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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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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우님!
댓글 잘 읽었습니다. 기독교에서 과거에서 현대신학에 이르기까지 성경을 해석하는데 여러가지 방법론을 적용해본 것은 사실입니다. 님의 글을 보면서 성경을 역사적으로 비평하는데 양식사적 방법론이나 전승사적 방법론 등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본래의미와 전혀 다른 이야기임을 아신다는 생각이 듬니다.
성경을 보는 견해는 학자들에 따라서 비평하는데 그 사회 상황을 살펴보려는 것은 자유이지요. 이미 언급한대로 현대식학에 이르기까지 해 왔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의도와 달리 적용되는 것은 결국 실패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누가 그 시대에 상황에서 필요해서 재생하고 정서되었다고 하는 역사배경을 말하기 전에 경전에 기록된 문장을 읽고 설명하면 그 글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선 성경에 기록한 문장을 읽고 그 글의 내용 진부를 말할 수 있은 후에 역사비평을 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님의 글을 읽은 사람으로는 성경을 현대적 방법으로 접근해보려는 학문의 일종으로 보자는 것 같습니다.
필자는 한국의 구약성경의 저명한 분이 기독교가 들어온지 100년이 넘었으나 우리는 구약신학을 강의해왔지만 구약성경의 글을 해석하는 일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제부터 한국학자들이 이 일을 시작해야 할 시점에 이르지 않았느냐? 라고 던지시는 말씀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제 현대신학적인 방법을 접고 기록된 글을 읽고 내용이 무엇인지 보려는 노력을 학자들이 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글이 세상에 주석되었다고 보는 분들이 상당히 많아요. 그러나 이 학자의 말씀은 진실한 것입ㅁ니다.
님이 설명하는 십계명의 제오계를 신약성경에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이 주장하는 '장로의 유전'에 대해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 말씀은 이 계명이 인간관계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를 또한 유대전통인 제사제도의 변천이라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십계명의 형성과정을 모르는 데서 인용된 글이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의 무지한 인물이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되는 것이지요. 결국 기독교의 생성이란 종교적인 사람들이 편집한 글을 보는 것이지 믿을 것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 되는 것이지요?
예수께서 제오계명을 인용한 것은 구약성경 형성에 관한 지식도 모드로 인용한 것으로, 지식사회에서 소외시키는 현대신학의 극치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에 보낸 편지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한 이 말씀은 십계명의 내용을 적용한 말씀입니다. 이는 2천년 전에 교회가 단순히 이 땅에 있는 육신의 부모를 공경하라고 훈계하는 말로 기록된 글이 아니라는 점은 그가 구약성경에 기록된 이 계명에 무지해서 성도들에게 말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그의 편지 내용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가 신학하던 때는 현대신학에서 성경을 하나의 고대어로 된 책으로 취급하던 시대이었습니다. 극단적으로 예수도 한 시대의 선생이라고 공공연히 교단에서 말하던 떼었어요. 그 대표 인물이 블트만이었죠? 교회는 이 사상이 지금도 세계교회 강단을 완전히 점령하고 있어요.
성경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이렇게 하나의 사회현실을 역사화한 책으로 보는 시각에서 조금 멈추고 기록된 글을 읽고 그 글을 성명하거나 비평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성경의 66권중 어느 한 책에 기록된 문장의 형식이나 글을 읽지 못하고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현대교회에서 성경에 기록된 문장과 본문내용을 확증할 수 있도록 설명되어본 일이 지금 시급합니다.
지금 한국에서 성경의 전승사를 말하는 블트만처럼 원문성경을 해석하면서 성경을 비평하시는 학자들이 계십니까? 그분들이 성경은 비과학적이거나 옛 사람들이 그 시대에 자기를 옹호하기 위한 글이라거나 등 신학을 말하는 근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원문성경을 읽고 말할 수 없이 성경을 말한다는 것이 논리상 맞는지 이를 하도록 촉구해야 할 것이 아닙니다.
글은 새가 난다고 기록해놓고 글을 몰라 이를 기차가 달린다고 말하면 그 사람을 뭐라고 해야 합니까? 지금 세계는 성경에 무지한 사람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성경을 말하는 학자들까지 성경을 읽고 말하지 않는다면 학자의 근본을 버린 것이나 다름아잖아요? 그래도 현대신학자로 성경을 비편한 블트만은 요한복음을 원문을 읽고 그 글을 해석한 책을 세계에 내놓고 실존주의적 입장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 한국신학자들 중에는 원문성경의 문장을 설명하는 글은 없이 주변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말하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역사를 살펴보고 신학을 그 근거를 가지고 세상에 선포합시다. 감사합니다.
김익수 목사(목원대학교 목회교육원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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