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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협한 마음을 버리십시오

말라기 이한규 목사............... 조회 수 461 추천 수 0 2015.10.29 18:2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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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말1:1-5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643) 2015.7.6 

편협한 마음을 버리십시오 (말라기 1장 1-5절)


< 대 자유의 축복 >

 예수 믿고 얻는 중요한 축복 중의 하나가 바로 자유의 축복입니다. 그 축복을 위해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은 자신을 ‘예수님의 종’으로 자처했습니다. 거룩한 종이 될 때 참된 자유를 얻습니다. 미신 신봉자는 이사 가는 날짜나 장소도 점에 의지할 때가 많습니다. 미신은 믿을수록 자유를 잃습니다. 반면에 성도는 예배드리는 주일만 빼고 아무 날이나 이사 가면 됩니다. 어디로 이사 가야 합니까? 성도에게는 재수 좋은 장소가 따로 없습니다. 자기 상황에 맞게 잘 판단해서 이사 가면 됩니다. 하나님은 네가 어디로 가든지 함께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인간 최대의 불행은 자유를 잃는 것입니다. 언제 자유를 잃습니까? 참된 자유를 주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때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겠다는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열심히 사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사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는가? 이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에 대한 분명한 의식도 없이 열심히 달리면 어느 순간에 벼랑 앞에 서게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비전을 잃지 마십시오. 자기에게 주어진 복은 거룩한 비전을 이루는데 사용하라고 주어진 복입니다. 그 복을 거룩한 비전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면 결국 빼앗깁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한 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멋지게 시위하고 증거함으로 많은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품으로 이끌라는 뜻입니다. 그 특권을 오용했기에 그 특권의 잔이 이방인에게 넘겨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고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면 그 복을 빼앗깁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주신 복을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위해 책임 있게 사용하면 하나님이 더 많은 복과 자유를 주십니다. 그때 남의 시선에서도 자유롭게 됩니다. 남의 인정과 존경을 받으려고 너무 애쓰지 마십시오. 진리의 길이 때로는 외롭지만 오히려 혼자 있을 때 하나님과 진리에 더 가까워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람과 엮이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활용하면서 위대한 길을 갔던 사람들도 많습니다. 혼자 사색을 통해 자기와의 창조적인 대화시간을 많이 가지면 내면세계는 더욱 풍성해집니다. 예수님도 종종 홀로 한적한 곳에 가서 사색하고 기도했습니다. 조금 더 침묵하려고 할 때 하나님의 음성이 더욱 생생하게 들리게 되고 조금 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할 때 군중과 바람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제대로 갈 수 있습니다.

< 성도가 묶이지 말아야 할 것 >

 세상이 어두워지면 영혼의 자유를 박탈하고 잘못된 것으로 묶으려는 어둠의 세력들이 커집니다. 그런 세상에서 인생의 거룩한 목표를 잃지 않으려면 잘못된 것에 엮이거나 묶이지 말아야 합니다. 특별히 다음과 같은 4가지에 묶이지 마십시오.

1. 형식주의

 말라기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로 시작됩니다(1절). 어떤 경고입니까? 형식적인 신앙에 대한 경고입니다. 형식주의에 매이는 것은 현재 내용이 빈약하다는 반증입니다. 또한 형식주의는 점차 있던 내용도 없어지게 합니다. 한국 학생들은 대학 입학 전까지는 죽어라고 공부하지만 대학에 들어가면 공부를 소홀히 합니다. 그러다가 대학 졸업 후에는 책과 아예 담을 쌓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대학 간판이란 외형’은 있지만 ‘실력이란 내용’은 없게 됩니다. 그처럼 성도도 간판만 있고 내용이 없는 형식적인 신앙에 묶이지 말아야 합니다.

 요새 소그룹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평신도들을 사역자로 활용하는 교회가 많습니다. 평신도를 깨우고 활용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몇 단계 제자훈련 공부를 마친 후 그 공부를 마친 사람이 아래 단계의 제자훈련 공부를 인도하며 가르치다가 마음이 선생처럼 높아지는 부작용도 많습니다. 어느 공동체든지 헌신하는 것보다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는 멤버가 늘어나면 그 공동체는 점차 성장 동력을 잃습니다.

 헌신이 앞서면 내용이 풍성해지지만 가르침이 앞서면 내용이 빈약해집니다. 그 빈약해진 내용을 외형으로 포장할 때 형식주의에 묶입니다. 목회자도 강단에 서면 공식적으로 인정된 자리이기에 가르침을 베풀되 강단에서 내려오면 최대한 가르치는 어투를 피해야 합니다. 가르치기를 좋아하기보다는 말씀대로 실천하기를 좋아하고, 머리로만 말씀을 많이 알기보다는 몸으로 말씀을 많이 실천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때 형식주의의 사슬에서 벗어나 자유의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2. 운명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의 말씀을 전하면서 가장 먼저 “내가 너희를 사랑했다.”는 말씀부터 했습니다. 그때 백성들이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했습니까?”라고 반문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형식적인 신앙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런 어리석은 반문에 대해 하나님이 다시 말씀했습니다.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야?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했고 에서는 미워했다.”

