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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책 뒤안길] 교황의 자비의 경제학 <이놈의 경제가 사람 잡네>
목회독서교육 김학현 목사............... 조회 수 347 추천 수 0 2016.04.26 23:58:45출처 : | 김학현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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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은 왜 '자본주의'를 악마로 규정했을까
[책 뒤안길] 교황의 자비의 경제학 <이놈의 경제가 사람 잡네>
"새 교황은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장애인들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온 새로운 교황은 경제에 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다. '세상의 끄트머리'에서 온 이 교황은 가난한 이들을 덜 가난하게 만드는 유일한 시스템인 자본주의를 악마로 규정한다."
일간지 <폴리오>의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혹평이다. 이 신문은 심지어 교황의 언어를 '이교적 언사'라며 끌어내린다. 그런데 <폴리오>만이 아니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칼 마르크스와 볼셰비키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끈 레닌이나 그의 추종자들과 같은 주장을 한다고 공산주의자로 몰고 간다.
취임 이후 가난한 이들의 이웃이 되려고 동분서주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어느 새 공산주의자가 되고 말았다. 지금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물결이 얼마나 드센가를 보여주는 일례라 할 수 있다. 교황은 선출 된 지 8개월 만에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을 발표해 신자유주의가 팽배한 서구 사회의 잘못된 경제 질서에 대해 정곡을 찌르는 말을 했다.
가난한 소외계층 돌아보자는데, 공산주의라고?
"우리는 소외와 불평등을 가져오는 오늘날의 경제에 대해 '멈춰!'라고 소리치며 거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경제가 사람을 죽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략) '낙수효과' 논리를 옹호하며, 자유로운 시장의 경쟁 논리에 따라 경제가 성장하고 스스로 균형을 이룰 것이며 사회적 통합이 이루어질 것이라 전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낙수효과' 이론은 제대로 실현되지도, 증명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제왕적 경제시스템에서 성역화 된 권력과 경제력을 가진 이들이 선의를 베풀 것이라고 근거 없이 순진하게 신뢰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조만간 이러한 자본주의 제도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져서 하염없이 도움의 손길만을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 <이놈의 경제가 사람 잡네> 9, 10쪽
프란치스코 교황이 <복음의 기쁨>과 <찬미 받으소서>라는 두 교황 권고를 통하여 소외된 이웃과의 공유경제를 말하자, 맘껏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신경제의 '금수저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이를 시세 표현으로 하면, "'흑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할지라라도 경제의 풍요를 함께 좀 누리자" 하며 교황이 대변했더니 "누가 '금수저'로 태어나지 말래. '흙수저'에게 무언가 나누라고 하는 것은 공산주의자나 하는 짓이야" 하는 꼴이다. 우리네 '종북 몰이'와 여간 닮지 않았나?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게 복지혜택을 골고루 나누자고 하면 여지없이 '종북'이라고 몰아붙인다. 영유아 무상보육정책이라든가, 학교 급식문제, 외교안보정책 등에 대한 공유경제 취지의 주장을 하면 어느 새 '종북'이 되어버린다. 심지어는 정부 여당에 반대해도 '종북'이 되고, 세월호 조사를 제대로 하자고 해도 '종북'이 된다. 참 희한한 세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종북으로 몰릴까 봐 제대로 말을 꺼낼 용기를 잃은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교황은 기죽지 않고 그의 주장을 편다. 취임 이후 전 세계를 돌며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되어 주고 있다. 교황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바로 내가 바라는 것입니다"(23쪽)라는 발언을 꺾을 사람은 없을 듯하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나라에서 교회가 가난한 사람을 위해 있다고 하면 코웃음을 칠 사람들이 많다. 한국의 교회는(특히 개신교) '대형교회'라는 프레임에 침몰된 지 오래다. 심지어는 매스컴까지 대형교회들의 영향력 아래 놓이면서 한국에는 대형교회와 부자 성도밖에는 없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다.
"이 놈이 경제가 사람 잡네"... 경제 이기주의 꼬집어
교황은 단호하게 '사람을 죽이는 경제'가 가속화 되는 상황을 경고한다. 소수의 사람들이 부를 거머쥐고 대다수의 가난한 이들을 돌보지 않는 신경제 체제를 '사람을 죽이는 경제'로 보는 교황의 시각에 대한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래와 같은 말은 진리다.
