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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즐기십시오

욥기 이한규 목사............... 조회 수 434 추천 수 0 2015.11.16 23:5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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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욥38:25-41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663) 

자연을 즐기십시오 (욥기 38장 25-41절)


< 잘 쉴 줄도 알아야 합니다 >

 요새 신앙생활에서 가장 큰 문제는 영성을 오해하고 영성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어떤 영성주의자는 쉬는 것과 노는 것을 신령하지 않은 일로 정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잘 쉬고 잘 놀 줄도 알아야 합니다. 쉴 줄 모르고 일만 하면 오히려 참된 경건을 잃고 하나님을 만나기 힘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안식일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안식일에 일에서 벗어나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 안에서 교제할 때 영성도 깊어집니다.

 어떤 영성주의자는 주일에 가게도 못 가게 합니다. 가게 주인을 일하게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반은총의 원리를 외면한 외식 영성입니다. 그런 식으로라면 불신자들이 만든 음식도 먹지 말고 제품도 쓰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버스 운전사도 일하게 하면 안 되니까 주일에 버스 타고 교회에 와도 안 됩니다. 그런 식으로 영성을 과시한다면 얼마나 불쌍하고 불행한 인생입니까?

 주일성수의 참된 의미는 그런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삶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쉬게 하면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 안에서 교우들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쉴 줄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내고 때로는 건전한 오락과 여행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열심히 일하면서 삶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도 교회에 나와 예배하고 것만큼 중요합니다. 교회에 나와 예배하는 횟수가 많은 것이 영성이 깊은 표시는 아닙니다.

 1987년에 미국에 처음 유학 갔을 때 많은 이민교회들이 수요저녁예배 대신 금요저녁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이상했습니다. 그러나 수요예배는 한국교회만의 전통입니다. 한국 초대교회 때 말씀을 접할 기회도 거의 없고 경건서적조차 없는 상황에서 한 주일이 너무 길게 느껴졌기에 말씀도 더 듣고 싶고 교우들도 더 보고 싶어서 중간쯤 되는 날인 수요기도회를 열어 모였고 그것이 점차 수요예배로 발전했습니다.

 교회 전통이 지속성을 가지려면 성경적 근거가 있으면 좋은데 수요예배에 대한 성경적 근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억지로 찾아내어 꿰어 맞춘 말씀이 출애굽기 19장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후 3번째 달에 시내 광야에 도착했을 때 모세가 하나님의 인도로 2285미터의 시내 산에 올라갔습니다(3절). 거기서 신정국가의 초석이 되는 계명을 받는데 그 전에 하나님은 먼저 출애굽의 은혜를 상기시키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잘 지키면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겠다고 약속했습니다(5-6절).

 그 약속의 말씀을 전하자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다 행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백성들을 이틀간 성결하게 준비시키면 셋째 날에 시내 산에 강림해 계명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11절). 그 ‘셋째 날’이란 표현을 근거로 수요예배를 주일 후 셋째 날에 드린다고 해서 ‘삼일예배’라고 불렀습니다. 약간 억지로 뜯어 맞춘 해석이 가까운데도 어떤 영성주의자는 수요예배를 ‘수요예배’라고 부르는 것은 비성경적이고 ‘삼일예배’라고 불러야 성경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는 것을 이슈화시켜 꼭 그렇게 티를 내는 것은 복된 모습이 아닙니다. 이단들은 자신들이 더 영성이 깊고 성경적임을 나타내어 기존 교인들을 미혹하려고 그런 이슈들만 골라서 공격합니다. “성경에는 안식일을 지키라고 했지 주일을 지키라는 말은 없다. 수요예배는 성경에 없는데 비성경적인 수요예배를 만들었다.”

 일제강점기 때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고난의 시절에 성도들이 얼마나 말씀이 그립고 얼마나 모이고 싶었으면 일주일이 너무 길다고 수요기도회까지 만들었겠습니까? 그처럼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과 정성을 생각해야지 “한국 교회만 왜 성경에 없는 비성경적인 수요예배를 만들었느냐?”고 따지는 것은 그 의도가 의심됩니다.

