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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과'됨'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23:1)
제가 요즘 많이 생각하는 내용이 ‘함’과 ‘됨’인데, 주님을 저의 목자 삼기로 '함'보다 제가 주님의 양이
'됨'이 더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라는
인생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문제가 없어지거나 안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다윗에게는
유난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니는 것’과 같은 문제들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족함이 없게
하실 수있는 분이십니다. 부와 권력으로는 할 수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양은 주인의
음성을 알아 들을 수있다고 합니다. 다윗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찌라도 염려하지 않고, 부족함이
없다고 간증할 수있었던 까닭은 그가 하나님의 양이'됨'으로 전적으로 자기의 목자를 믿고 따랐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그 음성이 들리십니까?
차라리 요나처럼
성화를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작정하신 일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방식으로든 아무 착오도 없이
당신께서 반드시 이루신다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매사를 그분의 관점으로만 이해하고,
힘든 고난이나 유혹이 오더라도 담대하게 맞설 수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자신의 믿음이 보잘 것 없다고
느껴도, 성도라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가 될 수있다는 확신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야 할
것같습니다. 심지어 믿음마저 내려놓고 온전히 그분의 처분에 맡기는 완전한 자기 부인의 순간이 그분의
신비한 역사가 시작되는 때임을 욥기를 통해서 배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기도의 목표가 바로 이 믿음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것이어야 할 것같습니다. 한 마디로
주님을 온전히 따르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자꾸 의심이나 불평이 생긴다면, 요나처럼 그분의 뜻을 공개적으로 거역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택함을 받은 그분의 자녀라면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역사하실 여지라도 있을 테니까요. 보잘 것 없는
우리 믿음의 한계속으로 그분을 끌어 내리려는 욕심을 아예 버리지도 않고, 버릴 생각도 못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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