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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10:1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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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10장 13절-18절: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쌔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부모들이 예수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 예수님의 만져주심을 바란다는 것은 주님처럼 자람을 원하는 마음에서이다.
아이들의 어릴 때부터의 교육은 인간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인간창조의 목적대로 인간을 알게 하고 그렇게 살게 하는 것이 참 교육이다. 이 교육이 세상의 어느 교육도 따라올 수 없는 교육 중에 제일 고차원적인 교육이다.
일반세상의 교육은 생활에 필요한 하나의 방편을 배우는 거다. 참 교육은 생명과를 먹이는 것이 참 교육이다. 그래서 아이를 교회에 보내는 것도 그 교회를 구별을 안 하면 안 된다. 애들을 신비주의 교회로 보내면 그 어린아이들이 뭘 알겠느냐? 귀신들린 짓을 하게 된다. 어릴 때부터 방언한다고 야단법석 하는 게 무슨 방언이냐?
세상은 타락되고 저주받은 세상이라서 선악과 먹는 것부터 먼저 배운다. 이런 교육은 시간이 흘러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사건이 일어나도 그것이 왜 일어났는지 근본은 모른 채 임시방편적으로 땜질만 하는 것을 가르치는 교육이다. 이런 교육은 근본 원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인간 자기에게 있는 것임을 전혀 모르는 채로 살다가 결국은 하나님의 형벌에 불심판으로 끝을 낸다. 불심판을 받는다고 해서 지옥 갔다는 표현이 되면 안 된다.
제자들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온 심정도 모르고 ‘우리가 아이 봐주는 사람인가’ 하는 투로 아이들의 부모를 꾸짖은 듯하다.
14절: 예수님께서 그런 제자들에게 분을 내셨다. 왜? 어린아이들에게는 하늘나라의 성장이 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그 예수님께 온 자는 어린아이들이 자라는 특성이 있듯이 그 속에 하나님 성품으로 자람성이 들어있다는 말씀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젖줄을 타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정신을 먹는다면 그 아이는 천국의 성질로 얼마나 잘 성장이 될까?
어머니는 어린아이에게 젖을 줄 때 항상 진리로 커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그것이 어머니의 젖줄로 통해서 아이에게로 내려가게 길러라. 그런데 부모의 바탕이 생명성으로 돼 있지를 않다면 부모의 마음바탕에 따라서 모든 언행심사가 나올 것이니, 그렇다면 그것을 보고 자라는 아이의 자람성이 어떻게 되겠느냐? 잘못 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예수 믿는 부모는 자기 성격 성질대로 하면 안 된다.
우리의 삶은 이룰구원의 삶이다. 사건이 와도 이룰구원을 이루고 나가야 한다. 평소에 영능의 실력을 키워놓으면 그 실력이 자기에게 오는 사건을 이룰구원으로 잡아먹고 들어간다. 이렇게 될 때 이기고 이기도 하면서 더 큰 파도의 사건이 와도 그걸 또 이기고 나가는 거다.
늘 말하지만 세상은 바람 불면 파도가 일어나는 곳이 세상이다. 그러니 잔잔하게 되길 바라지 말라. 세상을 잔잔하게 만들어 달라는 그것보다도 실력을 키우는 게 훨씬 유익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룰구원의 정신을 가지고 자연이치,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깨달아 자기를 영능의 실력적으로 늘 보강을 하며 산다면 이 세상은 참 살만한 세상이다. 살만한 세상이라는 말은 잔잔한 세상이라는 말이 아니라 얼마든지 이기는 재미가 들어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그러나 예수 믿는 것이 아예 안일주의 사상이 들어있으면 맨날 자녀들이 애먹이지, 직장이 애먹이지, 그러니 힘들어서 세상을 어떻게 살겠느냐?
