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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

창세기 이정원 목사............... 조회 수 450 추천 수 0 2016.04.15 23:4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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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22:3-8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2015.7.19 희망의교회 

순종                                   

창22:3-8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시험은 각자의 분량에 맞는 시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주시는 법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작정 시험을 주시고, 무조건 그 시험을 이겨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맞는 시험, 우리가 감당할 만한 시험을 주시는 것입니다. 초등학생에게 대학 입학시험을 치르게 하는 법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이 당한 시험은 사람이 당할 수 있는 시험 중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이었습니다. 욥도 이러한 시험을 당했었습니다. 우리도 그런 시험을 당하게 되지 않을까 지레 겁낼 필요는 없습니다. 아마도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시험을 통해 우리는 그러한 시험까지도 이겨낼 수 있는 믿음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오늘 당신은 어떤 시험을 당하고 있습니까? 그 시험은 당신이 능히 이길 수 있는 시험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 시험을 이기지 못한다면 우리는 실패한 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험을 이기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더 큰 은혜와 복을 주실 것입니다.


    믿음은 순종하는 것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사랑하는 아들,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왜 그런 명령을 하시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에 아들을 죽이는 아버지가 어디 있겠습니까?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이 명령에 대해 아브라함은 얼마든지 이유와 반론을 제기할 수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명령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과 모순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아들을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그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이루어지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은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선하시며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이런 명령을 내리신다는 것은 너무나도 맞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착하고 사랑스런 아들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서 죽인다는 것은 악랄한 살인이 될 것입니다. 이런 일이 과연 공의로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일일 수가 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뭐라고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미쳐서 돌아다니더니 결국 완전히 돌아버렸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은 땅에 떨어지게 될 것이고, 아무도 그런 하나님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신 명령은 분명히 잘못된 명령이 아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이런 식으로 얼마든지 이유를 대고 따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 시험을 앞에 두고 하나님께 질문하거나 하나님과 논쟁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 명령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믿음은 내 머리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논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조금도 억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음을 다하여 순종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시험을 당할 때 우리도 이런 자세를 갖게 되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변함없이 선하시고 의로우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서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선하시고 의로우시다는 사실은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일에 대해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믿음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핑계하지 않는 것


  믿음은 이해할 수 없는 경우에도 논쟁하거나 질문을 퍼붓지 않고, 마음을 다하여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또 핑계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핑계를 대려고 했다면 얼마든지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핑계거리를 사전에 철저히 차단하고 신속하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둘렀습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3절) 아브라함은 기다렸다는 듯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왜 이렇게 일찍부터 서둘렀을까요? 그것은 자신의 연약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순종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낼 때도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서둘렀습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매워주고 그 아이를 이끌고 가게 하니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더니”(창21:14) 아브라함은 시간을 끌수록 자신의 마음이 변하기 쉽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을 받을 때마다 이렇게 아침 일찍 서둘렀던 것입니다. 천천히 시간을 보내며 순종하기를 미루다보면, 이런 저런 핑계 거리가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주위의 사람들이 듣고 와서 강력하게 만류할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순종하려고 했는데 남들이 말리는 바람에 할 수 없었다고 핑계를 댈 수 있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 모든 가능성을 처음부터 철저히 차단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는 문제를 최소한 사라와는 의논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일 뿐만 아니라 사라가 낳은 아들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라와 의논한다면 사라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죽어도 안 된다고 싸우면서 말렸을 것입니다. 차라리 나를 죽이라고 결사적으로 매달렸을 것입니다. 그러면 일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것도 아브라함이 이 명령을 순종할 수 없는 결정적인 핑계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일이 그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라와도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핑계거리를 완전히 차단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처음에 집에서 출발할 때 종 두 사람을 데리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곳 모리아산이 보이자 두 종을 떼어놓고 갔습니다.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4-5절)


  아브라함이 왜 종들을 떼어놓고 갔을까요? 만일 번제할 장소까지 종들을 데리고 간다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서 죽이려고 할 때 이 사람들이 기를 쓰고 말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철저하게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더라면, 이 종들 때문에 순종하지 못했다고 변명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것까지도 철저하게 차단했습니다.


