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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대상26: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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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정호 목사 |
참고 : | 2008년 02월 03일 http://www.bundong.com |
역대기상 26:4-8
오벧에돔이 받은 축복
4. 오벧에돔의 아들들 맏아들 스마야와 둘째 여호사밧과 세째 요아와 네째 사갈과 다섯째 느다넬과
5. 여섯째 암미엘과 일곱째 잇사갈과 여덟째 브울래대니 이는 하나님이 오벧에돔에게 복을 주셨음이며
6. 그 아들 스마야도 두어 아들을 낳았으니 저희의 족속을 다스리는 자요 큰 용사라
7. 스마야의 아들들은 오드니와 르바엘과 오벳과 엘사밧이며 엘사밧의 형제 엘리후와 스마갸는 능력이 있는 자니
8. 이는 다 오벧에돔의 자손이라 저희와 그 아들들과 그 형제들은 다 능력이 있어 그 직무를 잘하는 자니 오벧에돔에게서 난 자가 육십 이명이며
천 안에 호두과자로 유명한 할머니가 있습니다. 바로 65년간 변함없는 맛으로 전통을 지켜 온 심복순 권사입니다. 심 권사는 호두과자 상자 안에 전도지를 넣어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심 권사는 “나는 다윗보다 행복합니다”라는 고백을 담은 「다윗보다 행복해지려면」이라는 자전적 신앙 고백서를 펴냈습니다. 그녀는 왜 자신이 다윗보다 행복하다고 말했을까요? 심 권사가 호두, 밀가루, 설탕, 계란, 우유 등을 섞어 호두과자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34년부터입니다. 그녀는 제과 사업이 번창할수록 ‘육신의 배고픔을 채워 주는 빵뿐만 아니라 생명의 빵을 공급하는 복음 사역자로 쓰임 받는 기회를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의 열매로 전도지 발송을 28년째 하고 있고, 일곱 교회를 지어 봉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평생 호두과자를 구운 심 권사가 행복한 이유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께 소망을 뒀기 때문입니다. 심 권사는 다윗이 짓지 못한 성전을 일곱이나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남을 위해 물질을 사용하면서도 행복해합니다. 이런 행복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땅의 돈을 하늘의 돈으로 바꾸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에 따라 물질을 사용함으로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히 쓸 수 있는 돈을 저축하는 데서 행복을 찾는 사람입니다.
한 신앙인이 갖는 믿음의 결단은 그 영향력이 자신에게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한 가족과 공동체와 사회에 대대로 미칩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오벧에돔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오벧에돔과 그의 후손 육십 여명, 그리고 그들이 수행한 성전 문지기직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벧에돔은 한 때 법궤를 3개월 동안 자기 집에 타의에 의해서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오벧에돔과 그의 후손이 성전 문지기가 되었다는 사실을 본문은 위대한 축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벧에돔이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기에 본문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도 어떻게 살아야 오벧에돔이 받은 축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왕 신앙생활을 하려면 하나님의 특별한 복을 받아야 합니다. 저주 받거나 비참하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오벧에돔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영적인 교훈에 귀를 기울이는 큰 은혜와 감동의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결단했습니다
사무엘하 6장 10-11절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먼 저 법궤 이동 사건과 오벧에돔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윗이 아비나답의 집에 20년 동안 방치되었던 법궤를 다윗성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돌발적으로 마차에서 떨어지는 법궤를 잡다가 웃사가 즉사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분노와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머지 법궤를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갔습니다. 오벧에돔은 그처럼 살인적인 두려운 경황에서도 법궤를 기꺼이 맞아들이는 믿음의 결단을 하였습니다. 오벧에돔은 위험을 무릎 쓰는 용기가 있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순교적인 자세로 법궤를 모셨습니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결코 할 수 없는 큰 결단을 하였습니다. 오벧에돔은 이 결단으로 축복의 반열에 들어갔습니다. 이익이 되고 유리할 때는 누구든지 결단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이 왔다갔다하는 위험한 상황 속에서 목숨을 던져 결단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을 무엇을 위해 쓰며 누구에게 생명을 거느냐는 중요한 것입니다. 종종 싸움이나 돈 때문에, 기분 때문에 목숨을 내던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죽을 각으로 우리는 살아야 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성공하게 됩니다.
