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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느8: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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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677) 2015.8.21 |
말씀을 사모하라
(느헤미야 8장 1-6절)
<
가치관이 혼란한 시대 >
현대 사회는 가치관의 혼란이 극심하다.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행복을 모르고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높은 지위를 얻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삶의 무지는 언제나 비극을 만든다.
뉴욕에 한 여자 집사가 있었다. 그녀는
낮에는 야채가게에서 캐쉬어로 일하고, 밤에는 파트타임으로 식당에서 일했다. 그렇게 투 잡을 뛰면서 하루에 15시간 이상 일해서 어느 정도 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들어가자 남편은 사라지고 쪽지 하나만 남겨져 있었다.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당신은 내게 애정이 없는 것
같아.” 외로운 이민생활에서 그런 일을 당하면 더욱 삶이 비참해진다.
자녀 문제도 심각하다. 어떤 부부는 이민 11년 동안
악착같이 일해서 넉넉하게 살았다. 좋은 차와 좋은 집이 있었고, 아들에게는 좋은 스포츠카를 사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마약 복용혐의로
체포되었다. 급히 경찰서로 달려가 자녀에게 말했다. “도대체 왜 그랬니? 뭐가 부족해서 그랬어?” 그때 자녀가 말했다. “저는 부모님이
없었잖아요? 언제 부모님이 제게 관심을 가졌나요?”
무엇이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인지를 잘 모르고 열심히 달리면 브레이크가 파열된
차로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과 똑같다. 인생은 외형적인 삶보다 내면적인 삶이 더 중요하다. 돈보다 가정이 중요하고, 돈보다 영혼이 훨씬 중요하다.
그 문제를 망각하면 언젠가 뼈아픈 대가를 치른다.
6.25 이후, 한국인들의 가장 큰 관심은 잘사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어느
정도 살게 되었지만 바르게 사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물질적인 가치관으로 지금 사회는 뼈아픈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사실
“돈을 어떻게 버느냐?”하는 문제보다 “돈을 어떻게 쓰느냐?”하는 문제가 훨씬 중요한 문제다. 그 문제는 철학의 문제이고 신앙의 문제이다. 그
문제에 대한 성실한 답변을 준비하지 않고 돈을 벌면 안 된다. 미국의 재벌 강철왕 카네기는 모든 사람들이 존경했다. 그는 돈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성실한 답변을 준비하고 돈을 벌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좌우명을 가졌다. “하나님과 사람을 위해 많이 벌고, 하나님과 사람을 위해 많이
저축하고, 하나님과 사람을 위해 많이 쓴다.” 얼마나 훌륭한가? 그런 가치관이 없으면 “잘살아 보세!”란 말이 아무 의미가 없다.
경제적으로 잘 산다고 진짜 잘사는 것은 아니다. 보다 중요한 가치관의 문제, 인격 재건의 문제, 영혼의 문제를 외면하고 주어지는
행복은 진짜 행복이 아니다. 외면의 축복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내면의 축복이다.
< 말씀을 사모하라 >
본문은 새로운 가치관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잘 보여준다. 느헤미야 1-6장은 성벽재건에 관한 말씀이다. 그리고 7장에서는 성벽
파수를 위한 지침도 내렸다. 적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내면의 문제였다. 아무리 외적의 공격을 잘
막아도 내부의 공격을 막지 못하면 무너진다.
잘 살아도 가정과 교회가 무너지고 윤리와 도덕이 무너지면 그 나라는 끝난다. 그러므로
성벽 재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앙 재건이다. 그 사실을 간파하고 느헤미야는 스스로 물러서고 학사 에스라를 내세운다. 그래서 느헤미야 8장에는
학사 에스라를 중심으로 벌어진 이스라엘의 신앙 부흥운동에 대한 기록이 소개된다. 신앙과 가치관이 새롭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
당시에 예루살렘에 있던 여러 성문 중의 하나인 수문(watergate) 앞에는 큰 광장이 있었다. 그곳에
모든 백성이 일제히 한 마음으로 모인 것이 은혜의 시발점이었다. 은혜는 한 마음이 되어 모이기를 힘쓰는 곳에 임한다. 설교자가 아무리 말씀을 잘
준비해도 모이지 않으면 은혜가 반감된다. 반면에 듣는 사람이 많으면 설교도 더욱 은혜롭게 들린다.
사도행전 10장에는 ‘가이사랴
오순절 사건’이 소개된다. 그때 어떻게 그런 은혜가 임했는가? 고넬료가 베드로를 청해서 말씀을 들으려고 할 때 자기 가족은 물론 일가친척과
친구까지 다 불러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다. 은혜를 받으려면 먼저 열린 마음으로 모이기를 힘쓰라.
그때 백성들이 한
마음으로 학사 에스라에게 율법 책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하자 에스라가 율법 책을 가져와 백성들 앞에서 읽었다. 그때 백성들은 새벽부터 오정까지
6시간 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3절). 그 장면을 보면 백성들의 말씀을 사모하는 열정이 대단했던 것을 본다.
어느
때든지 축복과 부흥의 원리는 동일하다. 축복과 부흥 전에는 꼭 말씀을 사모하는 열정이 있다. 그처럼 말씀에 대한 갈급한 마음이 있을 때 축복과
은혜가 주어진다. 그러므로 지금 말씀이 더 듣고 싶고, 말씀이 꿀 송이처럼 달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될 전조이다.
지금도 해외선교지에서는 예배 시간이 3-4시간 되는 곳이 많다. 우리나라도 옛날에 부흥회를 할 때 설교를 7-8시간 계속 들은
적도 있었다. 지금 그렇게 설교하면 많은 성도들이 다 도망갈 것이다. 그만큼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사라졌다.
지금은 부흥회를 해도
잘 모이지 않는다. 인터넷을 통해 보면 그 부흥 강사의 부흥회 설교가 매번 비슷하기 때문이다. 홍수 때 오히려 먹을 물이 귀하듯이 지금처럼
말씀의 홍수 시대에 오히려 참된 생수를 발견하지 못하고 사람들은 말씀을 더 멀리한다. 그러나 은혜와 축복을 원하면 무엇보다 말씀을 사모하는
심령을 회복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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