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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마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768 추천 수 0 2016.03.13 15:3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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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9:38-41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9장 38절-41절: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누구든지 너희를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가 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우리를 따르지 않는 자가, 즉 예수님의 교훈을 따르지 않는 자가 예수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제자들이 금했다. 그러니까 이걸 보면 예수님을 따르지 않고도, 진리의 교훈을 따르지 않고도 예수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자들이 있구나. 그러니까 예수님을 따르면서 진리이치의 교훈의 사람으로 인격과 성품으로 만들어지는 그게 있기도 하고, 그게 없어도 예수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을 수도 있구나.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이걸 어떻게 보아야 할까? 예수님의 교훈을 안 따르면서 예수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고 있다는 이것을 하나님의 주권을 놓고 보면 주님의 허락 하에 되어지는 것인데, 왜 허락이냐? 오늘날 마귀의 모든 활동도 주님의 허락 하에 있는 것이니 이방인들 세계의 전쟁 등도 다 주님의 주권섭리 안에 들어있는 것이다. 이렇게 허락이 들어간 것은 믿는 우리로 하여금 그런 것들을 보고 듣고 겪음으로써 우리의 이룰구원 면에서 주님의 사람으로 영능의 실력으로 더 깊이 들어가게 하는 면에 이용가치가 있는 것이다.


예수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무리가 있는데 이걸 표면적으로 보면 그들이 예수를 믿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들은 예수는 믿어도 진리이치의 교훈을 안 따른다. 하나님의 성품으로 닮는 교훈을 따르지 않는다. 오늘날 교회를 보면 이런 것이 금방 드러난다.


우리가 일반적인 이치로 판단을 하면 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한다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나 세상 사는 이치를 많이 공부하고 터득해야 하는 것이고, 농사꾼은 농사짓는 이치를 공부하고 잘 터득해서 ‘어떻게 식물을 잘 길러야 되겠다. 언제 거름을 주고 언제 풀을 매주고 해야겠다’ 하는 지식을 잘 알아야 하는 건데 농사짓는 사람이 그건 내버리고 밭에 가서 무당 짓을 하면 곡식이 잘 자라겠느냐?


무당 얘기가 나왔으니 부모가 무당이 되면 그 자식은 어떻게 되겠느냐? 성경에는 이방우상을 섬기는 가정은 망한다고 했다. 일부러 망하게 한다가 아니라 스스로가 망하는 길로 들어선 것이다. 그러니까 무당 점쟁이도 귀신이 들린 것이고, 그 무당 점쟁이 앞에 가서 묻고 듣고 하는 사람도 귀신이 들린 것이다.


예수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다고 했는데, 그러면 문제는 왜 귀신이 들어온 것이냐? 귀신이 어떤 사람에게 들어가느냐? 물 없는 곳에 사는 자에게 들어간다. 이게 무슨 말이냐? 자기 속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의 물, 이 물이 없으면 귀신이 들어간다. 아무리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이치 생명이치 신적인 도덕이치의 말씀이 없으면 그 사람 속에 귀신이 들어간다. 귀신이 들어간 걸 어떻게 아느냐? 그 사람이 성격 성질적으로 나오는 걸 보면 안다.


사람 속에 도둑질하는 성질이 들어가면 남은 그걸 모른다. 그러나 그런 성질이 그 사람에게서 나올 때 알 수 있다. 들어있는 대로 나오는 거다. 들어가는 대로 나오는 거다. 못 속인다. 보고 들어가고, 듣고 들어가고, 손으로 만져서 들어가고. 그러니 인간 자기는 자기를 얼마나 잘 살펴야 될지 하나님 앞에서 그게 나온다.


자기의 육신을 사기꾼이 이용할 수 있다면 영적 면에서도 자기는 사단 마귀의 종에게 얼마든지 이용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걸 교훈적으로 보면 자기 속에 영적 면에 진리이치의 말씀으로 채워놓으면 보는 면에서 나오고, 귀로 듣는 면에서 판단이 나오고, 자기의 언행심사로써 판단이 바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서, 그 교훈을 따르지 않으면서, 교훈을 따르면 하나님의 성품이 입혀질 텐데 ‘예수 믿고 복 받아라’ 하는 것은 말씀이 아닌데 이런 교훈을 따른다면 그 사람 속에는 말씀의 물이 없는 것이니, 말씀의 물이 없는 사람은 성경에 있듯이 보면 물을 보면 그 물에 엎어지고, 불을 보면 그 불에 엎어지는 자이다.


이런 사람이 교회 안에 많이 있다. 오늘날 부흥회 한다는 데 가 보면 다 보이는 거다. 자기도 모르면 그런 데 속아 넘어가게 돼 있다.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것은 자기의 속성이 그렇게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39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예수 덕으로 먹고 마시고 사는데 예수를 비방할 자가 어디 있느냐? 그런데 표면으로는 예수를 비방은 하지 않는데 진리본질의 눈을 가지고 보면 주님의 의사성과 단일성이 아니고 팽팽하게 대립이 돼 있는 사람이 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육신의 형제들과 물질적 개념으로 대화를 할 때는 잘 통하지만 ‘교회 나갑시다. 예수 믿읍시다’ 하면 안 믿는 형제들 속에서 영적 면이 알력이 딱 붙는다. 철천지원수처럼 돼버린다. 예수 안 믿는 이웃사람보다도 이건 더 안 통한다. 이게 영들의 움직임이요 영적 알력이다.


