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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14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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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참고 : | 말씀의샘물교회 http://www.wordspring.net 말씀의샘물 제766호 |
謙者無敵 驕者多敵(겸자무적 교자다적)
본문/ 시147:6, 잠22:4
1. 들어가는 이야기
나는 나의 신앙고백을 “萬法歸一 一歸何處 其一天父(만법귀일 귀일하처 기일천부: 이 세상 모든 만물-모든 법칙-모든 원리는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그 하나가 무엇인가? 그것은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라고 표현하기를 좋아 합니다. 왜?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one God and Father of all, who is over all and through all and in all(엡4:6)” 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신구약 성경에는 많은 규례-명령-율법-율례-가르침-윤리적 덕목들이 있습니다. 구약의 계약법전-성결법전-신명기법전-레위기법전 등은 십계명으로 요약되고(The Understanding The Old Testament, B.W.Anderson, 96쪽), 신약의 산상수훈-바울 서신의 새사람, 성령의 열매(갈5:22-24, 롬13:12-14, 골3:1-2, 엡4:21-5:8) 등은 예수님의 두 큰 계명 하나님 사랑+사람 사랑(막12:28-34)으로 요약됩니다. 그런데 이 모든 덕목을 萬法歸一(만법귀일) 하면 “謙遜(겸손-the humble)”이 아닐까 생각되어, 앞으로 몇 주간 謙遜(겸손)의 문제를 묵상하고자 합니다.
2. 시편과 잠언에 나타나는 겸손-교만에 대하여
*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으니 저희 마음을 예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고아와 압제 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가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시리이다(시10:17-18) *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시22“26)
*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는 붙드시고 악인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시147:6) *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시149:4)
*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영달함은 수치가 되느니라(잠3:34-35) * 내 아들아 네가 네 이웃의 손에 빠졌은즉 이같이 하라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되(잠6:3) *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잠11:2) *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잠15:33) *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잠16:19) *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잠18:12) *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잠22:4) *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잠29:23)
3. 謙遜無敵 驕慢多敵(겸자무적 교만다적), 무슨 뜻인가?
첫째. 謙遜(겸손-the humble)의 우리말 사전적 定義(정의)는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낮추는 태도가 있음”-영어로는 humble, humility, meek, modesty, lowly 등인데 그 뜻은 “lacking all signs of pride, aggressiveness, or self-assertiveness(자만심-공격성-자기주장이 없거나 약한 태도”입니다. 그리고 謙虛(겸허)-溫柔(온유: 성질이 온화하고 부드러움)-예의 바른 태도-섬김-친절-베풂 등도 겸손과 同族語群(동족어군)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자기가 만나고 있는 사람을 속으로 非難(비난)-評價(평가)-判斷(판단)-比較(비교)-批判(비판) 등으로 분별하는 태도는 겸손이 아닙니다. 假裝(가장) 된 모든 겸손은 겸손이 아닙니다. 즉,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자기 실력을 감추고 겸손한 체 하는 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勢(세) 불리하여 하는 수 없이 지금은 숙이고 있으나 두고 보자 하는 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자기 기분에 따라 어떤 때는 겸손하고 어떤 때는 아니 겸손한 것도 겸손이 아닙니다.
둘째. 驕慢-自慢-倨慢-傲慢(교만-자만-거만-오만-pride)의 우리말 사전적 定義(정의)는 “잘난 척하고 뽐내며 건방지고 버릇이 없음”-영어로는 pride, plume, pique, preen 등인데 그 뜻은 “to congratulate(oneself) because of something one is, has, or has done or achieved. usually implies a taking of credit for something that redounds to one’s honor or gives just cause for pride-자기 자신의 지위나 소유나 자기가 이룬 業績(업적)을 스스로 자랑하는 것. 통상 자기가 성취한 것으로 얻은 명예나 남들이 알아주는 것을 스스로 자만하는 태도” 입니다.
종교-군사-학문-경제-정치-예술-과학-스포츠 등 여러 분야에서 보통 사람들이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루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대단한 일을 스스로 과시하거나 그것을 믿고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잘난 척하고 건방지고 뽐내는 태도가 바로 교만입니다. 이것이 도를 넘으면 자만-거만-오만입니다.
셋째. 謙遜(겸손)은 외적 문제가 아니라 존재론적-내적 문제입니다. 누군가 자기 분야에서 보통 사람이 이루지 못하는 일을 이루었다는 것은 정말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그것에 대하여 스스로 矜持(긍지)-보람-기쁨을 느끼는 것-그리고 그것을 본 많은 사람들이 축하하고 박수치는 것은 교만도 아니고 겸손도 아니고 人之常情(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그것에 집착하여 계속 “내가 이루었다!” 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그것으로 만족하고 거기서 멈추는 것-곧 知止止止(지지지지: 멈추어야 할 때를 깨닫고, 멈추어야 할 때 멈추는 것) 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잠18:12)” 하신 것입니다. 謙者無敵 驕者多敵(겸자무적 교자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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