오늘 더운 날씨에 스트레스가 생기느냐? 그러면 자기가 스트레스 부리라고 이런 날씨를 준 것이냐? 장마가 한 번씩 와야 깨끗이 청소가 된다. 한 번씩 해일을 일으켜서 바다 밑을 청소를 해서 가라앉아 있는 오물들을 땅에다 올려놓는다. 하나님의 청소방법이 그렇다. 그게 다 하나님의 선이다. 그런 면에서 일기예보도 일종의 선지자다. 그러니 장마가 온다고 하면 얼른 서둘러서 귀한 것은 물에 안 잠기도록 높은 곳에 올려놔야 한다. 빨리 빨리 피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런 이치로 보면 세상은 참 재미가 있다.
그러나 게으르고 어리석은 사람은 준비를 못한 채 맨날 당하고 인상 찌푸리고 우울증 걸리고 한다. 그러다가 물에 떠내려가고 집이 무너지고 나무가 뽑히고 할 때 하나님을 야속타 하면 안 된다. 깨닫지를 못해서 불행을 당해놓으면 참 안타깝다.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천국에 못 들어간다.’ 아이들은 세상의 금은보다 더 귀하다. 사람은 돈으로 환산이 안 된다. 어린아이가 성장을 해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그러니까 어린아이가 자라면서 그 아이에게 어떤 미래가 들어 있느냐를 생각해 보면 값으로 환산을 할 수가 없다. 아이가 자라서 사회를 구원할 런지, 세상의 빛이 될 런지, 지구를 구원할 런지, 교회를 바로 인도할 런지? 그 아이에게 미래적으로 얼마나 좋은 미래가 있을까?
이렇게 귀한 아이들은 자꾸 자라면서 가치관도 변하는데, 그런데 세상 부모들은 ‘얘는 어릴 때부터 이런 재능을 가졌으니 이렇게 커지도록 하면 되겠다’ 하고 생각을 한다. 그렇게 생각은 할 수 있겠으나 부모의 그 틀 속에 아이를 집어넣지는 말라. 후일에 자라서 아이의 취미가 직업이 될 런지, 아니면 취미는 취미대로 놔두고 직업을 따로 가질 런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대학공부를 하고도, 정치인들이라도 하루아침에 농부가 되기도 하고 그런 게 있다.
알고 보면 자기 일생은 자기가 개척하고 나가는 건데 자식이 최소한 진리중심으로 나갈 수 있게 하는 그거는 부모의 책임이다. 어찌됐던 하나님 앞에 헛 살고 가지 않도록 언제나 진리중심으로 생각을 하고 진리로 커질 수 있도록 하는 가르침은 부모로부터 나와야 한다. 교회에서도 그런 가르침을 해야 하고.
예수 믿는 사람도 취미적으로 할 일이 있고 생계유지 면에서 직업적으로 할 일이 있는 건데, 다른 일은 안 하고 취미적으로 할 일에만 전념을 하면 밥은 누가 먹여주고 일생은 누가 책임져 주느냐?
아닌 말로 식당을 열더라도 자타의 구원에 유익이 되지 못하면 안 된다. 그러면 일반사람과 똑같다. 식당은 주로 토요일이나 주일날은 장사가 더 잘 되니까 그 날에 장사를 해서 번 돈으로 교회에 십일조를 하면 목사는 그걸 눈감아 주면 안 된다. 그건 창기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자기 몸을 팔아서 십일조를 가지고 오는 것과 똑같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이치가 아닌 일반 이치적으로도 맞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어린아이들이 귀한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일을 어린아이처럼 귀하게 받들라고 한다. 어린아이를 귀하게 받들면 하나님께 속한 여러 가지 영능의 실력이 자기 속에서 성장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받드는 너를 귀하게 만들어 준다.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영능의 실력성장이 없이는 천국에 못 들어간다 그 말이다. 지옥 간다는 말이 아니라 실력적으로 실력성이 안 되니 안 된 그 부분 그 요소는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실력적으로 패스가 안 된다 그 말이다.
하나님 나라를 귀하게 받들면 하나님의 지혜지식성이, 하나님의 도덕성이, 하나님의 능력성이 자라는 거다. 이건 일반 교육계의 성장과는 질이 다른 거다. 근본적으로 다르고 기준적으로 다르고 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니 이건 세상 그 어떤 보배보다 귀한 거다. 보통 귀한 게 아니다.
