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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 하시니.

마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559 추천 수 0 2015.10.25 16: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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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5:35-43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5장 35절-43절: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가로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치 아니하시고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훤화함과 사람들의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들어가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저희가 비웃더라 예수께서 저희를 다 내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심이라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저희를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구원사역에 있어서 데리고 가야 할 사람이 있고, 데리고 가지 않아야 할 사람이 있다. 그러니 우리는 평소에 늘 하나님의 영광을 볼 자들로 예수님의 마음에 들면 얼마나 좋을까?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으로 가다보니 아이가 죽었다고 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멀리서도 들린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집에 들어가셔서 그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한다. 여기서 사람들은 아이가 죽은 것을 놓고 죽었다고 하고, 예수님은 잔다고 하고 있는데 누구의 말을 듣겠느냐?


사람이 죽어갈 때 숨을 들이마시고서 내쉬지를 않으면 죽은 거다. 그런데 코를 심하게 고는 사람은 ‘크르렁’ 하면서 꽤 오랫동안 가만히 있는다. 그러다가 한참 후에 숨을 내쉰다. 그런데 본인은 자기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모른다. 그걸 보면 ‘야, 사람이 저렇게 목숨이 끊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다가 조용히 죽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거다.


사람들은 아이가 죽었다고 하고, 예수님의 말씀은 아이가 죽은 게 아니라 잔다고 한다. 여기서 누구의 말을 믿겠느냐? 인간을 만드신 예수님을 믿겠느냐, 지음을 받은 인간의 말을 믿겠느냐? 누구의 말이 불완전한 거냐? 사람의 말이 불완전한 거다.


누가 신령한 실상적 존재인가? 예수님. 누가 가견적 현상적 존재인가? 인간 자기다. 원형은 누구이고 모형은 누구인가? 원형은 하나님이시고 모형은 인간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만들었고 인간이 원형이고 하나님은 모형이시냐? 아니다.


‘죽었다. 잠잔다’ 누구의 말이 맞는 말이냐? 선악과 먹은 지식은 죽었다고 알고 있고, 사람이 숨이 끊어지면 죽었다고 말하지 잠잔다고 말하지 않는다.


잠잔다고 하는 것은 깨어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므로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요란스럽게 울 필요는 없지 않은가? 더더군다나 예수 믿은 사람이 죽으면 안 믿는 사람들과 똑같이 울 필요가 없는 거다. 왜냐? 자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안 있으면 너 나 할 것 없이 깨어 일어날 텐데 예수 믿는 사람이 왜 잠자는 사람을 보고 우느냐?


세상은 선악과를 따먹은 세상이라서 워낙 주장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이 진짜처럼 보인다. 우리는 안 믿는 사람들과 지식이 다르다. 다르지만 그 지식은 실상적 지식으로서 정확한 지식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여러 가지로 보여주셨다. 첫째는 인간 입장에서 볼 때 만인간들이 ‘죽었다. 또는 죽고 없다. 시체도 썩고 없다’ 다 말을 해도 영육 결합체로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믿는 자 모두를 변화 부활로 깨우실 것이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도, 화장터에서 불에 타서 재로 다 날아가도, 또 시체를 태워서 재를 사탕처럼 만들어서 산에 던져놓기도 하는데 이렇게 되면 이 산 저 산의 새들이 와서 주워 먹고 새들의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고, 그리고 사람들이 그 새를 잡아서 먹었다면 그 사람의 시체가 몇 군데로 퍼져 나가는 것이냐?


이건 엄청나게 어지러운 거다. 과학적으로도 찾을 길이 없다. 그러니 이렇게 흩어진 몸이 나중에 어떻게 변화 부활을 하는 거냐? 과학적으로 증명을 할 수 있는 거냐? 그래도 하나님은 만능의 능력자시니까 가능하다. 어떤 방법으로건 당신의 백성들을 변화 부활로 다 깨우신다.


변화 부활할 그 때에 예수 믿다가 죽은 사람들, 사실 죽었다는 것도 우리 말이지 변화 부활한 그들에게 ‘너는 죽었다가 부활을 했다’ 라고 하면 그들이 자신이 죽었었다고 할까? 아마 잤다고 할 것이다. 그게 실상이다. 우리는 실상적인 말을 해야 한다. 그러니까 누가 죽었으면 죽었다고 말하기보다 자러 갔다고 해야 한다. 그러니 믿는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별로 눈물 흘릴 것도 없는 거고, 현재적으로 예수 잘 믿다가 나중에 먼저 믿고 간 그들과 만나면 된다.


