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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7:15-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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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647) 2015.7.10 |
온새기(1647) 이단 신앙의 4대 특징 (마태복음 7장 15-23절)
1. 겉과 속이
다르다
이단들은 겉으로는 선한 양처럼 보여도 사실은 양을 잡아먹으려고 노리는 이리와 같다(15절). 동물의 왕국에서 늑대가
사슴을 사냥하는 것을 보면 상당히 치밀하고 집요하다. 계속 사슴 떼를 바라보며 공격 기회를 엿보다가 약한 것이나 무리에서 이탈한 것과 같은
공격대상을 찾으면 일제히 달려들어 숨통을 끊어놓는다. 그처럼 이단들은 치밀하고 집요하게 영혼 사냥감을 찾는다.
특히 이단들은 기존
교회의 틀을 비판하며 공격할 때가 많다. 기존 교회의 틀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다. 보수주의(保守主義)에는 보수(補修)할 것도 많다. 그러나
이단들의 목적은 보수와 시정에 있지 않고 기존 교인들을 빼앗아가려는 것에 있기에 주의해야 된다. 교회를 사랑하는 동기에서 나온 비판은 겸손히
수용해야 하지만 교회를 파괴하고 교인을 빼앗으려는 비판은 그 동기가 잘못된 것이다.
2. 열매가 나쁘다
열매는 참된
성도 여부를 나타내는 핵심요소다(16-17절). 이단들은 성령의 열매를 무시하고 엉터리 논리와 교리에 집착한다. 또한 사고도 대개 극단적이다.
그래서 자기 헛된 논리가 탄로 나지 않도록 다른 말씀은 전혀 못 듣게 하고 경건서적도 못 보게 한다. 또한 이단들은 재산을 다 털어 바치게 하고
지켜야 할 비밀도 많고 비밀 모임도 많다. 그런 모습들만 봐도 “여기는 정상적인 곳이 아니구나!”라고 깨닫고 멀리해야
한다.
이단들은 일상의 땀도 중시하지 않는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다. 성도가 언제 들림 받는가? 밭에서 일하다가 들림 받고 집에서
맷돌 갈다가 들림 받는다(마 24:40-41). 그처럼 일상의 삶도 잘해야 하는데 이단들은 일상의 삶이 정상이 아니다. 삶이 정상이 아니면
신앙도 정상이 아니다. 이단들은 입으로는 누구보다 잘 믿는 것처럼 선전하지만 중요한 것은 삶의 열매이다. 그런 열매가 없다면 그가 주장하는
믿음과 은사는 자신에게는 착각이 되고 남에게는 쇼맨십이 된다.
3. 말과 행동이 다르다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셨다(21절). 이단들은 말로만
“주여! 주여!” 하고 행동이 없을 때가 많다. 입술의 고백이 다 중요한 것은 아니다. 가짜 고백도 많기 때문이다. 행동이 없는 그럴듯한 말에
속지 말고 영해라고 주장하면서 성경해석을 신기하게 해도 거기에 빠지지 말라. 한국 교회에서는 그런 성경 해석을 “성경을 잘 쪼갠다.”고
표현하는데 그렇게 쪼개다가 성경을 진짜 쪼개버린 경우가 많다.
이단도 때로는 진리를 말하고 사랑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영혼을
노략한다. 영혼을 노략할 수만 있다면 성경도 인용하는 존재가 사탄이다. 거짓 선지자도 얼마든지 설교를 잘할 수 있다. 개그에 탁월한 사람이
부흥사들의 비디오 설교를 보고 자기 설교로 재단한 후 탁월한 웃기는 재능으로 설교하면 누구보다 더 재미있게 잘 설교할 것이다. ‘입의 설교’보다
‘삶의 설교’가 더 중요하다. 아무리 성경을 내세워 신기한 말을 해도 그가 과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가를 보고 판단해야 이단에 넘어갈 확률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
4. ‘예수 이름’을 남발한다
종말 때가 되면 이단과 거짓 선지자들이 창궐해 “예수
이름으로!”를 입버릇처럼 수시로 내세우면서 예언자나 치유자인 척 한다(22절). 요새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란 말을 습관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예수님의 이름을 귀신을 쫓아내는 일종의 주문처럼 사용하는 것으로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가 될 수 있다. 기적이
다 하나님의 기적은 아니다. 거짓 선지자들도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도 행한다고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했다.
한국
교인들은 체험에 약하다. 체험만 있으면 잘 분별도 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체험이 진짜 하나님이 주신 체험이냐 하는 것이다. 구약성경을
보면 사울 왕도 선지자처럼 예언해서 이런 속담까지 생겼다(삼상 10:11). 가룟 유다도 다른 제자들과 함께 파송되어 주님의 이름으로 각종
기적을 행했다. 그는 주님을 믿은 것이 아니고 주님의 이름을 이용한 것이었다. 그처럼 “예수 이름으로!”란 말을 주문처럼 남발하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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