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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자세

역대하 조주희 목사............... 조회 수 488 추천 수 0 2015.11.17 0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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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대하2:1-10 
설교자 : 조주희 목사 
참고 : 2004-08-15 [광복절]성암교회 http://sach.or.kr 

대하2장 1-10

마음 자세

 

휴가 기간에 아이들 하고 영화를 한편 보았습니다. 아이 로봇이라는 영화인데 다분히 만화 같은 영화입니다. 아무 생각하지 않아도 볼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그래서 특별한 메시지가 있는 양화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 중에 한 부분은 제 마음 속에 남았습니다.


이 영화는 2035년 미래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 때쯤 사람들은 평균 4인마다 로봇 1대씩이 보급 되는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로봇들이 물건을 날라 주고, 청소도 해 주고, 비서 노릇도 하는 등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단순한 기능의 대부분을 해 주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로봇을 갖는 것을 매우 기뻐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로봇을 싫어하는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윌 스미스가 연기한 스프너입니다. 그는 경찰인데 유난히 로봇을 싫어하고 로봇에 대해 거부감을 갖습니다. 그런 태도를 가진 그를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로봇이 그렇게 편할 수 없고 그렇게 유익하게 사용되고 있는 상황인데 태도가 그러하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주인공이 그렇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주인공에게 안 좋은 기억이 있었습니다. 출근을 하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그의 차가 바다에 빠지고 맙니다. 그는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면서 죽음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옆에 또 한대의 차가 물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그 빠져 들어가는 차에는 어린이 한명이 타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 어린아이는 살려 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로봇 한 대가 물속으로 뛰어 듭니다. 그리고는 빠져 들어가는 그의 차의 문을 부수고 자신을 구출해 줍니다. 주인공은 로봇에게 구조 당하면서 점점 깊은 바다 속, 죽음으로 끄려 들어가면서 살려 달라고 외치는 그 어린이의 얼굴을 바라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살았고 그 어린이는 죽었습니다. 그것을 경험하고는 로봇을 싫어합니다.


로봇이 그를 살린 이유는 생존확률이 45%이고 어린이의 생존확률은 11% 이기 때문입니다. 확률이 높은 쪽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이것이 못 마땅한 것입니다. 그의 말은 이렇습니다. 만약 사람이 구조 했다면 자신을 구조하지 않고 어린아이를 구조했을 것이라는 겁니다. 이것이 로봇과 사람의 차이라고 말합니다. 마음 없는 기계 문명을 비판 합니다.


마음이 중요합니다. 한 나라의 미래는 그 나라 국민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을 국민정신이라고도 말합니다. 오늘은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한 지 59주년 되는 날입니다. 어느 때 보다도 우리 국민들의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고 또 무엇보다도 예수 믿는 우리 모두의 마음 자세가 중요할 때입니다. 그래서 이 날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은 솔로몬이 성전과 왕궁을 세울 계획을 가지고 준비를 하는 과정중의 한 부분입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짓기 전에 두로 왕 후람 또는 열왕기상에서는 히람이라고 부릅니다만 두로 왕에게 외교 문서를 하나 보냅니다. 내용은 별 것 없습니다. 건물을 짓는데 필요한, 당시의 최고의 나무였던, 백향목을 지원해달라는 요청서입니다. 두로 왕 후람이 다윗에게 그렇게 한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두 세 줄이면 내용을 다 전달할 수 있는 분량의 요청인데 여기에 말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담겨 있습니다. 후람에게 보내는 이 요청서에 솔로몬의 신앙이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4절을 보겠습니다. <이제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여 구별하여 드리고 주 앞에서 향 재료를 사르며 항상 떡을 진설하며 안식일과 초하루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절기에 조석으로 번제를 드리려 하니 이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규례니이다.>

이 부분에서는 솔로몬이 왜 성전을 건축하려고 하는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성전건축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소개합니다. 4절을 맨 끝을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유는 이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규례니이다.>