두 번째, 변화산상에서 부활의 그 증거를 보여주셨고, 또 죽어서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리심으로서 보여주셨다. 그게 실상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무덤에서 부활하셨을 때 죽었던 자들이 몇 명 살아나서 성 안에 들어가서 살아난 것을 보여주었다.


세 번째, 육신이 죽어 기식이 없는 자를 영혼이 돌아오게 해서 숨을 쉬며 살아나게 하셨듯이 신앙성장 면에서 죽은 것처럼 잠자는 자를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교훈으로 살아있게 깨우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셨다. 참 신비롭다. 이건 일반 인간의 지식으로는 감이 안 오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건 예수 믿는 믿음의 질이 있는 건데, 그 질이 세상 육질인지 영질인지 하는 그 질이 있다. 그걸 분간을 못하면 ‘믿으면 그냥 믿는 거지’ 한다. 공기도 공기의 질이 있는 건데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공기를 마시면 사람이 사는 거다. 물도 오염되지 않은 진짜 물을 먹으면 속에 있는 것이 육신적으로 많이 살아난다. 그래서 약수를 찾는 거다.


40절: 예수님의 말씀에 비웃는 자들은 선악과를 먹은 지식인 고로 안다고 하는 지식의 기준이 인간을 만드신 하늘의 지식에 못 미친다. 인간들은 땅의 지식, 물질의 지식, 경험적 지식이라서 사람마다 보는 견해도 다르고 이해타산 소원 목적도 다 다르다.


이런 자들이 아이가 죽은 것을 예수님께서 잔다고 그러니까 그 예수님을 비웃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내어보냈다. 그러니까 그들은 땅의 지식, 물질의 지식, 경험적 지식이라서 예수님과는 보는 견해도 다르고 이해타산도 다르고 소원 목적도 다 다르다. 그래서 인간을 만드신 주님이 그런 자들을 모두 내어보낸 것이다.


여기도 계시가 있는 거다. 그런 자들을 모두 내보내야만이 하나님의 역사, 신앙 믿음을 살리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무슨 말이냐? 사람들이 교회에 오면 생명의 말씀으로 하나님을 안 믿고자 하는 거, 또 못 믿는 것, 또 세상 소원 목적 또는 세상적인 이해타산을 가지고 있는 그 정신 사상 그 지식을 내보내야만이 거기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새 사람이 일어난다.


나쁜 친구는 끊어야 한다. 끊어야 좋은 친구를 따라갈 수 있다. 좋은 친구는 끊으면 안 된다. 또 나쁜 친구를 자르게 한 후에 그를 혼자 두면 안 된다. 좋은 친구를 만나게 해야 한다. 혼자 두면 또 나쁜 친구들이 와서 데려간다.


잠자는 신앙자의 옆에서 세상 물질적 육신에 관한 소원 목적이나 세상 일반 도덕성을 얘기하고 떠들고 있다면 거기에는 신앙생명은 살아나지를 않는다. 신앙 믿음이 없는 사람은 맨 일반지식화로 돼 있는 건데 전하는 사람이 그런 사람에게 일반 도덕성이나 경험을 얘기해주면 신앙이 살아나지를 않는다. 절대로 신앙 믿음이 살아나지를 않는다.


예수님께서 구원으로 살리는 일에 믿음 없는 일가친척들이나 믿음 없는 이웃들이나 믿음 없는 형제들이 또 믿음 없는 교인들이 살리는 그 일에 협조는커녕 비꼬기나 하고 비웃고 사람의 마음을 인정정실로 약하게 만들고 예수님을 오지 못하게 하며 구원역사를 가로막는다면 그런 자들을 모두 추방해야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아홉 제자를 오지 말라고 한 이유도 아마도 살리는 일에 방해가 되어서가 아닐까?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깨울 수 있기 때문에 잔다고 하셨는데 만일 아홉 제자들을 거기에 데리고 갔다면 아홉 제자들이 다른 사람과 합세하여 예수님의 그 말에 대해 아이가 죽었다고 떠들면 예수님의 제자가 된 가치가 어디 있겠느냐?


예수님께서 아이의 부모와 세 제자와 함께 아이가 자는 방으로 들어가서 아이의 손을 붙잡고 ‘달리다굼’ 즉 ‘소녀야 일어나라’ 하니 그 아이가 눈을 뜨고 깨어났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아람 방언으로 ‘달리다굼’이라고 하신 이유가 뭘까? 아이의 부모가 아람 사람이었을까? 아람의 뜻은 ‘높음’이니 말하자면 질이 높은 신앙으로 깨어나라는 뜻일까? 죽어있는 아이를 보고 ‘달리다굼’이라고 했으니까 신앙 믿음이 자고 있는 성도들에게 이제는 질이 높은 신앙으로 깨어나라는 말씀이 아닌가?