 이 말씀은 예정론을 정당화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내가 야곱을 사랑받는 자로 예정했고 에서는 미움 받는 자로 예정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신분’은 사람의 선택이 아닌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으로 확정될 때가 많지만 ‘행위’는 사람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고 하나님은 그 행위에 대해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예정론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을 강조한 사상이지 ‘변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을 강조한 사상이 아닙니다.

 이삭의 두 아들 중 누가 형으로 태어나게 할지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의 문제지만 실제로 둘 중에 누가 더 복된 자가 될지는 둘이 스스로 선택하는 행위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결국 이 구절에서 하나님이 에서를 미워했다는 말은 창세전부터 에서를 미운 존재로 선택해서 이 땅에 태어나도록 예정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에서가 장자권을 잃은 것은 ‘에서의 운명’ 때문이 아니라 ‘에서의 행동’ 때문이었습니다.

 에서는 배가 고팠을 때 장자의 명분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하나님의 축복을 경시하고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았습니다. 에서처럼 하나님의 축복을 경시하며 믿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지 않는 것은 겉으로는 고상하게 보여도 하나님의 미움 받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바른 축복 신앙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갈망도 없는 믿음은 추상적이고 운명론적인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기복주의 신앙도 주의해야 하지만 운명론적인 신앙도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박탈해서 운명론에 묶어두지 않았습니다.

3. 행동주의

 하나님의 심판으로 에돔이 황폐해졌을 때 에돔은 철저히 회개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에돔은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도전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황폐하게 한 것을 다시 쌓겠다고 했습니다(4절). 그런 태도는 넘어져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는 긍정적인 믿음의 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한 태도입니다. 운명론을 거부하는 것은 좋지만 자기가 하면 다 된다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내세운 잘못된 행동주의도 주의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에 깊이 젖어들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외면하고 자기 행동과 경험을 신뢰하면 점차 영혼이 병들게 됩니다. 어떤 이단 목사는 주장합니다. “여러분! 내가 약 8천 번의 임상실험을 해보았는데 귀신은 불신자들의 사후 영이었습니다.” 그렇게 귀신론을 내세워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면서 포교활동에 크게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8천 번이 아닌 8억 번의 경험을 했어도 성경적인 근거가 없다면 그것은 자기중심적인 행동주의자의 헛된 주장일 뿐입니다.

 신앙과 신념은 아주 다른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신념은 자기를 믿는 것입니다. 한때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구호가 대단한 믿음의 구호처럼 한국 교회에 유행했었습니다. 그런 구호를 내세워 과정이 생략된 성공과 성장을 추구함으로 성공과 성장은 얻었지만 한국교회의 가치저하와 불신자들의 교회조롱이란 안타까운 결과물도 얻게 되었습니다. ‘덕과 윤리와 인격과 성도다움’이 외면된 상태에서 하면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외형적인 목표를 이룬들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 가르치는 목사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성도님! 무조건 하려고 하지 말고 못하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 뜻대로 바르게 해야 합니다. ‘하는 것’보다 ‘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렇게 바로 하면 결국은 됩니다.” 세상의 처세술이나 성공학에서도 강조하는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신념을 따라 무조건 “하면 된다. 할 수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 안에서, 말씀 안에서, 진리 안에서 바르게’란 전제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교회의 수준이 얼마나 낮아지겠습니까? 성도는 자기 신념에 의한 행동주의의 사슬도 잘 벗어나야 합니다.

4. 지역주의

 에돔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면서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지역 밖의 이방 세계에서도 크신 분이라고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5절). 이 말씀은 불신자들에게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더 나아가 자기 출신 지역이나 나라 밖으로도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살아계심을 나타내야 한다는 메시지로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기 출신 지역과 국가와 민족을 사랑해야 하지만 그런 사랑이 너무 지나쳐서 이기적인 지역주의와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에 묶이면 안 됩니다. 성도는 마음이 높아져도 안 되지만 잘못된 벽을 높이 쌓아도 안 됩니다.

 한 산부인과 의사 장로님의 간증입니다. 1970년대에 철야기도를 할 때 그 장로님은 개인기도 시간에 가족과 자녀와 병원과 교회를 위해 10분만 기도하면 더 기도할 것이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통행금지 시간이어서 철야기도회를 새벽 4시까지 했는데 그 오랜 시간을 거의 졸면서 보냈습니다.