    핑계하지 말라.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자 할 때, 이렇게 방해가 될 만한 것들을 철저하게 차단했습니다. 이것들을 핑계 삼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려는 생각이 추호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순종은 철저하고 적극적인 순종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이 자세는 오늘 우리의 자세와 얼마나 다릅니까? 우리는 얼마나 핑계를 잘 댑니까? 오늘 아침 예배시간에 늦으신 분들은 왜 늦으셨습니까?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설교시간에 조는 성도는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다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주일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나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는 것도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때로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부끄러운 일을 할 때도 핑계거리는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입니까? 정말 그렇게 불가피한 이유 때문이었습니까?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라면, 믿음으로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를 원하는 성도라면 이 모든 일을 미리 빈틈없이 준비하고 예배에 차질이 없게 할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에 있어서 우리는 얼마나 핑계를 대고 빠져나가려 합니까?


  아브라함은 핑계거리, 방해가 될 만한 것들을 사전에 철저히 차단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기 위해 사흘 길을 가야 했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에게는 또 하나의 큰 시험이요 고통이었습니다. 그 사흘 동안 이삭과 함께 길을 가면서, 아브라함은 그렇게 사랑스런 아들을 죽여서 번제로 바쳐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만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리고 종들을 머물러 두고 아브라함과 이삭 단둘이서 산으로 올라갈 때는 이삭이 직접 번제에 쓸 나무를 지고 갔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6절) 사랑스런 아들 이삭은 자기를 태워 하나님께 번제로 드릴 바로 그 나무를 등에 지고 산으로 올라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장면입니까?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신 일을 예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릴 것에 대해서 사흘 동안 묵상하면서 길을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실 일을 수천 년 동안 묵상하셔야 했습니다. 이삭은 자기를 태울 나무를 등에 지고 산을 올라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못 박혀 죽으실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이삭은 영문도 모른 채 나무를 지고 올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처음부터 아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에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래 전에 계획하셨던 대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기꺼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자 예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기꺼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오늘 이 본문을 통해 우리는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더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은혜를 좀 더 실감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기꺼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크신 은혜를 항상 기억하고, 뜨겁게 감격하며 감사하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최후의 일격


  이렇게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모든 핑계거리와 방해물을 철저히 차단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과 단둘이서 모리아산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삭이 볼 때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제사를 드리러 간다고 하면서, 나무와 칼과 불은 가지고 가는데, 결정적으로 제사에 쓸 양은 준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7절)


  그 순간 무심코 던진 사랑스런 아들의 이 질문은 아브라함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이삭의 이 질문은 시험을 당하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가장 힘들고 결정적인 일격이었습니다. 보통 아버지들 같으면 이 순간에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마도 이렇게 외치면서 울부짖을 것입니다. “애야, 바로 그 점이 문제란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너를 잡아서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단다. 여기까지 오기는 왔다마는 차마 내 손으로 너를 죽일 수가 없겠구나. 그러니 어서 도망치거라. 차라리 내가 죽는 것이 낫겠구나!”


  그러나 아브라함은 흔들리지 않는 결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삭의 질문이 비수처럼 그의 가슴을 찔러 견딜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브라함은 이 시험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돌려주실 것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실 것이다.


  이 확신을 가지고 아브라함은 아들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8절) 아브라함은 이렇게 기가 막히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신뢰했으며,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은 자기 생명보다 더 귀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생명보다 귀한 아들이라도 포기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바치면서까지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순종은 맹목적인 순종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기 때문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께는 반드시 대책이 있으리라고 확신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믿음은 자신을 불태울 나무를 지고 가던 이삭이 던진 질문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대답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선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흔들리지 않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대답한 이 말은 결국 하나님께서 하실 일에 대한 예언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주석가들은 본문을 주석하면서 아브라함이 이렇게 아들을 바치면서,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훨씬 이전의 사람인데 어떻게 이런 말이 가능할까요? 그러나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해볼 때, 우리는 이러한 해석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8:56)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으시고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며 고난을 당하고 손해를 감수해본 성도일수록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피하고 외면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을 수 없습니다.


  만일 당신에게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시험이 온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때 원망하거나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나의 믿음을 증명해 보이는 절호의 기회로 삼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고 이겨내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크게 축복하시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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