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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아들

누가복음 신윤식............... 조회 수 437 추천 수 0 2016.03.08 23:59:47
.........
성경본문 : 눅4:22-30 
설교자 : 신윤식 목사 
참고 : 은석교회(대구시 국우동) http://www.onlycross.net/ 

제목 : (16강) 요셉의 아들 
본문 : 눅4:22-30  
2012-06-24

 

<본문>

 

22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23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용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가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24 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26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

28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

29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30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설교>

 ◉ 나사렛 사람들이 바라본 예수 ◉

 

 예수님께서 갈릴리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셨을 때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습니다. 그리고 고향 나사렛으로 가셔서 역시 회당에서 이사야의 글을 읽으시고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하시자 회당에 모인 사람들이 예수님의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읽으신 이사야 선지자의 글은 메시아가 오셔서 하실 일에 대한 내용입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가난한 자, 포로 된 자, 눈 먼 자, 눌린 자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메시아가 오시는 것이고, 바로 그 일이 예수님이 그들에게 함께 하시고 말씀하시는 오늘 응하였다고 하십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자신에게서 성취되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원자, 메시아로 믿고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에게는 이사야의 예언이 자신에게서 성취되었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지극히 당연한 말로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평범한 이웃 사람인 요셉의 아들로 여길 뿐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이사야의 예언이 자신에게서 성취되었다고 하면서 메시아 행세를 하고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정신 나간 사람으로도 보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그들이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겼다는 것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은혜로운 말에 놀랐다기보다는 은혜로운 말이 그들에게는 요셉의 아들에 지나지 않은 예수님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에 놀랐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놀라움을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라는 말로 표현을 한 것입니다. ‘너 따위가 감히 자신을 메시아라고 할 수 있느냐’라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분명 무리는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기 전까지 나사렛 사람들에게 그 어떤 기적도 보인 일이 없습니다. 때문에 나사렛의 고향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그저 평범한 인물에 불과할 뿐입니다. 목수의 아들일 뿐입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자신을 메시아로 지칭을 하니 누가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결국 문제는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안다는 것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고향이 아닌 갈릴리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셨을 때는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았다고 한 것을 보면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잘 안다는 것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고 진리의 길을 가는 일에 있어서 오히려 걸림돌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나사렛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요 1:45)는 말을 했을 때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는 말로 반응합니다. 당시 종교 지도라고 할 수 있는 제사장이나 서기관 바리새인들도 예수님에 대해서 이런 선입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결국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이 자신들과 다르지 않은 별 볼일 없는 존재라는 것 때문에 거부한 것이고,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에 비해서 한참 뒤떨어지는 존재라는 것 때문에 거부한 것입니다. 모두가 세상적인 기준으로만 예수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세상적 기준이 그들의 상식이었고 잣대였던 것입니다.

 

◉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 ◉

 

  예수님은 고향 사람들에게 “너희가 반드시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용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가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23절)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은 나사렛 사람들이 한 말이 아니라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로만 바라보는 그들이 반드시 그렇게 말할 것이라며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에 대해 어떤 말을 할 것인가를 미리 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인들이 많이 사용하던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는 속담을 인용하여 말씀합니다. 이 속담은 의사라면 남의 병을 고치기 전에 먼저 자기 병부터 고쳐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라는 선지자의 말이 자신에게서 성취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나사렛 사람들의 눈에 보인 예수님은 목수 요셉의 아들로 가난하고 눌린 자와 같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 자신도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포로 되고 눌린 자와 같은 비천한 형편에 처해있으면서도 선지자의 예언이 자신에게서 성취되었다는 것은 마치 병에 걸린 의사가 자신의 병은 고치지 못하면서 남의 병을 고치겠다고 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그 같은 속담을 인용하여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는 말로 조롱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여러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이 점을 생각하면 예수님이 가버나움에서 기적을 행하시고 그 소문이 나사렛까지 퍼진 이후에 나사렛으로 오신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나사렛 사람들은 이미 예수님이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에 대해 들었으면서도 여전히 예수님을 별 볼일 없는 요셉의 아들로만 여겼던 것입니다.