 그때 매주 그분 옆자리에서 열심히 기도하는 장애인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한번도 졸지 않고 밤새도록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장로님이 어떤 기도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 궁금해서 하루는 그 청년의 기도를 들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교우와 이웃과 나라와 민족과 세계선교를 위해 4시간을 죽 기도했습니다. 그때 장로님은 큰 감동을 받고 그 청년의 후원자가 되었고 자신도 관심과 사랑의 대상을 넓히고 늘 선교마인드를 가지고 살았다고 합니다.

 가끔 보면 새벽에도 버스를 돌리는 교회가 있습니다. 자기 교회에서만 말씀을 듣고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이단성이 있는 교회일수록 그런 유사한 경향들이 심해집니다. 바른 말씀을 듣고 영성과 지성이 깨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편협한 마음을 버리고 욕심과 자기중심주의도 버려야 합니다. 자기라는 벽과 틀에 가두면 그 교인들 중에 어떻게 인물이 나오겠습니까? 또한 그런 교회가 어떻게 참된 선교를 하겠습니까? 관심 대상과 선교 사명을 힘써 확대시켜야 복된 미래도 열리게 됩니다.

< 편협한 마음을 버리십시오 >

 끼리끼리 의식의 본능을 잘 극복해야 합니다. 의식적인 분별은 필요하지만 의식적인 차별은 버려야 합니다. 남녀의 성이나 출신지역이나 출신민족이나 출신인종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차별의식을 가지면 하나님 앞에 큰 교만 죄를 짓는 셈이 됩니다. 그런 사람은 큰 인물이 되지 못하고 혹시 잠깐은 크게 되어도 반드시 결말이 불행해집니다.

 후천적으로 몸담게 된 출신학교나 출신 공동체에 애정을 가지는 것이 잘못은 아닙니다. 그러나 ‘출신이 다르다고 배타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출신이 같다고 다 좋은 동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출신에 따라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어리석게 구별하지 말고 사람 자체의 행동과 성품에 따라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지혜롭게 분별해야 합니다. 특히 사람을 도매금으로 매도하는 언행은 최대한 삼가야 합니다.

 인터넷 댓글을 보면 가끔 여자 전체를 싸잡아 무서운 증오심을 표출하는 남자들을 봅니다. 함께 지냈던 여자로부터 큰 상처를 당했든지 아니면 여자한테도 이기지 못한다는 자기 열등감이 그렇게 표출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인류의 절반인 여자 전체를 도매금으로 싸잡아 증오하면 자신이 심하게 병든 존재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저는 남자로서 하나님이 여자를 창조해주신 것에 대해 수시로 얼마나 감사한 마음이 드는지 모릅니다. 동성이 서로를 위해주는 것보다 남녀가 서로를 위해줄 때 더 깊은 관계가 이뤄집니다.

 지역적으로도 같은 지역 출신이 서로를 위해주는 것보다 다른 출신이 서로를 위해줄 때 더 깊은 관계가 이뤄집니다. 영남과 호남도 서로를 위해줄 때 훨씬 더 깊은 충성관계를 얻습니다. 사실상 같은 지역 출신도 은혜를 배반할 때가 많습니다. 반면에 다른 지역 출신을 중용하면 배반하는 경우도 있지만 확률적으로는 충성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은혜를 아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람 개인의 능력과 성품을 보고 다른 출신을 포용하면 자신의 인력 풀은 커지고 축복의 지경도 넓혀지고 내일의 소망도 커집니다.

 가끔 보면 성도들의 부끄러운 얘기가 언론에 보도됩니다. 그런 보도가 인터넷에 뜨기만 하면 바로 매도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성도들에게 모멸감을 주는 댓글을 달면서 물어뜯습니다. 수동적인 성향으로 공격성이 덜한 사람은 그런 댓글에 찬성 클릭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실상’이나 ‘사람의 실상’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을 외면하고 그렇게 타인을 도매금으로 딱지를 붙이며 매도하기를 즐기면 점차 자신의 인격과 정신이 병들어가게 됩니다.

 남의 비난에 휩쓸려서 병든 편견이 자기의식 속에 자리 잡게 하지 마십시오. 어둠의 세력이 자기 영혼을 얽매고 자기 마음을 좁히려고 할 때 그 시도에 넘어가지 말고 그때 오히려 선교마인드를 앞세워 의식적으로 마음을 넓히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좋은 동지나 후원자도 붙여주시고 축복의 지경도 넓혀주실 것입니다. 항상 책임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를 잘 활용해 좋은 선택을 함으로 내일의 축복을 예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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