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마16:16 |
---|---|
설교자 : | 김부겸 목사 |
참고 : | 2010년 12월 25일 성탄절 설교 http://blog.naver.com/malsoom/118888001 |
성경말씀 : 마태복음 16장 16절
설교제목 : 예수 탄생의 신비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마태 16:16)】
<그림 이야기>
어제 밤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을 보니까, 화가 김봉준 씨가 아주 흥미로운 만화 한편을 올려왔더군요. 검게 칠해진 십자가에 얼굴에 주름살이 가득한 늙은 노동자를 매달아놓고서, 그 옆에 이렇게 써 놓았습니다. “예수여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요.”
아! 그래요. 정말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좋은 그림입니다. 특히 김 화백의 한 줄짜리 비평이 일품입니다. “예수여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요.” ………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지요.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누가 6:20).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현실적으로 가난한 자는 복이 없습니다. 복도 지지리도 없은 인간들, 그이들의 이름은 ‘가난한 자’입니다. 가난한 자는 춥고 쓸쓸하고 속상하고 비참하고 비굴하고 고통스럽습니다. 가난하다는 것, 그것은 예나지금이나 슬픈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난하기 때문에 ‘인간 이하’로 대접받기 때문입니다. 개나 돼지처럼 천덕꾸러기가 되는 삶, 그게 가난의 진실입니다. 그래서 저 역시 우리 예수님에게 당돌하게 묻고자 합니다. “예수여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요.”
<책 이야기>
최근 어느 평론가가 러시아 문학을 일컬어 ‘구도자(求道者)의 문학’이라고 평한 데 힘 입어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까라마조프의 형제’를 다시 한 번 읽었습니다. 그 책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대심문관이라는 이를 등장시켜서 예수께서 일찍이 일깨워주신 삶의 메시지들에 대해서 예리한 비판을 쏟아냅니다.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상황은 16세기 어느 날, 그러니까 1500년대에 예수가 다시 이 지상에 나타납니다. 애초에도 그랬듯이 예수는 다시 체포되었고, 대심문관이라는 직책을 갖고 있는 성직자에게 압송됩니다. 대심문관은 나이가 90세에 육박하는 노인이었지만, 키가 크고 허리가 꼿꼿했으며, 여윈 얼굴에 눈은 움푹 패어있었고, 아직도 두 눈에는 불꽃과 같은 광채가 번쩍였습니다. 그가 취조실 철문을 쾅 닫아 걸어놓은 채, 예수를 앉혀 놓은 채 일장 연설을 합니다.
【너는 정말 그리스도냐? 네가 그리스도냐 말이다? 대답을 안해도 좋다. 잠자코 있어도 좋아. 하긴 대답할 말이 없을 테지! 나는 네가 할 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나는 네가 누군지도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다. 네가 지금 또 다시 전하려고 하는 것은 모두가 민중의 신앙의 자유를 위태롭게 하는 것뿐이야. 너는 과거에 지상에 나타나서 인류에게 자유를 선물해주고 갔지만, 그것은 잘못된 메시지였다. 왜냐하면 인간이나 인간사회에 있어서 자유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없으니까! 민중은 언제나 이렇게 외치고 있다. “우리를 노예로 삼아도 좋으니 제발 먹을 것을 주십시오.” 그런데 너는 ‘먹을 것’을 외면했어. 이는 잘못된 길이었다. 네가 하늘로 떠난 후, 민중은 철저하게 깨달은 바가 있었는데, 그것은 자유와 빵은 어떠한 인간에게도 양립할 수 없다는 거야. 왜? 인간들끼리 그것을 공평하게 분배할 수는 없으니까!
너는 지상의 빵을 물리쳐 버렸어. 하늘의 양식과 자유의 이름으로. 이건 잘못된 것이었어. 너는 인간의 양심을 영원히 평안케 할 확고한 근거를 주지 않고 그 대신 이상하고 수수께끼처럼 아리송한, 인간의 힘에 겨운 것들만을 그들에게 잔뜩 주었다. 따라서 너의 행위는 인간을 조금도 사랑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오고 만거야. 너는 인류에게 자유라는 무거운 짐을 주었을 뿐이야. 이는 백해무익(百害無益)한, 즉 해를 끼칠 뿐 이익되는 것은 없는 것이지. 너는 그처럼 많은 걱정거리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그들에게 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혼란과 고통 속에 남아있게 했어. 물론 너는 신으로서의 긍지를 지키며 훌륭히 행동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신이 아니다.