 수요예배는 하나도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한국 교회들이 전통적으로 수요예배를 드려왔기에 오히려 수요예배를 안 드리면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또한 수요일 대신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예배를 드려도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수요예배도 성경 계명이 아니고 사모하는 사람들이 주 중에 한 번 더 모인다는 개념의 예배이기에 교회 및 성도의 형편에 따라 수요일 대신 목요일이나 금요일에도 드릴 수 있습니다. 성경에 없는 전통을 너무 강조하면 오히려 성경과 멀어지는 전통주의자나 형식주의자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큰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에 있는 ‘예배모범’을 보면 주일예배를 교회의 유일한 예배로 언급할 뿐 수요예배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그처럼 수요예배는 교회 및 성도의 형편에 따라 적절한 시간을 정해 드리면 됩니다. 만약 교회가 멀어 수요예배에 참석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참석하지 못하면 자기 처소에서 예배하는 마음으로 살면 됩니다. 그처럼 주일은 온전히 예배하는 날로 드리고 나머지 6일은 자기 처소와 일터에서 예배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면 됩니다.

 주일성수도 주일 새벽 5시부터 밤 11시까지 교회에 하루 종일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일오전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시간으로 삼고, 주일오후는 성도의 교제 및 성경공부를 하는 시간으로 삼고, 주일 저녁은 가족들과의 시간을 가지면 대략 주일을 온전히 지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일을 온전히 지키고 주중에는 열심히 일하면서 일과 휴식을 잘 분배해 살면 복된 인생을 위한 기초 하드웨어는 잘 구축한 셈이 됩니다.

< 특별계시와 일반계시 >

 하나님의 음성은 주일에 예배할 때나 성경을 볼 때만 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일할 때도 들릴 수 있고 쉴 때도 들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손길과 음성은 성경을 통해 잘 알 수 있지만 성경만큼은 못해도 성경 이외에도 하나님의 존재와 손길과 음성을 알 수 있는 여러 가지 통로들이 있습니다.

 계시에는 특별계시와 일반계시가 있습니다. 특별계시는 성경입니다. 성경은 신앙생활의 영원한 헌법과도 같습니다. 개인이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받았다고 해서 성경에 어긋나는 말을 하면 안 됩니다. 가끔 “오늘날에도 특별계시가 있는가?”란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이단들은 그렇다고 하면서 자신이 하나님과 직통계시를 받는 것처럼 특별계시를 남발합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도는 기본적으로 성경에 충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내용면에서 완성된 것입니다. 성경과 다른 계시를 말하면 그것은 잘못된 이단사설이 됩니다. 그러나 이미 계시된 성경의 내용을 더욱 뚜렷하게 깨닫게 하는 하나님의 음성들은 지금도 들려질 수 있습니다. 그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조명’이라고 합니다. 계시된 성경을 밝혀주는 ‘조명’과 ‘계시’는 다른 것입니다.

 성경은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성도는 성경에 충실해서 성경 말씀이 오늘의 삶에 잘 적용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해석도 잘해야 합니다. 또한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일관성과 통일성을 가지고 있기에 성경을 해석할 때도 일관성과 통일성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말씀 전파자들은 그 일관성과 통일성을 바탕으로 성경 말씀을 바르게 잘 적용하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신학도 필요합니다.

 성경이란 특별계시 외에 하나님의 존재와 손길과 음성을 알게 하는 일반계시가 있습니다. 일반계시의 3대 통로는 ‘양심’과 ‘역사’와 ‘자연’입니다. 양심의 소리나 지나온 역사를 통해서도 성경만큼은 아니더라도 약하나마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하나님의 음성을 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연을 보면서도 희미하나마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성도는 성경말씀에 민감해야 하지만 그와 더불어 양심과 역사와 자연을 통해 들려지는 하나님의 음성도 잘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 하나님의 창조물의 신비 >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욥에게 자연만물의 신비를 통해 하나님의 위대성을 증거합니다. 구체적으로 3가지 신비를 언급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기상의 신비’를 통해 하나님의 위대성을 증거합니다. 본문 25절 말씀을 보십시오. “누가 홍수를 위하여 물길을 터 주었으며 우레와 번개 길을 내어 주었느냐.” 하나님이 홍수로 범람하지 않도록 물길을 터 주었고 천둥과 번개도 있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자연현상도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 생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사람 없는 땅이나 광야에도 비를 내리고 적심으로 연한 풀이 돋아나게 하셨습니다(25-26절). 비와 이슬방울과 얼음과 공중의 서리도 다 하나님이 만드셨고 물이 얼고 바다의 수면이 어는 현상도 하나님이 있게 하셨습니다(28-30절). 또한 물이 수증기가 되어 구름을 형성하고 비가 올 때 번개가 치는 자연현상도 있게 하셨고(34-35절), 구름이 비가 되어 내리게 하고 비가 내려 흙이 붙어서 진흙이 되게 하는 것도 하나님이 있게 하셨습니다(36-37절).

