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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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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신윤식 목사 |
참고 : | 은석교회(대구시 국우동) http://www.onlycross.net/ |
제목 : (1강) 말씀의 목격자
본문 : 눅1:1-4
2012.3.4
<본문>
1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2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4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설교>
누가복음은 의사 출신으로 사도바울의 동역자였던 누가가 로마의 높은 계급에 있던 데오빌로라는 사람에게 쓴 서신입니다. 따라서 데오빌로가 이방인인 것을 생각하면 누가복음은 이방인 성도를 염두에 두고 기록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점에서 누가복음은 마태복음과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염두에 두고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사도행전을 기록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원래 누가복음은 사도행전과는 전후 두 권으로 된 하나의 책이었다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으로 나누어진 것입니다. 누가의 관심사는 데오빌로와 이방 세계에서 그리스도인이 된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이루신 사실을 알리고 하나님의 사건들에 대해 확신을 갖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즉 누가복음은 말씀의 성취로 오신 예수님의 행하심과 가르치심에 대하여 근원부터 체계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기록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행 1:1-2절을 보면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한 ‘먼저 쓴 글’은 누가복음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누가는 자신이 기록한 누가복음을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신 것으로 시작하여 예수님의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 1,2절에서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라고 말한 것을 보면, 누가는 예수님에 대해서 철저하게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입장에 서서 증거하고 있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누가는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해 전하는 목격자와 일꾼이 되겠다고 말합니다. 세상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해도 누가 자신은 이루어진 일에 대해 목격자가 되어 전하는 일꾼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의해서 성취된 일을 뜻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의해 성취된 일이 무엇일까요? 두말할 것 없이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일입니다. 그리고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 하신 후에 승천하신 그 모든 일들이 말씀의 성취, 즉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해당되는 일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이런 일들이 우리 중에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이루어진 이 사실들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자신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이야깃거리 정도로만 취급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가 교회에서 어떻게 취급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저 귀에 익숙한 옛날이야기 정도로 취급되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루신 사실에 대해 목격자로도 일꾼으로도 나서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신 일이 어떻게 전해지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사실이든 사실이지 않든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그 역시 자신과 상관없는 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우리 중에 이루신 사실들, 즉 말씀의 성취로 인해 세상에 오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처럼 하찮게 취급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인 것입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이 하신 일로 충만합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이 하신 일을 벗어나 존재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신 일의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즉 세상의 모든 일은 말씀의 성취로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인간을 위해서가 아니고 인간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세상일의 이치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세상의 일들을 자기를 중심으로 바라봅니다. 때문에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에 마음을 둘 뿐 이익이 되지 않거나 자신과 상관이 없는 일, 또는 손해가 되는 일에는 외면을 하게 됩니다. 설사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라 할지라도 외면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루신 일에 대해 목격자로써 일꾼의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방관자의 자세로 일관하게 됩니다.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듯 그렇게 말씀을 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는 하나님이 이루신 일을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전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전하는 자의 바른 자세입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목격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런 그가 예수님에 대해 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예수님에 대해 목격한 사도들이 전한 바를 배우고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가 전한 것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 예수님을 전하는 자의 바른 자세입니다.
누가는 그리스도의 사건 속에 나타난 성경의 성취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드러냅니다. 그는 세례 요한의 출생 시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체험했던 감동을 온전히 이해하였으며, 예수께서 탄생하실 때, 마리아가 체험했던 감동 역시 온전히 이해하였습니다. 누가는 그 모든 것을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된 자들이 전하여 준 것에서 배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 또한 자신에게 전해진 것을 그대로 전하기 위해 붓을 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에 대한 목격자의 자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루신 일이 무엇인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일들이 우리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행하시고 이루신 일을 알게 되면 세상의 시작과 끝도 하나님이 이루신 일 안에서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모두가 다 헛되며 썩어질 것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누가는 말씀의 목격자가 전하여 준 하나님이 이루신 일을 아는 사람으로 세상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일꾼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하나님이 이루신 일에 대해 전하게 됩니다. 이것을 보면 누가는 최초의 말씀의 목격자인 사도의 뒤를 따라 가는 제 이의 말씀의 목격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도 말씀의 뒤를 따라가는 제 삼, 제 사의 말씀의 목격자가 계속 등장 할 것입니다. 과연 그 사람이 오늘 우리라고 할 수 있는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근원으로 해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이익이 되고 편함을 제공해주는 세상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하나님이 이루신 일이 전해지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님도 자신이 믿고 있으니 되었다고 생각할 뿐, 누군가가 예수님을 알고 믿게 되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때문에 말씀의 목격자로도 일꾼으로도 살아갈 이유를 느끼지를 못합니다. 오히려 말씀의 방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 입에 양식이 들어가는데 어려움이 없고, 세상에는 원하는 좋은 것들로 가득하기에 말씀의 목격자로 살아가는 일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말씀의 목격자요 일군이 된 자들이 전해준 바를 따라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믿음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 또한 말씀의 목격자의 자리로 불려 나온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참으로 복잡하고 혼돈스러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시작과 끝에 대해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고, 우리가 어디로 가는 인생인가를 살피고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물어야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인생은 우리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주관하시는 분의 뜻에 의해서 통치되고 있는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세상의 근본에 인간의 이념과 사상, 또는 돈과 권력을 둡니다. 그리고 이러한 근본을 흔드는 것에 대해서는 용납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알게 된 세상의 근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세상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가 이 세상을 넘어서, 온 우주 만물의 중심이시고 근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3,4절을 보면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고 말합니다.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서신을 쓰는 것은 데오빌로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즉 누가는 데오빌로가 알고 있는 복음의 내용에 더욱 확실히 거하기를 바라고 서신을 쓰는 것입니다. 이것이 서신을 쓰는 누가의 간절한 마음이었으며 말씀의 목격자, 그리고 말씀의 일꾼의 위치에 있는 신자에게 동일하게 요구되는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목격자란 어떤 사실이나 사건을 직접 본 사람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서 목격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직접 본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말씀의 목격자가 되어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이루신 사실들을 그대로 전해준 분이 있고, 그 내용들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의 목격자가 그대로 전하여 준 사실을 통해서 목격자가 본 것을 우리 또한 보고 확신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 된 우리 또한 말씀의 목격자의 위치에서 우리에게 전해진 말씀을 살피면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하나님의 일을 증거하는 자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말씀의 목격자라는 자리로 불려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시어 우리로 하여금 사도가 증거한 하나님의 일에 대해 듣게 하시고 깨닫게 하신 것도 우리를 말씀의 목격자가 되게 하셔서 사도가 증거한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하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누가복음을 시작하면서 여러분이 가져야 할 마음 자세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누가가 증거한 하나님이 행하시고 이루신 일에 대해 알게 하심으로써 우리 또한 말씀의 목격자로 살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나의 교회를 위해서 증거하는 말씀이 아니고, 나의 이익을 위해서 가는 길도 아닌 것입니다.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으로 드러나는 것을 위해 목격자로서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을 통해서 여러분이 알고 있는 바가 더욱 확실해지고, 그 확실함이 우리를 말씀의 목격자의 길로 이끌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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