인간이란 기적 없이는 살 수 없는 거야. 그래서 그들은 멋대로 기적을 만들어 내고, 마침내는 기도사의 기적이나 무당의 요술까지도 믿게 되는 거야. 너는 인간을 너무 높이 평가했어. 단언하거니와 인간이란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약하고 비열하게 만들어져 있어! 도대체 네가 한 것과 같은 일을 인간이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인간은 원래가 무력하고 비열한 족속들이야.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양심의 자유로운 결정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며 오직 신비가 있을 뿐이지. 모든 인간은 자기 양심을 거역하더라도 이 신비에 맹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 너의 사역을 수정하여, 그것을 <기적과 신비와 교권> 위에 세워놓은 거다. 우리는 네가 하늘로 떠난 후, 대략 7백 여년 쯤 너의 사상을 버렸다. 그러자 민중은 자기들을 양떼처럼 이끌어 줄 사람이 생기고 끝 없는 고통의 원인인 그 무서운 선물- 즉 자유를 마침내 제거해줄 때가 온 것을 기뻐했지. 우리가 너의 메시지를 버리고, 이렇게 가르치고 이렇게 사역하는 것이 옳은 일인 지 아닌 지, 어디 한 번 말해봐. 자 우리를 심판할 용기가 있거든 어서 심판해 봐라. 나도 너 같은 건 조금도 무섭지 않아. 이제 내가 말한 것은 실현되고, 우리의 왕국은 건설될 것이다.】
대심문관의 긴 연설을 듣고 난 예수의 반응은 무엇이었을까요? 도스토예프스키는 예수의 반응을 이렇게 꾸며 놓았습니다. 【심문관은 말을 마치고 얼마 동안 죄수, 즉 예수의 대답을 기다렸지. 그는 상대방의 침묵이 괴로웠어. 그러나 죄수는 조용히 노인의 눈을 들여다보며 뭐라고 대꾸할 기색도 없이 그냥 귀를 기울이고 있을 뿐이야. 노인은 무섭고 괴로운 말이라도 좋으니 뭐라고 말해 주기를 바랐어. 그러나 갑자기 죄수는 말없이 노인에게 다가오더니, 90 나이의 그 핏기 없는 입술에 조용히 입을 맞췄지. 그것이 대답의 전부였어.】
<예수 이야기>
예수의 메시지들은 가시처럼 언제나 인류의 목구멍에 걸려 있습니다. 소화는커녕 잘 씹히지도 않는 복음(?)입니다.【원수를 사랑하고 너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 일곱 번이 왠 말이냐. 일곱 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하라. / 가능하시다면 이 고난의 잔을 내게서 물리쳐 주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옵소서. / 악한 자를 대적치 말라. 오른 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 /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허락하시리라. /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는가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 나는 세상에 칼을 주러왔노라. /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 /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 너희가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다면 산을 옮길 것이다. /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내 말은 없어지지 않으리라.】
예수의 많은 어록들 중 단 하나라도 쉽게 소화될 수 있는 메시지는 없습니다. 그래서 고민이지요.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요!
<성탄절 이야기>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예수라는 이가 2천년 전 어간에 이 땅에 태어나심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는 참 기이한 인물입니다. 그의 어록을 읽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랍니다. 아직 인류의 문명이 제대로 발아되지도 않은 2천년 전에, 그것도 서른살 안팎의 젊은이가 이토록 기묘한 이야기들을 쏟아낼 수 있었을까요. 정말 기가 막힌 일입니다.
그래요. 오늘 우리는 예수의 탄생을 정말로 기뻐하며, 그이의 생명양식을 매일매일 곱씹으면서 살 수 있게 됨을 무한 감사하게 됩니다. 오늘 하루 예수의 복음들(?)을 잘 묵상하시면서 행복하고 신비로운 하루를 보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축도
이제는 진리의 세계로 진입한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우리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느님의 신비로운 사랑과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은총이 우리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영원토록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