 그런 기상변화들은 하나님의 위대성을 말해줍니다. 돋는 해만 봐도 자연의 신비를 느끼게 됩니다. 산과 바위와 호수에 비친 나무들을 보면서도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물에 대한 신비감을 느낄 때가 종종 있고 폭포에서 끊임없이 내리는 거대한 물줄기 소리를 통해서도 희미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왜 여행이 좋습니까? ‘신비한 자연’과 ‘신비한 자신’이 만나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천체의 신비’를 통해 하나님의 위대성을 증거합니다. 하나님은 황소자리에 있는 일곱 개의 별무리인 묘성과 오리온성좌의 별들인 삼성과 실체가 불명확한 북두성과 같은 별무리들을 하나로 엮어 때를 따라 움직이게 하셨다고 합니다(31-33절). 고대인들은 신에 의해 조종되는 별들의 움직임이 지상 사건에 영향을 준다고 믿으면서 점성술이 발달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은 별들이 하나님이 설정하신 궤도를 따라 움직인다고 여겼습니다. 즉 하나님이 우주만물의 위대하신 통치자란 뜻입니다.

 밤하늘의 별들을 보면 하나님의 존재와 손길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천문학자 중에는 무신론자가 없다고 합니다. 밤하늘의 별을 보면 양심이 살아나고 사명이 새로워지고 꿈이 뚜렷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또한 사랑이 회복되고 노래가 회복되고 좋은 추억이 회복되는 느낌도 받습니다. 쓸쓸한 별을 바라보면 쓸쓸해지지 않고 오히려 쓸쓸함이 사라집니다. 저는 별을 보면 가끔 먼저 천국에 가신 아버님과 누님도 생각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더욱 생각나고 천국이 그리워집니다.

 셋째, 하나님은 ‘생명의 신비’를 통해 하나님의 위대성을 증거합니다. 본문 36절 말씀을 보십시오. “가슴 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 수탉에게 슬기를 준 자가 누구냐.” 사람의 지혜도 하나님이 주셨고 심지어는 수탉에게조차 나름대로 살아가는 슬기를 주셨다는 뜻입니다. 또한 사자가 먹이를 사냥하는 것이나 까마귀 새끼가 먹이를 마련하는 신비한 본능도 주심으로 하나님이 동물도 신비하게 먹고 살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39-41절). 그처럼 작은 생명들에 깃든 신비에 눈을 뜨면 하나님의 존재와 손길도 따라서 보이게 됩니다.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아 회로 떠서 먹으면 전혀 짠 맛이 없습니다. 죽은 물고기는 소금물에 넣으면 금방 짠 맛이 나는데 산 물고기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물고기는 짠 물만 먹고 살지만 하나님은 물고기 안에 소금물을 정화시키는 생명장치를 두신 것입니다. 한 생명이 가진 세포 하나와 씨앗 하나에도 모든 생명의 모양과 기능이 다 설정되어 있어서 그 설정된 대로 자랍니다.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신비입니까?

 사람의 생명도 신비입니다. 출생하는 순간, 수상생명체가 육상생명체로 바뀌는 것부터 신비합니다. 입으로 음식을 먹으면 그것이 소화되어 살과 뼈로 변해서 부모를 닮은 자녀로 자라고 정신이 성숙해지는 과정도 신비입니다. 생명 자체가 신비입니다. 그러므로 너무 신비한 기적을 추구하러 집회를 쫓아다니지 마십시오. 사방에 널린 하나님의 신비를 인식하면 삶에 기적이 생겨나고 회복되어야 할 분야에 놀라운 회복의 역사도 나타날 것입니다.

< 자연을 즐기십시오 >

 하나님의 존재와 위대성을 증거하는 자연을 통한 일반계시를 접하면서 어떤 삶을 도전받습니까? 첫째, 자연으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도전을 받습니다.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고 자연이 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가끔 주어지는 자연재해를 통해서도 자연의 신음소리와 하나님의 경고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둘째,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도전을 받습니다. 자연이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면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하려는 것은 당연한 성도의 책무입니다. 무자비한 환경파괴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큰 범죄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자연경영의 명령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적절한 자연개발도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연개발과 자연파괴를 지혜롭게 잘 분별해서 자연개발이 자연파괴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셋째, 자연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도전을 받습니다. 가끔 휴가를 가지고 자연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을 누리고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열심히 일하면서도 잘 쉴 줄도 알아야 합니다. 쉼이란 일종의 비움입니다. 휴가를 바캉스(vacances)라고 합니다. 그와 유사한 영어 단어가 베이컨시(vacancy,비움)란 단어입니다. 복잡한 일상의 삶을 떠나 몸과 마음을 빈 상태로 만드는 것이 휴가입니다. 잘 비워야 잘 채워집니다.