"소수의 소득이 급격히 증가하는 동안, 그에 비례해서 소득이 줄어든 대다수 사람들은 이 소수가 누리는 행복하고 안락한 삶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비대칭적인 불균형은 절대적인 자유시장과 금융투기를 보장하는 이데올로기의 산물입니다."(본문 87쪽)
교황은 사람을 죽이는 경제 시스템의 특징을 '자신의 부를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지 않는 것'이라며, 이는 "가난한 이들의 재산을 훔치고 갈취하는 것"(75쪽)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이기주의 문화'다. 진정한 사회 정의는 '함께하는 문화'에서 가능하고 '나누는 삶(공유경제)'에서 가능하다고 대안을 제시한다.
교황을 반대하는 자들은 교황이 경제에 대하여 모른다고 반박하지만, 내가 보기에 교황은 경제학자들과 이론적 논쟁을 하자는 게 아니다. 성경의 진리, 즉 복음을 말하는 것이다. 경제를 알고 모르고의 논의가 아니고 인간의 존엄한 가치에 대한 이야기다. '금수저'만 귀중한 인생이 아니고 '흙수저'도 귀중한 인생이라는 뜻이다.
교황은 돈이 중심이 된 사회를 인간이 중심이 되는 사회가 되도록 정치와 경제가 힘쓰자고 제안한다. '돈의 신'을 숭배하는 사회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진정한 정의는 없다는 뜻이다. 교회가 "정의를 위한 변호사가 되어서, 경제 사회적 불평등 때문에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가난한 이를 보호하도록 부름을 받았다"(41쪽)고 말한다.
부자들의 교회가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교회가 진정한 교회란 뜻이다. '부자성도, 대형교회'의 신드롬에 빠진 한국교회가 귀를 기울여야 할 제안이다. 교황은 더 나아가 "인간이 이윤과 소비의 우상에 희생되고 있다"며, 이런 것이 '쓰레기 문화'라고 꼬집는다.
우리는 여기서 멈춰 서서 교황의 일갈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금수저'만 잘 사는 '더러운 세상'은 언젠간 무너진다.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이 진정 잘 사는 세상이다. 온 나라에 전쟁 그늘이 드려지고 있는 지금 전쟁에 대한 교황의 일갈도 잊지 말아야 한다.
교황은 "우상화 된 경제가 전쟁을 부양한다"(183쪽)고 했다. 전쟁이 벌어지면 경기가 부양되는 어처구니없는 몇몇 미국 참전 전쟁을 빗대어 이른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은 없어야겠다. 어느 쪽 무기에 더 많은 돈이 투입되었는가를 자랑하지 말자. 이제 교황의 주장처럼, '자비의 경제, 나눔의 경제, 공유경제'로 돌아가야 할 때다.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일간지 <폴리오>의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혹평이다. 이 신문은 심지어 교황의 언어를 '이교적 언사'라며 끌어내린다. 그런데 <폴리오>만이 아니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칼 마르크스와 볼셰비키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끈 레닌이나 그의 추종자들과 같은 주장을 한다고 공산주의자로 몰고 간다.
취임 이후 가난한 이들의 이웃이 되려고 동분서주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어느 새 공산주의자가 되고 말았다. 지금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물결이 얼마나 드센가를 보여주는 일례라 할 수 있다. 교황은 선출 된 지 8개월 만에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을 발표해 신자유주의가 팽배한 서구 사회의 잘못된 경제 질서에 대해 정곡을 찌르는 말을 했다.
가난한 소외계층 돌아보자는데, 공산주의라고?