예수 안 믿으려고 하고, ‘너나 믿어라’ 하고, ‘나 살아생전에 나에게 그런 말 하지 말아라’ 하는 이걸 생각을 해봐라. 어쩌면 마귀의 말과 똑같으냐? 마귀의 속셈하고 똑같구나.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보고 마귀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 속의 질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좋게 말하면 몰라서 못 배워서 예수를 알지 못해서 그렇다고 보는 거다.


물질은 왜 있는 거냐? 예수 믿게 하는 면에 대화를 할 때 지혜롭게 부드럽게 양념으로 쓰는 거다. 왜 그러냐? 예수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에게 ‘예수 믿읍시다’ 하면 싹 오그라진다. 그게 영적 알력이다. 그러나 안 믿는 사람들은 물질적 개념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얻어먹고 욕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물질은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생명의 세계로 밀착시키는데 지혜롭게 쓰게 되어있는 것이다.


‘금하지 말라.’ 금하지 말라는 것은 주님이 허용을 해 두었다는 의미다. 주님이 없이 되는 건 없다. 금하지 말라는 이유는 믿는 우리로 하여금 시기 나게 만들려고.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왜 믿는 우리보다 부자가 많으냐? 우리로 시기 나게 만들려고. 그걸 보고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저렇게 부자인데 하나님, 나도 저렇게 만들어 주십시오’가 아니라 우리는 영적 면으로 들어가서 임시성의 부자도 저렇게 편하고 좋거든 영원히 부요자로, 영원히 존귀영광자로 되길 원하는 소원을 갖도록, 그런 정신을 갖도록 시기 나게 만들려는 것이다.


‘능한 일을 행하고.’ 귀신 쫓는 게 보통 능한 일이냐? 무당 점쟁이가 귀신을 쫓아도 능하다고 하는데 예수 덕으로 그 일을 하고 있는데 예수님을 비방할 자가 어디 있느냐?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어떻게 위하는 자냐? 진리를 안 따르는 교인들이 예수 진리를 따르는 제자들을 어떻게 위하는 자냐? 우리가 깨닫는 면으로 이용을 한다는 면에서의 얘기다. 어떤 사람이던 별의 별 사람이던 세상 모든 것을 자기가 이룰구원 면에서 깨닫는 면으로 이용할 줄을 알아야 한다. 흉이나 보고 있고 저주나 하고 있고 헐뜯고 있으면 안 된다.


35절-37절에 있는 말씀처럼 주님께서 말씀하신 방법 말고 첫째가 되는 다른 방법이 있을까? 예수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교훈을 따르지 않고 하늘나라에서 영능의 실력적으로 첫째가 되는 방법이 있을까? 없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그랬는데, 그렇다면 우리를 위한다는 자들이 귀신을 쫓아낼 때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목적일까, 천국의 사람의 영능의 실력적으로 지혜지식적 도덕성 능력적으로 사람이 온전케 되는 것이 목적일까? 전자다.


마7:22에 보면 왼쪽에 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도 하고 귀신도 내어 쫓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했다고 할 때 예수님께서 ‘아, 내가 너희들 잘 안다’ 그랬느냐, ‘난 너희를 모른다’고 했느냐? 모른다고 했다.


마태복음에서 이들에게는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를 떠나라’ 그 말씀을 했는데, 본문에는 예수님을 따르지 않으면서 예수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면서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라’고 하셨다. 여기서는 이 말을 하고, 저기서는 저 말을 하고 왜 왔다 갔다 하느냐?


여기서 무엇이 문제일까? 또 공통점이 뭘까? 공통점의 첫째는 모두가 예수님을 핍박하지 않았다는 것. 그러니까 예수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자들이나, ‘난 너희들을 모른다. 나를 떠나가라’ 한 소리를 들은 교인이나 보면 예수님을 헐뜯고 핍박하지는 않았다.


그 다음에 그들 모두가 진리와 성령의 사람으로 속성이 실상화 되지 않았다는 게 공통점이다. 귀신을 내어 쫓는 자들이나, 예수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도 쫓은 자들이나 그들의 속을 들여다보니 실상화가 안 돼 있구나. 예수님의 속 성품을 입지를 못했구나. 예수를 믿으면 필연적으로 이게 돼 나와야 하는데 그게 안 됐다. 그게 공통성이다. 그러니까 속성적으로 성품적으로 실상화 되는 것이 없다면 천국복음이 아니라는 것이 공통성이다.