오늘날 모든 부모들은 어느 나라를 귀하게 받드느냐? 이 세상 나라냐, 천국이라는 나라냐? 자녀교육에 있어서 어느 나라를 더 귀하게 받들도록 만드느냐? 주님을 귀하게 받들면 영능의 실력적으로 자란다.
솔로몬의 지혜가 어디서부터 왔느냐? 솔로몬의 지혜와 오늘날 학박사들을 비교를 한다면 학박사들에게서는 솔로몬의 지혜는 안 나온다. 솔로몬이 그 지혜를 가지고 백성들을 다스리니 그걸 한 번 생각해 봐라. 그런 것이 성경 안에 들어있다. 솔로몬만이냐?
전무후무하다고 표현하는 이유가 뭐냐?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것이 세상 안에서의 얘기냐, 천국에 가서 솔로몬이 그렇다는 말이냐? 세상에서의 말이다. 오늘날 나도 영적으로 솔로몬보다 더 오를 수가 있다. 나라고 해서 솔로몬과 같은 지혜가 없으라는 법은 없다.
그런가 하면 말년의 솔로몬이 나라 말아먹고 나라 쪼개지게 한 것처럼 되면 안 된다. 우리 기독자들은 이방인들이 꿈꾸는 거,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을 해석해 내는 쪽으로 자기의 소원 목적 사상이 들어있어야 한다. 그게 다니엘이다. 성경을 벗어난 세상 사람들은 세상에서의 존재적 위치, 부요적 위치 그걸 걸 구한다. 하지만 성경에 보면 머리, 금, 최고라고 하는 그것들을 뜬 돌이 와서 다 부숴버린다.
어린아이를 귀하게 받들면 하나님의 지혜지식성이, 하나님의 도덕성이, 하나님의 능력성이 그 아이 속에서 자란다. 이건 돈으로 못 따지는 거다. 세상수준이 그런 사람을 못 따진다. 그런데 오늘날 부모들은 어느 나라를 더 귀하게 여겨서 어느 쪽을 받들도록 하느냐?
16절: 예수님의 가슴은 천국의 가슴이요, 하나님 아버지의 가슴이요, 천국을 품은 이 가슴으로 어린아이들에게 안수하고 축복하신다. 이 안수는 천국의 역사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아이들에게 임하게 하는 소원성이다.
세상에서 천국을 상속받는 이것이 축복이다. 예수님의 축복이 아니면 질적으로 이건 안 된다. 젊은이들은 그런 가슴을 가져라. 천국을 상속받고자 하는 그 가슴 그 정신 그 소원 목적은 하나님께서 그냥 두지 않는다. 그런데 세상 속화된 기독자들은 무엇을 축복이라고 하느냐?
예수님은 천국으로부터 이 땅에 오셔서 33년의 인생길에서 분명한 천국복음 즉, 하늘나라의 영생을 가르쳐 주셨다. 왜 그래야 하나? 우리 인간은 하늘나라에서 존귀영광자로 누림성으로 살 자로 지음 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리고 믿는 우리로 하늘나라에서 그 천국을 누림에 있어서 효율적으로 손색없이 누릴 수 있는 영능의 실력을 준비하게 해 주시려고 오셨다.
17절-18절: 그런 예수님 앞에 어떤 부자가 꿇어 엎드려서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한다. 이 부자가 예수님에게 왜 선한 선생님이라고 했을까? 아마도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해서일 거다.
하나님은 절대 선이시요, 선한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다. 예수님이 그 증거를 한다. 다른 이는 절대 선이 아니다. 이방종교인도 절대 선이 아니다. 그런데 이 부자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선은 모른 채 일반세상의 선의 개념으로 그 말을 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존재적 근원적 절대적 선이신 하나님을 바로 깨닫고 선의 개념을 바로 잡고 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자기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선의 지식이나 마음이나 정신이나 그 인격을 가져야 한다.
천국복음의 역사는 우리를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선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역사이다. 이 천국복음의 역사는 세상이라는 물질적 역사 속에 들어있다. 세상의 일반적인 역사는 껍데기이고 그 껍데기 속에 천국의 역사가, 사람의 정신 사상을 하나님의 온전으로 만드는 성령님의 참 역사가 들어있다. 그게 알맹이이고 세상역사는 껍데기다.