"우리는 소외와 불평등을 가져오는 오늘날의 경제에 대해 '멈춰!'라고 소리치며 거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경제가 사람을 죽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략) '낙수효과' 논리를 옹호하며, 자유로운 시장의 경쟁 논리에 따라 경제가 성장하고 스스로 균형을 이룰 것이며 사회적 통합이 이루어질 것이라 전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낙수효과' 이론은 제대로 실현되지도, 증명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제왕적 경제시스템에서 성역화 된 권력과 경제력을 가진 이들이 선의를 베풀 것이라고 근거 없이 순진하게 신뢰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조만간 이러한 자본주의 제도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져서 하염없이 도움의 손길만을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 <이놈의 경제가 사람 잡네> 9, 10쪽
프란치스코 교황이 <복음의 기쁨>과 <찬미 받으소서>라는 두 교황 권고를 통하여 소외된 이웃과의 공유경제를 말하자, 맘껏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신경제의 '금수저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이를 시세 표현으로 하면, "'흑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할지라라도 경제의 풍요를 함께 좀 누리자" 하며 교황이 대변했더니 "누가 '금수저'로 태어나지 말래. '흙수저'에게 무언가 나누라고 하는 것은 공산주의자나 하는 짓이야" 하는 꼴이다. 우리네 '종북 몰이'와 여간 닮지 않았나?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게 복지혜택을 골고루 나누자고 하면 여지없이 '종북'이라고 몰아붙인다. 영유아 무상보육정책이라든가, 학교 급식문제, 외교안보정책 등에 대한 공유경제 취지의 주장을 하면 어느 새 '종북'이 되어버린다. 심지어는 정부 여당에 반대해도 '종북'이 되고, 세월호 조사를 제대로 하자고 해도 '종북'이 된다. 참 희한한 세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종북으로 몰릴까 봐 제대로 말을 꺼낼 용기를 잃은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교황은 기죽지 않고 그의 주장을 편다. 취임 이후 전 세계를 돌며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되어 주고 있다. 교황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바로 내가 바라는 것입니다"(23쪽)라는 발언을 꺾을 사람은 없을 듯하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나라에서 교회가 가난한 사람을 위해 있다고 하면 코웃음을 칠 사람들이 많다. 한국의 교회는(특히 개신교) '대형교회'라는 프레임에 침몰된 지 오래다. 심지어는 매스컴까지 대형교회들의 영향력 아래 놓이면서 한국에는 대형교회와 부자 성도밖에는 없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다.
"이 놈이 경제가 사람 잡네"... 경제 이기주의 꼬집어
교황은 단호하게 '사람을 죽이는 경제'가 가속화 되는 상황을 경고한다. 소수의 사람들이 부를 거머쥐고 대다수의 가난한 이들을 돌보지 않는 신경제 체제를 '사람을 죽이는 경제'로 보는 교황의 시각에 대한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래와 같은 말은 진리다.
"소수의 소득이 급격히 증가하는 동안, 그에 비례해서 소득이 줄어든 대다수 사람들은 이 소수가 누리는 행복하고 안락한 삶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비대칭적인 불균형은 절대적인 자유시장과 금융투기를 보장하는 이데올로기의 산물입니다."(본문 87쪽)
교황은 사람을 죽이는 경제 시스템의 특징을 '자신의 부를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지 않는 것'이라며, 이는 "가난한 이들의 재산을 훔치고 갈취하는 것"(75쪽)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이기주의 문화'다. 진정한 사회 정의는 '함께하는 문화'에서 가능하고 '나누는 삶(공유경제)'에서 가능하다고 대안을 제시한다.
교황을 반대하는 자들은 교황이 경제에 대하여 모른다고 반박하지만, 내가 보기에 교황은 경제학자들과 이론적 논쟁을 하자는 게 아니다. 성경의 진리, 즉 복음을 말하는 것이다. 경제를 알고 모르고의 논의가 아니고 인간의 존엄한 가치에 대한 이야기다. '금수저'만 귀중한 인생이 아니고 '흙수저'도 귀중한 인생이라는 뜻이다.
교황은 돈이 중심이 된 사회를 인간이 중심이 되는 사회가 되도록 정치와 경제가 힘쓰자고 제안한다. '돈의 신'을 숭배하는 사회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진정한 정의는 없다는 뜻이다. 교회가 "정의를 위한 변호사가 되어서, 경제 사회적 불평등 때문에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가난한 이를 보호하도록 부름을 받았다"(41쪽)고 말한다.
부자들의 교회가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교회가 진정한 교회란 뜻이다. '부자성도, 대형교회'의 신드롬에 빠진 한국교회가 귀를 기울여야 할 제안이다. 교황은 더 나아가 "인간이 이윤과 소비의 우상에 희생되고 있다"며, 이런 것이 '쓰레기 문화'라고 꼬집는다.
우리는 여기서 멈춰 서서 교황의 일갈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금수저'만 잘 사는 '더러운 세상'은 언젠간 무너진다.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이 진정 잘 사는 세상이다. 온 나라에 전쟁 그늘이 드려지고 있는 지금 전쟁에 대한 교황의 일갈도 잊지 말아야 한다.
교황은 "우상화 된 경제가 전쟁을 부양한다"(183쪽)고 했다. 전쟁이 벌어지면 경기가 부양되는 어처구니없는 몇몇 미국 참전 전쟁을 빗대어 이른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은 없어야겠다. 어느 쪽 무기에 더 많은 돈이 투입되었는가를 자랑하지 말자. 이제 교황의 주장처럼, '자비의 경제, 나눔의 경제, 공유경제'로 돌아가야 할 때다.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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