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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롬11: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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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부겸 목사 |
참고 : | http://blog.naver.com/malsoom/112270974 |
2010년 8월 29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로마서 11장 36절
설교제목 : 여아동근(與我同根)
【모든 것은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분으로 말미암고 그분을 위하여 있습니다. 영원토록 영광을 그분께 드립니다. 아멘. (로마 11:36)】
<한살림 이야기>
평생 한살림운동을 펼쳐오시던 박재일 선생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저는 그분과 아무런 인연이 없습니다만, 듣기에 참 훌륭한 분이시고,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일을 해오셨다는 이야기는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얼마 전 고인을 추모하는 글을 읽었는데, 그 내용이 참 좋았습니다. 이건 단순한 추도사가 아니라, 박재일 선생을 비롯한 그 도반(道伴, 길벗)들이 어떤 생각과 마음을 갖고 인생을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는 ‘철학서’였습니다. 그래서 그 추도사 전문을 먼저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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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농(仁農) 박재일 회장 추도사
재일이!
잘 살아 주어서 고맙네! 얼마전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마지막 숨을 쉬고 있는 자네를 보며 참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지 못해 안타까웠네. 언제고 병상에서 일어나면 꼭 자네와 함께 한 삶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는데 못 일어나고 영면하다니 야속하고 아픈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할지 모르겠네. 좀 더 정신이 성성할 때 만나 40여년 동안 자네가 보여준 삶과 자네와 함께 했던 시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지 못한 게 지금 이 시간 후회스럽고 안타깝네.
1969년 무위당 선생을 통해 자네를 만났지. 그리고 의기투합하여 원주를 중심으로 민초들의 삶과 환경을 개선해 보고자 농촌으로 광산으로 고단한줄 모르고 다니던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현장에서 돌아와 오랜 회의를 끝내고 원주 남부시장 선술집에서 소주 한잔에 피로와 고달픔을 달래며 희망의 꿈을 키우던 때가 자꾸 떠오르네. 86년 자네가 한살림 운동을 하기 위해 서울 제기동에 구멍가게 같은 ‘한살림 농산’을 차렸던 때가 언제인가 싶은데 한살림은 이제 20여만의 조합원과 3000여 농가를 아우르는 20대 청년의 늠름한 모습으로 키워 놓아 늘 친구로서 뿌듯함을 감출 수 없는데 이렇게 가버리다니.........
돌이켜 보면, 무위당 선생과 함께 생명사상과 운동의 방향을 토의해 나갈 때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던가? 그 길에서 한살림 운동과 생활협동운동을 생각하고 실천의 방향으로 잡았을 때 그 길의 험난함을 알고도 주저치 않고 그 길에 나서던 자네모습은 오늘을 사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되네.
특히 자연과 인간을 대립시키고 인간의 욕망만을 위해 달려온 죽임의 현대문명 아래서, 무너져가는 농촌과 화학비료와 농약 등으로 오염되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죽음의 먹을거리 문화를 생명의 농업을 통해 살리고 밥상을 살림으로서 도농상생의 공동체문화로 바꾸고자 했던 것은 생명운동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없이는 어려운 일이었네. 다른 사람은 한살림의 외형적 성과를 볼지 몰라도 나는 지금 자네가 뿌려온 생명운동의 씨앗이 온 누리에 퍼져가는 모습을 본다네. 생활협동운동, 유기농업운동, 마을공동체운동, 지역살림운동, 생명평화운동 등 이 모든 것들은 한국사회에 생명운동의 시대가 후천개벽의 시대가 다가옴을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생명사상과 운동의 큰길을 열어온 자네의 그 삶과 정신으로 이제 후배들에게 따듯한 조언과 충고를 해주어야 될 때인데 이렇게 일찍 삶을 접다니……. 그러나 생자필멸(生者必滅)이요 천지만물(天地萬物)이 여아동근(與我同根)이라 했지 않은가? 자네 말대로, 무위당 선생 말대로, 모든 생명은 서로 의지해 존재 하는 우주이지만 또한 개체로서의 생명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모든 생명은 한 뿌리를 머금은 한울이지만 ,때가 되면 개체로서의 생명은 거룩한 삶을 살다 죽지만 우주로서의 생명은 영원한 것 아니겠는가? 한 생명의 오고감은 거룩한 일이지 않는가? 자네의 삶은 거룩한 삶이었기에 자네 삶의 마감 또한 거룩한 일이라고 생각하네.