이방신 귀신을 헬라어로는 ‘다이모니아’라고 하는데, 그들이 그런 귀신을 예수이름으로 얼마나 쫓아냈는지는 모르지만 귀신들린 사람을 예배당에까지는 끌어다 놓을 수는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는 앞에까지 데려온 경우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들은 귀신들렸던 사람을 하나님의 성품을 닮게 하지는 못한다. 성령을 ‘푸뉴마’라고 하는데 이 용어를 귀신도 같이 쓴다. 그러니까 귀신이 성령의 흉내를 잘 낸다는 의미다.


내가 무당을 하던 할머니를 전도해서 그 할머니가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어떤 식으로 믿느냐 하면 무당 점쟁이 식으로 믿는다. 그러니까 이건 무당의 속성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기도를 할 때도 꼭 강대상 앞에서 이렇게(합장) 절을 한다. 무당 식으로 믿는다는 것은 예수를 믿어도 속사람이 하나도 안 바뀌고 그대로 있다는 것이다.


예수를 믿으면 속사람이 바뀌어야 하는 건데, 속사람이 예수님의 인격과 성품으로 하나님의 실상으로 바뀌어져야 진짜 예수 믿는 사람인데 본문에 보면 예수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은 그들은 이게 없는 것이다. 이들은 미혹의 영을 받은 자들을 교회 안에서 쫓아내지를 못하는구나. 그러니까 사람이 안 바뀐다.


그러면 뭘로 쫓아내느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하나님의 본질의 속성으로 즉, 지혜지식성이나 하나님의 도덕성이나 하나님의 능력성으로, 질적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영적인 생각, 영적인 소원 목적으로, 진리의 교훈으로라야 미혹의 영을 뽑아낼 수 있다.


하나님의 본질인 진리이치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교훈을 들을 때 그런 것을 분별해내지 못하고 느끼지도 못한다. 들으면 영감의 감각적으로 들어오는 건데 모른다. 안 믿는 사람들도 눈으로 보는 것은 쉽게 분별을 한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사람들 속에 여러 가지 미혹의 영들이 들어있는 것을 진리이치가 아니면, 하나님의 본질을 모르면 모른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에서 저 난리를 치는 거다.


미혹의 영이라는 말은 예수이름으로 하지만 사람들의 속에 예수의 정신이 아닌 세상 정신을 넣어준다는 의미에서 미혹의 영이라는 말이다. 예수를 믿으면 예수정신이 정확하게 들어가야 하는 건데 미혹의 영이 들어가 있으니 이상한 짓들을 하는 거다.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은 모든 정신 소원 목적 취미 추구성 이런 속성들은 미혹의 영을 받아서 그런 것인데 교회 안에서 이 미혹이 영을 받은 자들이 그 난리를 치는 것이다. 구별 분별 못하는 사람은 이걸 성령의 불이 붙었다고 하게 된다.


거짓 종들이 교인들을 신바람 나게 만들려면 세상 요소적인 코미디를 하거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며 붕붕 띄우면 된다. 그러면 그게 성령이냐? 이건 성령은 아니다. 성령은 그런 짓을 시키지 않는다. 성령은 죄에 대해, 심판에 대해 명확하게 구별 분별하게 해서 예수 믿는 자기로 하여금 바로 서게 만든다. 그러니까 성령님의 감화를 받는 성도는 눈총이 또렷해지는 거다.


구약성경에 보면 엘리야를 세워놓고 세 가지 징조가 나타나는데, 하나는 크고 강한 바람. 이 크고 강한 바람이 부니 산이고 바위고 나무고 어떻게 됐느냐? 산이고 바위고 나무고 다 부서진다. 그 다음에 지진이 나타난다. 지진에 흔들리면 사람이 어떻게 되느냐? 넘어지고 어지럽고, 그 위험이 얼마나 크냐? 바람의 위험, 지진의 위험. 그 다음에 불. 그 다음에 세미한 음성이다. 이건 오늘날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비유 비사로 말하는 거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세 가지 중에 어느 쪽으로 가고 있느냐? 다 들어있다.


무당이 혹 귀신을 내어 쫓을 런지 모르지만 무당이 교회 안에까지 들어와서 미혹의 영을 절대로 못 쫓아낸다. 무당이 교회 밖에서 귀신을 잘 내쫓는다고 해서 교회 안에 들어와서 예수이름을 가지고 목사 속에 들어있는 미혹의 영을 쫓아내느냐? 절대로 못 쫓아낸다.


본문에 무당이 귀신을 내어 쫓았는데, 귀신이 나간 그 자가 예수를 믿겠느냐, 못 믿겠느냐? 무당을 따르기 마련이다. 무당이 귀신이 쫓아냈더라도 무당은 여전히 선악과 먹은 소원 목적이다.


온 세상이 선악과 먹은 지식을 가지고 일생을 사는데 교회도 역시 선악과 먹은 지식으로 예수를 믿고 있고, 세상의 행복을 소원 목적하고 추구하고 있으면서 이방신 귀신들린 자만 귀신이 들었다고 알고 있으니 교회가 언제 생명과 영생과를 먹고 천국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되겠느냐? 안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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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구원의 의사를 좇아서 신앙을 해야만이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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