출애굽기 17장 15절을 보시면 <여호와 닛시>(자막: 여호와 닛시-여호와의 깃발)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여호와의 깃발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14절부터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이 말씀은 전쟁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말렉 사이에 르비딤 골짜기에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아말렉은 이스라엘에게 가장 버거운 적중의 하나입니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되는데 이때 전쟁을 이끈 장군은 여호수아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기도하게 되었는데 손을 들고 기도하면 전쟁에서 이기고 손을 내리면 집니다. 그래서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이 내려가지 않도록 도와서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이 재미있는 얘기가 성경에 기록된 이유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가장 버거운 문제가 모세가 손 하나 올리는 것으로 해결되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모세의 손이 올라가서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세에게 요구하신 것이 모세에게 순종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말이 됩니까?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장면입니까? 손을 올리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진다는 것이 이해가 될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그런데 그 말씀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가장 버거운 적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겼습니다. 이것은 곧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을 들으면 이길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어려운 말로 통치라고 합니다. 여호와 닛시, 여호와의 깃발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다스림,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이것을 분명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모세가 알아야 하고 여호수아가 알아야 하고 그리고 뒤를 따르는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들이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에는 이스라엘 왕의 깃발이 꽂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의 깃발이 꽂혀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왕의 깃발이 꽂히면 이스라엘은 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깃발이 꽂히면 이스라엘은 이깁니다. 솔로몬에게 성전을 짓는 일은 곧 여호와의 깃발을 꽂는 것입니다. <여호와 닛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에 꽂힌 깃발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어느 사람의 깃발이 아닙니다. 누가 누가 잘해서 이 나라가 해방되었고 이렇게 발전한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누구를 의지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깃발이 한반도 이 땅에 꽂혀 있음을 알고 오늘도 그 깃발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지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나라의 통치자가 하나님임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줄 알아야 합니다. 왜 선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보시기 때문입니다. 왜 정의로워야 합니까? 하나님이 통치하시기 때문입니다. 왜 사랑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통치하시기 때문입니다. 왜 부지런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왜 열심히 살아야 합니까? 우리 통치자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왜 공부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의 통치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다른 작용하면 그것이 오히려 우리를 찌르는 바늘이 됩니다.


4절을 다시 한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제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여 구별하여 드리고 주 앞에서 향 재료를 사르며 항상 떡을 진설하며 안식일과 초하루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절기에 조석으로 번제를 드리려 하니 이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규례니이다.>


이제 5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건축하고자 하는 전은 크니 우리 하나님은 모든 신보다 크심이라.> 이것은 9절에서도 다시 한번 반복 됩니다. <이와 같이 나를 위하여 재목을 많이 예비하게 하소서 내가 건축하려 하는 전은 크고 화려할 것이니이다.>


두 번째 솔로몬의 아름다운 마음은 하나님을 크신 분으로 고백하는 정신입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크고 화려하게 건축하려고 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건축물의 위용을 자랑하려거나 아니면 솔로몬이 자신의 부를 자랑하려하거나 아니면 그 당시가 이스라엘의 전성기였으므로 이스라엘의 국력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의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어떠함을 드러내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크심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솔로몬이 큰 성전을 건축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 하나님이 모든 신보다 크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크다>는 것은 절대적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유일하고 완전하며, 전능하고, 영원하며, 거룩하신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크다>는 말은 상대적 개념입니다. <크다>는 말은 <작다>는 말을 전제합니다. 큰 것이 있으면 작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크다고 말할 때 작은 것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솔로몬이 하나님이 크다고 고백했을 때 무엇보다도 크다는 의미였습니까? <다른 신들>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은 크다고 고백할 때 모든 신들과 비교해서 크다고 고백합니다. 모든 신들보다 크신 하나님 이것이 솔로몬의 고백입니다.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은 신들이 모든 사회를 지배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누가 무슨 신을 섬기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자신이 섬기는 신이 크면 자신과 국가는 번영합니다. 나라의 미래와 개인의 미래가 결정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은 대한민국이라는 이 나라에 살면서 솔로몬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크신 하나님으로 그렇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현대사회에서 살고 있으면서, 또한 이 나라의 움직임을 보면서 이 사회에 얼마나 거대한 힘들이 작용하고 있는가를 알게 됩니다. 엄청나게 큰 힘들이 이 사회를 지배하고 이끌고 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적으로 그것들을 느끼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이 모든 것들 보다 더 크신 하나님으로 고백하십니까? 이 모든 것들 위에 계신가? 하나님은 기독교라는 종교를 이끄는 신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사회의 갖가지 현상 중의 하나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신의 세계 속에서만 움직이시는 신화적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정치권력보다 크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어떤 문화보다 크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어떤 세력보다 보다 크십니다. 하나님은 돈 보다 크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즈음 많은 신앙인들이 움츠러들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가만히 세상을 보니 하나님 보다 더 크게 보이는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움직이시는 것 같지 않고 다른 것들이 우리 인생과 국가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아닙니다. 하나님이 움직이십니다. 보이지 않고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이 모든 것들보다, 정치세력보다, 그 어떤 국가보다, 어떤 세력들보다 크신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런 믿음의 소유자들을 택하셔서 하나님께서는 세계를 움직이십니다. 나라를 움직이십니다. 그런 믿음의 소유자들이 없기에 하나님의 통치가 약하게 보일 뿐입니다.