 컴퓨터나 핸드폰에 입력 정보들이 많아지면 점차 속도가 느려집니다. 그처럼 너무 많은 일에 치이고 일상의 삶에 치이면 인생 속도가 빨라질 것 같지만 오히려 더 느려집니다. 그러므로 불필요한 것을 잘 비워낼 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을 빨리 가려다가 휴가도 외면하면 더 느려지고 반대로 휴가를 잘 보내면 목표성취가 더 늦어질 것 같지만 더 빨리 목표에 도달합니다. 행동하는 믿음을 가져야 하지만 휴가도 가질 줄 모르는 행동주의자가 되면 안 됩니다.

 지나친 긍정적 행동주의를 조심하십시오. 넘치는 자신감과 의욕은 때로 더 큰 문제를 만들어 더 깊은 수렁에 빠뜨립니다. 인물의 길은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거치며 펼쳐집니다. 결국 인생에는 후퇴도 필요합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방식이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사고방식보다 더 낫기는 하지만 무분별한 지나친 긍정주의와 행동주의는 더 파멸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성찰을 위한 휴식시간이나 휴가기간도 잘 가져야 합니다.

 지나친 긍정주의자와 행동주의자는 누릴 줄 모르고 부릴 줄만 압니다. 열정 페이를 강요해 독단적 인간성을 드러내고 자기 비전을 지나치게 내세워 남에게 헌신을 강요합니다. 팔로워가 헌신도 없이 쉬는 것만 좋아해서 관계를 파탄 내는 것도 잘못이지만 리더가 헌신을 강요함으로 쉼을 박탈해서 관계를 파탄 내는 것도 잘못입니다. 그런 지나친 긍정주의와 행동주의의 부작용이 잘 아셨기에 하나님은 안식일을 지켜 쉬라고 하신 것입니다.

 전략적인 전진을 위해 전술적인 후퇴도 필요합니다. 휴식과 휴가는 전술적인 후퇴기간입니다. 물러설 줄도 알아야 전진할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도 ‘전략적인 어울림’을 위해 ‘전술적인 떨어짐’도 필요합니다. 대중 속으로 들어가 어울릴 줄도 알아야 하지만 대중으로부터 벗어나 떨어질 줄도 알아야 합니다. 때로는 자연으로 들어가서 자연을 느끼고 자연을 누리고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서 하나님의 소리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때 어떤 환경이나 어떤 사람도 빼앗을 수 없는 마음의 평강을 찾을 수 있습니다.

 휴식과 휴가를 겁내지 마십시오. 휴가를 주는 것에 인색한 리더십이 되어도 안 되고 휴가를 가지지 못할 정도로 너무 바쁘거나 너무 공부해도 안 됩니다. 고시공부를 해도 휴가를 가지면서 해야 인간성과 창조성을 잃지 않고 인생의 목표도 잃지 않고 무엇보다 하늘의 생수를 잃지 않습니다. 하늘의 생수로 영혼이 풍성하게 된 사람만이 이웃에게 생수를 공급할 수 있습니다. 내 성공이 남에게 행복을 주지 못하면 그것은 진짜 성공이 아닙니다.

 어느 날, 한 교회에서 전도사가 부임한 후 한 달도 되지 않아서 사임하게 되었습니다. 주일에 성도들과 볼링을 쳤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일에 예배를 잘 드리고 교회 내의 교제와 성경공부도 잘 마친 후에 틈을 내어 성도들이 교제의 의미로 식사를 하러 가거나 볼링을 치러 가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주일은 성도간의 아름다운 교제의 날이기도 합니다. 성도는 잘 놀 줄도 알아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천국은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노는 곳이라고 묘사했습니다. 믿음을 화석화시키지 마십시오.

 볼링 입문서를 보면 볼링의 시조가 마르틴 루터라고 합니다. 당시 수도사들이 잠시 쉼과 여유를 가지도록 마르틴 루터가 개발한 놀이에서 볼링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놀이의 노예가 되면 안 되지만 영혼을 풍성하게 하고 마음을 즐겁게 하고 육신을 건강하게 하려고 잘 쉬고 놀이를 잘 즐기게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주일을 거룩한 예배의 날과 동시에 거룩한 놀이의 날이 되게 하십시오. 성도들 간의 건전하고 적절한 놀이와 교제는 정죄할 것이 아닙니다. 항상 일과 쉼의 적절한 조화를 통해 창조적인 인물의 길을 준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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