지었구나! 불효막심한 죄를 지었구나!"
그는 깨닫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이렇게 결심했습니다.
"이제라도 내가 아버지께 돌아가야지. 가서 나의 잘못을 구하고 용서를 구해야지."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버지는 그를 반갑게 영접해 주었습니다. 비단옷을 입혀 주었습니다. 손에 금가락지를 끼워주었습니다. 발에 신발을 신겨 주었습니다. 살진 송아지를 잡았습니다. 아버지는 잔치를 하고서 아들의 잃어버렸던 지위를 다시금 영광스럽게 회복시켜 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험을 만나셨습니까? 어려운 일을 당하셨습니까?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이 있습니다. 그 음성에 귀를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나의 잘못이 무엇인지, 고쳐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난 뒤에 "내가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겠구나!"라고 결단하는 시간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마음에 결심이 섰으면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시기 바랍니다.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내가 만난 시험은 나에게 오히려 엄청난 축복을 안겨주는 하나의 놀라운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이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에게 약속된 축복이 있습니다.


2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잊어버리는 자가 복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말씀을 붙들고 말씀대로 살고 말씀대로 실행하는 자가 복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어떤 복이 약속되어 있습니까? 사도 야고보는 25절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에게 특별히 두 가지의 축복이 있음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25절 상반부에 보면 사도 야고보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유하게 하는 자는 온전한 율법"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에게는 자유하게 되는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유하게 하는" 율법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법, 곧 사람이 만든 법은 우리를 구속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자유하게 하는 율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합니다. 그리고 모든 문제에서 해결해 줍니다. 근심, 걱정, 염려, 고통, 무거운 짐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어려운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까? 문제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주시든지 그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자유케 할 것입니다.


화란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코리 텐 붐 여사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2차전 당시에 그는 화란에 있는 자기 집에 유대인을 감추어 주었습니다. 그것이 그만 나치에 의해서 발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족 모두가 포로수용소에 갇혔습니다. 거기서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언니도 죽었습니다. 코리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그 뒤에 유명한 부흥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조국 화란뿐만 아니고 미국, 영국을 순회하면서 전쟁으로 인해 지친 심령들에게 위로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전한 복음을 통해서 큰 위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코리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가 당했던 고통을 생각하면서 늘 이러한 마음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독일에는 가지 않을거야! 그 사람들은 더 고통을 당해야 돼! 더 괴로움을 당해야 돼! 독일은 망해야 돼!"


그러나 성령께서 강령적으로 역사하셨습니다. 견딜 수 없는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순종하는 마음으로 독일에 갔습니다. 그는 독일 사람들에게도 화해와 용서의 복음을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는 그 날도 교회에서 화해와 용서의 복음을 독일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난 뒤 관례에 따라서 그는 그곳에 참석한 교인들과 함께 일일이 악수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시선이 한 남자에게 집중되었습니다.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자기가 갇혔던 포로수용소의 악명높은 감독이었던 것입니다. 코리는 그 사람 때문에 말로 못할 고통을 당했습니다. 언니도 그 사람 때문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그 사람을 잊을 수 있었겠습니까? 코리는 속으로 하나님께 외쳤습니다.

"하나님! 저 사람만큼은 제가 사랑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저 사람을 제가 용서할 수 있습니까?"
성령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코리야! 나는 지금 너에게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느냐, 용서할 수 있느냐라고 묻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너에게 말한다. 그를 사랑해라. 용서해라."
코리는 다시금 외쳤습니다.
"하나님, 저의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제가 그것을 순종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가운데 그 남자가 자기 앞에 섰습니다. 그는 물론 코리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코리는 그를 마주하기가 싫었지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눈을 지그시 감고는 그의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는 떨리는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화란 사람인 당신이 이곳에 오셔서 용서의 복음을 전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독일 사람들이 전쟁 중에 저질렀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과거의 제 잘못을 용서함 받고,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서 오늘 이렇게 예수님 앞으로 나아왔습니다."
코리는 그 말을 듣는 순간에 너무나도 기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는 그 때의 체험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 순간 하늘의 문이 활짝 열리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온누리에 충만하게 임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 마음 속에 그토록 짓누르고 있던 고통 속에서 나는 완전한 자유함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근심, 걱정, 고통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든 문제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실 것입니다.


