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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17: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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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부겸 목사 |
참고 : | http://blog.naver.com/malsoom/116601320 |
2010년 11월 14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누가복음 17장 20절~21절
설교제목 : 천국의 마음
【바리새파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물으니,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아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말할 수도 없다.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누가 17:20~21)】
<책 이야기>
최근 『탐독-유목적 사유의 탄생』(이정우 지음, 도서출판 아고라)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책에 의상의 법성게와 블레이크의 시 한 편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이 좋아서 제 마음 가운데 담아 두었습니다.
【하나의 티끌속에 온 세상이 있으니, 모든 티끌들이 다 온 세상이어라. 끝없는 영겁이 곧 찰나의 마음이니, 찰나의 마음이 곧 영겁이어라.(의상의 법성게) / 한 줌의 흙에서 온 세상을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네. 그대 손가락으로 거룩한 무한을 느끼고, 짧은 한 순간 속에서 영원의 시간을 보네.(블레이크의 시)】
이 짧은 시들이 좋은 이유는, 이 시들은 평범한 우리들이 저지르기 쉬운 오류, 즉 ‘시간과 공간, 그리고 존재’의 차원에서 잘못된 통념에 빠지려는 우리들의 생각을 사정없이 내리치기 때문입니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존재’의 차원에서 우리는 커다란 것과 높은 것, 그리고 깊은 것, 또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작은 것 속에 큰 것이 있고, 낮은 것 속에 높은 것이 있으며, 얕은 것 속에 깊은 것이 있으며, 더러운 것 속에 아름다운 것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놀라운 역설적 진리를 이 두 편의 시가 시원하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예수님께서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성경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 이야기>
【바리새파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물으니,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아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말할 수도 없다.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누가 17:20~21)】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나라는, 천국은, 행복한 삶은, 해방된 인생은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일어나야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어디에서) 오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나라는, 천국은, 행복한 삶은, 해방된 인생은 ‘눈으로 볼 수 있게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여기 있는 것’도, ‘저기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나라는, 천국은, 행복한 삶은, 해방된 인생은 “우리 가운데 있는 것”이었습니다. 즉 우리 안에 있는 것이며, 좀 더 세부적으로 말씀드리면, 우리 ‘마음’ 가운데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나라는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 가운데 임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이 보았을 때,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삶이었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 즉 인생의 생각하는 바를 제대로 바꾸기만 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그 시간과 공간이 곧바로 천국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나라는 시공간적으로 임하는 어떤 사건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수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하느님의 섭리를 알고, 그 섭리의 오묘함을 따라서 인생의 방식을 맞춰가는 삶이 곧 천국의 삶이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란?>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우리 안의 천국’, 즉 우리 마음 가운데의 천국이란 어떤 차원일까요? 우리 가운데, 우리 안에, 우리 마음 중에 천국이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 마음이 곧 천국의 열쇠가 될까요?
그것에 대한 해답을 의상대사의 법성게와 블레이크의 시가 주고 있습니다. 【하나의 티끌속에 온 세상이 있으니, 모든 티끌들이 다 온 세상이어라. 끝없는 영겁이 곧 찰나의 마음이니, 찰나의 마음이 곧 영겁이어라.(의상의 법성게) / 한 줌의 흙에서 온 세상을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네. 그대 손가락으로 거룩한 무한을 느끼고, 짧은 한 순간 속에서 영원의 시간을 보네.(블레이크의 시)】
이 지상에서 천국의 삶을 살기를 원하시나요? 그렇다면 하나의 티끌을 정밀하게 바라보십시오. 그 먼지 속에 천국이 있습니다. 이 지상에서 영원에 이르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나요? 그렇다면 찰나(一念)의 삶을 세심하게 사십시오. 그러면 영원과 무한의 온 세상이 확연히 보일 것입니다. 블레이크의 시를 인용하면서 또 이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한 줌의 흙을 화분에 담아다가 작은 화초라도 키워보십시오. 그리고 그 화초와 대화해 보십시오. 놀라운 우주의 신비를 매일매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매일매일 손놀림으로 하는 일들을-설겆이이건, 목수일이건, 글쓰는 일이건, 악수하는 일이건, 기도하는 손이건- 세밀하게 바라보십시오. 그 속에 무한의 신비가 깃들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음에 담겨져 있는 천국’의 실체입니다.
<음악 이야기>
제가 라디오의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듣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그 좋은 클래식 음악이 끼치는 해악을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음악들이 인간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힘이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의 음악이라는 것이 오히려 인간의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역할도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모름지기 정말 훌륭한 음악이라면 인간의 영혼을 ‘인생과 우주’의 본질적 세계로 인도해야할 터인데, 그 음악들이 인간 영혼이 ‘인생과 우주’의 본질에 가 닿으려는 일을 막고 방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일부러 아무런 음악을 듣지 않고, 조용히 차에 앉아서 ‘침묵의 음악’을 듣고 있습니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일터를 오가면서, 혹은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 때 잠시잠깐 차에 앉아 쉬면서 ‘침묵의 음악’, 즉 자연의 메시지를 듣는 감상은 정말 놀랍습니다. 어설픈 클래식음악으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어마어마한 감동이 거기 ‘침묵의 마음’ 가운데 깃들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천국의 마음’은 바로 그런 차원일 것입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천국의 마음’이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오늘 이 시간, ‘천국의 마음’이라는 설교말씀의 제목을 깊이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김부겸 목사<수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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