염려는 삶에서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빼앗습니다. 어떤 사람이 비행기 탑승 직전에 비행기가 공중 폭파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그는 염려하기 시작합니다. 그 염려 때문에 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는 눈부신 구름이나 그 위로 펼쳐진 청명한 하늘 혹은 붉은 빛으로 타는 석양을 전혀 즐기지 못합니다. 또 염려는 우리의 시각을 흐리게 만들고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것은 마치 안개와 같습니다. 마을 전체를 뒤덮는 두터운 안개에 포함된 물의 양은 실제로 한 컵도 되지 않습니다. 그 적은 양의 물이 눈앞의 건물을 보지 못하게 만들고 자동차들을 기어 다니게 만듭니다. 그리고 염려는 건강에도 해롭습니다. 엔도르핀 생산을 막기 때문에 궤양이 생기기 쉽고 두통과 마비 증상이 올 수도 있습니다. 어느 심리학자는 염려를 ‘느린 형태의 자살’이라고 했습니다. 의사 W.C. 알바레즈는 위장 장애의 80%는 염려와 두려움에서 온다고 했습니다. 염려는 영어로 ‘워리’(worry)인데, 고대 앵글로색슨어 ‘워겐’(wyrgan)에서 유래하고 ‘물어뜯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염려는 영적 무력증을 일으킵니다. 계속 염려하면 영적 감각을 상실한 채 무력감에 빠질 수 있습니다. 염려의 덫에 빠지지 않으려면 염려가 얼마나 무가치하고 해로운 것인지를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신뢰해야 합니다.
오벧에돔은 법궤로 인하여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서 법궤를 모시는 믿음의 결단을 하였습니다. 죽음보다 큰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미련하고 저주 같은 결단은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최고의 결단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매일 매일 물질과 사람과 생명과 신앙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합니다. 생각하고 계산하다가 결단을 미루거나 엉뚱한 결단을 할 때도 많습니다. 갈등은 언제나 결단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중심의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결단보다 큰 복을 내리십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항상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벧에돔처럼 믿음의 큰 결단을 함으로 큰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능력을 받았습니다
본문 8절 "이는 다 오벧에돔의 자손이라 그들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형제들은 다 능력이 있어 그 직무를 잘하는 자이니 오벧에돔에게서 난 자가 육십이 명이며"
갈 등하면 약함과 분열이 옵니다. 그러나 결단을 하면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본문을 보면 오벧에돔의 후손들이 잘 되고 능력의 사람들이 된 것은 큰 기쁨이며 자랑이며 행복입니다. 그래서 부모들이 자녀들을 위해서 수고하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아끼고 구두쇠가 되지만 자녀들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줍니다. 더 줄 것이 없을 때까지 줍니다. 더 주지 못하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며 안타깝게 생각할 뿐입니다. 이런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는 자녀가 있다면 이는 능력 있는 자입니다. 오벧에돔의 후손들이 성전 문지기가 되었습니다. 결코 보잘 것 없는 직책이 아닙니다. 이들은 성전을 밤낮으로 수비하며 자격이 없는 부정한 자들이 성전을 더럽히지 못하도록 무력과 명철한 지혜를 소유해야만 하는 힘든 직분입니다. 그래서 성전 문지기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한 마디로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벧에돔의 후손은 그러한 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조건 없이 결단하면 반드시 필요한 능력을 부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마더 데레사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조금은 부유해 보이는 중년부인이 근심어린 얼굴로 데레사 수녀를 찾아왔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여인이 고민을 털어 놓았습니다.
“수녀님, 저의 삶은 너무나 권태롭습니다. 그날이 그날인 것 같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의미가 없을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만 듭니다.”
데레사 수녀는 여인의 말을 듣고 있다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인도로 오십시오. 제가 살고 있는 인도로 오시면 진정한 삶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무 작정 인도로 오라는 수녀님의 말을 여인은 수긍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수녀님을 믿어 보자는 생각으로 여인은 인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녀가 물어물어 데레사 수녀를 찾아간 곳은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 불구자, 부모를 잃은 어린 아이들이 가득 모여 사는 곳이었습니다. 부인은 데레사 수녀가 노구를 이끌고 열심히 사람들을 돌보는 것을 보고 팔을 걷어붙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인은 그날부터 데레사 수녀 옆에서 가난하고 약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로하고 도왔습니다. 그러는 동안 부인은 기쁨과 의욕을 느꼈습니다. 그녀의 얼굴엔 어느새 생기가 가득했습니다. 하루 종일 눈코 뜰 새 없이 보냈던 그녀가 하루를 정리하면서 수녀에게 말했습니다.
“수녀님, 수녀님의 뜻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발견하여 그것에 힘쓰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진정한 의미라는 것을 때달았습니다.”
