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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의 셀수스 도서관에서

요한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299 추천 수 0 2016.02.23 23:5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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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18:33-40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5.11.28 주일예배 http://sungamch.net 춘천성암교회 

에베소서의 셀수스 도서관에서
요18:33-40

에베소의 도서관 이름은 셀수스 도서관입니다. 서기 130년의 로마 집정관 율리우스 셀수스가 지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여행의 일행들이 사진을 찍는 동안 저는 도서관이 바라다 보이는 창녀촌 언덕에 앉아서 아리스토 텔레스의 시학 제2권에 나온다는 ‘웃음’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소설 ‘장미의 이름’에도 가상이기는 하지만 이탈리아의 베네딕토 수도원(중세 최대)이야기가 나옵니다. 거기에는 아리스토(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의 데살로니가에 있고, 우리는 이번에 그 아리스토텔레스의 광장에도 있었습니다)의 이 시학에 나온다는 ‘웃음’이야기가 있는데 이름으로만 존재하는 책입니다.

에베소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에베소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사도요한의 묘가 있고, 에베소에는 누가의 묘가 있습니다.  

여하튼 고대의 도서관은 진리를 알게 하는 비밀을 숨기고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에베베소의 셀수스 언덕에 앉아 에코의 소설에 나오는 이탈리아의 네테딕토 수도원의 도서관을 떠 올렸다는 건 그 도서관이 담고 있는 비밀인 ‘진리’에 대해서 사고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점은 도서관이 그저 책을 쌓아놓고 있는 창고가 아니라는 겁니다. 안토니 기든스는 도서관에 대한 사고의 지평을 넓혀줍니다.

기든스는 도서관이 단순히 책이라는 물질을 쌓아 둔 물류보관소가 아니라 권력 생산의 자원을 저장하는 능력이고,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의 저장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지금은 정보를 도서관에 저장하거나 정보를 도서관에서 찾지 않죠. 지금은 도서관에 권력의 생산 능력이 있지 않습니다. 휴대폰에 있죠. 그렇기 때문에 그 권력의 정보를 공개 하거나 비공개 하는 일은 당시 사회의 근간에 중대한 위협이 되기 때문에 권력이 바뀔 때마다 도서관과 책을 파괴하고 불사르는 일이 잦았던 겁니다.

저는 오늘 도서관의 역사와 그 기능을 말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속에 감춰져 있었다는 비밀인 [진리]를 말하려고 하는 겁니다.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도 아드소라는 수사가 진리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진리에 대한 물음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기 직전 빌라도에게 심문을 당할 때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물었던 질문이기도 합니다. 나도 그 질문을 셀수스 수도원에서, 베네딕토수원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하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는 진리라고 하면, 진리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며, 따라서 누군가가 이것이 진리요 라고 외쳐야만 진리가 되는 건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진리란 사람의지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확고부동한 것이며, 그런 점에서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정의하고 있는 진리관입니다. 그런데 소설에 나오는 윌리암 수사는 이런 진리관과는 다른 진리관을 말하고 있습니다. 진리는 자기를 위해 죽어줄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진리란 그 순교자들, 진리를 위해 죽어준 사람들의 목숨을 건 투쟁의 전리품이며, 그런 점에서 진리란 그것을 만들고 운위하는 자들의 실천 과정 자체라는 겁니다. 요컨대 진리의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단지 그것은 수용하는(담지하는)사람들의 태도가 문제라는 겁니다. 이런 걸 ‘니체적 진리관’이라고 합니다만 이건 오늘의 주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진리란 내용에 의해 담보되는 게 아니라, 그 담지자들 즉 그걸 받아들이는 자들의 실천의 소산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진리를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을 조심하라는 말은, 곧 진리라고 하는 그걸 조심하라는 말입니다. 저는 오늘 이 게 정치 경제 종교의 제반 영역에 고루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우리에게 진리에 대한 ‘부정의 진리관’이 요청 되는 겁니다.

자, 진리는 고정되어 있는 부동의 무엇이 아니라 수호자들의 실천과정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역으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기존의 진리를 광분하는 일에 활용 할 수도 있는 겁니다. 바로 이때 예언자가 등장하여 너희들이 자기를 지키기 위해 광분하는 그 진리라고 하는 건 가짜다라고 하면서 새로운 진리를 말할 수 도 있는 아니겠어요?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역사상 이런 일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진리란 건 옛 진리와는 전혀 새로운 내용의 진리라기보다는 옛 진리를 운위하는 자들의 통념적인 주장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된 ‘부정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진리를 수호하는 것이란 결국 진리를 거짓 진리로 만드는 장본인이 되고 마는 겁니다. 그러니까 순교자들은 진리를 죽이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존재라는 겁니다. 진리를 지키려고 도서관과 책을 불사르는 것과 같은 겁니다.

이쯤에서 저는 성서의 한 대목을 여러분에게 제시하고자 합니다.
가라디아서 4:4-5입니다. 오늘 우리가 공동으로 읽은 요한복음의 질문을 기초로 하여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진리란,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자라는 것이죠. 이 말은 이스라엘의 전통이며 진리인 율법체계가 진리가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이게 ‘부정의 진리관’이고, 유대인의 전통과 율법이 아닌 그리스도를 믿는 일은 ‘부정의 실천’즉 새로운 진리의 수용이 되는 겁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빌라도의 질문에서 바로 이런 의미로 답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것은 율법과는 다른 진리를 말하는 게 아니라 율법으로부터의 해방을 담고 있습니다. 즉 예수의 진리는 기존의 것과는 다른 진리가 아니라 기존의 진리에 의해서, 그 독선적인 주장에 의해 눌려 있는 자들을 해방시키는 일입니다. 기존의 진리에 눌려 있는 자들을 해방 시키려는 행동 그것이 진리라는 말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바로 그걸 실행한 선구자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죽음은 진리를, 기존의 진리를 존속시키기 위한 죽음이 아닙니다. 진리라고 규정되고 그것에 눌려 있는 자들을 해방시키는 부정의 진리, 부정의 실천이었던 겁니다. 예수님은 다른 율법, 어떤 내용의 대안적인 진리를 주장한 게 아닙니다.

흔히 우리는 믿음을 율법과는 다른 내용을 가진 무엇으로, 마치 또 하나의 새로운 율법이나 체계로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서에서의 믿음은, 예수가 말하고자 하는 믿음은 율법에 대응하는 다른 진리가 아니라, 어떻게 살면 의로워진다는 내용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가 그런 진리를 부정하면서 죽임 당했다는 사실을 공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믿음의 내용은 비워 진 것, 부재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내용상 새로운 게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은 진리라고 믿는 것을 존속시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게 아니라, 진리를 죽이기 위해 목숨을 바치라고 하는 설교, 사상, 제도, 전통과 제도에 저항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목숨은 바쳤던 예수의 실천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장치가 바로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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