선악과 따먹은 타락된 인간은 다른 사람을 돕든지 좋게 해 주든지 하는 행동만을 보고 선행이라고 말한다.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처사는 우리에게 모두 선이시니 내가 하나님 자체적 선의 사람으로 인격화 자체화 되면 하나님의 선의 사람으로 돼 나가게 되고, 이런 사람으로서 언행심사가 나가면 그건 선행이 되는 거다. 사람이 하나님의 선으로 만들어진 속에서 나오는 행동이기 때문에 선하다고 하는 거다.
그래서 교회의 교훈을 보면 자체적 선의 사상의 교훈이 들어가야지 남 도와주고 하는 그런 것을 자체적인 선으로 말하면 진리본질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헛 믿게 만들고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게 만든다. 질이 그렇게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을 아이의 교훈에 연결을 시키면 아이로 하여금 사상 정신 소원 목적 인격 성품이 하나님의 본질을 닮은 선의 사람으로 들어가야 하는 건데 그건 모른 채 자꾸 ‘뭘 잘한다’ 하는 식으로 가르쳐서 그걸로 돈을 많이 벌고, 그걸 해서 훌륭하게 되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걸 하면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할지라도 돈을 못 번다면 그 일을 하라고 하겠느냐?
이 세상에서 표면적으로 보이는 모든 존재 사건 섭리 진행은 다 비사인데, 그런 것에는 우리를 당신처럼 만들고자 하는 소원 목적이 들어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이 섭리적 소원을 보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으로 보는 거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악행은 없으시다.
하나님의 진노 형벌 심판 등등은 타락한 인간 자신이 깨닫지를 못해서 그런 것들이 하나님의 악행으로 보이는 거지만 깨닫고 보면 우리에게 모든 게 선이다. 왜냐하면 모두는 우리로 깨닫게 해서 높여 주시려는 것이니까.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선을 모른 채 죽는 것은 인간이 악해서 해를 당하는 것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인간이 죽는 것도 하나님의 선의 일이다.
만일 인간이 안 죽고 늙고 이빨 다 빠지고 쭈그러진 채로 계속 산다면 괴물을 보고 있지 어떻게 그걸 보고 있겠느냐? 참 힘들겠다. 또한 늙었다가 머리가 다시 검어지고 새 이빨이 나고 해서 젊어진다고 하면 젊어서 올라오는 사람들과 상당히 혼돈이 되겠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늙어지면 곱게 늙도록 놔둬라. 안 늙어지려고 자꾸 젊은 사람 시늉을 내면 행여나 젊은 애들이 건드리면 어떻게 되겠느냐?
그래서 하나님께서 늙은 사람의 머리를 하얗게 해서 ‘젊은이들아, 건드리지 말고 나이 많은 사람에게서 인생을 배워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먹으면 주름이 생기고 하는 것은 옳은 것이다. 허리에 힘이 없으면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게 옳은 거다. 이것도 인생을 깨닫게 해 주시니 선이다.
사람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을 먹어야 자체적 선의 사람이 되는 것이고, 그 사람이 하는 것마다 선행이 나온다. 하지만 사람이 자체적으로 악하면 악행이 나오게 된다. 선악과를 먹은 자는 자체적 선이 없는 고로 전부는 하나님 앞에 악행이다. 이런 자가 아무리 선행을 한다고 해도 그건 자체적으로 된 선이 아니므로 인간 보기에는 선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선악과 먹고 나온 것이므로 악행으로 보는 거다.
부자는 근원적인 하나님의 선을 몰랐기 때문에 사실은 예수님을 알지 못한 채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이다. 단순히 예수님께서 사람의 눈에 보기 좋은 일을 하니까 ‘선한 선생이여’ 하고 부른 것이다. 예수님 당신 자체가 말씀이 육신이 되어 하나님의 자체적 선이신 것을 알고 ‘선한 선생님이여’ 한 게 아니다. 활동이 나온 것을 보고 ‘선하신 분이구나’ 그런 정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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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구원의 의사를 좇아서 신앙을 해야만이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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