열두 살 먹은 아이가 일어나서 방안을 이리저리 걸어 다녔다. 사람들은 이 신비로운 일에 어안이 벙벙하다.


그런데 만일 아이의 부모가 사람들의 말을 믿고 ‘내 아이가 이미 죽었으니 예수님은 안 오셔도 됩니다’ 했다면 그 아이가 살아났을까? 그러니까 죽은 믿음을 살리고 영인을 성장시키려면 일반적인 말을 신앙 믿음의 말처럼 듣지 말고 인간 자신을 만드신 주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구원의 효력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부모와 아이와 제자들은 간증거리가 많다. 그런데 왜 이 사건을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말라고 했을까? 예수님 자신을 위해서일까, 부모와 아이를 위해서일까, 제자들을 위해서일까? 누구를 위해서 아무에게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한 것일까? 우리 같으면 막 광고를 해서 소문을 내겠는데 왜 조용히 하고 입을 닫으라 했을까?


단순히 육신에 관한 일이라면 전하라고 하겠지만 이것은 영적인 일에 관한 것이므로 아무나 안 믿어지고 못 믿어지는 것이므로 그렇다. 사람들은 육신의 죽음이 왜 왔는지 모른다. 또한 생명과를 먹는 것이 참 자유인지, 안 먹는 것이 참 자유인지도 모른다. 또한 선악과를 먹는 것이 참 자유인지, 안 먹는 것이 참 자유인지 그것도 모른다. 영이 죽어있는 자는 이런 것을 모른다.


현재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를 먹는 참 자유를 모른 채 선악과를 먹는 것을 자기의 참 자유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육신의 생명이 죽은 것처럼 자기의 성장될 신앙생명이 죽은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 그래서 말해봐야 모르기 때문에 말을 못하게 한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 승천을 본 후에라야 알게 되는 것이다.


죽은 자가 살아났으면 이게 얼마나 좋은 일이냐? 그런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한다. ‘내가 십자가에서 죽고 삼일 후에 살아날 때까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는 것은 당신의 부활을 보기 전에는 말을 해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은 말을 하지 말라는 말로만 듣지 말고 말을 해도 모르기 때문에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여자의 혈루증에서 보면 이 여자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먹고 마시고 산 것 전부는 사망계로 빠져나가는 것을 봤다. 그러니까 길이요 진리요 생명, 하늘의 생명을 만나기 전에는 다 사망이다. 여러 말할 것 없이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은 먹고 마시고 행복하다 하는 거 이력 경력 자랑스러운 거 전부 다 사망계로 빠져나간다. 하늘로 올라갈 것은 없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니, 구원을 만나니 전부는 영원 생명계로 들어간다고 하는 그 이치를 우리가 봤다.


그러니까 시시하게 ‘병자 살아났네. 간증하자’ 그런 게 아니다. 그건 이치도 아니고 그걸 말하려는 게 아니다. 예수를 만나니, 구원을 만나니 전부는 생명계로 들어감을 말한다. 먹고 마시고 일하는 것마다 전부는 생명계이다.


또한 야이로의 열두 살 먹은 딸을 살리심은 영적 생명이 성장되지 않고 죽어있는 것을 살려내신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는 거다. 육신 살려내는 그걸 들고 와서 신앙성이 죽은 것을 살려내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기본구원은 전제하고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를 잘 먹이면 살아나겠구나’ 이게 들어있는 거다. ‘소생을 하겠구나’ 이게 들어있는 거다. 이건 성령님의 역사다. 예수 믿는 사람은 늘 그 하나님의 신의 역사를 받고 있는 것이다. ‘예수 믿어 세상에서 잘 살고’ 하는 이거는 저질이다.


참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세상명절이 아무 것도 아니다. 어쨌든 이웃에서 ‘저 집은 제사음식은 안 먹는다’ 하게 만들라.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통을 겪은 여자나, 열두 살 먹은 죽은 소녀나 둘 다 예수님을 못 만났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아이는 영적으로 말하면 희망 소망 즐거움 행복이니 그 아이가 죽으면 그건 다 죽는 거다. 못 살아나면 그게 다 죽는 거다. 그리고 여자가 계속 먹고 마시고 산다 할지라도 예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수십 년을 살았다고 해도 전부는 사망계로 빠지는 거다.


지금 ‘아이가 살아났다. 안 살았다’ 하고만 생각할 게 아니라 살아났다는 것은 미래의 기쁨 행복 즐거움, 영생으로 들어갈 거, 건설이 다 살아난 것이 들어있는 거다. 살아난다는 거기에는 그게 들어있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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