둘째로, 약속하신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온전한 율법"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법은 온전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만든 법은 부족합니다. 자꾸 뜯어 고쳐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온전하기 때문에 우리의 부족함을 온전하게 채워줍니다.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어줍니다. 병든 것을 다시금 본질대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누가복음 5장에 나오는 기사를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에서 밤이 새도록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는 노련하고 경험이 많은 어부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밤새도록 노력했지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어쩔 수 없이 빈 배를 바닷가에 갖다 대고 그물을 싣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상식에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그물은 밤에 내려야지 아침에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또 깊은 데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적당한 깊이에 내려야 합니다. 경험에도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렸습니다.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았습니다. 그물이 찢어졌습니다. 그는 동료들을 손짓해서 불렀습니다. 고기를 잡은 것을 배에 채우니까 두 배에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려운 일을 당하셨습니까? 여러분의 삶에 부족한 것이 있습니까?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온전하게 채워지는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아침에 그물을 던져라"고 말씀하시면 아침에 그물을 내리십시다. "깊은 데 가서 그물을 던져라"고 말씀하시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십시다. 상식에 맞니 맞지 않느니, 경험적으로 틀린 말이니 옳은 말이니,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면 그대로 순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나머지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시험을 만나셨습니까? 어려운 일을 당하셨습니까? 자유함을 누리기를 원하십니까? 부족함이 채워지기를 원하십니까? 무슨 말씀을 주시든지 그 말씀을 붙들고, 깨닫고, 결심하고, 결심한 바를 실천에 옮기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말라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이런저런 어려운 시험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어려운 문제 때문에 고통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그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무슨 말씀을 주시든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주신 말씀이라 믿으시고 그 말씀을 붙들면, 내가 당하는 시험 속에서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음성이 있습니다. 그 음성을 듣는 가운데 그 동안 나의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깨달았으면 잘못된 것은 과감히 고치고, 바르게 살겠다는 결단을 내리십시다. 그리고 결심한 바를 실천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시험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모든 문제에서 자유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부족했던 것이 채워질 수 있습니다. 실패가 성공으로 바뀌어질 것입니다. 경제적인 문제, 건강의 문제, 가족의 문제, 나와 너와의 관계의 문제, 이 모든 것에서 자유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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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17 마태복음 오병이어(五餠二魚)의 놀라운 힘 [4] 마14:13-21  김부겸 목사  2015-10-21 887
12616 에스겔 비우면 채워진다 겔33:1-20  최장환 목사  2015-10-20 872
12615 예레애가 속마음의 진실함 렘33:1-22  최장환 목사  2015-10-20 341
12614 마가복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막5:21-34  김경형 목사  2015-10-19 607
12613 마가복음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막5:21-34  김경형 목사  2015-10-19 519
12612 갈라디아 구원과 복 갈3:6-9  강종수 목사  2015-10-18 367
12611 이사야 높은 산에 오르라 사40:9-11  강승호 목사  2015-10-18 641
» 야고보서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약1:22-25  박상훈 목사  2015-10-17 538
12609 야고보서 온유함으로 받으라 약1:19-21  박상훈 목사  2015-10-17 585
12608 사도행전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행9:31  박상훈 목사  2015-10-17 563
12607 누가복음 실패를 성공으로 눅5:1-11  박상훈 목사  2015-10-17 541
12606 마태복음 진주의 비유 마13:45~46  박상훈 목사  2015-10-17 641
12605 시편 과거로부터 온 뉴스 시104:1-9,24,35c  강승호 목사  2015-10-17 308
12604 마태복음 원수사랑, 하나님 나라 열쇠 [1] 마5:43-45  한완상 형제  2015-10-16 476
12603 요한복음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file 요9:32-41  김근철 외4  2015-10-16 401
12602 에배소서 펜들힐에서의 만남 엡5:8-9  조성희 자매  2015-10-16 445
12601 빌립보서 세상 살다보니까 빌1:6-14  윤여성 형제  2015-10-16 414
12600 마태복음 빠른 생각, 느린 생각 file 마7:21  조혜자 자매  2015-10-16 560
12599 히브리서 환대하는 공동체 히13:1-3  정경일 형제  2015-10-16 383
12598 요한복음 이제 우리의 신앙은 교회가 아니다. 요4:39-42  허태수 목사  2015-10-15 370
12597 요한복음 우리가 넘어서야 하는 것들 요6:1-15  허태수 목사  2015-10-15 650
12596 요한복음 이런 여자 어디 없습니까? 요11:17-35  허태수 목사  2015-10-15 460
12595 요한복음 허튼 수작에 넘어가지 마시고요. 요13:1-11  허태수 목사  2015-10-15 435
12594 마가복음 요즘 [교회]는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까? 막11:12-14  허태수 목사  2015-10-15 435
12593 시편 남겨둘 줄 아는 사람 시49:1-20  최장환 목사  2015-10-13 547
12592 예레미야 엎드림의 영광 렘31:1-14  최장환 목사  2015-10-13 579
12591 에배소서 복종하고 사랑하라 엡5:24-25  김남준 목사  2015-10-13 397
12590 신명기 네 부모를 공경하면 신5:16  김남준 목사  2015-10-13 568
12589 에배소서 네 자녀를 사랑하라 엡6:4  김남준 목사  2015-10-13 476
12588 요한복음 장애와 하나님 영광 요9:1-4  김남준 목사  2015-10-13 477
12587 베드로전 구원의 은혜를 전파함 벧전2:9  김남준 목사  2015-10-13 519
12586 호세아 미끄러진 자를 돌이키심 호5:15-6:1  김남준 목사  2015-10-13 337
12585 로마서 예수부활과 우리 생명 롬1:4  김남준 목사  2015-10-13 626
12584 누가복음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눅23:26-27  김남준 목사  2015-10-13 1006
12583 로마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8-39  조용기 목사  2015-10-11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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