 

 어쩌면 가버나움에서 놀라운 일을 행했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이 예전과는 다른 위대한 인물로 변했을 것이라고 상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예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돌아온 예수님을 보자 가버나움에서 행한 놀라운 일도 무시해 버린 것입니다. 자신의 병도 고치지 못하는 의사의 실력은 뻔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부자가 되고 유대 사회에서 영웅적인 인물이 되어 고향에 돌아와서 선지자의 예언이 자신에게서 성취되었다는 말씀을 하셨다면 사람들은 그 말을 받아들이며 예수님도 단지 요셉의 아들로만 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형편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채 그 같은 말을 하니 인정을 받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로 ◉

 

  예수님은 이어서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두 사건을 인용하여 말씀하시는데 하나는 왕상 17장에 있는 엘리야 시대에 있었던 사렙다 과부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왕하 5장에 있는 엘리사 시대의 나아만 이야기입니다.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년 육 개월 동안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지만 엘리야는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라고만 합니다. 그리고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었다고 합니다.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은 모두 이방인입니다. 그리고 엘리야와 엘리사는 모두 이스라엘의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위대한 선지자로 인해서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인이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회당에 있는 사람들이 크게 화가 나서 예수님을 동네에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떨어뜨려 죽이려고 하자 예수님은 그 자리로 피하여 다른 곳으로 가시게 됩니다.

 

 나사렛 사람들이 그토록 화가 난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의 이야기는 나사렛 사람들이 이방인인 그들보다 못하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단지 이것만으로 이웃이었던 예수님을 낭떠러지에서 밀어 죽이려고 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이 점을 생각하면 예수님의 말씀에 그토록 분노한 것은 다른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자신들은 메시아의 보내심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로마로 인해서 억압과 고통을 받는 이스라엘의 소망은 메시아의 오심입니다. 그런데 메시아가 자신들에게는 보내심을 받지 않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말씀대로 하면 예수님을 단지 요셉의 아들로만 바라보는 나사렛 사람들의 사고방식으로는 메시아를 메시아로 알아보고 영접할 수 없으면 결국 하나님의 구원에서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 왜 은혜인가 ◉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을 듣고 놀랍게 여겼으면서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라고 한 것은 그들의 관심이 외적인 형편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과 똑같은 처지에 있는 예수님의 말을 듣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지금의 형편보다 더 낫게 해주는 분으로 바라본다면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렙다 과부를 생각해 보십시오. 오랜 가뭄으로 인해 양식이 다 떨어져서 할 수 없이 굶어 죽기로 작정한 그 과부가 엘리야 선지자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했는데,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는 기적으로 인해서 과부가 부자가 되었습니까? 형편이 더 나아졌습니까?

 

 과부에게 주어진 기적은 단지 굶어 죽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였습니다. 나아만 또한 엘리사를 만남으로 인해서 문둥병이 나았을 뿐이지 신분이 더 격상되고 부귀영화를 누리게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누리게 되는 은혜는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나 같은 자에게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고 나 같은 자가 복음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믿게 되어 하나님의 생명의 구원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아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은 이방인으로써 하나님께 무시 받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이 임했습니다. 반면에 나사렛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며 구원의 은총을 받아야 할 사람들인데 오히려 메시아의 오심과 상관이 없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께 무시 받는 존재라는 말이 그들을 분노하게 한 것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안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오늘 말씀 안에서 생각해 보면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무시 받는 것이 마땅한 존재일 뿐이다’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께 대접받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죄에 붙들려 살아가고 있을 뿐이고, 항상 나만 바라보면서 내 일에 몰두하고 살아갈 뿐입니다.

 

 가난한 자, 포로 된 자, 눈 먼 자, 눌린 자가 바로 우리입니다.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처럼 하나님과 상관없는 존재였을 뿐입니다. 데오빌로 또한 비록 각하라고 불리는 위치에 있다고 해도 하나님께 무시 받는 것이 마땅한 이방인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에게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무시 받는 것이 마땅한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대접을 받은 것이 됩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진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께 오셨고 여러분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여러분을 영원한 생명의 세계에 있게 하신 것 말고 무엇을 더 원하시고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무시를 받아 마땅한 것이 우리들임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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