자 원봉사를 하면 월급이 두 배로 늘어난 것만큼 행복합니다.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사람은 수명도 더 길어집니다. 테네시주 밴더빌트 대학의 연구에 의하면 자원봉사를 많이 할수록 그들이 느끼는 행복도 더 크다고 합니다. 행복한 사람들이 자원봉사 활동에 더 많이 참가하는 것으로 연구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기분이 좋을 때 선행도 더 잘하는 현상(Feel-Good, Do-Good
Phenomenon)'이라고 부릅니다. 연구자들은 타인에게 선행을 베풀면 긍정적인 효과가 도미노처럼 일어난다고 입을 모읍니다. 좋은 행동을 하면 그 행동의 수혜자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사람을 돕게 되는 것입니다.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타인의 선행을 목격하는 사람도 감정적인 이득을 본다고 말합니다. 이를 감정의 ’고양(elevation)'이라고 부릅니다. 명예롭고 영웅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을 보거나, 감사를 하거나, 남을 돕는 행위를 보면 이런 감정을 느낀다고 합니다.
하 나님을 잘 섬긴 오벧에돔의 후손들이 능력있는 자들이 된 것처럼 여러분과 후손들이 교회와 사회에서 능력있는 자로 우뚝 서기를 바랍니다. 무능하고 무기력한 사람은 불행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큰 결단을 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노아와 모세가 큰 결단을 하였을 때 큰 능력을 받아 큰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인간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인생은 빠르고 짧습니다. 일하고 활동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벧에돔의 후손들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묵묵히 사명을 잘 감당하는 능력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축복을 받았습니다
본 문 4-6절 "오벧에돔의 아들들은 맏아들 스마야와 둘째 여호사밧과 셋째 요아와 넷째 사갈과 다섯째 느다넬과 여섯째 암미엘과 일곱째 잇사갈과 여덟째 브울래대이니 이는 하나님이 오벧에돔에게 복을 주셨음이라 그의 아들 스마야도 두어 아들을 낳았으니 그들의 조상의 가문을 다스리는 자요 큰 용사라"
하나님을 위한 큰 결단은 능력자가 되게 하고 복을 받는 그릇이 됩니다. “하나님이 오벧에돔에게 복을 주셨음이라”고 하였습니다. 3개월 동안 법궤를 모셨을 때 물질적 축복을 주셨습니다. 자녀 스마야는 용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물질적 축복과 용사가 되는 복을 주신 것입니다. 번영하고 창대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깨어지고 메마르고 모자라게 됩니다. 괴로움과 저주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우리에게 빈곤함과 불통함과 불행감이 있다면 모든 원인을 남이나 환경 탓으로 원망하지 말고 나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내가 낮아지고 회개하고 가슴을 치며 통회하며 눈물을 흘릴 때 용서와 회복의 복이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더욱 잘 섬깁니다. 축복이 우상이 되거나 교만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축복하신 하나님을 더욱 경배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교와 봉사와 섬김에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이 복 위에 복을 더하십니다. 복의 근원되신 하나님만 최고로 섬기면 복은 저절로 내려옵니다. 축복 받은 사람답게 살면 축복은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복을 좀 받았다고 나무에서 스스로 분리되는 가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무에 붙어 있어야 계속적으로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됩니다. 착각하여 우쭐하거나 오만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온갖 재주를 부려도 예수님을 무덤 속에 가둘 수 없습니다. 이제까지 완력과 정치적 압력을 가해 예수님을 종교적 우스갯거리로 전락시키려는 모든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세상은 무덤 입구를 돌로 막으면 해결된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그 돌을 굴려 버리고 나오십니다. 이 일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힘이 없어서 무덤 속에 들어가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40년 동안 서방 선교사들에게 문을 닫았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스스로 무덤 속으로 들어가신 사실에 대한 좋은 예입니다. 예수님은 봉해진 무덤 속에서 서방 선교사들의 손을 빌리지 않고 5,000만 명을 구원하셨습니다. 때가 되자 예수님은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을 부수고 나오셔서 그동안 하신 일들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이 외진 곳에 묻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케케묵은 먼지 속에서 잠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도 어둔 곳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다시 나타나실 때 어둠 속에서 거둔 많은 열매를 보여 주실 것입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매장할 수 없습니다. 그분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갖고 계십니다. 만물이 그 분 안에서 그 분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그분은 모든 권세의 머리가 되십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무슨 일이든지 예수님을 믿고 따릅시다. 그러면 지려고 해도 도저히 질 수 없는 경기가 됩니다. 지금 예수님의 절대 권세와 능력 안에 섭시다! 하나님을 불신하거나 자신의 경험과 인간의 무덤에 가두지 맙시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믿읍시다.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을 믿읍시다. 하나님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후손들을 기억하시고 많은 후손과 하나님을 잘 믿는 믿음과 성전 봉사와 용사와 많은 물질의 복을 다양하게 주신 것처럼 오늘도 오벧에돔처럼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면 반드시 축복하십니다. 이런 축복을 꼭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복을 받는 사람은 가장 행복하고 잘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벌써 2월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오벧에돔처럼 하나님을 위하여 큰 결단을 하여 능력과 축복의 성도와 후손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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