<문명의 충돌>이라는 책을 써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미국의 미래 사회학자 사무엘 헌팅턴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최근에 미국의 바른 미래에 대해서 말하면서 여러 가지 요소를 말하는 중 미국이 바른 미래로 나아가려면 기독교 정신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나라가 미국이든, 아니면 다른 나라이든 간에 기독교 정신없이 절대로 평화로울 수 없고 절대 자유로울 수 인간의 존엄성이 확보 될 수 없습니다. 미국이 최근에 많은 비판에 휩싸이게 되는 가장 깊은 원인 중의 하나가 바른 기독교 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가 이 세계를 발전시킨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많은 문제를 나타내고 있는 이유도 있습니다. 사실 자본주의 정신의 맨 밑바닥은 기독교 정신입니다. 자번의 축적과 자본의 사용의 정신에는 예수님의 마음이 있습니다. 쉬운 말로 돈 버는 것과 돈을 쓰는 것에 예수의 정신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정신의 자본주의에서 빠져 나가고 마음 없는, 정신없는, 영혼 없는 자본주의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위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크신 하나님, 이 나라의 그 어떤 것 보다 위에 계신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믿음이 충만하여 그 믿음으로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 조국을 변화시켜 나가는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를 살펴보겠습니다. 6절부터 8절을 보겠습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내가 누구관대 어찌 능히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요 그 앞에 분향하려 할 따름이니이다. 이제 청컨대 당신은 금은 동철로 제조하며 자색 홍색 청색실로 직조하며 또 아로새길 줄 아는 공교한 공장 하나를 내게 보내어 내 부친 다윗이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예비한 나의 공교한 공장과 함께 일하게 하고 또 레바논에서 백향목과 잣나무와 백단목을 내게로 보내소서 내가 알거니와 당신의 종은 레바논에서 벌목을 잘하나니 내 종이 당신의 종을 도울지라.>


특별히 6절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성전을 아무리 화려하고 웅장하게 지어도 모자란다고 생각했습니다. 세계가 아무리 큰 들 하나님을 담을 수 있는가? 솔로몬이 아무리 영화로운들 감히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오늘 아침에 가져야 할 마음입니다.

모자라는 정신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절대로 생각하지 말라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정도면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이 정도 예배드리면, 이 정도 헌신하면, 이정도 윤리관을 가지면, 이 정도 도덕적 기준으로 살아가면 되지 하는 생각입니다.


분명히 해 둘 일은 이것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기준에 못 미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계산은 기본적으로 잘못된 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대로 비교하려면 바른 자를 가져야 하는데 그 자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우리 사람을 재어 보아야 합니다. 그때 바른 답이 나올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기준으로 바라 볼 때 자신을 탄식 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맞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솔로몬은 1절과 2절을 보면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담꾼 칠만, 산에 올라 작벌할 자 팔만, 일을 감독할 자 삼천육백을뽑았습니다. 대단한 인력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을 증거 하는 자료는 될 수 없습니다. 그 성전을 지었다고 해서 다 된 것 아닙니다. 절대적으로 모자랍니다.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을 채찍질 합니다. 가만히 내어 버려두지 않습니다. 오늘 한반도 이 땅에 필요한 사람들은 자신을 채찍질 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땅 백성으로 살아가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에 넘치는 사람들이 아니라 턱 없이 모자라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을 채찍질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나라가 변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바른 마음의 자세를 가져 이 땅을 변화시켜가는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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