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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고후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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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강종수 목사 |
참고 : | 2016. 1. 10 주일 오전 설교 http://cafe.daum.net/st888 |
성경 : 고후5:1-9
제목 : 영생 믿는 자의 증거생활
고후5:1-9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아멘.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우리가 부활할 것입니다(고전15:51-52). 이것이 기독교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요6:40,고전15:19). 문제는 영생을 믿는 자로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생 믿는 자의 증거생활>이라는 제하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 영생은 기다리는 신앙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창세기의 기록도 믿고 또한 성도는 다음 세상에 영생할 것도 믿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부활 영생에 대한 약속을 믿고 사는 것이 불신자와 다른 인생관입니다. 어떻게 영생이 믿어지는가? 그것은 계시적인 지식입니다.
마13: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바울은 본문 고후5:1-2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부활은 역사적으로 예수님만 부활하셨고(고전15:20) 우리는 주님이 오시는 날에 부활영생을 입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영생불사를 말하는 자는 이단입니다.
요1서3:2 ‘..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롬8:23 ‘..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우리 몸이 속량, 곧 부활을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미래의 일입니다.
빌3:21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롬6:5)
2. 증거하는 신앙
성도는 부활하게 될 그날까지 세상살이에서 주를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목숨 주시는 날까지 증거하고 그 날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본문 고후5:8-9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롬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고전10:31)
기독교 신앙은 예수님의 사도들 신앙을 계승하는 것입니다.
사도적 신앙은 사도행전에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오직 복음을 증거하는 일로 살았습니다. 지금 우리들의 신앙은 사도들의 신앙을 전승하는 것이지 새롭게 믿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만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의 삶이 주님을 증거하는 인생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복음이 주는 성격입니다.
증거하는 신앙생활은
1)우선 기본적 교회생활 자체를 잘해야 합니다(예배와 감사와 기도와 전도 등)
2)교회 밖에서 가정과 직업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마5:13-14)
성도 중에는 열매가 없이 영생만 기다리는 수준의 사람이 많습니다.
이렇다 할 간증할 거리가 없다면 신앙생활 잘했다고 볼 수 없겠지요? 믿음의 헬라어 피스티스(πίστις)는 충성한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믿음은 활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시므로 십자가의 죽으심이 헛되지 않음같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과정이 힘들어도 끝에는 하나님의 약속된 선한 열매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마7: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신앙생활 연륜이 오래 된 사람이라면 마땅히 남의 인생도 신앙적으로 가르쳐야 할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히5: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선생(先生, διδάσκαλος)이란 가르치는 자로 먼저 선(先), 먼저 본 자라는 뜻입니다.
선생은 앞서 보는 자입니다. 영생, 저 멀리 보이는 미래의 세상까지 보는 자가 성도입니다. 성도는 세상을 향한 선생입니다.
예수 믿은 지가 수년 혹은 수십 년씩 되면서 아직도 사는 질이 세상 사람보다 못하거나 세속의 힘에 의존한다면 하나님의 자녀라 하기에는 부끄러운 상태입니다.
신앙사상으로 인해 핍박을 받는 것은 처음부터 주어진 십자가이지만 삶이 세인들보다 의롭지 못하다거나 또는 약해서 오히려 세상에 도움을 받고 산다면 나를 보는 세인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하고 인정을 해주겠냐 하는 것입니다.
벧전2:19-20 ‘19.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개역)
고난이 있을 때 하나님을 위한 일로 받은 고난이면 칭찬이 되겠지만 죄가 있어서 고난이 생겼다면 무슨 칭찬이 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어떤 성도의 은혜 받은 간증을 들을 때, 대개 하는 말이 ‘당신은 은혜를 받았네요’ 그럽니다. 마치 가만히 있었는데 복을 받았네요, 하는 말투입니다.
물론 모든 잘 된 일이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그러나 그런 은혜를 입기까지 신앙으로 살아온 것은 닮으려 해야 합니다. 가만히 있는데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남이 받은 은총을 운명론적으로 이해하려는 것은 축복하는 맘도 아니고 도전받는 맘도 아닙니다. 반성을 하고 나도 그리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오심은 생명을 구하고 또 더욱 승리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고난을 당하시고 부활하시어 증명하셨습니다(요10:10). 우리는 인격과 모든 생활에 회복해야 하고 승리하도록 최선을 다해서 성경의 언약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주의 뜻을 따라 살려고 하고 복음적 계획을 가지고 활동하면서 주의 역사를 맛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좋은 이력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열심을 다해 주를 따라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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