그 거룩한 삶의 마감이 영원한 삶으로의 전화(轉化)임을 평생의 도반으로서 나는 믿어 의심치 않네. 자네를 보내는 안타까운 마음과 슬픈 마음은 우리 스스로가 거룩한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라 생각하네. 이제 자네의 삶과 정신이 온 누리에 퍼져 자네와 한 뿌리인 후배들이 농업살림, 밥상살림, 지역살림의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 가는지 지켜보면서 좋은 기운 많이 나누어 주게나. 살아 있는 동안 나누어준 자네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도반으로서 나누었던 진리의 이야기들을 생각하며 이제 자네를 떠나보내네. 우리 모두 자네를 영원히 마음속에 기억할 걸세.
재일이! 편히 가시게나. 그리고 곧 다시 보세!
2010년 8월 21일 (사) 무위당 사람들 이사장 이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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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지 않은 추도사 중에서 제 마음 속에 남는 구절은 이곳입니다. 【그러나 생자필멸(生者必滅)이요 천지만물(天地萬物)이 여아동근(與我同根)이라 했지 않은가? 자네 말대로, 무위당 선생 말대로, 모든 생명은 서로 의지해 존재 하는 우주이지만 또한 개체로서의 생명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모든 생명은 한 뿌리를 머금은 한울이지만, 때가 되면 개체로서의 생명은 거룩한 삶을 살다 죽지만 우주로서의 생명은 영원한 것 아니겠는가? 한 생명의 오고감은 거룩한 일이지 않는가? 자네의 삶은 거룩한 삶이었기에 자네 삶의 마감 또한 거룩한 일이라고 생각하네. 그 거룩한 삶의 마감이 영원한 삶으로의 전화(轉化)임을 평생의 도반으로서 나는 믿어 의심치 않네. 자네를 보내는 안타까운 마음과 슬픈 마음은 우리 스스로가 거룩한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라 생각하네. …… 재일이! 편히 가시게나. 그리고 곧 다시 보세!】
그리고 이 짧은 인용문 가운데서 또 다시 제 마음 속에 남는 단어는 ‘여야동근’(與我同根)이라는 말입니다. “너와 나는 같은 뿌리에서 왔다.”
<성경 이야기>
이제 성경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것은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분으로 말미암고 그분을 위하여 있습니다. 영원토록 영광을 그분께 드립니다. 아멘. (로마 11:36)】
외람되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사도바울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해하는 바, 사도바울은 예수의 깊은 생명샘에 충분히 가닿지 못한 채 성급하게 ‘예수의 복음’을 전한 경향이 농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성경말씀을 통해 사도바울이 하신 말씀을 정말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바울 선생이 말씀하신 바처럼, “만물은 하나님에게서 나오고, 하나님으로 인해 말미암고, 하나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만물은 단순히 동식물 류의 자연물만이 아닙니다. 모든 우주만물의 개체들을 일컫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신적인 존재자’가 그 근원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그 신적인 근원자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한 뿌리에서 온 나뭇가지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들입니다. 너와 나는 연결되어 있고, 결국 그래서 궁극적으로 ‘너’는 곧 ‘나’이고, ‘나’는 곧 ‘너’인 것입니다. 어찌 보면, ‘너’와 ‘나’의 구분조차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일 뿐, 너와 나의 구분은 헛된 것입니다. 잘못된 것이지요.
<기(氣) 이야기>
삶과 죽음의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흔히 삶을 있음(有)으로 정의하고, 죽음을 없음(無)으로 정의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피상(皮相)적인 이해일 뿐입니다. 겉껍데기적 생각입니다. 우리 동양의 철학인 기(氣)이론에 따르면, 삶과 죽음의 문제는 유무(有無)의 차원이 아닙니다. 모임과 흩어짐의 차원입니다. 기(氣)가 모이면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고, 기(氣)가 흩어지면 생명이 소멸하는 것입니다. 없는 생명이 태어났다가(有) 다시 없어지는(無) 차원이 아닙니다. 다만 모였다가 흩어지는 맥락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은 영원한 것이지요.
소박한 이해입니다만, 저는 이 기(氣)가 곧 성령(聖靈)의 차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성령이 모이면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고, 하느님의 거룩한 성령이 흩어지면 생명이 소멸하는 것입니다. 즉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생명은 생멸(生滅)하지만, 인간생명의 근원자이신 ‘성령의 생명’은 영원한 것입니다. 제 나름의 생각입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여아동근’(與我同根)이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이 설교말씀의 제목을 깊이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잠깐 기도하겠습니다.
* 축도
이제는 진리의 길을 직접 보여주신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우리의 생명과 영혼을 언제나 치유해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아름다운 동행이 사랑하는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언제나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김부겸 목사<수도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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